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결정기준은 무엇입니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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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0-12-13 13:09
*** 자신의 결정기준은 무엇입니까? / 열왕기상 12:1-15
** 들어가는 말
열왕기상 12:1-15, “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9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12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 왕이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두 가지로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겠습니다.
어느 양로원에 기거하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열광적인 야구팬이었는데 마침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할머니는 오후 3시에 결정적인 게임이 중계되는 것을 몹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에는 이웃 교회에서 목회자가 오셔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야구팬이기도 하지만 아주 경건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자 요양사가 “할머니 예배에 갈 거예요 아니면 야구중계 보실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누가 공을 던지느냐, 그리고 누가 설교를 하느냐에 달려있지요.”
오래 전, 어느 군 형무소에 두 사람의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전방에서 총기를 난사하다가 민간인 몇 사람을 죽였고, 또 한 사람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분노를 참지 못해서 동료를 죽였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아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총기를 난사한 사형수가 죽기 전에 고기를 실컷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돈도, 사식을 넣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결과 자기의 몸을 대학병원에 해부용으로 팔기로 하고 선금 10만 원을 받았습니다. 죽기 전에 실컷 먹고 싶었던 고기를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먹고 싶었던 고기지만 3만 원어치 이상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가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옆 친구가, “야. 그거 맛있겠구나.”하니까. “맛은 무슨 맛. 내 몸뚱이를 팔아서 먹는 고긴데” 하면서 숙연해했습니다. 결국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동료를 죽인 사형수는 자신의 총재산 15,000원이 있었습니다. 자기도 이것으로 먹을 것을 실컷 사 먹을까 궁리하다가. “마지막 남은 생명인데 무엇인가 좋은 일 한 가지는 하고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어느 교회 성가대가 위문 차 왔습니다. 함께 오신 전도사님께 “무엇인가 좋은 일에 사용해주십시오”하며 15,000원을 드렸습니다. 이 돈을 받은 전도사님은 '어떤 좋은 일에 쓸까' 궁리하다가, 마침 그 교도소에 교회당을 새로 짓고 헌당하게 된 사실을 알고 부족한 돈을 더해서 아담한 강대상을 마련했습니다. 헌당식 날 그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수에서 감형되어서 무기징역수가 되었습니다.
야구팬 할머니나 사형수들이나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따라서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의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은 이 자리에 오면서 갈등을 느낀 일은 없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매일 많은 일들을 결정하고 실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을 결정할 때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택의 기준을 적용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일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동일합니다. 로마서 2:6-8절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일을 결정할 때의 결정 기준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각과 계획? 자신의 유익과 세상의 부귀영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 시간에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결정기준을 돌아보며 지혜로운 결정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두 번째인 다윗, 세 번째인 솔로몬까지를 통일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의 말년에 그 많은 처첩들에 현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처첩들이 원하는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열 두 지파 중에서 열 지파를 갈라내어 ‘여로보암’에게 주어 북쪽 이스라엘을 형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시고 다윗 가문에는 두 지파만 남겨 주어 남 유다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 본문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죽자 그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왕을 인준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세겜’으로 모였습니다. 백성들은 왕을 인준하기에 앞서 요구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궁궐을 짓는데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세금과 노역의 무거운 짐을 지웠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들은 ‘르호보암’은 삼일의 여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르호보암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아버지인 솔로몬을 섬기던 충신들에게 ‘백성들의 요구에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음으로 르호보암은 자신이 세운 젊은 신하들에게도 자문을 구했습니다. 젊은 신하들은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삼일 후에 백성들이 다시 모이자 르호보암은 늙은 신하들의 지혜로운 자문을 버리고 젊은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 백성에게 자신의 통치 계획을 밝혔습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묵살한 것입니다. 르호보암의 정견발표를 들은 백성들은 분노하면서 르호보암을 버리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선택하여 새로운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르호보암에게는 자신의 지파인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되었습니다.
