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사람이 행동해야 할 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523회 작성일 2010-06-03 13:52
*** 사람이 행동해야 할 때 / 신명기 2:16-25

** 들어가는 말

신명기 2:16-25, “16 모든 군인이 사망하여 백성 중에서 멸망한 후에 17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8 네가 오늘 모압 변경 아르를 지나리니 19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 20 (이곳도 르바임의 땅이라 하였나니 전에 르바임이 거기 거주하였음이요 암몬 족속은 그들을 삼숨밈이라 일컬었으며 21 그 백성은 아낙 족속과 같이 강하고 많고 키가 컸으나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 앞에서 그들을 멸하셨으므로 암몬 족속이 대신하여 그 땅에 거주하였으니 22 마치 세일에 거주한 에서 자손 앞에 호리 사람을 멸하심과 같으니 그들이 호리 사람을 쫓아내고 대신하여 오늘까지 거기 거주하였으며 23 또 갑돌에서 나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주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거기에 거주하였느니라.) 24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25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은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겠지만, 특별히 구분이 되는 것은 ‘때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서 차이가 납니다. 잠언 22:3절에서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때, 머물러야 할 때, 떠나야 할 때를 압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이러한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나아가다가 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삶에는 ‘때’라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때’를 나타내는 말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간(time)’으로써 ‘짧은 시기(時期)’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여행하기에 적당한 시기’와 같은 경우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회(opportunity)’로써의 ‘시기(時機)’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기회를 보아 무엇을 하라.’라는 경우입니다. 오늘 말씀 속에는 이 두 의미가 다 사용이 될 것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라는 전도서 3:1절의 말씀처럼 그리스인에게 있어서 ‘때’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반복해서 주어지는 기회도 있겠지만 한 번 지나가면 영원히 잡을 수 없는 기회도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는 이사야 55:6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 자신의 삶이 의미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때를 잘 분별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때’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11절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라고 하시며, 이사야 45:7절에서는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로 우리 마음을 두고 우리 눈을 하나님께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볼 때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명절 때면 어김없이 방송하는 세계의 서커스단 공연이 있습니다. 이 서커스 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동물들을 불을 붙인 링을 지나게 하는 것입니다. 개나 호랑이 사자 등이 조련사의 명령에 따라 불붙은 링을 훌쩍 뛰어서 지나갑니다. 사람들은 다른 동물의 공연들처럼 이것도 훈련을 많이 시켜서 그렇게 하는 줄로 압니다. 그런데 동물학자에 의하면 털 많은 동물들의 본성이 불을 싫어한다고 합니다. 조련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훈련시켜도 동물들은 불을 피합니다. 동물들이 불을 지나게 하는 것은 주인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동물들은 불을 향해 뛰기 전에 먼저 자기 주인의 눈을 봅니다. 그리고는 주인을 믿고 불을 지나갑니다.”

