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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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1-01 18:10
***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 / 누가복음 19:1-10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길을 다니는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법을 지키며 진리를 행하는 자가 있는지 찾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디오게네스가 하나님을 알았다면 진실한 신자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패망할 즈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에스겔 9:4절입니다.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음 천사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겔 9:5-6)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5:1절에서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철학자 디오게네스도 기원전 4세기경의 문란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2009년을 보내는 지금의 지구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멀리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우리 가정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살피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의와 죄로 가득한 사회를 가슴아파하는 사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려는 사람을 찾고 계시지는 않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이런 사람을 찾으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리라고 확신합니까? 이러한 모습을 본문 말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신 사건을 통하여 2009년을 보내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으로 새롭게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을 다해가는 시점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셨습니다. 이제 25Km 정도만 가면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곳에 ‘여리고’라는 작은 도시가 있었고 예수님이 그곳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본문 1절에서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고 했습니다. 이 여리고는 바로 난쟁이 ‘삭개오’가 사는 곳입니다. 여리고는 사해 북쪽 약 12km지점에 있는 오아시스입니다. ‘여리고’라는 이름은 ‘향기의 도성’, ‘종려나무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대로 여리고에는 종려나무숲과 발삼 향나무가 많이 있었습니다. 주변은 삭막한 광야이지만, 여리고에는 물이 풍부한 샘들이 있고, 또 엘리사의 샘이 있어서, 숲이 우거져 있는 살기 좋은 오아시스마을입니다. 특히 이 지역은 사해가 가까워 사해에서 나는 역청, 유황, 소금 등의 수출통로였기 때문에 세관이 있어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고 합니다. 바로 이 세관에서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는 수입이 많아 큰 부자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죄인 취급했습니다. 이유는 자기민족을 억압하는 로마정부를 도와준다는 것이었고, 또한 로마 정부에서 요구하는 세금보다 지나치게 많이 부과하여 나머지를 자신들이 착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리와는 교제는 물론 아예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이런 여리고를 예수님이 지나고 계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소문이 전국에 퍼져 있던 터라서 예수님을 보려는 수많은 군중들이 여리고의 길마다 가득했습니다. 그 소란스러움이 삭개오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난쟁이 삭개오는 군중들에 가려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심직한 길을 앞서 가서 가로수인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높은 가지에 걸터앉은 삭개오는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앉아 있는 나무로 다가오시던 예수님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긴장하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모든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정말 꿈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늘 자신의 집에서 머물러야 하겠다니! 부리나케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선생님을 욕했지만, 삭개오는 너무나 감격한 마음으로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다른 하나는 ‘간절하게 사모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을 만나도록 간절하게 사모하는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1983년 6월부터 11월까지 KBS 방송에서 주관하여 온 국민을 감동케 했던 이산가족 찾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방송국 안과 밖은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한 광고 전단들로 뒤덮였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헤어진 가족들, 가난이나 어떤 사고로 잃어버린 식구들을 찾기 위한 열기가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식구를 찾았을 때, 그 기뻐하고 감격해 하던 모습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연상케 하는 본문을 봅니다. 본문 10절에 잃어진 것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성경에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앞서 시작부분에서 보았듯이 타락하고 혼란스러운 죄악의 시대에는 죄를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는 진실한 성도를 찾으셨으며, 일군이 부족한 시대에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하셨으며,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신실한 일꾼을 찾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었던 양’, ‘잃었던 은전’, ‘잃었던 아들’ 이 세 비유가 나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신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것도 바로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오신 목적도 삭개오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는 지나시는 길에 우연히 삭개오를 만난 듯하지만, 5절과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들리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13:1절에서 표현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마지막 순간까지도 택하신 사람들을 생각하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삭개오는 만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피하고 싶고 경멸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삭개오를 찾아 오셨습니다. 세상적인 아무 것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보험사 선전에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라고 하던데, 예수님이야 말로 세상적인 환경과 조건을 묻지도 않으시고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15:16절에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시며, 로마서 5: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저나 여러분도 이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군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됩니까?
