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인내로 얻은 열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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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08-05 13:24
*** 믿음의 인내로 얻은 열매 / 창세기 45:3-8
** 들어가는 말
창세기 45:3-8,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즈음 많이 덥고 짜증스럽기도 하지요?
옛날 어느 겨울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집사님의 오래된 간증이야기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에 연탄을 갈아 넣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결에 너무 추워서 ‘연탄불이 꺼졌나?’ 하고는 바깥의 연탄아궁이고 갔습니다. 그런데 화덕에는 연탄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연탄불을 빼간 것입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 세든 사람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증거도 없고, 예수 믿는 사람이 싸울 수도 없어서 참았습니다. 셋째 날 저녁에는 잠을 자는 척하고 지켜보니 건넌방 부인이 연탄을 빼가는 것이었습니다. 뛰어나가 잡을까 했으나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간신히 참았습니다. 이런 일이 두 주일간이나 계속된 날, 건넌방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연탄을 가져간 줄 알고 계셨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여 점쟁이한테 물었더니 ‘누구와 실컷 싸우면 액운이 물러가고 행운이 온다.’고 하여 싸움을 하려고 연탄을 가져갔는데도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집사님은 그 부인에게 점쟁이의 잘못됨을 깨우쳐 주고 전도하여 그 가정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는 누가복음 21:9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마지막 때에 되어 질 일들을 가르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도 합니다. ‘고생이 다하면 기쁨이 온다.’는 의미입니다. 고진감래에는 인내가 들어있습니다. 고난과 고생의 날들을 참으면서 기다리면 기쁨의 날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짜증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며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이루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8:15절에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10:36절에서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인내는 예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본을 보이신 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하여 ‘믿음의 인내로 얻은 열매’를 살펴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의 배경 이야기와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내용은 속이 다 시원하게 뚫리는 통쾌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인내의 결과로 주어진 기쁨의 날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로 따지면 좋은 편이 악당들에게 온갖 위기와 고통을 당하다가 죽음 직전에 탈출하여 적군을 무찌르는 통쾌한 클라이맥스 부분이 될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 때문에 형들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특히 꿈 이야기로 형들의 노여움을 쌌습니다. 결국 형들에 의하여 17세에 미디안의 노예상인에게 팔렸습니다. 미디안의 상인은 애굽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았고, 13년 동안 노예와 억울한 죄수의 몸으로 살았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분하고 원통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형제들에 의하여 팔렸으니 기가 막힌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 같으면 와신상담(臥薪嘗膽/섶 위에 잠을 자고 쓸개를 핥는다. /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하여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하면서 복수를 다짐할 법도 한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13년을 한 결 같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믿고 의지하면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노예 생활에서도, 죄수 생활에서도 요셉은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함으로서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일에 대하여 성경은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 39:23)고 증언합니다. 이처럼 요셉의 성실한 삶에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애굽의 제2인자인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 온지 13년 만에 노예에서 나라의 제 2인자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강대국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 앞에 21년 전 ‘살려 달라.’고 애걸하던 자신을 매정하게 팔았던 형제들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중동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식량이 없어진 이웃나라에서까지 애굽으로 식량을 사러 왔던 것입니다.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 후의 행적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형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이해한 요셉이 본문 5절 이하에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형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현재의 자신의 삶을 후회하거나 다른 누구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자신이 다른 환경이나 다른 가정을 이루었더라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 하나님은 역사와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환경과 상황을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의미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서 3:1절에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일이 다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아하, 일이 이렇게 된 것이구나.’라고 의미를 깨달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 할지라도 그 일의 의미나 목적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팔리는 것이나, 노예가 된 것이나,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것 등. 어떤 것에서도 애굽의 총리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자신에게 보이신 꿈을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갔을 뿐입니다. 즉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확실히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그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게 한 것입니다.
‘피난처’라는 책을 지은 네델란드의 부흥사이자 전도자인 코리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이유는 유대인을 보호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라벤스브룩 수용소의 여자 샤워 실을 감시하는 간수로부터 잔인할 정도로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의 언니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이 겪은 체험들을 책으로 출판하고, 온 세계에 직접 다니면서 신앙을 간증했습니다. 어느 해, 독일의 ‘뮤니히 교회’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 후 강단에서 내려오는 자신을 찾아와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자신을 그토록 잔인하게 학대했던 라벤스브룩 수용소의 간수였습니다. 이 사람이 손을 내밀면서 “오늘 당신의 신앙 간증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 나는 온 유럽을 다 뒤지며 당신을 찾아왔었습니다. 나는 이제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코리, 나는 얼마나 큰 죄를 당신에게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나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용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사는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결코 그 사람을 용서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그가 나에게 악랄하게 대했는데, 그렇게 쉽게 용서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가 지은 죄의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나보고 용서해달라고?’여사는 그를 용서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죄의 대가를 충분히 받은 다음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용서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 사람은 코리텐 붐의 팔을 잡고 애원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수용소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났습니다. 자신을 향하여 욕설을 퍼부으며 되는대로 발로차고 때리고 쓰러뜨리고 하던 장면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녀의 감정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아니다. 결코 용서할 수 없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했을지는 몰라도 나는 결코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성인군자는 아니지. 나는 네가 저지른 대가를 치루는 것을 분명하게 이 두 눈으로 보기를 원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한 번 그 사람은 그녀에게 간청했습니다.
