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십시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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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9-12-21 15:28
***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하십시오. / 막 1:1-8
**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1:1-8,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지난 한 주간 날씨가 많이 추웠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생명체들은 나름대로의 준비를 합니다. 동물들은 활동을 줄이고 음식을 많이 먹어서 지방을 많이 저장하면서 동면 준비를 합니다. 식물들은 수분과 양분의 낭비를 막기 위해 나뭇잎에 공급하던 양분을 차단해서 낙엽이 되어 떨어지게 합니다. 잎이 떨어지므로 영양분은 뿌리나 줄기에 저장되어 겨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사람의 눈에는 단풍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무는 자신이 얼지 않기 위해 물의 공급을 최소화합니다. 사람도 겨울이 되면 갖가지 준비를 합니다. 김장을 하고, 기름이나 연탄, 나무 등. 난방연료를 쌓아 두고, 김장을 하고, 배추와 무를 땅속에 묻고, 문풍지를 붙이고, 겨울옷들과 솜이불을 꺼냅니다. 언덕길에는 모래자루와 염화칼슘을 준비하여 눈 피해를 대비합니다. 이렇게 계절적인 준비는 잘하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어느 대학 캠퍼스 부근 동산에 다람쥐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다람쥐들은 사람들이 해하지도 않고 귀엽게 사랑해 주는 덕분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오면 수풀 속에서 달려 나와 사람의 어깨 위에 오르기도 하고, 손바닥 위에서 땅콩 같은 것을 집어먹기도 하며, 때로는 먹을 것이 들어 있는 사람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지나 추운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이 없게 되면 학생들이 호두며 땅콩 등을 사서 주었습니다. 이렇게 캠퍼스의 다람쥐들은 먹을 것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캠퍼스 다람쥐들은 겨울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학생들이 방학을 하고 학교가 텅 비게 되자 많은 다람쥐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학생들 중에 동물을 좋아하는 한 학생이 졸업하면서 다람쥐를 위한 기부금을 냈습니다. 방학 동안에도 계속해서 다람쥐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람쥐들은 스스로의 보호 본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먹이지 않으면 굶어 죽고 만다고 합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이 말은 ‘미리 준비를 잘하여 환난을 면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나 인생의 삶으로나 중요한 말입니다. 인간 세상에도 캠퍼스 다람쥐처럼 눈에 보이는 육신의 삶에만 매달리다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하지 못하고 갑자기 인생의 밤, 인생의 겨울이 닥쳐서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밤이나 인생의 겨울은 예고도 없이 미처 생각지도 못하였던 때에 갑작스럽게 닥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 순간의 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관계된 일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 24:44절에서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시며, 누가복음 12:39-40절에서는 “너희도 아는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의 삶에 빠져 안일하게 시간을 소일하고 있습니까? 노아의 홍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세상의 안일함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7:27-30절에서 세상의 끝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오늘은 대림절 네 번째 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이면서, 성탄절이 들어있는 주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진솔하게 열어놓고 ‘나는 어떻게 주님과의 만남을 예비하고 있는지’ 세 가지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질문, 주님 앞에 설 때를 예비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야하며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고백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로마서 14:11-12절입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하시며, 베드로전서 4:5절에서는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고 하십니다. “직고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있는 그대로 자백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비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는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을 절제하되,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12:36절을 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하시며, 로마서 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면서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길을 예비하라고 선포한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례요한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세례요한의 사역에서 지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가 무엇을 예비해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길을 닦아 두기 위함이셨습니다. 즉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마음의 길을 닦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예비하는 마음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본문 4-5절을 봅시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는 ‘죄를 자복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그릇에 담고자 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물건을 담고자 하는 그릇에 이미 무엇인가 들어 있거나 지저분하다면 그것을 비워내고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사람의 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기 위해서는 먼저 가득 차 있는 세상의 것을 비워야 합니다. 사람의 영을 비우는 작업이 곧 ‘회개를 통한 죄 사함’입니다. 사도행전 2:38절에서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선포합니다. 왜 회개해야 합니까? 회개는 영적인 지우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자백할 때에 우리의 악한 행실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지우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설 때를 준비하는 길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죄에 팔려버린 인생을 되사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의 대가로 원래의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로 되돌아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5:15절에서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시며, 데살로니가전서 5:10절에서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시고, 베드로전서 4:2절에서는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도 된 우리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부름 받은 선지자 중에서 가장 분명하고 단순한 소명을 받은 선지자가 세례 요한일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의 중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행한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일컬어 “여자가 나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마11:11)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삶을 보십시오! 그의 의복은 약대 털옷과 가죽 띠였고, 음식은 메뚜기와 간간이 들 꿀인 석청을 먹었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집은 광야였습니다. 부귀영화 명예권세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식주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으며, 더 나은 삶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누가복음 12:22-34절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육신의 생활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즉 의식주 생활의 필요를 구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기를 힘쓰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는 일을 제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삼는 길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하나님께 먼저 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남 유다의 왕을 한 사람 예로 들어 봅시다. 남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왕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대대적인 신앙개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역대하 15:15절입니다.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년에는 나라가 안정되고 부흥되자 교만해졌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가두고 핍박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로 발에 심한 병이 났는데,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사를 의지했습니다. 16:12절입니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병으로 2년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평안을 누리고 기쁨 중에 주님을 만나려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 질문, 맡겨진 본분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구원 얻은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소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 역시 예외가 없습니다.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에서처럼 맡겨진 일이나 분량이나 결과가 다를 수는 있지만, 모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25:14-15절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은 오직 “죽도록 충성하는 것”뿐입니다. 고린도전서 4:2절에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2:10절 하반절에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 모습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세례를 선전한 것도 아니요,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본문 7절에서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은 오직 자신의 뒤에 나타나실 주인공을 위한 들러리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 시대를 지난 후 400여 년을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선지자도 없는 영적인 암흑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요한은 얼마든지 부귀영화 명예권세를 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오직 자신의 사역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힘써야 할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닙니다. 성도가 힘 쓸 것은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본분 외의 일을 하게 되면 칭찬이 아니라 심판이 따르게 됩니다.
