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은혜를 감사하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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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10-24 21:05
***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은혜를 감사하라 / 신명기 16:13-17, 골로새서 3:15-17
** 들어가는 말
신명기 16:13-17,(한글킹제임스역)“13 너는 네 곡식과 네 포도주를 거둬들인 후, 칠 일 동안 장막절을 지킬지니라. 14 너는 명절에 즐거워할지니 너와 네 아들과 네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성문들 안에 있는 레위인과 타국인과 아비 없는 자와 과부도 즐거워할지니라. 15 칠 일 동안 너는 주께서 선정하실 곳에서 주 너의 하나님께 거룩한 명절을 지킬지니라. 이는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모든 소산물과 네 손의 모든 일에 너에게 복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즐거워할지니라. 16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주 너의 하나님 앞에 일 년에 세 번씩, 즉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그 분께서 선정하실 곳에 나오되 그들은 빈손으로 주께 나오지 말지니라. 17 각 사람은 주 너의 하나님 그분께서 네게 주신 복에 따라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드릴지니라.”
골로새서 3:15-17,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플라시보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늦은 시간, 한 남자가 처방전 없이 약국을 찾았습니다. 남자는 약사에게 ‘지금 당장 아파서 죽을 지경이니 약을 좀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약사는 처방전 없이 약을 팔 수 없었기에, 남자가 요구하는 약 대신 포도당류 알약 몇 개를 주며 “일단 이것을 먹으면 좀 괜찮아질 겁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약국을 찾은 그 남자는 약사에게 “약이 신통하더군요. 먹은 즉시 가라앉지 뭡니까.”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여기에 등장한 약사는 ‘에밀 쿠에’라는 프랑스의 약사입니다. 그는 ‘무의식과 자기암시’에 대한 연구로 ‘응용 심리학’에 큰 영향을 끼친 심리 치료사이기도 합니다. 또한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를 처음 발견해낸 사람입니다.
플라시보 효과란, 몸에 해가 없는 일반 영양제나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속여 환자에게 복용시켰을 때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환자가 실제로 병이 낫거나 증상이 완화되는 등의 현상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플라시보 효과를 다른 말로 ‘위약효과(僞藥效果)’라고 합니다. 플라시보(Placebo)는 ‘만족시키는’, ‘즐겁게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이는 인간의 정신력과 믿음, 자기암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열이 나는 환자에게 증류수를 해열제라고 속여 의사가 직접 주사하면 많은 경우 열이 내렸다고 합니다. 강한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고 병도 치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플라시보 효과는 사람의 모든 삶에서 나타납니다. 부정적인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이 주어지고 불평과 원망의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반면에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삶을 즐거워하는 사람에게는 감사의 일들이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 형편에 감사할 일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우리 식구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남 도와줄 틈이 있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삶의 여유가 생기면 그 때 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세상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여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합당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플라시보 효과가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한 실제적인 능력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4:11절에서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8:10절에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을 한 주간 앞 둔 이 시간에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해야 할 이유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구약성경 신명기 본문은 초막절, 혹은 장막절 절기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장막절은 ‘일 년의 모든 농사를 마치고 열매를 수확한 후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특별히 이날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며 정착할 땅과 땅의 소산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감사하며,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무교절, 칠칠절, 장막절 세 절기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골로새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자세로 ‘감사’를 명하십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즉 데살로니가전서 5:18절 말씀대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자세로 ‘감사’를 꼽고 있습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신앙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왜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신앙의 요소가 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모든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8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16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는 ‘감사’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예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시편 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증언하십니다.
※ 무엇을 즐거워하고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신명기 본문14절을 봅시다. “너는 명절에 즐거워할지니 너와 네 아들과 네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성문들 안에 있는 레위인과 타국인과 아비 없는 자와 과부도 즐거워할지니라.”라고 하셨고, 앞 쪽의 칠칠절의 말씀인 11절에서도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은 온 가족(종업원 포함)과 소외된 사람들이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레위 인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는 사람들로서 세상에서의 기업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성직자들을 말합니다.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베푸신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 힘대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명절에 온 가족과 이웃이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특히 명절에는 어려운 이웃과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라고 거듭거듭 강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15:1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로움을 이웃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가족들, 일가친척들, 힘겹게 사는 이웃들 등.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19:17절을 봅시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잊지 않아야 할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모든 절기를 지키는 공통적인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무교절인 8절에서도 “여호와 앞에서 성회로 모이라”고 하셨고, 칠칠절인 11절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하셨으며, 장막절인 15절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란 ‘하나님의 주도하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칫 정도가 지나쳐서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의 잔치로 전락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즐거움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다른 하나는, 세상 사람들이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감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과 결과를 두고 감사하며 즐거움을 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경영하는 일들에 복주실 것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본문 15절입니다. “이는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모든 소산물과 네 손의 모든 일에 너에게 복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즐거워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내게 주신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나 즐거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실 앞으로의 모든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는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즐거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감사는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에서는 모든 일을 감사하라고 하시며, 신명기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윌리엄’은 행복을 찾는 비결을 묻는 사람에게,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고 했으며, ‘성 어거스틴’은 “감사의 분량이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의 척도”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반대편에 있는 원망과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백성의 광야 생활을 통하여 너무나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전부가 가나안 땅을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물이 없음을 원망했고, 길이 험하다고 불평했으며, 고기와 신선한 채소가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이러한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부부사이나 가족이라 할지라도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들 사이에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일들까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6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십니다.
