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당당하게 사는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758회 작성일 2010-05-17 15:38
*** 당당하게 사는 사람  / 누가복음 12:35-40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12:35-40,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영의 삶을 전하고 가르치는 하나님 나라의 교사들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스승의 주일입니다. 세상에서도 교육을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하여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영의 삶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영원한 생명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명기 6:4-9절을 ‘쉐마’라고 부르며, 아이가 태어나면 품에 안고 젖을 먹일 때부터 이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9:35절에서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직접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심으로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일을 하는 교사는 숨길 것이나 부끄러울 것이 없이 사람들 앞에서 당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느 도시의 큰 교회의 목사님이 주일 낮 설교를 마친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주 설교는 ‘거짓말’에 대해서 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는 마가복음 17장을 읽어오세요.”
다음 주일이 되어 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목사님이 물으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오늘 설교를 위하여 마가복음 17장을 읽어 오라고 부탁했는데 읽으신 분들 손드세요.”그러자 대부분이 손을 들었습니다. 좌석을 쭉 둘러보신 목사님이 웃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마가복음은 16장까지 밖에 없습니다. 지금부터 거짓말에 대한 설교를 시작 하겠습니다.”

저는 이 시간에 거짓말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당당하게 나타낼 수 있는 삶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르치는 사람이 거짓말 하고 당당한 삶을 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학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하는 세상적인 교육도 가르치는 사람의 인품을 중요시 하는데,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삶을 가르치는 사람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교회에서의 목사나 교사가 아니더라도 모든 성도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말로나 삶으로나 복음의 전달자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 특히 가르치는 사람들은 말이나 생활의 모든 삶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는 당당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2:15절에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의도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종말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주제를 붙인다면 ‘깨어 있어 준비하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당당하게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깨어 있으면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있어도 담대하고 당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당당하게 사는 것은 모든 준비가 잘 되어 있을 때 가능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 특히 교사는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순교 직전에 에베소 교회를 사역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는 특별한 당부를 한 것만 보아도 당당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인디언의 우화 중 아주 짧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가 어두움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두움을 잘 아는 ‘별’이 ‘해’에게 어두움을 보여주려고 ‘해’를 데리고 아주 캄캄한 굴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굴에 해가 들어서자마자 어두움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역시 해에게 어두움을 보여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우화가 말하는 것은 ‘어두움을 해결하는 길은 어두워진 원인을 분석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물러가게 하는 길은 불을 밝히는 길뿐입니다. 그래서 ‘빛과 어두움’을 주제로 한 복음송이나 찬송가 가사가 많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여, 나의 어두운 맘속에 들어오셔서 나의 어두운 맘 밝혀주소서. 빛으로 오신 예수여…”(복음성가)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 ”(복음성가)/“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 지켜서 찬이슬 맺힐 때에 즉시 일어나 …”(찬송 330장)/“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 ”(찬송 502장) 등. 빛과 어두움이라는 주제는 영적인 세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 편에 속한 깨끗하고 맑은 영적인 밝음입니다. 이에 대비되는 ‘어두움’은 사탄이며, 사탄이 주도하는 세상의 죄악이며 영적인 어두움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편에 있으면서 결코 둘이 합할 수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35절에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1.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깨어있어야 합니다.

본문 36절을 봅시다.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하십니다. 졸거나 깊이 잠들어버리면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언제 졸음이 옵니까? 피곤하거나, 다른 사람이 잠들어 있을 때나, 밤이 깊을 때에는 졸음이 옵니다. 바로 그런 시간을 본문 38절에서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경”이나 “삼경”이라는 시간은 밤9시부터 이튿날 새벽3시까지를 말합니다. 이 시간은 사람들이 깨어있기가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때이며, 졸음이 몰려오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시간대가 주인이 올 가능성이 높은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을 일을 맡기고 출타한 주인을 기다리는 종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종은 주인이 어느 때에 돌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즉시 열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첫 번째 요소는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주인이 돌아온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말씀 본래의 의미로서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날은 온 세상의 종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도 개인에게 이루어지는 종말입니다. 즉 성도 자신의 죽음입니다. 이 두 종말은 그 성격이 다르고 그 징조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부르기 위하여 주인이 돌아오는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준비하고 대비하는 자세만은 같습니다. 즉‘깨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두 번째 요소는 주인이 돌아올 징조입니다. 이 징조에 대하여는 마가복음 13:28,29절을 봅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무화과나무가 줄기에 물이 오르고 새잎을 피우는 것은 여름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즉 여름이 다가오는 징조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다시 오실 징조는 마가복음 13:5-22절에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징조를 요약하면 거짓 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고, 세상에 불법이 횡행하며, 전쟁과 전쟁의 소문들이 무성하며, 민족들의 분규가 일어나고, 세계 곳곳에서 지진과 기근 등의 자연재난이 일어나며, 성도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며, 가족 구성원 간의 싸움으로 가정의 파괴가 많아지며,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멸망 할 가증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지금까지의 어느 시대보다 이와 같은 징조가 짙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속도가 한층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여름이 다가오는 징조 곧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는 징조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 때에 부끄럽지 않도록 깨어 있어 당당하게 살아야 할 때입니다.