※ 사람은 자신의 결정기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본문말씀은 읽을 때마다 ‘왜 저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까?’라는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시편 49:20절에서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런 어리석은 결정으로 깊은 후회를 한 경우는 없었습니까? 다이아몬드는 물질 중에 가장 강도가 높아서 값비싼 보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의 원소가 숯과 똑같은 ‘탄소’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똑같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는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되고,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숯 덩어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시간이라는 원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것을 다이아몬드로 만드느냐 숯으로 만드느냐는 각 사람의 결정기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길거나 혹은 짧은 일생을 통하여 시간을 가꾸어서 삶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사람의 일생에는 평안하고 행복하고 형통한 길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요, 고난과 불행과 곤고한 길만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이러한 과정들이 번갈아 가면서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전도서 7:14절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깊이 생각하며 신중하게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자칫 잘 못 결정한 것이 평생을 후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이자 분열 된 왕국인 남 유다의 첫 번째 왕입니다.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의 네 번째 왕위를 계승하면서 중대한 결정의 귀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지금까지 져온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는 기회였으며, 르호보암에게는 이스라엘의 네 번째 왕이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지혜로운 늙은 신하들의 자문을 버리고 자신이 지명하여 세운 젊은 신하들의 어리석은 자문을 받아들였습니다.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뜻과 백성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강력한 권력을 결정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일생에 한 번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분열된 두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결정기준이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탈 때도 자신의 입맛이 결정기준이 되며, 부부관계나 가정의 일에도 역시 자신의 결정기준이 있고, 회사나 사업이나 공부나 모든 인생의 일에 자신만의 결정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결정한 대로 자신의 인생의 길이 형성됩니다. “네 것도 내 것, 내 것도 내 것”이라는 기준을 가진 사람은 도둑이 됩니다. 모든 일에서 자기 이익이나 자기중심이 기준이 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도 사람들에게도 인생 왕따의 불행을 예약하게 됩니다. 반면에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며 자기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이 기준이 되면 하나님께도 사람들에게도 귀하게 여김을 받는 행복을 예약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4:1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사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어떤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결정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매일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하고 실행합니다. 그 일들을 결정할 때마다 자신이 가진 결정기준에 따르게 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뜻이 자신의 결정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다른 어떤 공동체에서 자신의 뜻을 내 세울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결심이 뚜렷하여 어떤 손해나 불이익이라도 감수할 마음만 있다면 자신의 결정기준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백만장자였던 ‘스티븐 지라드’ 회장에 관한 일화입니다. 지라드 씨는 어느 토요일, 회사의 직원들에게 “선박이 방금 입항했기 때문에 내일도 출근해서 선박의 짐을 내리라.” 고 했습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지라드 회장 앞으로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장님, 저는 내일이 주일이기 때문에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와는 헤어지는 수밖에 없지!\" \"그것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비록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해야 할 입장이지만 주일은 일할 수가 없군요.\" \"그러면 경리계로 가보시오. 그 동한 일한 급료를 계산해 줄 것이오.\"
주일을 지키려다 실업자가 된 청년은 그 후 세 주일동안 발이 아프도록 시내를 다니며 일자리를 구했지만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든 어느 날, 예전의 지라드 회장에게 친구인 필라델피아의 한 은행총재가 연락을 했습니다. “새로운 은행을 하나 열어야겠는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지라드 씨는 삼 주 전에 해고했던 청년을 추천했습니다. 청년을 소개 받은 은행총재는 \"하지만 자네는 그 청년을 해고하지 않았나?\" \"물론 그랬지. 그 청년이 일요일에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해고 했네. 그러나 자기의 처한 형편에 따라서 신념과 원리를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야 새 은행의 돈을 믿고 맡길 수 있지 않겠나?\"
해고 되었던 그 청년은 지라드 회장의 친구인 은행총재가 여는 은행에 채용되었습니다. 물론 예전의 직장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이 결정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은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결정기준으로 삼는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의 도우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인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자녀도 종도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시기를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십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씀은 ‘지금의 잘못 된 결정과 행위에서 돌아서서 처음의 열심 있고 깨끗한 사랑을 다시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옛 말에도 “늦었다고 생각 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습니다. 이는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여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결정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부탁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결정하고 행동한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37:5-6절에서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고 하시며, 23-2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하십니다.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의지했더라면 결코 어리석은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예수님, 다시 오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믿음을 정비하는 대강절에 하나님의 뜻을 삶의 결정기준으로 확고하게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사야 26:3절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흔들리지 않는 결정기준으로 삼아서 이 땅에서의 형통함 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예약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열왕기상 12:1-15, “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을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2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3 무리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4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5 르호보암이 대답하되 ‘갔다가 삼 일 후에 다시 내게로 오라.’ 하매 백성이 가니라. 6 르호보암 왕이 그의 아버지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충고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7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8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 9 이르되 ‘너희는 어떻게 자문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냐?’ 백성이 내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메운 멍에를 가볍게 하라.’ 하였느니라. 10 함께 자라난 소년들이 왕께 아뢰어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부친이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기를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11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 12 삼 일 만에 여로보암과 모든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나아왔으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이르기를 삼 일 만에 내게로 다시 오라 하였음이라. 13 왕이 포악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14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 15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 두 가지로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겠습니다.
