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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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1-20 17:30
***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 / 삼하 17:27-29, 눅 14:7-11
** 들어가는 말
사무엘하 17:27-29, “27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28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29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누가복음 14:7-11,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사람들의 심리 가운데 ‘인정받고 싶고, 알려지고 싶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은’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조차 ‘예쁜 짓’을 하거나 ‘특별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뜻을 알리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분수에 맞지 않은 행동으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거나 창피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에는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즉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이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의 두 본문말씀에서 이 길을 찾아보려합니다. 2010년에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모든 삶에서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과 귀하게 여김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 있는 ‘테일러’라는 사람이 경영하는 큰 농장이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어느 봄날, ‘짐’ 이라는 소년이 일자리를 찾아 왔습니다. 주인인 테일러 씨는 소년에게 일자리를 주었습니다. 짐은 여름내 땔나무를 준비하고 소를 맡아 키우는 등 일을 성실하게 잘했습니다. 짐의 생활은 밥은 부엌에서 먹고 잠은 건초창고에서 잤습니다. 일 년이 채 지나기 전에 짐은 주인 테일러 씨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너와 같이 돈도 없고 이름도 없고 장래성이 없는 사람에게 나의 딸을 결혼시킬 수 없다.’고 냉정히 잘라버렸습니다. 짐은 아무 말 없이 자기의 소유물을 챙겨 가지고 그 농장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농장주인 테일러 씨는 건초 창고를 부수고 새로운 시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에 짐 소년이 자던 한 구석에 짐이 자기의 성과 이름을 기둥에 파서 새겨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새겨진 이름은 ‘제임스 A. 가필드’였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었습니다. ‘가필드’는 오하이오 주 오렌지카운티에서 태어나 1881년에 미국 20대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농장주인인 ‘테일러’씨가 그 이름을 보았을 때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앞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어떤 일을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지혜로움은 이런데서 빛을 발합니다. 왜냐하면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잠언 9: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시며, 이사야 33:6절에서는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고 하십니다. 올해에 여러분이 소망하고 경영하는 일들이 이루기를 원한다면 이 말씀을 잘 듣고 지혜롭게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내용의 상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구약본문의 배경은 다윗 왕의 시대이며, 다윗의 세 번째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킨 때였습니다. 압살롬은 4년여를 계획적으로 민심을 자신에게로 모았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이미 거의 모든 민심이 압살롬의 편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외모와 인기로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고 아버지를 배반한 것입니다. 다윗은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따르는 일부 충신들과 함께 ‘마하나임’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마하나임’은 요단 동쪽에 있는 천연 요새로 많은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아들의 반역을 피해 급하게 도망쳐 나온 ‘다윗’과 그를 추종하던 신복 일행은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 일행을 위하여 선행을 베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암몬 족속에 속한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였습니다. 이들은 피난길에 지치고 굶주린 다윗과 그 일행에게 씻을 수 있게 해주었고, 쉴 곳과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그들의 대접은 매우 극진했고, 풍성했습니다.
특히 바르실래는 ‘바실래’라고도 불리며, 나이가 80이나 되는 노인이었고 거부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이면서도 좋은 선택을 하여서, 다윗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며 선한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바실래는 뛰어난 판단력을 가지고 좋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그 길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훌륭한 선택과 결단이 미래를 바꾸는 놀라운 길이 되었습니다.
신약본문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대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식탁의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눈 여겨 보시고 그들에게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이 지혜로움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의 원리이기 때문에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1. 올바른 선택이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입니다.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운 때는 다윗이 권력이 있고 힘이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도망자 신세였고, 언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옛말에 ‘정승집의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잇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힘이 있을 때에는 따르는 사람이나 아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힘들고 어려운 때, 자신에게 이익이 없다고 생각되는 때는 따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승자에게 빌붙는 사람은 많지만 패자에게 선을 베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16:5-8절에는 다윗이 일행과 함께 도망을 치던 때에, ‘때는 이때다.’하고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대가 어수선해지면 머리가 바빠집니다. 어느 쪽의 힘이 강한지를 저울질하고 강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금 우리 주변을 보면 됩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그러한 계산을 하지 않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윗 일행을 선대했습니다. 본문 29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르실래의 올바른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가 다윗을 돕기로 선택한 동기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계산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속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봉사이며 섬김이었습니다. 이러한 선택이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선택하려고 한 이유는 자신의 명예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11절에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십니다.
