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가는 사람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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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5-19 20:59
*** 앞서 가는 사람들 / 역대하 20:1-13
** 들어가는 말
역대하 20:1-13, “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2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5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6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8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11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13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영국 런던에 경건한 능력의 목회자였던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신 메트로폴리탄 교회가 있습니다. 당시 1866년에 소속 성도가 4,366명이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였습니다. 어느 주일에 스펄전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하여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 두 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66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전부가 다 미지근한 성도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특히 교회가 행하는 영적인 일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명의 제자로 시작하셔서 지금 세계를 정복하고 계십니다. 이 열 두 명의 제자 중에서 한 명은 배반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나머지 열 한 명도 그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불신앙과 두려움에 빠져서 도망이나 다니는 무능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확신하고 성령 충만을 받고서는 자기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 열정의 사역자들이 되었습니다. 한갓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 세리, 성격이 불같았던 사람 등. 당시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는커녕 무식하다고 무시당하던 사람들이 ‘사도’라는 영적인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한마디로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9:27절에서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나 우리 교회도 이렇게 헌신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너무도 혼란스럽고 주님 오실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5:8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열심히 사랑하고, 믿음이 성장해야 할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그의 사환인 게하시에게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 나라의 장군인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면 나으리라.’고 했고, 나아만의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그는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엘리사에게 ‘예물을 받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엘리사는 결코 받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그곳의 흙을 기념으로 가져가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섬기겠다고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이었던 게하시가 욕심이 생겼습니다. 게하시는 돌아가고 있는 나아만을 따라가서는 ‘엘리사 선지자의 심부름이라’고 거짓말을 하고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 챙기고는 숨겼습니다. 게하시가 아무 일없는 듯 돌아왔을 때 엘리사는 에하시에게 ‘어디에 갔다왔느냐?’고 물었을 때 게하시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고 역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라고 책망하면서 나아만에게 있던 문둥병을 게하시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속된 말로 콩인지 팥인지 분간도 못하는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어지러운 시대를 제대로 분별하지도 못하고 재물에만 눈이 어두워서 물질에 욕심을 내었던 게하시는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인의 장군은 믿음으로 문둥병을 고침 받았는데, 하나님의 능력 있는 선지자 곁에 있던 유대인 게하시는 저주를 받아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오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려면 지금이 어떠한 시대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자리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의 도전에 무너지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모두가 세상을 판단할 자리에 있는 앞서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2-3절을 봅시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그러므로 앞서가는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고 본이 되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본문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연대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남 유다의 제4대 왕인 여호사밧 때이며, 대략 기원전 853년경입니다. 순탄하게 부흥하던 남 유다에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삼국연합군이 남 유다로 침략해 왔습니다. 남 유다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힘이 없었고, 전쟁을 하게 되면 패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습니다. 국가의 위기를 눈앞에 둔 기가 막힌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나라의 우상들을 없애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찾도록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의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셨고 여호사밧을 높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 좋은 여호사밧은 형제의 나라인 북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었습니다. 당시의 북 이스라엘은 7대 왕이자 악한 왕인 아합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왕후인 이세벨이 들여온 온갖 우상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우상 투성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악한 왕의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정략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합의 꾐에 빠져 연합하여 아람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 전쟁에서 아합은 죽고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겨우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돌아오는 여호사밧에게 하나님께서 선견자 예후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하19:2절입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전쟁은 여호사밧의 잘못된 관계와 정치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위기에 직면한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기도가 본문 6-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사밧이 위기에서 어떻게 처신하여 위기를 극복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이 시대에 앞서가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아봅시다.
※ 앞서가는 사람들은 삶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삶의 위기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미 선견자 예후를 통하여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붙잡으라고 공포했습니다. 본문 3,4절을 봅시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기도인 본문 12절을 봅시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남 유다는 삼국이 연합한 대군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고스란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길 뿐이었습니다.
전남 고흥에 있는 고흥교회 조대형 장로의 간증내용 중에 일부분입니다.