어느 양로원에 기거하고 있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열광적인 야구팬이었는데 마침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할머니는 오후 3시에 결정적인 게임이 중계되는 것을 몹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후 3시에는 이웃 교회에서 목회자가 오셔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야구팬이기도 하지만 아주 경건한 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주일 아침이 되자 요양사가 “할머니 예배에 갈 거예요 아니면 야구중계 보실 거예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누가 공을 던지느냐, 그리고 누가 설교를 하느냐에 달려있지요.”
오래 전, 어느 군 형무소에 두 사람의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전방에서 총기를 난사하다가 민간인 몇 사람을 죽였고, 또 한 사람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분노를 참지 못해서 동료를 죽였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아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총기를 난사한 사형수가 죽기 전에 고기를 실컷 먹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돈도, 사식을 넣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결과 자기의 몸을 대학병원에 해부용으로 팔기로 하고 선금 10만 원을 받았습니다. 죽기 전에 실컷 먹고 싶었던 고기를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먹고 싶었던 고기지만 3만 원어치 이상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가 맛있게 먹고 있을 때 옆 친구가, “야. 그거 맛있겠구나.”하니까. “맛은 무슨 맛. 내 몸뚱이를 팔아서 먹는 고긴데” 하면서 숙연해했습니다. 결국 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동료를 죽인 사형수는 자신의 총재산 15,000원이 있었습니다. 자기도 이것으로 먹을 것을 실컷 사 먹을까 궁리하다가. “마지막 남은 생명인데 무엇인가 좋은 일 한 가지는 하고 가야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어느 교회 성가대가 위문 차 왔습니다. 함께 오신 전도사님께 “무엇인가 좋은 일에 사용해주십시오”하며 15,000원을 드렸습니다. 이 돈을 받은 전도사님은 '어떤 좋은 일에 쓸까' 궁리하다가, 마침 그 교도소에 교회당을 새로 짓고 헌당하게 된 사실을 알고 부족한 돈을 더해서 아담한 강대상을 마련했습니다. 헌당식 날 그 사연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사형수에서 감형되어서 무기징역수가 되었습니다.
야구팬 할머니나 사형수들이나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따라서 결정을 했고 그 결정의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오신 여러분은 이 자리에 오면서 갈등을 느낀 일은 없었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매일 많은 일들을 결정하고 실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을 결정할 때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택의 기준을 적용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한 일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동일합니다. 로마서 2:6-8절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일을 결정할 때의 결정 기준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생각과 계획? 자신의 유익과 세상의 부귀영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 시간에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결정기준을 돌아보며 지혜로운 결정을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지게 되는 이유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 두 번째인 다윗, 세 번째인 솔로몬까지를 통일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솔로몬 왕의 말년에 그 많은 처첩들에 현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처첩들이 원하는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열 두 지파 중에서 열 지파를 갈라내어 ‘여로보암’에게 주어 북쪽 이스라엘을 형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생각하시고 다윗 가문에는 두 지파만 남겨 주어 남 유다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남북으로 갈라지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 본문말씀입니다.
솔로몬이 죽자 그 아들인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었습니다. 왕을 인준하기 위하여 백성들이 ‘세겜’으로 모였습니다. 백성들은 왕을 인준하기에 앞서 요구사항을 제시했습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궁궐을 짓는데 20년이라는 기간 동안 세금과 노역의 무거운 짐을 지웠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들은 ‘르호보암’은 삼일의 여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르호보암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아버지인 솔로몬을 섬기던 충신들에게 ‘백성들의 요구에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겠느냐?’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고 대답했습니다. 다음으로 르호보암은 자신이 세운 젊은 신하들에게도 자문을 구했습니다. 젊은 신하들은 “내 새끼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리라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삼일 후에 백성들이 다시 모이자 르호보암은 늙은 신하들의 지혜로운 자문을 버리고 젊은 신하들의 의견을 따라 백성에게 자신의 통치 계획을 밝혔습니다. 백성들의 요구를 묵살한 것입니다. 르호보암의 정견발표를 들은 백성들은 분노하면서 르호보암을 버리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선택하여 새로운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르호보암에게는 자신의 지파인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되었습니다.