여러분! 이 세 가지의 질문에 모두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이제, 대림절이 끝나는 주간이자, 성탄절이 들어 있는 주간입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을 주의 깊게 되돌아봅시다. 아직 기회가 많이 있다고 여긴다면 인생의 밤, 인생의 겨울이 준비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닥칠 것입니다. 기회를 잃지 말고 일어섭시다. 아직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있지 못하다면 진정으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점은 새롭게 결단하고, 잘하고 있는 점은 더욱 장려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부끄러움 없이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1:1-8,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지난 한 주간 날씨가 많이 추웠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생명체들은 나름대로의 준비를 합니다. 동물들은 활동을 줄이고 음식을 많이 먹어서 지방을 많이 저장하면서 동면 준비를 합니다. 식물들은 수분과 양분의 낭비를 막기 위해 나뭇잎에 공급하던 양분을 차단해서 낙엽이 되어 떨어지게 합니다. 잎이 떨어지므로 영양분은 뿌리나 줄기에 저장되어 겨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사람의 눈에는 단풍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무는 자신이 얼지 않기 위해 물의 공급을 최소화합니다. 사람도 겨울이 되면 갖가지 준비를 합니다. 김장을 하고, 기름이나 연탄, 나무 등. 난방연료를 쌓아 두고, 김장을 하고, 배추와 무를 땅속에 묻고, 문풍지를 붙이고, 겨울옷들과 솜이불을 꺼냅니다. 언덕길에는 모래자루와 염화칼슘을 준비하여 눈 피해를 대비합니다. 이렇게 계절적인 준비는 잘하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어느 대학 캠퍼스 부근 동산에 다람쥐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다람쥐들은 사람들이 해하지도 않고 귀엽게 사랑해 주는 덕분에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오면 수풀 속에서 달려 나와 사람의 어깨 위에 오르기도 하고, 손바닥 위에서 땅콩 같은 것을 집어먹기도 하며, 때로는 먹을 것이 들어 있는 사람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가을이 지나 추운 겨울이 되어 먹을 것이 없게 되면 학생들이 호두며 땅콩 등을 사서 주었습니다. 이렇게 캠퍼스의 다람쥐들은 먹을 것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장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캠퍼스 다람쥐들은 겨울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학생들이 방학을 하고 학교가 텅 비게 되자 많은 다람쥐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학생들 중에 동물을 좋아하는 한 학생이 졸업하면서 다람쥐를 위한 기부금을 냈습니다. 방학 동안에도 계속해서 다람쥐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다람쥐들은 스스로의 보호 본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먹이지 않으면 굶어 죽고 만다고 합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이 말은 ‘미리 준비를 잘하여 환난을 면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나 인생의 삶으로나 중요한 말입니다. 인간 세상에도 캠퍼스 다람쥐처럼 눈에 보이는 육신의 삶에만 매달리다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하지 못하고 갑자기 인생의 밤, 인생의 겨울이 닥쳐서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생의 밤이나 인생의 겨울은 예고도 없이 미처 생각지도 못하였던 때에 갑작스럽게 닥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 순간의 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에 관계된 일이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 24:44절에서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시며, 누가복음 12:39-40절에서는 “너희도 아는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의 삶에 빠져 안일하게 시간을 소일하고 있습니까? 노아의 홍수 때에도,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세상의 안일함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7:27-30절에서 세상의 끝에도 같은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오늘은 대림절 네 번째 주간이 시작되는 주일이면서, 성탄절이 들어있는 주간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진솔하게 열어놓고 ‘나는 어떻게 주님과의 만남을 예비하고 있는지’ 세 가지 질문의 형태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질문, 주님 앞에 설 때를 예비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다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야하며 자신의 살아온 과정을 고백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로마서 14:11-12절입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고 하시며, 베드로전서 4:5절에서는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고 하십니다. “직고한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행위를 있는 그대로 자백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비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는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을 절제하되, 하나님의 뜻 안에서 행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12:36절을 봅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고 하시며, 로마서 2:6-8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면서 주님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러한 길을 예비하라고 선포한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세례요한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세례요한의 사역에서 지금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가 무엇을 예비해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을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에 길을 닦아 두기 위함이셨습니다. 즉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마음의 길을 닦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예비하는 마음의 길이란 무엇입니까? 본문 4-5절을 봅시다.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는 ‘죄를 자복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그릇에 담고자 한다면, 먼저 해야 할 일은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져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물건을 담고자 하는 그릇에 이미 무엇인가 들어 있거나 지저분하다면 그것을 비워내고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사람의 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기 위해서는 먼저 가득 차 있는 세상의 것을 비워야 합니다. 