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안에사는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639회
작성일
2010-11-11 15:01
***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 / 요한일서 2:1-6
** 들어가는 말
요한일서 2:1-6,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승무원이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표를 검사하면서 연신 혼잣말로 “아이고 큰일 났군, 큰일 났어!”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한 칸을 모두 검사하고 난 승무원이 승객들에게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승객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반대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셨으니 다음 역에서 내리셔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승객들은 의아했습니다. 분명히 기차가 출발할 때에 안내방송에서 브뤼셀 행 기차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차를 잘못 탄 것은 승객이 아니라 승무원이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승객 모두가 브뤼셀로 가는 기차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니 이거 내가 기차를 잘못 탔나?”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승무원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나 강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이런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기차였기에 망정이지 그 승무원이 운전하는 차였다면 승객 모두는 엉뚱한 곳을 갔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자기 확신’이라고 합니다. 이 승무원처럼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삶의 길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합니까? 어떤 일을 위해서나, 사람을 방문하기 위하여 여행 중이라면 혹 길을 잘못 들었다할지라도 시간과 물질의 손실만 감당하면 다시 여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과 육신의 생명이 달려 있는 인생길이라면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엄청난 차이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3:5절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림 받은 자니라.”고 하십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확신하지 못하면 버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확신’입니다.
그래서 대강절과 성탄절이 다가오는 이 평화의 계절인 이 시간에는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영적인 확신’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합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본문을 담고 있는 요한일서는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이 기록한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지역에서 사역했습니다. 이 편지가 기록될 당시의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은 ‘영지주의’라는 이단의 가르침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았던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의 잘못된 사상을 지적하여 경계하며, 올바른 신앙의 확신을 가지도록 가르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올바른 신앙의 확신과 생활을 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에서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경고 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이단의 사상을 따라가는 것은 거짓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디도서 1:16절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실천적인 신앙을 강조합니다. 즉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느끼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우상숭배 자들처럼 실존하지도 않는 거짓된 신을 숭배하는 헛된 망상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적인 만남과 사귐이 있으며, 생활을 함께 하는 삶 자체입니다. 본문 앞쪽의 1:3절에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본문말씀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동행하는 실천적인 신앙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실천적인 신앙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산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세력이나 사탄의 세력이나 어떤 죄악도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본문 1절에서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죄가 지배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38-39절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말은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는 습관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죄의 습관에 머물면서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그 속에 안주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거짓말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고 자신의 거짓말을 합리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주일이 하나님의 날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고 합리화시키고 안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죄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몰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알면서 의도적으로 변명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런 변명의 습성에 대하여 베드로후서 3:5절에서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2:47-48절에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야고보서 4:17절에서는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십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 담이 됩니다. 우리가 죄를 품고 있으면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시편 66:18절에서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영적인 생명과 풍성함 뿐만 아니라 육신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는 치명적인 결과를 깨우치고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죄의 문제에 대하여 단호해야 하며, 의도적으로 죄를 합리화 하지 않도록 하고, 죄를 범했을 때에는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산다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킨다는 것입니다. 본문 3-6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읽어봅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때 참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4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익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아니냐를 분간하는 방법입니다. 6 누구든지 자기가 하나님 안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1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계명을 억지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이 곧 자신의 삶이 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봅시다.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봇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이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워너 메이커’는 서점 점원으로 출발해서 세계적인 백화점 왕이 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과 웃음을 잃지 않는 생활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83세가 되었을 때, 사업가로 60주년을 맞이한 잔치를 했습니다. 그때 어느 기자가
“당신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워너 메이커는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즐겁게 그리고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느헤미야 8:10절 하반절에서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고, 하박국 3:18절에서는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으며, 시편 1:1-3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며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더욱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곧 삶입니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말과 행동의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본문 6절의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는 말씀에서 “행할지니라.”는 말은 ‘페리파테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걷다’, ‘행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생활방식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처럼 행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신앙은 신앙이고 생활은 생활이다.”라고 합니다. 이처럼 신앙과 자신의 삶을 구별하게 되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생활입니다. 종교생활은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이지 하나님을 섬기며 교제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종교생활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즐겁게 순종하며 철저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생명이시며, 부활의 능력이시며, 기쁨과 참 소망이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과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철저하게 실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삶의 형통함도 없다고 실망합니다. 자신은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이상해 합니다. 그러나 실망할 것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의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7절에서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종합하면 ‘온전한 순종’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일부러 잊으려 한다든지, 자신의 형편이나 사정을 앞세워 변명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 불순종한 자들이 머무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됩니다. 여기의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잘 지켜 순종하고 실천하여서 이 땅에서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한일서 2:1-6,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로 가는 기차 안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승무원이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표를 검사하면서 연신 혼잣말로 “아이고 큰일 났군, 큰일 났어!”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한 칸을 모두 검사하고 난 승무원이 승객들에게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승객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반대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타셨으니 다음 역에서 내리셔서 갈아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승객들은 의아했습니다. 분명히 기차가 출발할 때에 안내방송에서 브뤼셀 행 기차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차를 잘못 탄 것은 승객이 아니라 승무원이었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승객 모두가 브뤼셀로 가는 기차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아니 이거 내가 기차를 잘못 탔나?” 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승무원은 자기 자신에 대해 너무나 강한 확신을 가진 나머지 이런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기차였기에 망정이지 그 승무원이 운전하는 차였다면 승객 모두는 엉뚱한 곳을 갔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두고 ‘자기 확신’이라고 합니다. 이 승무원처럼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삶의 길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합니까? 어떤 일을 위해서나, 사람을 방문하기 위하여 여행 중이라면 혹 길을 잘못 들었다할지라도 시간과 물질의 손실만 감당하면 다시 여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과 육신의 생명이 달려 있는 인생길이라면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엄청난 차이를 초래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3:5절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림 받은 자니라.”고 하십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확신하지 못하면 버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확신’입니다.
