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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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10-05 20:44
***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 예레미야 29:10-14, 고전 3:5-9
** 들어가는 말
예레미야 29:10-14,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린도전서 3:5-8,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여러분은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십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삶의 어떤 부분에서 만족하지 못합니까?
만족하지 못한 부분은 불평이나 원망으로, 아니면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살아갑니까?
왜 시작부터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 오늘 말씀의 중심 되는 주제가 만족 혹은 자족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삶에서 만족하는 ‘지족(知足)’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6-8절에서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만일 자신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허락되지도 않은 것들을 무리하게 좇아가게 되면 오히려 스스로 더욱 힘든 곤경과 파멸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9-10절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하십니다.
네덜란드 왕가에 ‘암스베르크’ 공과 ‘베아트릭스(Beatrix Wilhelmina Armgard, 1938년 1월 31일 ~ )’ 공주 부부가 있었습니다. 1980년 4월에 어머니인 율리아나 여왕이 물러나자 베아트릭스 공주가 왕위를 계승하여 제6대 네덜란드 여왕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아트릭스가 여왕이 되는 날, 남편인 암스베르크 공은 우울증이 심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아내가 여왕이 되자 남편인 암스베르크 공은 어깨가 축 늘어지고 발을 질질 끌면서 침을 흘리는 이상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정신병원에 갇혀서 자살 방지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암스베르크 공은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도피를 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만족하게 되면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허용되지도 않은 자기 계획과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정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없게 됩니다. ‘좋은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했는데,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화를 불러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결코 만족하지 않는 욕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가 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불평과 불만, 원망, 근심, 염려, 짜증, 좌절과 절망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중요한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즉 자신의 모든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꾸어서 자신의 모든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인정하게 되면 만족으로 인한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있지 않다면 지옥의 고통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 먼저, 본문의 의도를 살펴봅시다.
구약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남 유다 백성들에게 선포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된 때는 이미 남 유다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바벨론에게 패망하여 포로로 잡혀간 신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진 북 이스라엘을 징벌하심으로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비참하게 멸망당하는 모습을 보았던 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비웃고 무시했습니다. 결국 북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135년 후, 남 유다도 같은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남 유다의 징벌 기간을 70년으로 예고하셨습니다. 70년이라는 긴 기간을 남 유다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를 지고 고통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70년이 마치면 하나님께서 포로 된 모든 곳에서 돌이켜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유다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1-13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권자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유대 백성이 따르던 세상의 권력과 물질과 우상들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므로 따라가지 말고, 온 세상의 일을 정하시고 이루시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신약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혀서 서로 시기하고 분쟁을 일으켜서 당을 짓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한 바울과 목회자인 아볼로와 그리스도 파로 갈라져서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고린도교회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의 역할을 소상하게 설명하여 가르칩니다. 본문 6-8절을 봅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도도 역시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스리시고 결과를 내시는 주권자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사람을 따르지 말고 오직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 잘되고 행복하며 천국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만족결핍증을 앓고 있습니다. 끝없는 육신의 욕망으로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세상의 것을 좇아갑니다. 하루 종일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보다, 불만을 토로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염려하고 근심에 싸이고 짜증스러운 생활을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할 때, 걸핏하면 짜증을 내고 불평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불평과 불만, 원망, 근심, 염려, 짜증, 좌절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때 이렇게 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엇인가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보채고 우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요구사항이 충족되지 못하다는 표현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 자신의 뜻이 무시되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이며,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져도 오로지 자신의 뜻과 생각만을 주장합니다.