어저께 여동생 집을 방문했었습니다. 딸만 둘인데 하나는 중학생이고 하나는 고등학생입니다. 동생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큰 아이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도 잘 없고, 그렇다고 남을 돕거나, 씀씀이가 풍족한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자신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성격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늘 용돈이 부족해서 쩔쩔 맨다고 합니다.
반면에 작은 딸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어른 같다고 합니다. 식구들 생일이면 꼭 선물을 챙기고, 집에 들어올 때면 할머니나 가족들을 위하여 작은 것이라도 챙겨서 줍니다. 피곤한 엄마를 위해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고 베푸는 것이 식구들을 감동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남을 위해 쓰고 배려함에도 불구하고 작은 딸은 항상 풍족하다고 합니다.
잠언 11:24절에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했으며, 잠언 19: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을 낮추고 섬기며 봉사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자리에 서야 할지를 잘 판단하고 올바르게 선택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은총을 입게 됩니다. 즉 성도는 시대적인 상황이나 자신의 손익을 떠나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올바른 삶의 가치관과 신앙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유행을 따라 변하는 가치관이나, 자신의 유익을 좇아가는 선택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2. 신속한 결단과 실천이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바른 선택을 했다고 할지라도 결단을 미룬다든지 생활에서 실행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나, 재물과 신앙 사이에서 흔들거리는 사람, 자신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망설이는 사람 등.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결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고린도전서 15:58절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으며, 야고보서 1:6-8절에서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욕심을 가지고 세상적인 것에 현혹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가, 필요에 의해서 조금씩 욕심이 생기면서 결국 그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바바 하리다스’가 그의 제자들에게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숲 속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성전 한 권을 주고 갔습니다. 그 사람은 날마다 그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쥐가 책을 쏠아버린 것을 보고 쥐를 쫓기 위해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고양이에게 먹일 우유가 필요하게 되자 젖소를 키웠습니다. 그러자 이 짐승들을 혼자서 돌볼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 끝에 젖소를 돌봐줄 여자 한 사람을 구했습니다. 숲 속에서 몇 해를 지내는 동안 커다란 집과 아내와 두 아이와 고양이 떼와 젖소, 그리고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혼자 살 때,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신을 생각하는 대신 아내와 자식들과 젖소와 고양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를 곰곰히 명상해 보니, 한 권의 책이 이토록 엉뚱한 사태를 몰고 온 것을 알아차리고 한숨을 지었습니다.
이 성자는 제자들에게 하나의 소유물과 그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큰 결과를 낳게 되는 지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세상일에 집착하게 하며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실래는 명예나 이기적인 욕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일이 있습니다. 삼하19:31-39절에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평정하고 돌아 올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위기의 때에 도왔던 바실래를 잊지 않고 찾았습니다. 그에게 말년을 평안하게 보내게 해주겠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실래는 결코 사양하면서 굳이 데려가시겠다면 자신을 대신하여 ‘김함’이라는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김함’이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바실래의 아들로 추측됩니다. 이는 바실래가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아는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귀영화와 권세를 싫어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바실래는 아무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세상적인 풍조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욕심 없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성실하게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길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구하는 기도나, 받기를 바라고 베푸는 선행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6:35절에서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를 때에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올해 여러 일들을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니까? 자신의 계획이나 뜻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나와 가정과 생업을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구하시고,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아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자리를 선택하고, 결단하며 실행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하십시오. 겸손하고 낮은 자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이 자리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자리입니다. 이사야 45:7절에서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삶과 생명과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주인에게 구하고 의뢰하라는 뜻입니다. 2010년에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이루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자신의 자리를 선택하고 결단하고 실행하는 지혜로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사무엘하 17:27-29, “27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28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29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 함께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누가복음 14:7-11, “7 청함을 받은 사람들의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9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11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사람들의 심리 가운데 ‘인정받고 싶고, 알려지고 싶고,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은’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조차 ‘예쁜 짓’을 하거나 ‘특별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뜻을 알리려는 의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분수에 맞지 않은 행동으로 사람들의 눈총을 받거나 창피를 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에는 지혜로움이 필요합니다. 