※ 사람은 자신의 결정기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본문말씀은 읽을 때마다 ‘왜 저렇게 어리석은 결정을 했을까?’라는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시편 49:20절에서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는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런 어리석은 결정으로 깊은 후회를 한 경우는 없었습니까? 다이아몬드는 물질 중에 가장 강도가 높아서 값비싼 보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이아몬드의 원소가 숯과 똑같은 ‘탄소’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똑같은 원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하나는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되고, 다른 하나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숯 덩어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하루 24시간을 주셨습니다. 시간이라는 원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그것을 다이아몬드로 만드느냐 숯으로 만드느냐는 각 사람의 결정기준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은 길거나 혹은 짧은 일생을 통하여 시간을 가꾸어서 삶이라는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사람의 일생에는 평안하고 행복하고 형통한 길만 주어지는 것도 아니요, 고난과 불행과 곤고한 길만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이러한 과정들이 번갈아 가면서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유를 전도서 7:14절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깊이 생각하며 신중하게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자칫 잘 못 결정한 것이 평생을 후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르호보암’은 솔로몬의 아들이자 분열 된 왕국인 남 유다의 첫 번째 왕입니다.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의 네 번째 왕위를 계승하면서 중대한 결정의 귀로에 서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에게는 지금까지 져온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는 기회였으며, 르호보암에게는 이스라엘의 네 번째 왕이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르호보암은 지혜로운 늙은 신하들의 자문을 버리고 자신이 지명하여 세운 젊은 신하들의 어리석은 자문을 받아들였습니다.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뜻과 백성의 안위보다는 자신의 강력한 권력을 결정기준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로 일생에 한 번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분열된 두 지파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결정기준이 있습니다. 커피 한 잔을 탈 때도 자신의 입맛이 결정기준이 되며, 부부관계나 가정의 일에도 역시 자신의 결정기준이 있고, 회사나 사업이나 공부나 모든 인생의 일에 자신만의 결정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결정한 대로 자신의 인생의 길이 형성됩니다. “네 것도 내 것, 내 것도 내 것”이라는 기준을 가진 사람은 도둑이 됩니다. 모든 일에서 자기 이익이나 자기중심이 기준이 되면 이기적인 사람이 되고 하나님께도 사람들에게도 인생 왕따의 불행을 예약하게 됩니다. 반면에 모든 일에 다른 사람의 유익을 생각하며 자기희생과 헌신적인 사랑이 기준이 되면 하나님께도 사람들에게도 귀하게 여김을 받는 행복을 예약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4:1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사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남은 생애가 어떤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결정기준으로 삼으십시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매일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하고 실행합니다. 그 일들을 결정할 때마다 자신이 가진 결정기준에 따르게 됩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뜻이 자신의 결정기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나, 사업장에서, 학교에서, 가정에서, 다른 어떤 공동체에서 자신의 뜻을 내 세울 수 없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결심이 뚜렷하여 어떤 손해나 불이익이라도 감수할 마음만 있다면 자신의 결정기준을 따를 수 있습니다.
필라델피아의 백만장자였던 ‘스티븐 지라드’ 회장에 관한 일화입니다. 지라드 씨는 어느 토요일, 회사의 직원들에게 “선박이 방금 입항했기 때문에 내일도 출근해서 선박의 짐을 내리라.” 고 했습니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이 지라드 회장 앞으로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회장님, 저는 내일이 주일이기 때문에 일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와는 헤어지는 수밖에 없지!\" \"그것은 각오하고 있습니다. 비록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해야 할 입장이지만 주일은 일할 수가 없군요.\" \"그러면 경리계로 가보시오. 그 동한 일한 급료를 계산해 줄 것이오.\"
주일을 지키려다 실업자가 된 청년은 그 후 세 주일동안 발이 아프도록 시내를 다니며 일자리를 구했지만 얻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든 어느 날, 예전의 지라드 회장에게 친구인 필라델피아의 한 은행총재가 연락을 했습니다. “새로운 은행을 하나 열어야겠는데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지라드 씨는 삼 주 전에 해고했던 청년을 추천했습니다. 청년을 소개 받은 은행총재는 \"하지만 자네는 그 청년을 해고하지 않았나?\" \"물론 그랬지. 그 청년이 일요일에는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해고 했네. 그러나 자기의 처한 형편에 따라서 신념과 원리를 바꾸지 않는 사람이라야 새 은행의 돈을 믿고 맡길 수 있지 않겠나?\"
해고 되었던 그 청년은 지라드 회장의 친구인 은행총재가 여는 은행에 채용되었습니다. 물론 예전의 직장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뜻이 결정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은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가 자신의 생각이나 뜻을 결정기준으로 삼는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의 도우심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인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자녀도 종도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에베소 교회에 편지하시기를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십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씀은 ‘지금의 잘못 된 결정과 행위에서 돌아서서 처음의 열심 있고 깨끗한 사랑을 다시 회복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옛 말에도 “늦었다고 생각 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습니다. 이는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여 포기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결정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부탁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결정하고 행동한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37:5-6절에서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고 하시며, 23-2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라고 하십니다.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의지했더라면 결코 어리석은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함께 하시는 예수님, 다시 오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며 믿음을 정비하는 대강절에 하나님의 뜻을 삶의 결정기준으로 확고하게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사야 26:3절에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흔들리지 않는 결정기준으로 삼아서 이 땅에서의 형통함 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예약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