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의 행복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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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8-25 16:56
*** 하나님의 자녀의 행복 / 요한계시록 21:1-8
** 들어가는 말
요한계시록 21:1-8,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예전에는 “나라가 왜 이 모양이냐!”라고 탄식하면서 “서민들은 죽도록 일해도 빠듯한데, 정치인들은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는다.”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즈음은 웬만한 일을 만나도 사람들이 별 반응이 없습니다. 살기 좋아져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런 일에 면역이 되어서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감각이 무뎌진 것은 세상의 부정부패나 악한 일에 대해서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영성마저 무뎌진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무엇엔가 정신없도록 바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히 연구하고 제자의 삶을 배우고 하나님에 대하여 말은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거나 대화에 집중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신앙은 무신론자나 우상숭배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다급하게 되면 하나님을 찾지만 ‘열 처녀의 비유’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때는 이미 늦어버리게 됩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이 미련하고 교만스럽게 산 결과입니다.
1700년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판을 칠 때,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이자 사상가인 ‘볼테르(Voltaire(필명), François Marie Arouet, 1694년 11월 21일~1778년 5월 30일)’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극인 ‘오이디푸스’를 쓰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볼테르는 가톨릭의 ‘예수회’ 학교를 나왔으면서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인쇄소까지 마련하고 기독교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책을 찍어냈습니다. 그는,
“앞으로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 자들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계몽주의가 판을 칠 때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좋아했고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기고만장한 볼테르는 매일 파리의 큰길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볼테르도 늙고 병들었습니다. 어느 날 회진하러 온 의사를 붙들고 사정을 했습니다.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준다면 내 전 재산을 다 드리겠소.”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흔들면서 “나는 6개월이 아니라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
그리고 볼테르가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던 10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수는 오히려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비방하던 책을 찍던 그의 인쇄소는 성경을 찍어내는 인쇄소가 되었고, 그의 집은 성경을 보관하는 창고가 됐습니다.
이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의 어리석음이며 교만입니다. 사람들은 볼테르처럼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가 없는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갓 육신의 보잘것없는 생명과 힘을 의지하고서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비방하고 훼방합니다. 혹은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만 그 세계를 위하여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하여 쌓고, 즐기고, 쾌락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육신의 쾌락은 그 끝이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결별된 영의 죽음이며, 그 영원의 시간을 지옥의 혹독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하게 살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인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과 그 나라에서의 삶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제한도 말씀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란 지금의 세상이 없어지고 새롭게 조성된 세계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천국’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세계입니다.
본문의 표현대로 본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이며, 눈물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일도 없고, 아픈 것도 없는 행복의 나라입니다. 그 곳에 우리 주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영원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이며, 우리에게 약속된 나라입니다(본문 2절). 하지만 아무나 그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본문 8절에서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훙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살 때에 반드시 해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잊지 않고 지켜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나타내는 신분표시입니다. 이 번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그 일이 그 나라의 국민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외국 근로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으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국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입니다. 이 신분증은 예수님을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신 주인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모든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면 그 증명으로 성령님께서 그 사람의 영에 임재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비록 육신이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서 살게 되겠지만 진정한 소속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 말씀이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분을 얻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때까지 그 신분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일 할 때에도 어떤 것을 얻기 보다는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예를 들면,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일등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일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는 것, 자는 것, 하고 싶은 일을 절제하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 고객을 유치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고객으로 남게 하기 위해서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객의 마음에 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고객서비스를 경쟁적으로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하나님 자녀의 행복도 주어집니다. 한 예로 전도서 2:26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 자녀로서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몇 가지를 잊지 않고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모든 일에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십시오. “이 일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 “이 행동이 하나님 자녀로서 행하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부끄럽지 않게 행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마음의 생각과 말과 모든 행동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영적인 지우개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삶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도록 깨끗하게 지우는 것입니다. 이사야 43:25절에서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며, 골로새서 2:13-14절에서는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매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도무지 몸을 씻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회개는 지난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가 지금의 세상이 변해서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롭게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임을 말씀합니다. 전혀 새로운 이 나라는 새로운 사람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마태복음 9:16-17절을 봅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생베조각이나 새 포도주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삶을 의미하며,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부대는 지나간 옛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위해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은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새로워져야 합니다. 육신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옛 사고방식과 생활로는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시며, 에베소서 4:22-24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고 하십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교수인 ‘제럴드 캘러한’ 교수가 쓴 ‘오딧세이 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캘러한 교수가 인생에 대한 그의 체험과 생각을 담은 책인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 그리고 나의 식생활은 마치 심장마비나 대장암은 중년남자의 죽음과 상관이 없다는 듯이 먹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는 변화를 갈망하는 작가의 심경고백입니다. 생활의 변화를 갈망하지만 여전히 옛 습관에 묻혀 살아가는 약한 인생에 대한 탄식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다시 옛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변화란 이렇게 어렵습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 전체를 변혁시키는 것이나 혹은 어떤 습관들을 버리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살아가면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가야 영원한 생명의 보장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내가 소망하는 나라를 생각하고, 나 자신의 신분을 생각합시다.