조대형 장로는 해군 군의관으로 있다가 예편을 하고, 외과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젊은 의사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술하고 진료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개원한지 3년이 지나 자신이 37세가 된 어느 날, 너무나 피로를 많이 느끼게 되어 의사인 자신이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간암이었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젊은 의사는 절망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잊고 있던 신앙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방법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겠다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돈만 따르던 내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면 의사로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교회당에 가서 매일 뜨거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몸이 뜨거워지면서 성령의 불을 체험했습니다. 성령의 불이 마치 자신의 몸을 샅샅이 태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암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전남 고흥으로 가서 ‘조 외과의원’을 개업하고 어려운 환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무료로 진료하고, 치료해 주어 ‘고흥의 슈바이처’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지금도 위기 때에 도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서원을 성실하게 지키며, 고흥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 때에는 하나님 외에 세상의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돈도, 권력도, 학식이나 지혜도, 어떤 위대한 인생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시편 146:3-5절을 봅시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위기 때에, 어려움이 닥치고 삶이 힘들 때에,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힘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십니다.
여호사밧 왕은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했습니다.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가까운 성읍에 모여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과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인 ‘야하시엘’을 통하여 응답해 주셨습니다. 본문 다음의 15절입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하셨고, 17절에서는,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전쟁에 나가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고 했습니다. 결과는 대승리였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결과는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했기 때문이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왕은 삶의 방향을 바르게 잡았던 것입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교회 선생님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너무나 가보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늘나라를 준비하셨다는 것을 오늘 배웠어요. 하늘나라는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곳이래요. 정말 가보고 싶어요.”
듣고 있던 엄마는 아이의 말이 맞는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또 물었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는데, 하늘나라에 가려면 예수님 믿고, 열심히 봉사하고, 어려운 사람을 사랑해야 한대요. 엄마는 하늘나라로 여행갈 준비를 다 했어요?”
“…” 엄마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 살려면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며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신앙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살려면 목사인 저를 비롯한 직분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이 시대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바로 잡고 도울 수 있는 어떤 존재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이처럼 삶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깨어 기도하며, 열심히 사랑하고,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앞서가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능력 있는 삶으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역대하 20:1-13, “1 그 후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들이 마온 사람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고자 한지라. 2 어떤 사람이 와서 여호사밧에게 전하여 이르되 큰 무리가 바다 저쪽 아람에서 왕을 치러 오는데 이제 하사손다말 곧 엔게디에 있나이다. 3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4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 5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회중 가운데 서서 6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 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8 그들이 이 땅에 살면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주를 위해 건축하고 이르기를 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전염병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성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성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에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 산 사람들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돌이켜 그들을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11 이제 그들이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그들이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내고자 하나이다. 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13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영국 런던에 경건한 능력의 목회자였던 스펄전 목사님이 목회하신 메트로폴리탄 교회가 있습니다. 당시 1866년에 소속 성도가 4,366명이었습니다. 그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였습니다. 어느 주일에 스펄전 목사님이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을 향하여 가슴이 뜨거운 사람, 열 두 명만 있다면 이 런던의 삭막하고 고독한 환경을 기쁨이 충만한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4,366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전부가 다 미지근한 성도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특히 교회가 행하는 영적인 일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명의 제자로 시작하셔서 지금 세계를 정복하고 계십니다. 이 열 두 명의 제자 중에서 한 명은 배반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나머지 열 한 명도 그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불신앙과 두려움에 빠져서 도망이나 다니는 무능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확신하고 성령 충만을 받고서는 자기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는 열정의 사역자들이 되었습니다. 한갓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 세리, 성격이 불같았던 사람 등. 당시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는커녕 무식하다고 무시당하던 사람들이 ‘사도’라는 영적인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한마디로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던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19:27절에서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나 우리 교회도 이렇게 헌신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시대가 너무도 혼란스럽고 주님 오실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5:8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열심히 사랑하고, 믿음이 성장해야 할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그의 사환인 게하시에게 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 나라의 장군인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치려고 이스라엘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일곱 번 씻으면 나으리라.’고 했고, 나아만의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그는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엘리사에게 ‘예물을 받아 달라.’