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되기를 기대하십니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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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1-27 11:55
*** 잘 되기를 기대하십니까? / 시편 126:1-6
** 들어가는 말
시편 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지금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2010년을 시작하면서, 아니면 이전부터 마음에 간직한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까? 아마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제게는 한결같은 소망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기도할 때마다 아뢰는 소망인데, ‘항상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복음성가로도 이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작사를 한 분도 저와 같은 그런 마음이었나 봅니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원을 이루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소원만 이루기를 원한다면 그 소원은 영원히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11장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1-2절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런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다.” 6절에서는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런지 저것이 잘 될런지 혹 둘이 다 잘 될런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엇인가를 거두려면 부지런히 뿌려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과 뜻을 같이 하는 이 말씀을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격하고 기뻐하는 찬양입니다. 즉 포로 생활에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격 어린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난을 돌아보시고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시켜 그토록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고국의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70년이나 방치되어 있었으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본문 6절에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며, 낙심하지 않고 포로에서부터 구원받을 때의 감격을 회상하면서, 본토가 반드시 재건되리라는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 시편은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는 ‘절대불변의 하나님나라의 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에 세우신 법칙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 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심는 대로 거두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땅은 정직해서 심고 노력한 만큼 거두게 합니다. 이 법칙은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등.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거두기를 원하는 것을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추수할 것이 있기 위하여 기회가 있을 때 무엇이든 부지런히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는 말씀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는 뼈아픈 고난을 감내하면서라도 씨를 뿌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되기를 기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꿈꾸는 듯 한 큰 기쁨과 감격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만 본다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말씀에는 무엇인가 깊은 안타까움을 안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는 등, 수많은 죄악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징계하셨고,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불순종의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생활 중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방되었습니까?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사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육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악과 불순종을 심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들은 회복을 위하여 아무 것도 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포로에서 해방되며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심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거두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셨던 ‘언약’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역대상 17:7-14절에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고 애쓰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셨고, 아들인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그 후손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는 결코 일어설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죽어버린 고목을 베어 버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고목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사실을 6:1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 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남은 그루터기인 ‘거룩한 씨앗’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시면서 포로 생활 중에서도 남겨놓으신 자손들이며 이들이 영적인 씨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사람들을 남겨두셨습니다. 포로생활 중에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게 하시고 자신과 민족의 죄를 두고 통회하며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환을 인도했던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 등. 이들은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거룩한 씨앗들이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우상에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놓으셨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지금의 우리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약속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에베소서 2:8-9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잘되기를 기대하신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2. 잘되기를 원한다면 씨를 뿌리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분명히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한 나라는 저절로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과 눈물의 기도로 성을 재건하고 성전을 건축해야 했습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4절, 공동번역, “야훼여, 저 네겝 강바닥에 물길 돌아 오듯이 우리의 포도들을 다시 데려 오소서.), 이제부터는 눈물이 흐르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는 간절함을 고백합니다.
이제 곧 3월이 오면 겨우내 잠들었던 나무에 움이 돋고 새싹이 피어날 것입니다. 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겨울이 지난 후 3월에 꽃샘추위가 강한 바람을 몰고 오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이제 막 꽃망울이 나오고 잎이 트려하는 나뭇가지가 강풍에 시달리는 것이 애처롭겠지만 나무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초봄의 강한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림으로서 새잎을 내는데 필요한 영양이 위로 잘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뿌리로부터의 영양공급이 겨우내 활동 안한 나무줄기를 통하여 새싹 부분까지 원활히 잘 올라가려면 바람에 흔들리는 운동 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실에서 자란 나무는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견디지 못합니다. 비바람이 무섭고, 벌레가 무섭고, 뜨거운 햇볕이 무서워서 씨를 뿌리지 않으면 추수 때가 되어도 거둘 것이 없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사실은 절대명제입니다. 고린도후서 9:6-7절에서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봉사와 섬김과 헌신을 뿌리십시오. 물질도 뿌리십시오.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 돌아보지 않으면 자신이 어려울 때에도 도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잠언 21:13절에서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꼭 기억하십시오. 씨를 뿌릴 때에는 남다른 고생과 아픔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라고 했습니다. 이는 씨를 뿌리는 자가 겪을 눈물 흘릴만한 고생과 어려움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삭과 열매를 거두는 일보다 씨를 뿌리는 일이 더 힘듭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돌과 잡초를 제거해야 하며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거름을 뿌리고, 흙을 부드럽게 썰고, 정성스럽게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하게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며, 자라기까지 계속 돌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둘 것이 있기 위해서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로마서 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셨고, 빌립보서1: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의 전도사 시절에 심방을 가면 어떤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신다고 불평을 합니다. ‘다른 누구는 저렇게 장사도 잘되고, 자식들도 잘되고,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참 답답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하나님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성경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고, 10분 이상 기도한 적이 없고,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섬긴 일도 없으면서 잘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칼만 안 들었지 강도 심보입니다.
