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시작하십시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180회
작성일
2011-01-06 14:35
*** 이렇게 시작하십시오 / 마태복음 10:16-23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10:16-23,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지금 우리는 한 해의 끝과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후로 지금까지 시간은 결코 멈춘 적 없이 수많은 일들을 담고 흘러왔습니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시 2010년을 보내고 2011년을 맞이하려 합니다. 이 시간의 분수령(分水嶺)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지금 세상 사람들은 망년회다, 해맞이다 해서 자신들의 감정에 의존하여 흥청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특별한 자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경외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복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시편 145:20절에서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고 하시며, 나훔 1:7절에서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시며, 예레미야 17:7절에서는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무척 아끼셨습니다. 너무 바빠서 쉬거나 먹을 겨를도 없을 때에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시고 와서 쉬라고 하셨고, 풍랑이는 바다에서 힘들게 노를 저을 때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올 때는 미리 해변에 불을 피우고 떡과 구운 생선까지 준비해 두셨습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세상으로 보내시면서도 제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당부를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치 어린양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시냇가에 내 놓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직 신앙이 어린 제자들을 세상에 내 보내는 것이 안쓰러운 마음으로 신신당부하는 부모님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수님 당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주님은 이와 같이 당부하십니다. ‘이리’같은 험난한 세상에서 아무런 방어책도 없이 살아가는 ‘양’같은 성도들에게 주님은 살아갈 지혜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지혜는 ‘지혜롭고 순결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뱀’과 ‘비둘기’라는 두 동물의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십니다. 그만큼 제자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뱀’은 ‘유혹자’의 대표적인 이미지입니다. 하와를 유혹하여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하고, 남편까지 유혹하게 하여 인류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했습니다. 이 뱀의 정체를 주님은 계시록 20: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고 하시며, 계시록 12:9절에서는,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고 했습니다. “옛 뱀”이란, 하와를 유혹했던 바로 그 뱀을 말합니다. 사단과 마귀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갇힐 때까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떨어지게 하는 유혹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유혹자의 근원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44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십니다. 사단은 욕심과 살인과 불법과 거짓 등 온갖 불의한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이룹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의 지혜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단의 것인 세상의 지혜를 가지라고 하신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뱀의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뱀 같은 그런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제자들이 가져야 할 지혜로운 마음을 본문17절 이하에서 열거하십니다. 대표적으로 19-20절을 봅시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잡혀서 관리들에게 넘겨질 때를 말씀하십니다. 즉 이런 난감한 일을 당했을 때에 세상적인 잔꾀로 벗어나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때에 염려도 되고 당황되겠지만, 인간적인 잔꾀를 부리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성령께서 대답할 말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지혜가 바로 이것입니다. “삶의 실시간으로 도우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성도와 항상 함께 하시면서 성도를 돕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무작정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고 도전에 맞서라고 하지는 않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면서 때로는 부딪치지 않고 피하게도 하십니다(22-23절). 상대할 가치가 없으면 피해야 합니다. 험담이나 비난, 세상의 유혹, 이단사상 등 이런 것에는 맞서지 말고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이런 일을 상대하면 쓸데없는 논쟁이 일어날 뿐입니다. 디모데전서 6:20절에서는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고 하셨고, 디도서 3:9절에서는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사려 깊고 신중하게 따르는 것이 지혜입니다. 2011년에는 이런 지혜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이어서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비둘기는 온유한 성품과 순결과 순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 ‘순결함’이란, 원어에서는 ‘섞이지 않는’, ‘순진한’, ‘죄 없는’, ‘단순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불의 와 섞이지 않는 것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며, 세상의 더러움과 섞이지 않는 것은 ‘순수한 성품’입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잔꾀를 부리지 않고 단순하게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를 믿어도 요령껏 믿어야지 죽자 사자 믿느냐.’라고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서도 ‘교회의 일이나, 섬김의 일이나, 봉사 하는 일을 적당히 하라.’고 합니다. 요령이나 적당한 것이나 좋은 의미로 사용되면 ‘최선을 다하면서도 한계를 넘지 않는 지혜로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는 ‘자신의 유익과 남의 시선을 고려하여 눈치껏’이라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상태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형태입니다.