영국의 소설가인 'C.S.루이스(Clive Staples Lewis)'의 글에 이런 풍자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푸쉬’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마리가 런던을 방문했습니다. 루이스는 런던을 방문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푸쉬야, 푸쉬야, 너 어디 갔다오니?” 그러자 고양이는 “예, 나는 여왕을 만나러 런던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루이스가 다시 물었습니다. “푸쉬야, 거기서 너는 무엇을 보았니?” 그러자 고양이는 “나는 여왕의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보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꼬집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런던에서, 그것도 그 아름다운 왕궁에 가서 엘리자벳 여왕이나 찬란한 궁궐이나 아름다운 역사적인 사적들을 본 것이 아니라, 겨우 여왕의 의자 밑에 기어 다니는 생쥐를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양이에게는 가장 큰 관심거리가 생쥐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자신의 가장 큰 관심거리에 마음을 두게 되며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을 내게 됩니다. 즉 나를 구원하시고 천국 백성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 자녀로서의 복도 보이지 않고, 오직 세상에서의 성공을 바라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주인 됨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하다가 죽임을 당했고,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백성들이 그렇게 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0-11절에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 증언하십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원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을 세상 만물의 주권자로, 자신의 모든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십시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주권자로 또는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둘째는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셋째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주어지는 모든 환경과 일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하며 만족하는 것입니다. 더 상세하게 표현한다면, 지금 주어진 가족들 - 아내와 남편, 자녀들 - 이 하나님이 이루신 것임을 믿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합력하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사업장이나 학교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리임을 믿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어렵게 살지만 이 자리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길임을 믿고 감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옛 우리 격언에 “애꾸 된 것을 서러워하지 말고, 장님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과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좋은 표현입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십니다. 혹시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마음속으로 “감사할 수가 없어” “나는 지금 이 현실이 결코 만족스럽지 않아” “나의 이 환경과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라고 항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이런 마음이 든다면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주어지는 환경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로서 다시 한 번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과 기쁨과 형통함을,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원하신다면, 자신의 생각과 뜻으로 된 자신의 기준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주권자로, 자신의 모든 삶의 주인으로 모십시오. 일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사랑하고, 베풀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만족하면서 감사함으로 순종합시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지만, 자라게 하시며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권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즉 일이 진행되고 성취되어 결과를 내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성실하게 맡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될 때에 반드시 열매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일의 결과는 내가 만들고 이루려고 하니까 짜증이 나고 불평과 원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털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하지 못함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주인이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삶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장된 미래와 희망을 위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이제는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삶의 주권자로 주인으로 인정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예레미야 29:10-14,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린도전서 3:5-8,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여러분은 지금의 현실에 만족하십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삶의 어떤 부분에서 만족하지 못합니까?
만족하지 못한 부분은 불평이나 원망으로, 아니면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살아갑니까?
왜 시작부터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 오늘 말씀의 중심 되는 주제가 만족 혹은 자족과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삶에서 만족하는 ‘지족(知足)’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6-8절에서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만일 자신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허락되지도 않은 것들을 무리하게 좇아가게 되면 오히려 스스로 더욱 힘든 곤경과 파멸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9-10절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하십니다.
네덜란드 왕가에 ‘암스베르크’ 공과 ‘베아트릭스(Beatrix Wilhelmina Armgard, 1938년 1월 31일 ~ )’ 공주 부부가 있었습니다. 1980년 4월에 어머니인 율리아나 여왕이 물러나자 베아트릭스 공주가 왕위를 계승하여 제6대 네덜란드 여왕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아트릭스가 여왕이 되는 날, 남편인 암스베르크 공은 우울증이 심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아내가 여왕이 되자 남편인 암스베르크 공은 어깨가 축 늘어지고 발을 질질 끌면서 침을 흘리는 이상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결국 정신병원에 갇혀서 자살 방지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암스베르크 공은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적인 도피를 한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만족하게 되면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반면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허용되지도 않은 자기 계획과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정신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없게 됩니다. ‘좋은 약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고 했는데,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화를 불러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결코 만족하지 않는 욕망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예외가 되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불평과 불만, 원망, 근심, 염려, 짜증, 좌절과 절망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 중요한 원인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즉 자신의 모든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꾸어서 자신의 모든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인정하게 되면 만족으로 인한 기쁨과 평안과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있지 않다면 지옥의 고통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 먼저, 본문의 의도를 살펴봅시다.