자신이 잘되고, 자녀들이 잘되고, 사업이 잘되고, 직장이 잘되고, 공부가 잘되고, 가정이 행복하고, 모든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유지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씨앗을 뿌리십시오. 기도의 씨앗, 말씀의 씨앗, 섬김과 봉사의 씨앗, 물질의 씨앗, 할 수 있는 대로 아침에도 저녁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뿌리십시오. 가정이 잘되기를 바라면 자신의 집안을 돌보듯이 교회를 소중하게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과 정성을 결코 공짜로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뿌린 씨앗은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성취되며 열매로 거두게 됩니다. 이사야 55: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고 하셨고, 갈라디아서 6:9절에서도,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추수하는 기쁨은 고통의 눈물과 수고로움으로 씨를 뿌리고 가꾼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농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씨를 뿌리고, 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내면서 정성껏 돌본 대가로 추수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의와 복음을 위하여, 눈물과 땀을 흘리며 일할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부름에 응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일을 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우리 모두는 추수 때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눈물과 수고로움을 견디며 씨를 뿌립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정하신 때, 여러분이 가장 필요로 하는 때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시편 126:1-6,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지금 여러분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2010년을 시작하면서, 아니면 이전부터 마음에 간직한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까? 아마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제게는 한결같은 소망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기도할 때마다 아뢰는 소망인데, ‘항상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것’입니다. 그 이후에 복음성가로도 이런 내용이 나왔습니다. 작사를 한 분도 저와 같은 그런 마음이었나 봅니다.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소원을 이루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소원만 이루기를 원한다면 그 소원은 영원히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서 11장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1-2절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런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다.” 6절에서는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런지 저것이 잘 될런지 혹 둘이 다 잘 될런지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엇인가를 거두려면 부지런히 뿌려라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과 뜻을 같이 하는 이 말씀을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행하신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격하고 기뻐하는 찬양입니다. 즉 포로 생활에서부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격 어린 기쁨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시인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극심한 고난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난을 돌아보시고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시켜 그토록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고국의 삶의 터전은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70년이나 방치되어 있었으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본문 6절에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며, 낙심하지 않고 포로에서부터 구원받을 때의 감격을 회상하면서, 본토가 반드시 재건되리라는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본 시편은 성경 전체에서 말씀하는 ‘절대불변의 하나님나라의 법’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에 세우신 법칙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27절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 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심는 대로 거두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에도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땅은 정직해서 심고 노력한 만큼 거두게 합니다. 이 법칙은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옛말에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고 했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등.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의 사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거두기를 원하는 것을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추수할 것이 있기 위하여 기회가 있을 때 무엇이든 부지런히 심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는 말씀은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는 뼈아픈 고난을 감내하면서라도 씨를 뿌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잘되기를 기대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꿈꾸는 듯 한 큰 기쁨과 감격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만 본다면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후반부의 말씀에는 무엇인가 깊은 안타까움을 안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된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을 섬기는 등, 수많은 죄악으로 가득 찼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징계하셨고,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불순종의 대가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생활 중에도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방되었습니까?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약속에 따른 사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들은 육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악과 불순종을 심었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들은 회복을 위하여 아무 것도 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포로에서 해방되며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심은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거두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법칙에 위반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셨던 ‘언약’ 때문입니다. 그 언약은 역대상 17:7-14절에 있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전을 짓기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고 애쓰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성전을 짓지 말라고 하셨고, 아들인 솔로몬을 통하여 성전을 짓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그 후손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는 결코 일어설 수 없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죽어버린 고목을 베어 버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고목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 사실을 6:13절에서 말씀합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 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남은 그루터기인 ‘거룩한 씨앗’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생각하시면서 포로 생활 중에서도 남겨놓으신 자손들이며 이들이 영적인 씨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사람들을 남겨두셨습니다. 포로생활 중에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게 하시고 자신과 민족의 죄를 두고 통회하며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귀환을 인도했던 스룹바벨과 에스라, 느헤미야 등. 이들은 하나님께서 남겨놓으신 거룩한 씨앗들이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우상에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놓으셨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으로 인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지금의 우리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약속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에베소서 2:8-9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잘되기를 기대하신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2. 잘되기를 원한다면 씨를 뿌리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꿈에도 그리던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분명히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황폐한 나라는 저절로 재건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과 눈물의 기도로 성을 재건하고 성전을 건축해야 했습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그래서 아직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족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4절, 공동번역, “야훼여, 저 네겝 강바닥에 물길 돌아 오듯이 우리의 포도들을 다시 데려 오소서.), 이제부터는 눈물이 흐르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는 간절함을 고백합니다.