즉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이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의 두 본문말씀에서 이 길을 찾아보려합니다. 2010년에는 성도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모든 삶에서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로운 선택과 결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과 귀하게 여김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미국의 오하이오 주에 있는 ‘테일러’라는 사람이 경영하는 큰 농장이 있었습니다.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어느 봄날, ‘짐’ 이라는 소년이 일자리를 찾아 왔습니다. 주인인 테일러 씨는 소년에게 일자리를 주었습니다. 짐은 여름내 땔나무를 준비하고 소를 맡아 키우는 등 일을 성실하게 잘했습니다. 짐의 생활은 밥은 부엌에서 먹고 잠은 건초창고에서 잤습니다. 일 년이 채 지나기 전에 짐은 주인 테일러 씨의 딸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인은 ‘너와 같이 돈도 없고 이름도 없고 장래성이 없는 사람에게 나의 딸을 결혼시킬 수 없다.’고 냉정히 잘라버렸습니다. 짐은 아무 말 없이 자기의 소유물을 챙겨 가지고 그 농장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농장주인 테일러 씨는 건초 창고를 부수고 새로운 시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에 짐 소년이 자던 한 구석에 짐이 자기의 성과 이름을 기둥에 파서 새겨 놓은 것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새겨진 이름은 ‘제임스 A. 가필드’였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의 이름이었습니다. ‘가필드’는 오하이오 주 오렌지카운티에서 태어나 1881년에 미국 20대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농장주인인 ‘테일러’씨가 그 이름을 보았을 때의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앞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어떤 일을 선택하고 결정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지혜로움은 이런데서 빛을 발합니다. 왜냐하면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부터 비롯됩니다. 잠언 9: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시며, 이사야 33:6절에서는 “네 시대에 평안함이 있으며 구원과 지혜와 지식이 풍성할 것이니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고 하십니다. 올해에 여러분이 소망하고 경영하는 일들이 이루기를 원한다면 이 말씀을 잘 듣고 지혜롭게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본문내용의 상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구약본문의 배경은 다윗 왕의 시대이며, 다윗의 세 번째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킨 때였습니다. 압살롬은 4년여를 계획적으로 민심을 자신에게로 모았습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는 이미 거의 모든 민심이 압살롬의 편이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외모와 인기로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고 아버지를 배반한 것입니다. 다윗은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따르는 일부 충신들과 함께 ‘마하나임’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마하나임’은 요단 동쪽에 있는 천연 요새로 많은 사람들이 피난처로 삼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아들의 반역을 피해 급하게 도망쳐 나온 ‘다윗’과 그를 추종하던 신복 일행은 몹시 지쳐 있었습니다. 그 때에 다윗 일행을 위하여 선행을 베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암몬 족속에 속한 ‘소비’와 ‘마길’과 ‘바르실래’였습니다. 이들은 피난길에 지치고 굶주린 다윗과 그 일행에게 씻을 수 있게 해주었고, 쉴 곳과 음식을 제공했습니다. 그들의 대접은 매우 극진했고, 풍성했습니다.
특히 바르실래는 ‘바실래’라고도 불리며, 나이가 80이나 되는 노인이었고 거부였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인이면서도 좋은 선택을 하여서, 다윗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며 선한 인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바실래는 뛰어난 판단력을 가지고 좋은 길을 선택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그 길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훌륭한 선택과 결단이 미래를 바꾸는 놀라운 길이 되었습니다.
신약본문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을 보시고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대받은 사람들이 저마다 식탁의 윗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눈 여겨 보시고 그들에게 낮은 자리에 앉는 것이 지혜로움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의 원리이기 때문에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1. 올바른 선택이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입니다.
바르실래가 다윗을 도운 때는 다윗이 권력이 있고 힘이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도망자 신세였고, 언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습니다. 옛말에 ‘정승집의 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줄을 잇지만,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힘이 있을 때에는 따르는 사람이나 아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힘들고 어려운 때, 자신에게 이익이 없다고 생각되는 때는 따르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승자에게 빌붙는 사람은 많지만 패자에게 선을 베푼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무엘하 16:5-8절에는 다윗이 일행과 함께 도망을 치던 때에, ‘때는 이때다.’하고 다윗을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대가 어수선해지면 머리가 바빠집니다. 어느 쪽의 힘이 강한지를 저울질하고 강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입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지금 우리 주변을 보면 됩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그러한 계산을 하지 않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다윗 일행을 선대했습니다. 본문 29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르실래의 올바른 가치관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가 다윗을 돕기로 선택한 동기를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계산적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속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봉사이며 섬김이었습니다. 이러한 선택이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가복음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초대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를 선택하려고 한 이유는 자신의 명예 욕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11절에서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십니다.