2.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왜 하필이면 삭개오 같은 볼품없고 인기 없는 사람을 만나셨겠습니까? 그것은 ‘사모하는 마음’때문입니다. 우리는 짧은 글에서 삭개오의 깊은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만일 삭개오가 예수님께 관심이 없었다면 수치를 무릅쓰고 나무에 올라갔겠습니까? 또한 주님에 대하여 좋은 감정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네 집에서 하루 묵어야겠다.”고 하셨을 때, 즐겁게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습니다.”라고 결단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나, 외적인 조건이나, 세상적인 지위나 명예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고 살피십니다. 잠언 16:2절에서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4:12절에서는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2:23절에서는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실 때에도 역시 외적인 조건도 환경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모하며 간절하게 찾는 사람을 만나주십니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이 차려져 있어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고, 갈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물을 찾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고 더 깊이 갈증을 느낄수록 음식이나 물을 찾는 간절함이 더할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8:17절에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셨고, 예레미야29:12-13절에서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고, 시편 107:9절에서는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사모하고 찾고 구하면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만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시고 마음 방에 함께 사시며 생활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서 머무시면서 함께 식사하시고 함께 주무셨던 것과 같습니다.
이제 2009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을 지나며, 다가오는 2010년을 소망하는 이 시점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서 꼭 이루어야 할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죄악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따름으로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함으로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표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사무엘하 7:9절을 봅시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고 하시며, 이사야 41:10절에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면 2010년의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능력의 삶이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나온 걸음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해를 하나님과 함께 시작할 수 있도록 삶을 새롭게 하여 아름다운 마무리와 비전 있는 2010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디오게네스’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길을 다니는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대낮에 등불을 들고 다니는 이유는 ‘법을 지키며 진리를 행하는 자가 있는지 찾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디오게네스가 하나님을 알았다면 진실한 신자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패망할 즈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에스겔 9:4절입니다.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음 천사들에게 명하시기를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겔 9:5-6)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레미야 5:1절에서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철학자 디오게네스도 기원전 4세기경의 문란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이 들었나 봅니다. 그렇다면 2009년을 보내는 지금의 지구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멀리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우리 가정 나 자신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살피시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의와 죄로 가득한 사회를 가슴아파하는 사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따르려는 사람을 찾고 계시지는 않겠습니까?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이런 사람을 찾으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리라고 확신합니까? 이러한 모습을 본문 말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아오신 사건을 통하여 2009년을 보내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으로 새롭게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3년을 다해가는 시점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셨습니다. 이제 25Km 정도만 가면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곳에 ‘여리고’라는 작은 도시가 있었고 예수님이 그곳을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본문 1절에서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고 했습니다. 이 여리고는 바로 난쟁이 ‘삭개오’가 사는 곳입니다. 여리고는 사해 북쪽 약 12km지점에 있는 오아시스입니다. ‘여리고’라는 이름은 ‘향기의 도성’, ‘종려나무 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대로 여리고에는 종려나무숲과 발삼 향나무가 많이 있었습니다. 주변은 삭막한 광야이지만, 여리고에는 물이 풍부한 샘들이 있고, 또 엘리사의 샘이 있어서, 숲이 우거져 있는 살기 좋은 오아시스마을입니다. 특히 이 지역은 사해가 가까워 사해에서 나는 역청, 유황, 소금 등의 수출통로였기 때문에 세관이 있어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고 합니다. 바로 이 세관에서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는 수입이 많아 큰 부자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죄인 취급했습니다. 이유는 자기민족을 억압하는 로마정부를 도와준다는 것이었고, 또한 로마 정부에서 요구하는 세금보다 지나치게 많이 부과하여 나머지를 자신들이 착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리와는 교제는 물론 아예 만나는 것조차 꺼려했습니다.