이제 곧 3월이 오면 겨우내 잠들었던 나무에 움이 돋고 새싹이 피어날 것입니다. 식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겨울이 지난 후 3월에 꽃샘추위가 강한 바람을 몰고 오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이제 막 꽃망울이 나오고 잎이 트려하는 나뭇가지가 강풍에 시달리는 것이 애처롭겠지만 나무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초봄의 강한 바람에 가지가 흔들리고 나무가 흔들림으로서 새잎을 내는데 필요한 영양이 위로 잘 올라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뿌리로부터의 영양공급이 겨우내 활동 안한 나무줄기를 통하여 새싹 부분까지 원활히 잘 올라가려면 바람에 흔들리는 운동 작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온실에서 자란 나무는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견디지 못합니다. 비바람이 무섭고, 벌레가 무섭고, 뜨거운 햇볕이 무서워서 씨를 뿌리지 않으면 추수 때가 되어도 거둘 것이 없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사실은 절대명제입니다. 고린도후서 9:6-7절에서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봉사와 섬김과 헌신을 뿌리십시오. 물질도 뿌리십시오. 다른 사람이 어려울 때 돌아보지 않으면 자신이 어려울 때에도 도울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잠언 21:13절에서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꼭 기억하십시오. 씨를 뿌릴 때에는 남다른 고생과 아픔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 라고 했습니다. 이는 씨를 뿌리는 자가 겪을 눈물 흘릴만한 고생과 어려움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삭과 열매를 거두는 일보다 씨를 뿌리는 일이 더 힘듭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먼저 돌과 잡초를 제거해야 하며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거름을 뿌리고, 흙을 부드럽게 썰고, 정성스럽게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하게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며, 자라기까지 계속 돌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둘 것이 있기 위해서는 씨를 뿌려야 합니다. 로마서 8:17절에서,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하셨고, 빌립보서1:29절에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의 전도사 시절에 심방을 가면 어떤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신다고 불평을 합니다. ‘다른 누구는 저렇게 장사도 잘되고, 자식들도 잘되고,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왜 이렇게 안 되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참 답답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하나님께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내내 성경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고, 10분 이상 기도한 적이 없고, 주님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섬긴 일도 없으면서 잘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는 칼만 안 들었지 강도 심보입니다.
자신이 잘되고, 자녀들이 잘되고, 사업이 잘되고, 직장이 잘되고, 공부가 잘되고, 가정이 행복하고, 모든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유지되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씨앗을 뿌리십시오. 기도의 씨앗, 말씀의 씨앗, 섬김과 봉사의 씨앗, 물질의 씨앗, 할 수 있는 대로 아침에도 저녁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뿌리십시오. 가정이 잘되기를 바라면 자신의 집안을 돌보듯이 교회를 소중하게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과 정성을 결코 공짜로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뿌린 씨앗은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성취되며 열매로 거두게 됩니다. 이사야 55: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고 하셨고, 갈라디아서 6:9절에서도,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추수하는 기쁨은 고통의 눈물과 수고로움으로 씨를 뿌리고 가꾼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입니다. 농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씨를 뿌리고, 한 여름의 더위를 이겨내면서 정성껏 돌본 대가로 추수의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의와 복음을 위하여, 눈물과 땀을 흘리며 일할 일꾼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부름에 응답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일을 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는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우리 모두는 추수 때의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눈물과 수고로움을 견디며 씨를 뿌립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정하신 때, 여러분이 가장 필요로 하는 때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