“코리. 부디 나를 용서해주시오.”그녀는 그에게 눈길을 줄 수 없어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는 순간 갑자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외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코리텐 붐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서 그 사람을 용서해주었다고 합니다.
용서란 이처럼 힘든 것입니다. 21년 만에 요셉 앞에 나타난 형들을 보았을 때, 요셉에게 코리텐 붐 여사와 같은 마음이 전혀 없었겠습니까? 분명히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문 2절에서 형들을 만난 요셉이 자신을 알린 후에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방성대곡했습니다. 주변에 모두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밝히면서 안심을 시켰습니다. 이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요셉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형들이 과거의 일들을 생각나게 할 때마다 눈물을 보인 요셉의 마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의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되살아나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을 것입니다. 요셉의 눈물은 고난의 아픔들이 형들을 향하는 연민과 용서와 이해로 승화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의 환경을 하나님의 섭리로 승화시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같은 입장에 처한다면 그 고난의 환경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환경과 모든 일에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요셉의 역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즉 요셉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최악의 환경과 상황까지도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역사임을 믿고 의지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에는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사람의 뜻대로 경영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의 목적대로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섭리는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잠언 16:9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셨으며, 시편 37:2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16: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결과는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7:16-18절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반드시 결과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아름다운 열매는 그 만큼 많은 수고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 자신을 원망하는 사람,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 자신의 뜻만을 주장하면서 대적하는 사람 등. 이들조차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믿고 의지하고 인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요셉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요셉은 13년의 억울하게 당한 그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도 그의 성품은 하나님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에서 맺히는 열매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잊지 않았으며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믿음과 인내의 삶에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순종한 결과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의 성취였습니다. 그 계획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첫 단계로 기근과 요셉을 통하여 야곱의 가족 75명을 애굽에 정착시키셨습니다. 이제 400년이라는 세월을 애굽에 머물게 하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섭리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 웅장하고 위대한 섭리의 역사 한 가운데 우리 대복교회도 있고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 자신의 모든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인내하면서 그 뜻에 즐겁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 가운데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셉이 인생의 앞길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성실한 삶을 살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주어진 환경과 모든 일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면 반드시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불평이나 원망하지 말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면서 나아가셔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창세기 45:3-8,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자로 삼으셨나이다.”
요즈음 많이 덥고 짜증스럽기도 하지요?
옛날 어느 겨울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집사님의 오래된 간증이야기입니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에 연탄을 갈아 넣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결에 너무 추워서 ‘연탄불이 꺼졌나?’ 하고는 바깥의 연탄아궁이고 갔습니다. 그런데 화덕에는 연탄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연탄불을 빼간 것입니다. 그 다음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분명 세든 사람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증거도 없고, 예수 믿는 사람이 싸울 수도 없어서 참았습니다. 셋째 날 저녁에는 잠을 자는 척하고 지켜보니 건넌방 부인이 연탄을 빼가는 것이었습니다. 뛰어나가 잡을까 했으나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간신히 참았습니다. 이런 일이 두 주일간이나 계속된 날, 건넌방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연탄을 가져간 줄 알고 계셨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은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여 점쟁이한테 물었더니 ‘누구와 실컷 싸우면 액운이 물러가고 행운이 온다.’고 하여 싸움을 하려고 연탄을 가져갔는데도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집사님은 그 부인에게 점쟁이의 잘못됨을 깨우쳐 주고 전도하여 그 가정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는 누가복음 21:9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마지막 때에 되어 질 일들을 가르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도 합니다. ‘고생이 다하면 기쁨이 온다.’는 의미입니다. 고진감래에는 인내가 들어있습니다. 고난과 고생의 날들을 참으면서 기다리면 기쁨의 날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짜증스럽더라도 참고 견디며 기다려야 합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이루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8:15절에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하시며, 히브리서 10:36절에서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인내는 예수님께서 앞서 가시면서 본을 보이신 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성품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하여 ‘믿음의 인내로 얻은 열매’를 살펴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의 배경 이야기와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내용은 속이 다 시원하게 뚫리는 통쾌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인내의 결과로 주어진 기쁨의 날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로 따지면 좋은 편이 악당들에게 온갖 위기와 고통을 당하다가 죽음 직전에 탈출하여 적군을 무찌르는 통쾌한 클라이맥스 부분이 될 것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특별한 사랑 때문에 형들의 시기를 받았습니다. 특히 꿈 이야기로 형들의 노여움을 쌌습니다. 결국 형들에 의하여 17세에 미디안의 노예상인에게 팔렸습니다. 미디안의 상인은 애굽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에게 팔았고, 13년 동안 노예와 억울한 죄수의 몸으로 살았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분하고 원통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형제들에 의하여 팔렸으니 기가 막힌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 같으면 와신상담(臥薪嘗膽/섶 위에 잠을 자고 쓸개를 핥는다. /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하여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하면서 복수를 다짐할 법도 한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13년을 한 결 같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믿고 의지하면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노예 생활에서도, 죄수 생활에서도 요셉은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함으로서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일에 대하여 성경은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 39:23)고 증언합니다. 이처럼 요셉의 성실한 삶에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애굽의 제2인자인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 온지 13년 만에 노예에서 나라의 제 2인자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강대국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 앞에 21년 전 ‘살려 달라.’고 애걸하던 자신을 매정하게 팔았던 형제들이 나타났습니다. 당시 중동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식량이 없어진 이웃나라에서까지 애굽으로 식량을 사러 왔던 것입니다.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 후의 행적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형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그러한 상황을 이해한 요셉이 본문 5절 이하에서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고 형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현재의 자신의 삶을 후회하거나 다른 누구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시 자신이 다른 환경이나 다른 가정을 이루었더라면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오.