구약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남 유다 백성들에게 선포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선포된 때는 이미 남 유다는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서 바벨론에게 패망하여 포로로 잡혀간 신세가 되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진 북 이스라엘을 징벌하심으로 이미 경고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비참하게 멸망당하는 모습을 보았던 남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비웃고 무시했습니다. 결국 북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135년 후, 남 유다도 같은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남 유다의 징벌 기간을 70년으로 예고하셨습니다. 70년이라는 긴 기간을 남 유다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죄를 지고 고통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70년이 마치면 하나님께서 포로 된 모든 곳에서 돌이켜 본국으로 돌아오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유다 백성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1-13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궁극적인 의미는 ‘하나님이 온 세상의 주권자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유대 백성이 따르던 세상의 권력과 물질과 우상들은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므로 따라가지 말고, 온 세상의 일을 정하시고 이루시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신약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혀서 서로 시기하고 분쟁을 일으켜서 당을 짓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한 바울과 목회자인 아볼로와 그리스도 파로 갈라져서 다툼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고린도교회에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의 역할을 소상하게 설명하여 가르칩니다. 본문 6-8절을 봅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의 의도도 역시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스리시고 결과를 내시는 주권자이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사람을 따르지 말고 오직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 잘되고 행복하며 천국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만족결핍증을 앓고 있습니다. 끝없는 육신의 욕망으로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세상의 것을 좇아갑니다. 하루 종일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보다, 불만을 토로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염려하고 근심에 싸이고 짜증스러운 생활을 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할 때, 걸핏하면 짜증을 내고 불평합니다. 여러분, 이렇게 불평과 불만, 원망, 근심, 염려, 짜증, 좌절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어떤 때 이렇게 됩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무엇인가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가 보채고 우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요구사항이 충족되지 못하다는 표현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 자신의 뜻이 무시되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 속에 갇혀 있는 사람이며,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져도 오로지 자신의 뜻과 생각만을 주장합니다.
영국의 소설가인 'C.S.루이스(Clive Staples Lewis)'의 글에 이런 풍자적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푸쉬’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마리가 런던을 방문했습니다. 루이스는 런던을 방문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푸쉬야, 푸쉬야, 너 어디 갔다오니?” 그러자 고양이는 “예, 나는 여왕을 만나러 런던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루이스가 다시 물었습니다. “푸쉬야, 거기서 너는 무엇을 보았니?” 그러자 고양이는 “나는 여왕의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보았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꼬집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런던에서, 그것도 그 아름다운 왕궁에 가서 엘리자벳 여왕이나 찬란한 궁궐이나 아름다운 역사적인 사적들을 본 것이 아니라, 겨우 여왕의 의자 밑에 기어 다니는 생쥐를 본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양이에게는 가장 큰 관심거리가 생쥐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자신의 가장 큰 관심거리에 마음을 두게 되며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짜증을 내게 됩니다. 즉 나를 구원하시고 천국 백성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 자녀로서의 복도 보이지 않고, 오직 세상에서의 성공을 바라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과 주인 됨을 부정하고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하다가 죽임을 당했고,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백성들이 그렇게 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0-11절에서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 증언하십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원하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을 세상 만물의 주권자로, 자신의 모든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십시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주권자로 또는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입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둘째는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셋째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주어지는 모든 환경과 일들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즉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하며 만족하는 것입니다. 더 상세하게 표현한다면, 지금 주어진 가족들 - 아내와 남편, 자녀들 - 이 하나님이 이루신 것임을 믿고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합력하는 것입니다. 직장이나 사업장이나 학교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리임을 믿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비록 가난하고 어렵게 살지만 이 자리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길임을 믿고 감사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옛 우리 격언에 “애꾸 된 것을 서러워하지 말고, 장님 되지 않은 것을 감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과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좋은 표현입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서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십니다. 혹시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마음속으로 “감사할 수가 없어” “나는 지금 이 현실이 결코 만족스럽지 않아” “나의 이 환경과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라고 항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이런 마음이 든다면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허락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과 주어지는 환경이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믿고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로서 다시 한 번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이 세상에서 행복과 기쁨과 형통함을,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원하신다면, 자신의 생각과 뜻으로 된 자신의 기준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그 자리에 하나님을 주권자로, 자신의 모든 삶의 주인으로 모십시오. 일하고, 섬기고, 봉사하고, 사랑하고, 베풀고,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일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만족하면서 감사함으로 순종합시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지만, 자라게 하시며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오직 주권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즉 일이 진행되고 성취되어 결과를 내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성실하게 맡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될 때에 반드시 열매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일의 결과는 내가 만들고 이루려고 하니까 짜증이 나고 불평과 원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머리털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하지 못함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주인이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면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삶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장된 미래와 희망을 위하여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여 이제는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삶의 주권자로 주인으로 인정하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