아합 왕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적당하게 처신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요령 있는 처신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열왕기상 18:21절에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소아시아 교회 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도 역시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적당하고 요령껏 처신하고 있었습니다. 핍박도 피하고 생계도 유지할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 3:15-16절에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만일 자신이나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든지, 생명이 걸린 문제라면 적당하고 요령껏 하겠습니까? 아마도 죽어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는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의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과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매일 매 순간을 이러한 마음으로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성공과 승리로 향하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2011년의 기회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려 깊고 신중하게,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힘과 능력이시며 위로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지혜로 승리와 행복의 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10:16-23,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21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3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지금 우리는 한 해의 끝과 시작점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이후로 지금까지 시간은 결코 멈춘 적 없이 수많은 일들을 담고 흘러왔습니다.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시 2010년을 보내고 2011년을 맞이하려 합니다. 이 시간의 분수령(分水嶺)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지금 세상 사람들은 망년회다, 해맞이다 해서 자신들의 감정에 의존하여 흥청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특별한 자리에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경외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복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는 자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시편 145:20절에서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고 하시며, 나훔 1:7절에서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시며, 예레미야 17:7절에서는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에 사랑하는 제자들을 무척 아끼셨습니다. 너무 바빠서 쉬거나 먹을 겨를도 없을 때에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시고 와서 쉬라고 하셨고, 풍랑이는 바다에서 힘들게 노를 저을 때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돌아올 때는 미리 해변에 불을 피우고 떡과 구운 생선까지 준비해 두셨습니다. 본문에서 제자들을 전도하라고 세상으로 보내시면서도 제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특별한 당부를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마치 어린양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시냇가에 내 놓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직 신앙이 어린 제자들을 세상에 내 보내는 것이 안쓰러운 마음으로 신신당부하는 부모님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수님 당시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위험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주님은 이와 같이 당부하십니다. ‘이리’같은 험난한 세상에서 아무런 방어책도 없이 살아가는 ‘양’같은 성도들에게 주님은 살아갈 지혜를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지혜는 ‘지혜롭고 순결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뱀’과 ‘비둘기’라는 두 동물의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십니다. 그만큼 제자들이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뱀’은 ‘유혹자’의 대표적인 이미지입니다. 하와를 유혹하여 금단의 열매를 따먹게 하고, 남편까지 유혹하게 하여 인류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했습니다. 이 뱀의 정체를 주님은 계시록 20: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고 하시며, 계시록 12:9절에서는,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고 했습니다. “옛 뱀”이란, 하와를 유혹했던 바로 그 뱀을 말합니다. 사단과 마귀는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갇힐 때까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떨어지게 하는 유혹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유혹자의 근원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8:44절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고 하십니다. 사단은 욕심과 살인과 불법과 거짓 등 온갖 불의한 방법으로 자신의 뜻을 이룹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의 지혜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러한 사단의 것인 세상의 지혜를 가지라고 하신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뱀의 지혜를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뱀 같은 그런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제자들이 가져야 할 지혜로운 마음을 본문17절 이하에서 열거하십니다. 대표적으로 19-20절을 봅시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주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사람들에게 잡혀서 관리들에게 넘겨질 때를 말씀하십니다. 즉 이런 난감한 일을 당했을 때에 세상적인 잔꾀로 벗어나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때에 염려도 되고 당황되겠지만, 인간적인 잔꾀를 부리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성령께서 대답할 말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지혜가 바로 이것입니다. “삶의 실시간으로 도우시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성도와 항상 함께 하시면서 성도를 돕고 위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무작정 주님을 위하여 핍박을 받고 도전에 맞서라고 하지는 않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면서 때로는 부딪치지 않고 피하게도 하십니다(22-23절). 상대할 가치가 없으면 피해야 합니다. 험담이나 비난, 세상의 유혹, 이단사상 등 이런 것에는 맞서지 말고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이런 일을 상대하면 쓸데없는 논쟁이 일어날 뿐입니다. 디모데전서 6:20절에서는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고 하셨고, 디도서 3:9절에서는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사려 깊고 신중하게 따르는 것이 지혜입니다. 2011년에는 이런 지혜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이어서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비둘기는 온유한 성품과 순결과 순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 비둘기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셨습니다. ‘순결함’이란, 원어에서는 ‘섞이지 않는’, ‘순진한’, ‘죄 없는’, ‘단순한’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불의 와 섞이지 않는 것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것’이며, 세상의 더러움과 섞이지 않는 것은 ‘순수한 성품’입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잔꾀를 부리지 않고 단순하게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를 믿어도 요령껏 믿어야지 죽자 사자 믿느냐.’라고 합니다. 성도들 가운데서도 ‘교회의 일이나, 섬김의 일이나, 봉사 하는 일을 적당히 하라.’고 합니다. 요령이나 적당한 것이나 좋은 의미로 사용되면 ‘최선을 다하면서도 한계를 넘지 않는 지혜로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의미는 ‘자신의 유익과 남의 시선을 고려하여 눈치껏’이라는 좋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상태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형태입니다.
아합 왕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적당하게 처신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본다면 요령 있는 처신이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열왕기상 18:21절에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소아시아 교회 중에서 라오디게아 교회도 역시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적당하고 요령껏 처신하고 있었습니다. 핍박도 피하고 생계도 유지할 수 있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 3:15-16절에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만일 자신이나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든지, 생명이 걸린 문제라면 적당하고 요령껏 하겠습니까? 아마도 죽어라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는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의와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과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단순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매일 매 순간을 이러한 마음으로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것이 영원한 성공과 승리로 향하는 길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2011년의 기회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려 깊고 신중하게,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힘과 능력이시며 위로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지혜로 승리와 행복의 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