동물들도 주인의 눈을 보고 믿음을 갖는다고 합니다. 눈은 그 사람의 정직성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고, 하나님을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 힘을 얻으려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호에 따라서 행동해야 합니다. 세상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져서 하나님의 신호를 의식하지 못하면 때와 기회를 놓치게 되며 삶이 힘들게 됩니다. 이 중요한 때와 기회가 여러분에게 어떻게 주어지고 있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행동 강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땅을 지척에 두고도 이스라엘 백성들로 40년을 광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훈련을 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원인이었습니다. 민수기 14:33절에서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이제 40년의 기한이 차고 불순종의 사람들이 다 죽고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행진에서 싸우지 않고 그냥 지나쳐야 할 민족과 진멸해야 할 민족을 구분해 주셨습니다. 본문 19절에서 “암몬 족속에게 가까이 이르거든 그들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다투지도 말라. 암몬 족속의 땅은 내가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롯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가나안 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너희는 일어나 행진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은즉 이제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차지하라. 오늘부터 내가 천하 만민이 너를 무서워하며 너를 두려워하게 하리니 그들이 네 명성을 듣고 떨며 너로 말미암아 근심하리라 하셨느니라.” 이는 이스라엘이 따라야 할 하나님의 작정(뜻과 때)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작정을 떠나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며 실망과 낭패가 따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계획하신 뜻과 정하신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속을 흐르는 역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기다림의 역사’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언약을 주시고 즉시 이루기도 하시지만, 대부분은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서 이루게 하셨습니다. 짧게는 며칠을, 길게는 몇 백 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사야 30:18절 하반절에서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가 시행되지 않는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 2:3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순교자들이 하나님의 제단 아래에서 자신들의 사정을 살펴주시기를 탄원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아직 잠시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6:9-11절을 봅시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왜 이렇게 기다려야 합니까? 그것은 전도서 3장에서 하신 말씀처럼, 모든 일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람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작정, 즉 하나님의 뜻과 계획안에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제 아무리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해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본문을 조금 지나서 37절을 봅시다. “오직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가기를 금하신 모든 곳은 네가 가까이 하지 못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6:9절에서도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어떤 일을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이스라엘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라고 선언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신호인 ‘나아가라.’는 청색 신호, ‘기다리라’는 황색 신호, ‘안 된다.’는 적색 신호(하나님의 때)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 어떤 때가 사람이 행동을 해야 할 때입니까?

성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믿음으로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허락 하실 때에는 담대하게 행동하는 순종적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14:13-16절에서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보며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의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을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고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허락이 있은 후에도 계속 막연히 기다리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홍해 해변에서 계속 부르짖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히려 책망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거의 800여 년 전에 아브라함을 통하여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으로 인한 40년간의 징계 기간도 지났습니다. 지금은 그 약속의 땅을 바로 앞에 두고 그곳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이라 할지라도 최종적인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얻을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행하시는 때입니다.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렀음을 “이제”, “오늘부터”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본문24-25절).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여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때가 성도가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성도는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능력의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두려워하고 힘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렇게 하다가 안 되면 어떻게 하나?’라고 하는, 하나님을 향하는 근본적인 의심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1:22절에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셨고, 야고보서 1:6절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하는 믿음은 ‘기도하는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기도’이며, ‘행동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행동’이어야 합니다.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의 일인자인 ‘루터’는 곧잘 우울해지곤 했습니다. 그런 때면 그의 아내가 충고도 하고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아내의 위로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얼마 전 어느 날, 많은 고민으로 우울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아내의 위로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루터는 기운을 잃은 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우울한 기분이 전혀 가시지 않은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 들어온 루터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 매우 슬픈 얼굴로 눈물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루터가 무슨 일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여보, 우리들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슬퍼하고 있답니다.” 루터는 어이없다는 듯, “하나님이 어떻게 죽는단 말이요.”그러자 아내는, “나는 당신이 하도 걱정하고 우울해 하기에 하나님이 돌아가신 줄 알았지요.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그렇게 고민하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루터는 그 순간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음을 깨닫고 새롭게 힘을 회복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루터처럼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도 시인하고 마음으로도 믿습니다. 그런데 생활 속에서는 온갖 걱정과 염려가 가득합니다. 고백과 삶이 다른 신앙은 올바른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마음의 고백과 행동하는 생활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때늦은 순종’도 불신앙의 일부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2년 여 만에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인간적인 보고를 한 다수의 정탐꾼 말만 믿고 불순종하다가 38년이란 세월을 낭비했고 결국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뒤늦게 순종하고자 했지만 이미 하나님의 마음이 돌아선 후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행동해야 할 때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있음을 믿습니까? 믿는다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하며 또 어떻게 행동하고 있습니까? 매일 말씀과 기도와 감사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깨어 있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정하신 때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한다면 결과는 낭패와 실망뿐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러므로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따라서 조급하게 삶을 경영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분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때와 시기를 놓치지 말고 담대한 믿음으로 행하여 만족과 기쁨이 충만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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