어저께 여동생 집을 방문했었습니다. 딸만 둘인데 하나는 중학생이고 하나는 고등학생입니다. 동생의 말을 빌리면 이렇습니다. 큰 아이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일도 잘 없고, 그렇다고 남을 돕거나, 씀씀이가 풍족한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자신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성격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늘 용돈이 부족해서 쩔쩔 맨다고 합니다.
반면에 작은 딸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어른 같다고 합니다. 식구들 생일이면 꼭 선물을 챙기고, 집에 들어올 때면 할머니나 가족들을 위하여 작은 것이라도 챙겨서 줍니다. 피곤한 엄마를 위해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 주고 베푸는 것이 식구들을 감동시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남을 위해 쓰고 배려함에도 불구하고 작은 딸은 항상 풍족하다고 합니다.
잠언 11:24절에서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했으며, 잠언 19: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을 낮추고 섬기며 봉사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자리에 서야 할지를 잘 판단하고 올바르게 선택하는 것이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도 은총을 입게 됩니다. 즉 성도는 시대적인 상황이나 자신의 손익을 떠나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올바른 삶의 가치관과 신앙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유행을 따라 변하는 가치관이나, 자신의 유익을 좇아가는 선택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2. 신속한 결단과 실천이 자신의 자리를 아는 지혜입니다.
사람이 바른 선택을 했다고 할지라도 결단을 미룬다든지 생활에서 실행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이나, 재물과 신앙 사이에서 흔들거리는 사람, 자신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망설이는 사람 등.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에게는 결코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고린도전서 15:58절에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으며, 야고보서 1:6-8절에서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처음부터 욕심을 가지고 세상적인 것에 현혹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소박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가, 필요에 의해서 조금씩 욕심이 생기면서 결국 그 속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의 성자 ‘바바 하리다스’가 그의 제자들에게 들려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숲 속에서 홀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성전 한 권을 주고 갔습니다. 그 사람은 날마다 그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쥐가 책을 쏠아버린 것을 보고 쥐를 쫓기 위해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고양이에게 먹일 우유가 필요하게 되자 젖소를 키웠습니다. 그러자 이 짐승들을 혼자서 돌볼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 끝에 젖소를 돌봐줄 여자 한 사람을 구했습니다. 숲 속에서 몇 해를 지내는 동안 커다란 집과 아내와 두 아이와 고양이 떼와 젖소, 그리고 여러 가지 잡다한 것들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혼자 살 때, 자신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이제 그는 신을 생각하는 대신 아내와 자식들과 젖소와 고양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지를 곰곰히 명상해 보니, 한 권의 책이 이토록 엉뚱한 사태를 몰고 온 것을 알아차리고 한숨을 지었습니다.
이 성자는 제자들에게 하나의 소유물과 그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큰 결과를 낳게 되는 지를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1:15절에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의 것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세상일에 집착하게 하며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그러나 바실래는 명예나 이기적인 욕심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일이 있습니다. 삼하19:31-39절에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평정하고 돌아 올 때의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위기의 때에 도왔던 바실래를 잊지 않고 찾았습니다. 그에게 말년을 평안하게 보내게 해주겠다면서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실래는 결코 사양하면서 굳이 데려가시겠다면 자신을 대신하여 ‘김함’이라는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김함’이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바실래의 아들로 추측됩니다. 이는 바실래가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아는 사람임을 나타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귀영화와 권세를 싫어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바실래는 아무른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코 세상적인 풍조에 의하여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욕심 없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성실하게 실천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길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구하는 기도나, 받기를 바라고 베푸는 선행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6:35절에서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를 때에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올해 여러 일들을 계획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니까? 자신의 계획이나 뜻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나와 가정과 생업을 위해 계획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 달라고 구하시고,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아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자리를 선택하고, 결단하며 실행할 수 있는 믿음을 구하십시오. 겸손하고 낮은 자리,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택하고 결단하고 순종하는 이 자리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자리입니다. 이사야 45:7절에서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삶과 생명과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주인에게 구하고 의뢰하라는 뜻입니다. 2010년에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이루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자신의 자리를 선택하고 결단하고 실행하는 지혜로운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