그래서 대강절과 성탄절이 다가오는 이 평화의 계절인 이 시간에는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영적인 확신’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합니다.
※ 먼저, 본문의 내용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본문을 담고 있는 요한일서는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 요한이 기록한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를 중심으로 소아시아 지역에서 사역했습니다. 이 편지가 기록될 당시의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들은 ‘영지주의’라는 이단의 가르침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았던 사도 요한은 영지주의의 잘못된 사상을 지적하여 경계하며, 올바른 신앙의 확신을 가지도록 가르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올바른 신앙의 확신과 생활을 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에서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절에서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경고 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고 이단의 사상을 따라가는 것은 거짓된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디도서 1:16절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요한일서는 실천적인 신앙을 강조합니다. 즉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느끼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이론이 아닙니다. 우상숭배 자들처럼 실존하지도 않는 거짓된 신을 숭배하는 헛된 망상은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격적인 만남과 사귐이 있으며, 생활을 함께 하는 삶 자체입니다. 본문 앞쪽의 1:3절에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본문말씀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동행하는 실천적인 신앙의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실천적인 신앙의 삶은 어떤 것입니까?
※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산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세력이나 사탄의 세력이나 어떤 죄악도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본문 1절에서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죄가 지배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지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38-39절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고 이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말은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는 습관에 머물러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죄의 습관에 머물면서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그 속에 안주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거짓말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고 자신의 거짓말을 합리화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주일이 하나님의 날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고 합리화시키고 안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죄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면 몰라서 그랬다고 하지만, 알면서 의도적으로 변명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이런 변명의 습성에 대하여 베드로후서 3:5절에서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복음 12:47-48절에서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고 하십니다. 또한 야고보서 4:17절에서는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십니다.
죄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 담이 됩니다. 우리가 죄를 품고 있으면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시편 66:18절에서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영적인 생명과 풍성함 뿐만 아니라 육신의 삶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이 죄로 말미암는 치명적인 결과를 깨우치고 죄의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자신의 죄의 문제에 대하여 단호해야 하며, 의도적으로 죄를 합리화 하지 않도록 하고, 죄를 범했을 때에는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산다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킨다는 것입니다. 본문 3-6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읽어봅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때 참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4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더욱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을 익히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알고 있느냐, 아니냐를 분간하는 방법입니다. 6 누구든지 자기가 하나님 안에 살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예수님 안에 사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람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10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의 계명을 억지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예수님이 곧 자신의 삶이 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봅시다. 갈라디아서 2: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봇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이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즉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워너 메이커’는 서점 점원으로 출발해서 세계적인 백화점 왕이 된 하나님을 경외하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과 웃음을 잃지 않는 생활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83세가 되었을 때, 사업가로 60주년을 맞이한 잔치를 했습니다. 그때 어느 기자가
“당신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물음에 워너 메이커는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즐겁게 그리고 바쁘게 사는 것이 그 비결입니다.”
느헤미야 8:10절 하반절에서는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고, 하박국 3:18절에서는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고 했으며, 시편 1:1-3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그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며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즐거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더욱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곧 삶입니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말과 행동의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본문 6절의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는 말씀에서 “행할지니라.”는 말은 ‘페리파테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걷다’, ‘행하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생활방식을 뜻합니다. 즉 예수님처럼 행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신앙은 신앙이고 생활은 생활이다.”라고 합니다. 이처럼 신앙과 자신의 삶을 구별하게 되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종교생활입니다. 종교생활은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이지 하나님을 섬기며 교제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종교생활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즐겁게 순종하며 철저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생명이시며, 부활의 능력이시며, 기쁨과 참 소망이십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과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의 계명을 즐거운 마음으로 철저하게 실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삶의 형통함도 없다고 실망합니다. 자신은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이상해 합니다. 그러나 실망할 것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의 조건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27절에서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종합하면 ‘온전한 순종’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일부러 잊으려 한다든지, 자신의 형편이나 사정을 앞세워 변명하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 불순종한 자들이 머무는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나게 됩니다. 여기의 우리 모두는 주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잘 지켜 순종하고 실천하여서 이 땅에서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며, 영원한 주님의 나라를 상속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