사람의 영을 비우는 작업이 곧 ‘회개를 통한 죄 사함’입니다. 사도행전 2:38절에서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선포합니다. 왜 회개해야 합니까? 회개는 영적인 지우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행한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자백할 때에 우리의 악한 행실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지우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설 때를 준비하는 길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죄에 팔려버린 인생을 되사시기 위함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희생의 대가로 원래의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로 되돌아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5:15절에서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시며, 데살로니가전서 5:10절에서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시고, 베드로전서 4:2절에서는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도 된 우리가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부름 받은 선지자 중에서 가장 분명하고 단순한 소명을 받은 선지자가 세례 요한일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의 중간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행한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일컬어 “여자가 나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마11:11)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선지자의 삶을 보십시오! 그의 의복은 약대 털옷과 가죽 띠였고, 음식은 메뚜기와 간간이 들 꿀인 석청을 먹었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집은 광야였습니다. 부귀영화 명예권세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식주 문제로 고민하지 않았으며, 더 나은 삶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봅시다. 누가복음 12:22-34절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님은 육신의 생활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까마귀와 들의 백합화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즉 의식주 생활의 필요를 구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기를 힘쓰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는 일을 제일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삼는 길은 모든 일을 하나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하나님께 먼저 구하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하는 것입니다. 남 유다의 왕을 한 사람 예로 들어 봅시다. 남 유다의 세 번째 왕인 ‘아사’왕은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대대적인 신앙개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역대하 15:15절입니다. “온 유다가 이 맹세를 기뻐한지라. 무리가 마음을 다하여 맹세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저희의 만난 바가 되시고 그 사방에 평안을 주셨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년에는 나라가 안정되고 부흥되자 교만해졌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가두고 핍박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로 발에 심한 병이 났는데,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의사를 의지했습니다. 16:12절입니다.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결국 그 병으로 2년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평안을 누리고 기쁨 중에 주님을 만나려면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야 합니다.
세 번째 질문, 맡겨진 본분에 충실하고 있습니까?
구원 얻은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소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 역시 예외가 없습니다. 달란트 비유나 므나 비유에서처럼 맡겨진 일이나 분량이나 결과가 다를 수는 있지만, 모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마태복음 25:14-15절입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소명을 받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은 오직 “죽도록 충성하는 것”뿐입니다. 고린도전서 4:2절에서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2:10절 하반절에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 모습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세례를 선전한 것도 아니요,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본문 7절에서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은 오직 자신의 뒤에 나타나실 주인공을 위한 들러리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 시대의 마지막 선지자인 ‘말라기’ 시대를 지난 후 400여 년을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선지자도 없는 영적인 암흑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혜성처럼 나타난 사람이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여겼습니다. 요한은 얼마든지 부귀영화 명예권세를 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오직 자신의 사역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힘써야 할 것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닙니다. 성도가 힘 쓸 것은 오직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본분 외의 일을 하게 되면 칭찬이 아니라 심판이 따르게 됩니다.
여러분! 이 세 가지의 질문에 모두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이제, 대림절이 끝나는 주간이자, 성탄절이 들어 있는 주간입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을 주의 깊게 되돌아봅시다. 아직 기회가 많이 있다고 여긴다면 인생의 밤, 인생의 겨울이 준비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닥칠 것입니다. 기회를 잃지 말고 일어섭시다. 아직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있지 못하다면 진정으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족한 점은 새롭게 결단하고, 잘하고 있는 점은 더욱 장려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부끄러움 없이 맞이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