선택과 책임과 보상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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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2-25 18:46
*** 선택과 책임과 보상 / 히브리서 11:23-27
** 들어가는 말
히브리서 11:23-26,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한 젊은 여성도가 약혼자와 함께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약혼한 남성과 여러 가지 대화를 했습니다. 한 참 후에 목사님은 약혼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여성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남자와 결혼하지 마십시오. 이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말에 두 사람 모두 놀라서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목사님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이 남자 분은 결혼의 가치관에 대한 물음에 하나도 옳게 대답한 것이 없습니다. 이 남자에게서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조금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육체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마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여성도는 목사님의 말을 무시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 후 넉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여성도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때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더라면…”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매일의 삶에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밥을 먹을까! 빵을 먹을까! 굶을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까! 어느 길로 갈까! 이 사람을 만날까! 말까!, 어떤 말을 할까! 등등. 사람의 삶은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나타나고 결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내가 선택한 일에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29절에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에서 육신으로 살면서 모든 삶에서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한 번 뿐인 자신의 인생을 책임감 있게 성실하게 살아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입니다. 모세는 엄청난 책임의 중압감과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도 평온하고 부드러운 삶을 유지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2:3절에서 “모세의 온유함이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나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함”이란 ‘연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조용하면서 확신 있는 자세’이며, ‘내적인 안정과 마음의 평안’입니다. 성경에서 “온유하다.”고 표현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모세입니다.
본문은 모세의 삶과 사역에 대한 요약입니다. 모세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모든 사람들은 탁월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의 영예의 전당’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모세는 어느 인물보다도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은 모세의 탁월한 선택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믿음으로 모세는 그가 장성하였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했습니다. 이 사실을 본문에서는 신약 적으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그 이유는 앞으로의 상급이 있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애굽을 떠났다.” 이 말씀 속에서 모세의 확고한 신앙의 자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선택과 확고한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 즉 보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선택한 삶의 길에 대하여 어떠한 결과에도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상급의 보상을 확신합니까? 확신하신다면 이 말씀을 통하여 더욱 확고히 하시고, 만일 확신이 없다면 확신하는 길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1. 바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모세가 확실한 삶의 자세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로 바른 선택을 꼽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모세는 출생 후 3개월 만에 바로의 공주의 손에 넘겨져서 애굽 왕실에서 자랐습니다. 자신의 본래 신분은 유대인이었지만, 바로의 딸은 그를 애굽인으로 키웠습니다.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은 애굽의 노예로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40세가 되도록 애굽 왕실의 문화와 환경에 길들여졌고 안정된 지위를 가졌습니다. 만일 모세가 애굽 왕실의 사람으로 출세를 꿈꿨다면 그의 평생이 보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코 자신의 신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40세가 되던 어느 날, 노역장에서 노예로 일하는 자신의 동족들이 애굽 사람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애굽인 감독을 죽여 버렸습니다. 이로서 모세는 자신의 보장 된 미래를 버리게 되었고, 유대인이라는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루아침에 왕자의 신분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사실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표현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자신의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노예 신분인 자신의 백성을 선택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택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권세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짜 신분이지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안정된 보장과, 본래신분인 노예로서의 고난과 천박한 삶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무리 본래의 신분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고난과 비천함을 택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지금도 세상의 부귀영화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울릉도에서 살 때, 68년도이던가? 그 해 겨울에 눈이 3미터가 넘게 온 적이 있었습니다. 단층집 지붕은 안 보이고 이층집이 일층처럼 보였습니다. 그 때 눈 무게 때문에 나무들이 부러지고 지붕이 무너지고 도로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눈이 얼마나 가볍습니까! 그런데 그 눈이 쌓이고 쌓이니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갈등과 염려도 이와 같습니다. 별 것도 아닌 갈등이나 염려가 하나 둘 씩 쌓이면, 나중에는 자신의 인생이 죄의 무게로 파멸의 늪에 빠질 것입니다. 순간적인 육체적인 쾌락의 노예, 돈의 노예, 세상 물질과 명예의 노예로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길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길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본문 25절에서 모세는 바로 궁에서 죄악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가짜 신분을 과감하게 거절했고, 하나님의 선민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민의 현재 상태는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노예 신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선민에게 지워진 책임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고,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오죽하면 “잘되면 자기 탓, 안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생겼겠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최초의 인류였던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될 만큼 인간의 오랜 고질병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책임을 아담은 하와 탓으로, 하와는 뱀 탓으로 돌렸습니다.
