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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과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작성자 늘푸른 댓글 / 조회: 1,058회 작성일 2024-06-02 21:16

*** 판단과 선택의 기로(岐路)에서 / 고린도전서 3:18-4:5

 

고린도전서 3:18-4:5, “18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20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21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들어가는 말

 

말을 키우는 할아버지와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시내에 큰 볼일이 있어 며칠 동안 가시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말과 초원을 뒹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할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날 밤에 말이 고열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말의 열을 내리려고 밤새도록 물을 먹이며 닦으며 간호했지만, 말은 싸늘하게 죽어갔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오시자 소년은 통곡하며 소리쳤습니다. “할아버지, 전 최선을 다했어요. 최선을 다해 말을 사랑했다구요!” “얘야, 말은 열이 날 때 절대로 물을 먹여서는 안 된단다. 넌 네 방식대로 사랑한거야. 말을 사랑하려면 네 방식이 아닌 말의 방식이어야 하는 거란다.”

 

이 이야기에서처럼,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일에는 각각에 합당한 적절한 방식이 있습니다. 특히 사람에게는 각자가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나, 생활하는 삶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에 일률적이거나, 내가 선호하는 방식으로는 소통이나 문제 해결이 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삶의 순간마다 판단하거나 선택해야 하는 기로(岐路)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럴 때, 판단이나 선택의 기준을 어디에 둡니까? 많은 사람은 자기의 경험이나, 알고 있는 지식을 기준으로 삼을 것입니다. 이에 관하여 오늘 말씀에서는 ‘세상의 경험이나 지식과 지혜는 헛된 것이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라.’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해야 할 이유를 ‘세상 만물이 모두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며’ ‘모든 일을 심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에서 올바른 판단과 선택의 기준을 찾아봅시다.

 

※ 본문 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봅시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 여행 때, 일 년 육 개월을 고린도 시에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이 떠난 후, 아볼로가 이곳에 전도하러 왔으며, 또 유대교 일부가 들어와서 교회에는 여러 가지 분파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 중 가장 큰 규모였지만, 바울은 여러 가지 문제들로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의 세 번째 전도 여행 때, 2년 동안 에베소에 머무는 동안에 보냈습니다. 고린도전서의 특징은 구체적인 생활의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점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본문 말씀에서는 사람을 내세워 분파를 조장한 일에 대한 해결점을 말씀합니다. 본문 21-23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특히 교회에서는 판단과 선택의 기준이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고린도전서는 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점을 제시합니다. 이와 동시에 영원한 진리를 가르칩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이는 매일 우리가 겪는 판단과 선택이 영원한 생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부분임을 나타냅니다.

 

※ 판단과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은 일평생 크고 작은 많은 후회를 남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애의 마지막 결산 때에 후회를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후회할 일이 있었더라도 만회하고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후회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일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말미암는 잘못된 선택 때문입니다. 18절 말씀처럼, 그 당시에는 그것이 지혜롭고 옳은 것 같았고, 좋은 것 같아서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선택에 관하여 자랑하며, 자기 능력, 명예, 권위를 드러냅니다. 고린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나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 진리가 아니라 사람을 따라 판단하고 선택한 것입니다. 이것이 왜 잘못된 것입니까? 첫째는 사람의 생명과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소유된 것이기 때문이며, 둘째는 판단과 선택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12:14절에서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라고 하시며, 고린도후서 5:10절에서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지 판단과 선택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잘못하고 죄를 범하여 후회한다면, 철저하게 회개하여 회복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에게 잘못하여 후회한다면, 이해와 용서를 구하고 화목을 이루어 회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일에 관한 후회뿐만 아니라, 영적인 후회를 남기는 것은 영의 생명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5:23-2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리고 누가복음 13:1-5절에서는 예수께서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 총독에게 살해당한 사건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열여덟 사람의 예를 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리고 요한계시록 2:5절에서는 에베소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말씀들은 잘못 판단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성경에는 판단과 선택을 잘못한 사람들의 예를 많이 보여줍니다. 그 가운데서 구약과 신약 각 한 사람씩만 표본으로 보겠습니다. 구약에서는 단연 야곱의 형인 ‘에서’를 들 수 있습니다. 에서는 장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를 과소평가했습니다.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여 장자의 모든 혜택을 동생 야곱에게 죽 한 그릇과 바꾸어버렸습니다. 히브리서 12:16-17절에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에서는 한 번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장자로써 누릴 수 있는 모든 권한과 혜택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약에서는 ‘가롯 유다’를 들 수 있습니다. 가룟 사람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누릴 수 있는 비할 바 없는 영광의 자리를 은 삼십에 팔아버렸습니다. 마태복음 26:14-15절입니다.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 정말 안타깝게도 열두 제자를 위해 예비 된 은혜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9:27-28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이처럼, 우리가 매일 당면하는 판단의 일과 선택의 기회를 잘못 사용하면, 에서나 유다처럼, 영원토록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되기도 합니다.