※ 하나님은 역사와 모든 것의 주인이시며 주권자이십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환경과 상황을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의미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서 3:1절에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일이 다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아하, 일이 이렇게 된 것이구나.’라고 의미를 깨달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 할지라도 그 일의 의미나 목적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팔리는 것이나, 노예가 된 것이나,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것 등. 어떤 것에서도 애굽의 총리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자신에게 보이신 꿈을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갔을 뿐입니다. 즉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확실히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그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게 한 것입니다.
‘피난처’라는 책을 지은 네델란드의 부흥사이자 전도자인 코리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이유는 유대인을 보호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라벤스브룩 수용소의 여자 샤워 실을 감시하는 간수로부터 잔인할 정도로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의 언니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이 겪은 체험들을 책으로 출판하고, 온 세계에 직접 다니면서 신앙을 간증했습니다. 어느 해, 독일의 ‘뮤니히 교회’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 후 강단에서 내려오는 자신을 찾아와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자신을 그토록 잔인하게 학대했던 라벤스브룩 수용소의 간수였습니다. 이 사람이 손을 내밀면서 “오늘 당신의 신앙 간증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 나는 온 유럽을 다 뒤지며 당신을 찾아왔었습니다. 나는 이제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코리, 나는 얼마나 큰 죄를 당신에게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나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용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사는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결코 그 사람을 용서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그가 나에게 악랄하게 대했는데, 그렇게 쉽게 용서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가 지은 죄의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나보고 용서해달라고?’여사는 그를 용서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죄의 대가를 충분히 받은 다음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용서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 사람은 코리텐 붐의 팔을 잡고 애원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수용소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났습니다. 자신을 향하여 욕설을 퍼부으며 되는대로 발로차고 때리고 쓰러뜨리고 하던 장면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녀의 감정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아니다. 결코 용서할 수 없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했을지는 몰라도 나는 결코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성인군자는 아니지. 나는 네가 저지른 대가를 치루는 것을 분명하게 이 두 눈으로 보기를 원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한 번 그 사람은 그녀에게 간청했습니다.
“코리. 부디 나를 용서해주시오.”그녀는 그에게 눈길을 줄 수 없어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는 순간 갑자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외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코리텐 붐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서 그 사람을 용서해주었다고 합니다.
용서란 이처럼 힘든 것입니다. 21년 만에 요셉 앞에 나타난 형들을 보았을 때, 요셉에게 코리텐 붐 여사와 같은 마음이 전혀 없었겠습니까? 분명히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문 2절에서 형들을 만난 요셉이 자신을 알린 후에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방성대곡했습니다. 주변에 모두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밝히면서 안심을 시켰습니다. 이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여기에서 요셉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형들이 과거의 일들을 생각나게 할 때마다 눈물을 보인 요셉의 마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의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되살아나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을 것입니다. 요셉의 눈물은 고난의 아픔들이 형들을 향하는 연민과 용서와 이해로 승화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의 환경을 하나님의 섭리로 승화시켰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같은 입장에 처한다면 그 고난의 환경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환경과 모든 일에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요셉의 역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즉 요셉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최악의 환경과 상황까지도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역사임을 믿고 의지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에는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사람의 뜻대로 경영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의 목적대로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섭리는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잠언 16:9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셨으며, 시편 37:2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16: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결과는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7:16-18절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반드시 결과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아름다운 열매는 그 만큼 많은 수고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 자신을 원망하는 사람,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 자신의 뜻만을 주장하면서 대적하는 사람 등. 이들조차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믿고 의지하고 인내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요셉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요셉은 13년의 억울하게 당한 그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도 그의 성품은 하나님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에서 맺히는 열매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잊지 않았으며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믿음과 인내의 삶에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순종한 결과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의 성취였습니다. 그 계획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첫 단계로 기근과 요셉을 통하여 야곱의 가족 75명을 애굽에 정착시키셨습니다. 이제 400년이라는 세월을 애굽에 머물게 하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섭리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 웅장하고 위대한 섭리의 역사 한 가운데 우리 대복교회도 있고 여러분의 가정과 여러분 자신의 모든 삶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인내하면서 그 뜻에 즐겁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 가운데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셉이 인생의 앞길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성실한 삶을 살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주어진 환경과 모든 일에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면 반드시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불평이나 원망하지 말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인내하면서 나아가셔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