물론 강압적인 힘에 의하여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의 삶에는 거의 모든 일이 자신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령 강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그것마저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2:1절에서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전서 4:5절에서는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고 하십니다. 즉 ‘자신이 행한 일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 한 마디, 작은 행위 하나, 마음의 생각까지 책임 있게 해야 합니다.
3. 선택의 결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선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상급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의 뜻대로 산 사람에게는 징벌로 보응하십니다. 로마서 2:7-8절에서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 3:10-11절에서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상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심지어 주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 잔을 대접한 행위까지도 보상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즉 모세의 삶에서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는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사 왕의 개혁을 독려하시면서 역대하 15:7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고 하십니다. 민수기 18:2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수고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은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길을 택한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이제 2월 첫째주일입니다. 올바른 선택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머뭇거리고 늦어지면 좋은 길을 놓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마가복음 10:2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와 영원한 나라에서의 보상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올바른 선택을 하여 책임에 따르는 생명과 영광의 보상을 받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히브리서 11:23-26,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결혼을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한 젊은 여성도가 약혼자와 함께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은 약혼한 남성과 여러 가지 대화를 했습니다. 한 참 후에 목사님은 약혼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여성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남자와 결혼하지 마십시오. 이 사람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 말에 두 사람 모두 놀라서 이상하다는 눈초리로 목사님을 보았습니다. 목사님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이 남자 분은 결혼의 가치관에 대한 물음에 하나도 옳게 대답한 것이 없습니다. 이 남자에게서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마음을 조금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오직 육체적인 욕망을 채우려는 마음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여성도는 목사님의 말을 무시하고 결혼을 했습니다. 그 후 넉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여성도가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때 제가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더라면…”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매일의 삶에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떤 옷을 입을까!, 밥을 먹을까! 빵을 먹을까! 굶을까!,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할까! 어느 길로 갈까! 이 사람을 만날까! 말까!, 어떤 말을 할까! 등등. 사람의 삶은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나타나고 결과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내가 선택한 일에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29절에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에서 육신으로 살면서 모든 삶에서 선택과 결과에 대한 책임과 보상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한 번 뿐인 자신의 인생을 책임감 있게 성실하게 살아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입니다. 모세는 엄청난 책임의 중압감과 수많은 문제들 속에서도 평온하고 부드러운 삶을 유지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2:3절에서 “모세의 온유함이 세상의 모든 사람보다 나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함”이란 ‘연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온유함은 ‘조용하면서 확신 있는 자세’이며, ‘내적인 안정과 마음의 평안’입니다. 성경에서 “온유하다.”고 표현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모세입니다.
