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502회 작성일 2010-04-13 14:38
***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  /  누가복음 8:26-39

**  들어가는 말

누가복음 8:26-39, “26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27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31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32 마침 그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34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35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36 귀신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37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38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많습니다. 사람마다 소중하게 여기는 관점이 다르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일로 꼽는 소중한 것이 있다면 아마도 ‘생명’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마태복음 16:2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여러분은 자신의 생명을 무엇으로 바꾸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건강한 삶을 위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음식, 운동, 습관, 환경 등등. 예전에는 먹고 사는 것에 관심을 가졌는데, 오늘에는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몸의 건강에는 관심이 많은데, 영의 건강한 삶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육신의 건강보다는 영적인 강건함이 더 중요한데도 단지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고린도후서 4:18절에서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하셨는데, 현대인들이 이 말씀을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지금 우리가 살고 보는 이 세상은 사라질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0-12상절을 봅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이 말씀대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던 세상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영의 생명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이탈리아에 ‘마르키스(Marquis)’라는 신실한 신앙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후부터 황제의 술 관원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물려주는 유산을 거절하고 아들로 불리는 것조차 거절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타락한 생활과 쾌락으로 썩어져 가던 부귀를 누리는 것보다, 차라리 그리스도를 따라 기꺼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그 쪽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하여 아내와 자식과 모든 재물을 잃게 되었고, 숱한 능욕과 고난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것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늘의 찬란한 빛을 바라보았고,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고난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르키스, 그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의 생명을 사모하는 진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외식하는 신앙인과 참 신앙인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이 매우 다릅니다. 외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지옥보다 나은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외식하는 신앙인들은 만일 자신이 천국과 지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면 천국을 택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들은 천국을 지옥보다 좋아하지만 이 세상을 가장 좋아합니다. 죽은 후에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원하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영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는데 인색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소중히 여기며 영의 생명을 위하여 세상을 기꺼이 포기합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의 삶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본문의 상황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갈릴리 호수에서 10여 Km 남동쪽에 위치한 데가볼리 지역의 ‘가다라(거라사)’지방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이 이방인의 지역으로 가셨습니다. 막 배에서 내렸을 때 귀신이 들려 벌거벗은 채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아무도 제어할 수가 없어서 마을에서 벗어난 외곽의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들어있는 귀신들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귀신은 ‘군대’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군대’라는 단어는 6,000 - 10,000명 단위로 구성된 로마군대를 일컫는 단위입니다. 이 사람에게 들어있는 귀신이 이만큼 많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들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귀신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라면서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말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곳에는 방목하는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었습니다. 이는 마을 사람들의 돼지로서 삯꾼들에게 맡겨서 먹이는 것이었습니다. 귀신들이 예수님께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귀신들은 즉시 그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들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돼지들이 미친 듯이 비탈길로 달려서 갈릴리 호수로 들어가서 몰사했습니다. 돼지를 치던 삯꾼들이 이 사실을 보고 마을로 달려가서 주인들에게 사실을 알렸습니다. 주인들과 마을 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상황을 파악한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려워하면서 ‘이 마을에서 떠나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반면에 귀신이 나간 사람은 제정신을 찾았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허락해 주실 것을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고 하셨고, 그 사람은 온 성에 이 사실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참으로 중요한 갈림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거라사 인의 마을은 다시는 주어지지 않을 위대한 생명의 기회를 만났습니다. 창조주이시며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이 친히 자신의 마을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사랑과 긍휼하심을 나타내시면서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바로 이 땅에서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기회는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주어지고 있으며, 어느 순간에 그 기회가 지나갈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 주님의 이 사랑과 긍휼의 손길이 여러분의 삶에 가까이 와 있지는 않습니까? 한 그릇 죽으로 영원한 복을 바꾸는 어리석은 삶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 세상 것과 영원한 생명의 기회를 바꾸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안타까운 일을 보게 됩니다. 바로 거라사 인으로서 성읍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돼지 떼의 주인들이며, 그 마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평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생명의 큰 기회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기회를 스스로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재물과 관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중요한 재산인 돼지 떼가 몰사해버린 것입니다. 당시에는 돼지 몇 마리가 결혼지참금이 될 정도로 중요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 소중한 재물이 손실을 입었다는 생각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이곳에 더 있다가는 어떤 손해가 더 발생하게 될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 마을에서 떠나 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이적의 현장을 목격하고서도 자신들의 세상 이익에만 눈이 멀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선택입니까?

이런 불행한 선택은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사람들에게 많은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현상이 많음을 아시고 여러 비유를 통하여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18-23절에서, 씨뿌리는 비유의 해석을 통하여 길 가와 같은 마음, 돌짝밭과 같은 마음,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의 불행한 선택을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가복음 10:17-22절의 ‘부자청년의 비유’에서는, 거라사 인들처럼 재물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저버리는 안타까움을 말씀하십니다. 21절에서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부자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눈에 보이는 이익을 따르거나 더 많은 손실을 막기 위하여, 참 생명과 능력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세상을 택하거나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선택이 모두를 잃는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수없이 들어왔을 이러한 결단과 선택의 귀로에서 번번이 세상을 향하곤 합니다. 이렇게 성도들이 세상을 향하게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가장 주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시각이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31-32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돈을 따라가고 세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1:18-20절입니다.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하시며, 마가복음 9:2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재물이나 없어질 세상의 것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순교자 ‘주기철’목사님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했다가 순교의 길을 갔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신학생들에게 하셨던 ‘일사각오’라는 유명한 설교가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사는 것은 참으로 죽는 것이요, 예수님을 따라 죽는 것은 참으로 사는 것이다.”
목사님은 자신의 신앙대로 선택하셨고, 결국 순교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와 육신의 즐거움과 평안함만을 구하면 생명의 길은 멀어집니다. 이 세상의 것은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오늘은 내 것이라도 내일은 다른 사람의 것이 될 수도 있고, 허망하게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영원한 생명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밭에 감추인 보화’비유에서 다른 사람의 밭을 갈던 농부가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농부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습니다. 또한 ‘값진 진주’비유에서는 진주 장사꾼이 너무나 값진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샀습니다. 이 두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투자해서라도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값진 영원한 생명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나라를 발견하셨습니까? 아니면 이미 이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투자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발견은 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7-9상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도록 합시다. 세상이 어둡고 혼란스럽고 유혹이 많을수록 자신의 삶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비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권을 결코 저버리거나 빼앗기지 않도록 깨어있는 믿음을 이룹시다. 그리하여 마지막 호흡을 하는 그 순간까지 이 생명을 지켜가고 전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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