2. 당당하게 살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유명한 화가 ‘홀맨 헌터’가 그린 ‘세상의 빛’이라는 제목의 성화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 성화는, 굳게 닫힌 문밖에서 예수님이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문을 두드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이 절정에 달한 때에 빛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어두움에 갇힌 사람들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고 말씀하십니다.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께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 성도입니다. 우리는 어두움이었지만 빛이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심으로서 우리는 빛을 발하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본문 37절에서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십니다. 주인이 오실 때에 어두움인 채로 있거나 잠들어 있다면 ‘열 처녀의 비유’에서의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이 영원한 생명의 나라는 멀리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깨어 있음’은 무엇을 말합니까? ‘깨어 있음’은 신앙생활의 영적각성을 의미합니다. 즉 불법이 자행되고 이로 인하여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서로 믿지 못하는 시대일수록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사랑과 믿음을 지키고 행하는 것입니다. 주인은 ‘이경’이나 ‘삼경’에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밤이 가장 깊은 때, 사람들이 깨어있기가 고통스럽고 힘들 때에 주인이 오신다고 했습니다. 세상이 온통 미혹되고 불법에 빠지고 있을 때에도 성도는 공의롭고 진실하고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8-11절을 봅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이것이 ‘깨어 있는 사람이 준비해야 할 삶’입니다.

영국의 화학자이며 ‘안전등’을 발명한 데이비(Davy, Sir Humphry 1778-1829)는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사람입니다. 그는 너무나 연구에만 열중하던 나머지 자기의 결혼식 날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신부가 화가 난 것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그는 결혼식 날도 변함없이 연구실에서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사람이 찾아와서 “저, 무엇 잊은 것 없으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데이비는 “아뇨, 아무것도…”라며 의아해 했습니다.  “결혼식은 어떻게 되었어요?”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이 말에 그는 비로소 화닥닥 정신이 들어 “앗! 이 일을 어떻게 해!”라며 당황해 했다는 것입니다. 신부될 사람은 “결혼식을 잊어먹는 사람이면 필요 없다.”고 결혼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일에 몰두 하다가 결혼식을 망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일에 빠져 영의 깊은 잠을 자고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부르시거나, 재림 하신다면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등불을 준비하지 못하여 천국의 혼인잔치에 참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깨어 있어 준비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있다가’라고 깨어 있음을 미루거나, 세상일에 몰두하면서 깨어 있는 것을 잊어버리면 뜻밖에 그 날이 도적처럼 이르게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두움은 빛을 더 밝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의 죄악 된 어두움은 성도가 잠들도록 유도하지만 성도는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거룩한 직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산과 재능을 다하여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깨어 있어 준비하는 삶이며, 당당하게 사는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그리하면 갑자기 주인이 오셔도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고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 때때로 아무런 소득이 없는 듯이 보일지라도 결코 멈추어 서면 안 됩니다.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이처럼 성실하게 깨어 있는 결과는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다니엘 12:3절에서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고 하셨듯이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한 종을 위하여 천국은 마련되어 있으며 자신이 한 만큼 주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이룰 때까지 인내하면서 나아갑시다. 주님 앞에서 우리 모두 기쁨으로 만나서 즐거움을 누리도록 어두운 이 시대의 빛의 삶을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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