 

※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말씀이 올바른 판단과 선택을 위한 길을 제시합니다. 본문 말씀을 요약하면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지혜롭게 자기 일에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하라.’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하시며, 5절에서는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라고 하십니다. 즉 이 사람, 저 사람 간섭하거나 비교하지 말고,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려면, 무엇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은 신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그 존재감이 엄청나게 존귀합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서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하시며, 고린도전서 6:19-20절에서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신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고귀한 생각과 품위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고귀한 생각과 품위로 사는 것입니까?

 

몇 해 전에, 두메산골 교회에서 착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가난한 집 여자아이가 자기 장래에 대하여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서울 가서 신앙 좋은 가정에서 식모살이라도 하면서 야간학교라도 다닐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바로 그 무렵, 서울에 있는 강 권사는 식모 문제로 속을 썩이다 썩이다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잘 믿는 착한 시골 처녀 하나 보내 주시면 딸처럼 사랑해 주겠습니다.”

어느 날, 강 권사는 ‘혹시 좋은 아이 하나 만날 수 있을까?’ 하여 막연한 기대감으로 서울역 대기실로 갔습니다.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다가 의자에 앉아 무릎 위 성경책을 두 손으로 붙잡고 기도하는 여자아이를 발견했습니다. 권사님이 다가가서 “혹시 직장을 구하지 않느냐?”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소녀는 강 권사님 댁에서 야간 성경학교를 다니며 가족처럼 살다가, 신앙 좋은 총각 집사와 결혼하여 성실한 교회봉사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짝을 찾아 주려고 신실한 종인 엘리에셀에게 부탁하여 고향인 하란으로 보냈습니다. 엘리에셀은 나홀의 성에 도착하여 마을 입구의 우물가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를 만나게 해 주셨습니다. 엘리에셀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생활 속에 배어 있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신앙의 모습들입니다. 즉 두메산골의 소녀나, 강 권사님이나,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 등. 이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았고, 생활 속에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기고 따랐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충성된 사람의 삶입니다. 즉, 자기 안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인도하심을 믿으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이솝 우화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솝 우화에 ‘팔려가는 나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사꾼이 그의 아들과 함께 장에 나귀를 팔러 가는 도중에, 소신 없이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다가 낭패를 당하는 내용입니다.

처음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나귀를 끌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귀를 두고도 걸어가는 바보들’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 말이 일리가 있어서 아들을 태웠습니다. 잠시 후에는 ‘젊은 놈이 늙은이를 섬길 줄 모른다.’라고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서 이번에는 아버지가 타고 아들이 나귀를 몰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들을 걷게 하고 아버지가 타고 간다고 ‘지독한 늙은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서 이번에는 자신의 뒤에 아들을 태웠습니다. 읍내 입구에서 사람들은 작은 나귀에 두 사람이나 타고 간다고 ‘나귀를 참혹하게 부리는 사람이라며, 차라리 나귀를 메고 가라.’고 충고했습니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은 나귀 다리를 묶어서 장대를 끼워 메고 갔습니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지날 때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그 소리에 나귀가 놀라서 발버둥을 치다가 장대가 끊어지면서 그만 나귀가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나귀를 잃은 후, 장사꾼은 이렇게 말하며 원통해 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하다가 한 사람의 마음에도 들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귀중한 나귀마저 잃고 말았구나!”

 

이 우화 속의 장사꾼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어서 은연중에 마음을 쓰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의 소중한 삶을 남의 판단에 맞추어 선택하면, 모두를 잃는 어리석은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혼탁한 시대를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신실한 믿음과 오직 하나님의 뜻에 깨어 올바른 판단과 선택으로 충성된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라나-타(μαράνα-θ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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