‘부활’이라는 글을 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는 자신이 어떻게 악에서 선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이처럼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영의 삶에서부터 육신의 삶으로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를 제외하고는 결코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일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되었지만, 그가 그리스도의 진정한 일군이 되기까지는 14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오직 꾸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이 지금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지금 이 땅의 고통 많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 아름답고 신비롭고 행복한 나라를 얻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계시록 22:7절을 봅시다. 주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행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이 땅에서도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보장 받고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한계시록 21:1-8,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예전에는 “나라가 왜 이 모양이냐!”라고 탄식하면서 “서민들은 죽도록 일해도 빠듯한데, 정치인들은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는다.”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즈음은 웬만한 일을 만나도 사람들이 별 반응이 없습니다. 살기 좋아져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런 일에 면역이 되어서 감각이 무뎌졌기 때문입니다. 감각이 무뎌진 것은 세상의 부정부패나 악한 일에 대해서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영성마저 무뎌진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무엇엔가 정신없도록 바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열심히 연구하고 제자의 삶을 배우고 하나님에 대하여 말은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이거나 대화에 집중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신앙은 무신론자나 우상숭배자와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다급하게 되면 하나님을 찾지만 ‘열 처녀의 비유’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때는 이미 늦어버리게 됩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이 미련하고 교만스럽게 산 결과입니다.
1700년대 계몽주의와 합리주의가 판을 칠 때,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이자 사상가인 ‘볼테르(Voltaire(필명), François Marie Arouet, 1694년 11월 21일~1778년 5월 30일)’가 있었습니다. 그는 비극인 ‘오이디푸스’를 쓰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볼테르는 가톨릭의 ‘예수회’ 학교를 나왔으면서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인쇄소까지 마련하고 기독교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책을 찍어냈습니다. 그는,
“앞으로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 자들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계몽주의가 판을 칠 때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좋아했고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기고만장한 볼테르는 매일 파리의 큰길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볼테르도 늙고 병들었습니다. 어느 날 회진하러 온 의사를 붙들고 사정을 했습니다.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준다면 내 전 재산을 다 드리겠소.”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흔들면서 “나는 6개월이 아니라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
그리고 볼테르가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던 10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수는 오히려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비방하던 책을 찍던 그의 인쇄소는 성경을 찍어내는 인쇄소가 되었고, 그의 집은 성경을 보관하는 창고가 됐습니다.
이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의 어리석음이며 교만입니다. 사람들은 볼테르처럼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가 없는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갓 육신의 보잘것없는 생명과 힘을 의지하고서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비방하고 훼방합니다. 혹은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만 그 세계를 위하여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하여 쌓고, 즐기고, 쾌락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육신의 쾌락은 그 끝이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결별된 영의 죽음이며, 그 영원의 시간을 지옥의 혹독한 고통 속에서 괴로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함을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하게 살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인 본문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과 그 나라에서의 삶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제한도 말씀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란 지금의 세상이 없어지고 새롭게 조성된 세계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천국’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세계입니다.
본문의 표현대로 본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이며, 눈물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일도 없고, 아픈 것도 없는 행복의 나라입니다. 그 곳에 우리 주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셔서 영원을 누리는 나라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이며, 우리에게 약속된 나라입니다(본문 2절). 하지만 아무나 그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본문 8절에서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훙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육신으로 살 때에 반드시 해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잊지 않고 지켜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나타내는 신분표시입니다. 이 번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그 일이 그 나라의 국민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외국 근로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으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국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입니다. 이 신분증은 예수님을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신 주인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모든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면 그 증명으로 성령님께서 그 사람의 영에 임재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 비록 육신이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서 살게 되겠지만 진정한 소속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 말씀이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분을 얻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할 때까지 그 신분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일 할 때에도 어떤 것을 얻기 보다는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예를 들면,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일등을 하는 것도 힘들지만, 일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는 것, 자는 것, 하고 싶은 일을 절제하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 고객을 유치했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고객으로 남게 하기 위해서 고객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객의 마음에 들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고객서비스를 경쟁적으로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에 하나님 자녀의 행복도 주어집니다. 한 예로 전도서 2:26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만일 하나님 자녀로서의 행복을 누리고 싶다면 몇 가지를 잊지 않고 실천해야 합니다. 먼저 모든 일에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십시오. “이 일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 “이 행동이 하나님 자녀로서 행하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부끄럽지 않게 행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마음의 생각과 말과 모든 행동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영적인 지우개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삶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지 않도록 깨끗하게 지우는 것입니다. 이사야 43:25절에서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시며, 골로새서 2:13-14절에서는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매일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도무지 몸을 씻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회개는 지난 삶을 버리고 새 삶을 이루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서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가 지금의 세상이 변해서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롭게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임을 말씀합니다. 전혀 새로운 이 나라는 새로운 사람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마태복음 9:16-17절을 봅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생베조각이나 새 포도주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삶을 의미하며,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부대는 지나간 옛 삶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위해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은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새로워져야 합니다. 육신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옛 사고방식과 생활로는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시며, 에베소서 4:22-24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고 하십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교수인 ‘제럴드 캘러한’ 교수가 쓴 ‘오딧세이 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캘러한 교수가 인생에 대한 그의 체험과 생각을 담은 책인데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 그리고 나의 식생활은 마치 심장마비나 대장암은 중년남자의 죽음과 상관이 없다는 듯이 먹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는 변화를 갈망하는 작가의 심경고백입니다. 생활의 변화를 갈망하지만 여전히 옛 습관에 묻혀 살아가는 약한 인생에 대한 탄식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민을 합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다시 옛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변화란 이렇게 어렵습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 전체를 변혁시키는 것이나 혹은 어떤 습관들을 버리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대로 살아가면 하나님 자녀의 신분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가야 영원한 생명의 보장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내가 소망하는 나라를 생각하고, 나 자신의 신분을 생각합시다.
‘부활’이라는 글을 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는 자신이 어떻게 악에서 선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이처럼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영의 삶에서부터 육신의 삶으로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를 제외하고는 결코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일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되었지만, 그가 그리스도의 진정한 일군이 되기까지는 14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오직 꾸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이 지금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지금 이 땅의 고통 많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 아름답고 신비롭고 행복한 나라를 얻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계시록 22:7절을 봅시다. 주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행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을 이 땅에서도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보장 받고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