본문은 모세의 삶과 사역에 대한 요약입니다. 모세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모든 사람들은 탁월한 믿음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나라의 영예의 전당’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모세는 어느 인물보다도 많은 분량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특히 본문은 모세의 탁월한 선택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믿음으로 모세는 그가 장성하였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좋아했습니다. 이 사실을 본문에서는 신약 적으로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그 이유는 앞으로의 상급이 있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애굽을 떠났다.” 이 말씀 속에서 모세의 확고한 신앙의 자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의 이러한 선택과 확고한 신앙은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 즉 보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선택한 삶의 길에 대하여 어떠한 결과에도 책임을 질 수 있습니까?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상급의 보상을 확신합니까? 확신하신다면 이 말씀을 통하여 더욱 확고히 하시고, 만일 확신이 없다면 확신하는 길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1. 바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모세가 확실한 삶의 자세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로 바른 선택을 꼽았습니다. 모세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모세는 출생 후 3개월 만에 바로의 공주의 손에 넘겨져서 애굽 왕실에서 자랐습니다. 자신의 본래 신분은 유대인이었지만, 바로의 딸은 그를 애굽인으로 키웠습니다.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은 애굽의 노예로서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40세가 되도록 애굽 왕실의 문화와 환경에 길들여졌고 안정된 지위를 가졌습니다. 만일 모세가 애굽 왕실의 사람으로 출세를 꿈꿨다면 그의 평생이 보장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결코 자신의 신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가 40세가 되던 어느 날, 노역장에서 노예로 일하는 자신의 동족들이 애굽 사람에게 학대당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애굽인 감독을 죽여 버렸습니다. 이로서 모세는 자신의 보장 된 미래를 버리게 되었고, 유대인이라는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루아침에 왕자의 신분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이 사실을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고 표현합니다. 모세가 이렇게 자신의 출세의 길을 포기하고 노예 신분인 자신의 백성을 선택했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택했음’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명예권세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하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가짜 신분이지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안정된 보장과, 본래신분인 노예로서의 고난과 천박한 삶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아무리 본래의 신분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고난과 비천함을 택할 수 있겠습니까? 혹시 지금도 세상의 부귀영화와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울릉도에서 살 때, 68년도이던가? 그 해 겨울에 눈이 3미터가 넘게 온 적이 있었습니다. 단층집 지붕은 안 보이고 이층집이 일층처럼 보였습니다. 그 때 눈 무게 때문에 나무들이 부러지고 지붕이 무너지고 도로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눈이 얼마나 가볍습니까! 그런데 그 눈이 쌓이고 쌓이니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갈등과 염려도 이와 같습니다. 별 것도 아닌 갈등이나 염려가 하나 둘 씩 쌓이면, 나중에는 자신의 인생이 죄의 무게로 파멸의 늪에 빠질 것입니다. 순간적인 육체적인 쾌락의 노예, 돈의 노예, 세상 물질과 명예의 노예로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길인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길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2.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릅니다.
본문 25절에서 모세는 바로 궁에서 죄악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가짜 신분을 과감하게 거절했고, 하나님의 선민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민의 현재 상태는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노예 신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선민에게 지워진 책임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책임을 회피하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고,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오죽하면 “잘되면 자기 탓, 안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생겼겠습니까! 이러한 현상은 최초의 인류였던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될 만큼 인간의 오랜 고질병입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책임을 아담은 하와 탓으로, 하와는 뱀 탓으로 돌렸습니다.
물론 강압적인 힘에 의하여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지금 우리의 삶에는 거의 모든 일이 자신이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설령 강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그것마저도 자신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선택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2:1절에서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전서 4:5절에서는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고 하십니다. 즉 ‘자신이 행한 일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 한 마디, 작은 행위 하나, 마음의 생각까지 책임 있게 해야 합니다.
3. 선택의 결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모든 일에는 보상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선한 일을 행한 사람에게는 상급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신의 뜻대로 산 사람에게는 징벌로 보응하십니다. 로마서 2:7-8절에서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사야 3:10-11절에서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보상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심지어 주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 잔을 대접한 행위까지도 보상하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고난 받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즉 모세의 삶에서 우선순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는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사 왕의 개혁을 독려하시면서 역대하 15:7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고 하십니다. 민수기 18:21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수고하고 봉사하고 섬기는 일은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길을 택한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이제 2월 첫째주일입니다. 올바른 선택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머뭇거리고 늦어지면 좋은 길을 놓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마가복음 10:2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와 영원한 나라에서의 보상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자유의지로 올바른 선택을 하여 책임에 따르는 생명과 영광의 보상을 받는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