이런 여리고를 예수님이 지나고 계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소문이 전국에 퍼져 있던 터라서 예수님을 보려는 수많은 군중들이 여리고의 길마다 가득했습니다. 그 소란스러움이 삭개오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난쟁이 삭개오는 군중들에 가려서 예수님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심직한 길을 앞서 가서 가로수인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높은 가지에 걸터앉은 삭개오는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앉아 있는 나무로 다가오시던 예수님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시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긴장하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모든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정말 꿈같은 순간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선생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오늘 자신의 집에서 머물러야 하겠다니! 부리나케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했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선생님을 욕했지만, 삭개오는 너무나 감격한 마음으로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건 속에서 우리는 두 가지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다른 하나는 ‘간절하게 사모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를 살펴보면서 우리도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을 만나도록 간절하게 사모하는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1983년 6월부터 11월까지 KBS 방송에서 주관하여 온 국민을 감동케 했던 이산가족 찾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방송국 안과 밖은 헤어진 가족을 찾기 위한 광고 전단들로 뒤덮였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하여 헤어진 가족들, 가난이나 어떤 사고로 잃어버린 식구들을 찾기 위한 열기가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식구를 찾았을 때, 그 기뻐하고 감격해 하던 모습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연상케 하는 본문을 봅니다. 본문 10절에 잃어진 것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성경에는 사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앞서 시작부분에서 보았듯이 타락하고 혼란스러운 죄악의 시대에는 죄를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는 진실한 성도를 찾으셨으며, 일군이 부족한 시대에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사 6:8)하셨으며,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신실한 일꾼을 찾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었던 양’, ‘잃었던 은전’, ‘잃었던 아들’ 이 세 비유가 나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얼마나 크신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것도 바로 잃어버린 사람을 찾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오신 목적도 삭개오를 찾아 오신 것입니다. 본문 1절에서는 지나시는 길에 우연히 삭개오를 만난 듯하지만, 5절과 1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찾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들리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13:1절에서 표현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마지막 순간까지도 택하신 사람들을 생각하시는 그런 사랑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삭개오는 만날 가치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피하고 싶고 경멸하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삭개오를 찾아 오셨습니다. 세상적인 아무 것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보험사 선전에서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습니다.’라고 하던데, 예수님이야 말로 세상적인 환경과 조건을 묻지도 않으시고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15:16절에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라고 하시며, 로마서 5:8절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저나 여러분도 이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군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됩니까?
2.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왜 하필이면 삭개오 같은 볼품없고 인기 없는 사람을 만나셨겠습니까? 그것은 ‘사모하는 마음’때문입니다. 우리는 짧은 글에서 삭개오의 깊은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만일 삭개오가 예수님께 관심이 없었다면 수치를 무릅쓰고 나무에 올라갔겠습니까? 또한 주님에 대하여 좋은 감정이 아니라면, 예수님께서 “네 집에서 하루 묵어야겠다.”고 하셨을 때, 즐겁게 영접할 수 있겠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습니다.”라고 결단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나, 외적인 조건이나, 세상적인 지위나 명예를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우리의 마음을 읽으시고 살피십니다. 잠언 16:2절에서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4:12절에서는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2:23절에서는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부르실 때에도 역시 외적인 조건도 환경도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모하며 간절하게 찾는 사람을 만나주십니다.
진수성찬(珍羞盛饌)이 차려져 있어도 배부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고, 갈증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물을 찾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고 더 깊이 갈증을 느낄수록 음식이나 물을 찾는 간절함이 더할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8:17절에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하셨고, 예레미야29:12-13절에서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셨고, 시편 107:9절에서는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간절하게 사모하고 찾고 구하면 하나님이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만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찾아오시고 마음 방에 함께 사시며 생활하신다는 것입니다. 바로 삭개오를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집에서 머무시면서 함께 식사하시고 함께 주무셨던 것과 같습니다.
이제 2009년을 보내는 마지막 주일을 지나며, 다가오는 2010년을 소망하는 이 시점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서 꼭 이루어야 할 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죄악을 보면서 가슴 아파하며, 하나님의 진리를 따름으로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고 구함으로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표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사무엘하 7:9절을 봅시다.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고 하시며, 이사야 41:10절에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면 2010년의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능력의 삶이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나온 걸음을 돌아보면서 새로운 해를 하나님과 함께 시작할 수 있도록 삶을 새롭게 하여 아름다운 마무리와 비전 있는 2010년을 맞이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