일본의 유명한 ‘다마끼’ 부인은 평생을 나환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나환자들을 돌보며 요양원을 세우고, 고름 나는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자기도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가 나환자가 되어 눈썹이 다 빠지고 속눈썹까지 빠지고 나자 이렇게 말썼습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합니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서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병을 주어 여러 가지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여러분, 속눈썹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베푸신 건강과 평안한 삶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연히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감사를 잊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감사합시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평안히 눕고 일어남을 감사합시다. 때로 다가오는 고통의 일들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더 나은 은혜를 위한 섭리임을 믿고 감사합시다.
1620년 9월 29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출발한 102명의 청교도들은 180톤 짜리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63일간 3,400마일을 항해한 후 북미 플리머스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청교도들은 가장 먼저 교회를 짓고, 다음으로 학교를 지었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첫해 농사를 지어 가을 추수 때에 자신들을 위협하며 괴롭히는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감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첫 추수감사절이었으며, 이것이 지금의 미국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남미는 북미보다 좋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가 세계 최강이 되는 동안 남미는 지금도 여전히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북미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개척한 ‘감사의 땅’이다. 그러나 남미는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이 개척한 ‘탐욕의 땅’이다. 북미와 남미가 현격한 생활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는 가정은 행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가정의 후손들은 평생 탐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끌어 모으고 움켜쥐어도 결코 모이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아놓은 재물 때문에 가정이 파탄되고 자손들이 파멸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가지지 못한 것들을 불평하지 말고 주신 것을 헤아려보며 감사합시다. 지금 내게 주신 작은 것에 감사한다면 더 나은 것, 더 좋은 길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모든 삶의 주인이 되셔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그리고 올 한 해 동안 베푸신 은혜와 앞으로 베푸실 은혜를 감사하면서 가족과 성도들과 이웃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눕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감사절로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신명기 16:13-17,(한글킹제임스역)“13 너는 네 곡식과 네 포도주를 거둬들인 후, 칠 일 동안 장막절을 지킬지니라. 14 너는 명절에 즐거워할지니 너와 네 아들과 네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성문들 안에 있는 레위인과 타국인과 아비 없는 자와 과부도 즐거워할지니라. 15 칠 일 동안 너는 주께서 선정하실 곳에서 주 너의 하나님께 거룩한 명절을 지킬지니라. 이는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모든 소산물과 네 손의 모든 일에 너에게 복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즐거워할지니라. 16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주 너의 하나님 앞에 일 년에 세 번씩, 즉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에 그 분께서 선정하실 곳에 나오되 그들은 빈손으로 주께 나오지 말지니라. 17 각 사람은 주 너의 하나님 그분께서 네게 주신 복에 따라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드릴지니라.”
골로새서 3:15-17, “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플라시보 효과’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늦은 시간, 한 남자가 처방전 없이 약국을 찾았습니다. 남자는 약사에게 ‘지금 당장 아파서 죽을 지경이니 약을 좀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약사는 처방전 없이 약을 팔 수 없었기에, 남자가 요구하는 약 대신 포도당류 알약 몇 개를 주며 “일단 이것을 먹으면 좀 괜찮아질 겁니다.”고 말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약국을 찾은 그 남자는 약사에게 “약이 신통하더군요. 먹은 즉시 가라앉지 뭡니까.”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여기에 등장한 약사는 ‘에밀 쿠에’라는 프랑스의 약사입니다. 그는 ‘무의식과 자기암시’에 대한 연구로 ‘응용 심리학’에 큰 영향을 끼친 심리 치료사이기도 합니다. 또한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를 처음 발견해낸 사람입니다.
플라시보 효과란, 몸에 해가 없는 일반 영양제나 가짜 약을 진짜 약으로 속여 환자에게 복용시켰을 때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환자가 실제로 병이 낫거나 증상이 완화되는 등의 현상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플라시보 효과를 다른 말로 ‘위약효과(僞藥效果)’라고 합니다. 플라시보(Placebo)는 ‘만족시키는’, ‘즐겁게 하다’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이는 인간의 정신력과 믿음, 자기암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열이 나는 환자에게 증류수를 해열제라고 속여 의사가 직접 주사하면 많은 경우 열이 내렸다고 합니다. 강한 믿음이 기적을 일으키고 병도 치료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플라시보 효과는 사람의 모든 삶에서 나타납니다. 부정적인 사람에게는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이 주어지고 불평과 원망의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반면에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알고 삶을 즐거워하는 사람에게는 감사의 일들이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 형편에 감사할 일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우리 식구 먹고 살기도 바쁜데 남 도와줄 틈이 있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삶의 여유가 생기면 그 때 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세상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여야 합니다. 결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합당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플라시보 효과가 아니라 성령님의 임재하심으로 인한 실제적인 능력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4:11절에서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8:10절에서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을 한 주간 앞 둔 이 시간에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감사해야 할 이유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구약성경 신명기 본문은 초막절, 혹은 장막절 절기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장막절은 ‘일 년의 모든 농사를 마치고 열매를 수확한 후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특별히 이날은 출애굽 후 광야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며 정착할 땅과 땅의 소산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감사하며,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무교절, 칠칠절, 장막절 세 절기는 모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행하신 일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 골로새서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가져야 할 삶의 자세로 ‘감사’를 명하십니다. “감사하는 자가 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즉 데살로니가전서 5:18절 말씀대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성경말씀에서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합당한 자세로 ‘감사’를 꼽고 있습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신앙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왜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신앙의 요소가 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모든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8절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16절에서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는 ‘감사’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예배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더해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시편 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증언하십니다.
※ 무엇을 즐거워하고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신명기 본문14절을 봅시다. “너는 명절에 즐거워할지니 너와 네 아들과 네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성문들 안에 있는 레위인과 타국인과 아비 없는 자와 과부도 즐거워할지니라.”라고 하셨고, 앞 쪽의 칠칠절의 말씀인 11절에서도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은 온 가족(종업원 포함)과 소외된 사람들이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레위 인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일에 봉사하는 사람들로서 세상에서의 기업을 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지금의 성직자들을 말합니다. 이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베푸신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올 때 빈손으로 나오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따라 힘대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명절에 온 가족과 이웃이 함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특히 명절에는 어려운 이웃과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라고 거듭거듭 강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신명기 15:1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로움을 이웃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가족들, 일가친척들, 힘겹게 사는 이웃들 등.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 살아있는 신앙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잠언 19:17절을 봅시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잊지 않아야 할 중요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모든 절기를 지키는 공통적인 방법은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무교절인 8절에서도 “여호와 앞에서 성회로 모이라”고 하셨고, 칠칠절인 11절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하셨으며, 장막절인 15절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온전히 즐거워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란 ‘하나님의 주도하에’,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칫 정도가 지나쳐서 세상적이고 육체적인 쾌락의 잔치로 전락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즐거움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다른 하나는, 세상 사람들이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감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지나온 과정과 결과를 두고 감사하며 즐거움을 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경영하는 일들에 복주실 것을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본문 15절입니다. “이는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 모든 소산물과 네 손의 모든 일에 너에게 복 주실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즐거워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내게 주신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나 즐거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실 앞으로의 모든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는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즐거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감사는 모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에서는 모든 일을 감사하라고 하시며, 신명기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윌리엄’은 행복을 찾는 비결을 묻는 사람에게,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고 했으며, ‘성 어거스틴’은 “감사의 분량이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의 척도”라고 했습니다. 감사의 반대편에 있는 원망과 불평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백성의 광야 생활을 통하여 너무나 선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전부가 가나안 땅을 보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물이 없음을 원망했고, 길이 험하다고 불평했으며, 고기와 신선한 채소가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이러한 원망과 불평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부부사이나 가족이라 할지라도 원망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들 사이에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연의 모든 일들까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6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십니다.
일본의 유명한 ‘다마끼’ 부인은 평생을 나환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나환자들을 돌보며 요양원을 세우고, 고름 나는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자기도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가 나환자가 되어 눈썹이 다 빠지고 속눈썹까지 빠지고 나자 이렇게 말썼습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합니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서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병을 주어 여러 가지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여러분, 속눈썹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베푸신 건강과 평안한 삶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연히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감사를 잊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감사합시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평안히 눕고 일어남을 감사합시다. 때로 다가오는 고통의 일들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더 나은 은혜를 위한 섭리임을 믿고 감사합시다.
1620년 9월 29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출발한 102명의 청교도들은 180톤 짜리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63일간 3,400마일을 항해한 후 북미 플리머스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청교도들은 가장 먼저 교회를 짓고, 다음으로 학교를 지었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첫해 농사를 지어 가을 추수 때에 자신들을 위협하며 괴롭히는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감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첫 추수감사절이었으며, 이것이 지금의 미국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남미는 북미보다 좋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가 세계 최강이 되는 동안 남미는 지금도 여전히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북미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개척한 ‘감사의 땅’이다. 그러나 남미는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이 개척한 ‘탐욕의 땅’이다. 북미와 남미가 현격한 생활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는 가정은 행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가정의 후손들은 평생 탐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끌어 모으고 움켜쥐어도 결코 모이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아놓은 재물 때문에 가정이 파탄되고 자손들이 파멸을 당합니다. 그러므로 가지지 못한 것들을 불평하지 말고 주신 것을 헤아려보며 감사합시다. 지금 내게 주신 작은 것에 감사한다면 더 나은 것, 더 좋은 길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모든 삶의 주인이 되셔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그리고 올 한 해 동안 베푸신 은혜와 앞으로 베푸실 은혜를 감사하면서 가족과 성도들과 이웃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눕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감사절로 맞이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