고 간청했지만 엘리사는 결코 받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그곳의 흙을 기념으로 가져가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섬기겠다고 하고는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이었던 게하시가 욕심이 생겼습니다. 게하시는 돌아가고 있는 나아만을 따라가서는 ‘엘리사 선지자의 심부름이라’고 거짓말을 하고서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 챙기고는 숨겼습니다. 게하시가 아무 일없는 듯 돌아왔을 때 엘리사는 에하시에게 ‘어디에 갔다왔느냐?’고 물었을 때 게하시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고 역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때 엘리사가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라고 책망하면서 나아만에게 있던 문둥병을 게하시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속된 말로 콩인지 팥인지 분간도 못하는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어지러운 시대를 제대로 분별하지도 못하고 재물에만 눈이 어두워서 물질에 욕심을 내었던 게하시는 결국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이방인의 장군은 믿음으로 문둥병을 고침 받았는데, 하나님의 능력 있는 선지자 곁에 있던 유대인 게하시는 저주를 받아 문둥병이 들었습니다. 오늘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도인 우리가 능력 있는 사람으로 살려면 지금이 어떠한 시대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알고 자리에 합당한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의 도전에 무너지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모두가 세상을 판단할 자리에 있는 앞서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6:2-3절을 봅시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 그러므로 앞서가는 사람으로서 이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고 본이 되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 본문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연대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남 유다의 제4대 왕인 여호사밧 때이며, 대략 기원전 853년경입니다. 순탄하게 부흥하던 남 유다에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삼국연합군이 남 유다로 침략해 왔습니다. 남 유다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힘이 없었고, 전쟁을 하게 되면 패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습니다. 국가의 위기를 눈앞에 둔 기가 막힌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입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했으며, 나라의 우상들을 없애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찾도록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의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셨고 여호사밧을 높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 좋은 여호사밧은 형제의 나라인 북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었습니다. 당시의 북 이스라엘은 7대 왕이자 악한 왕인 아합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왕후인 이세벨이 들여온 온갖 우상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우상 투성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악한 왕의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정략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합의 꾐에 빠져 연합하여 아람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 전쟁에서 아합은 죽고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겨우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돌아오는 여호사밧에게 하나님께서 선견자 예후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하19:2절입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전쟁은 여호사밧의 잘못된 관계와 정치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위기에 직면한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 기도가 본문 6-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사밧이 위기에서 어떻게 처신하여 위기를 극복하는지를 살펴보면서, 이 시대에 앞서가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아봅시다.
※ 앞서가는 사람들은 삶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삶의 위기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미 선견자 예후를 통하여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뿐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붙잡으라고 공포했습니다. 본문 3,4절을 봅시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기도인 본문 12절을 봅시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남 유다는 삼국이 연합한 대군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고스란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길 뿐이었습니다.
전남 고흥에 있는 고흥교회 조대형 장로의 간증내용 중에 일부분입니다.
조대형 장로는 해군 군의관으로 있다가 예편을 하고, 외과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젊은 의사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술하고 진료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개원한지 3년이 지나 자신이 37세가 된 어느 날, 너무나 피로를 많이 느끼게 되어 의사인 자신이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간암이었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젊은 의사는 절망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잊고 있던 신앙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방법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겠다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돈만 따르던 내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면 의사로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교회당에 가서 매일 뜨거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몸이 뜨거워지면서 성령의 불을 체험했습니다. 성령의 불이 마치 자신의 몸을 샅샅이 태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암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전남 고흥으로 가서 ‘조 외과의원’을 개업하고 어려운 환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무료로 진료하고, 치료해 주어 ‘고흥의 슈바이처’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지금도 위기 때에 도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서원을 성실하게 지키며, 고흥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인생의 위기 때에는 하나님 외에 세상의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돈도, 권력도, 학식이나 지혜도, 어떤 위대한 인생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시편 146:3-5절을 봅시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위기 때에, 어려움이 닥치고 삶이 힘들 때에,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힘이 되시고 피난처가 되십니다.
여호사밧 왕은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했습니다.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가까운 성읍에 모여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과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인 ‘야하시엘’을 통하여 응답해 주셨습니다. 본문 다음의 15절입니다.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하셨고, 17절에서는,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전쟁에 나가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 20:20) 고 했습니다. 결과는 대승리였습니다. 이와 같은 놀라운 결과는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했기 때문이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왕은 삶의 방향을 바르게 잡았던 것입니다.
주일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교회 선생님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너무나 가보고 싶어서 마음이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늘나라를 준비하셨다는 것을 오늘 배웠어요. 하늘나라는 참으로 아름답고 좋은 곳이래요. 정말 가보고 싶어요.”
듣고 있던 엄마는 아이의 말이 맞는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이가 또 물었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그러는데, 하늘나라에 가려면 예수님 믿고, 열심히 봉사하고, 어려운 사람을 사랑해야 한대요. 엄마는 하늘나라로 여행갈 준비를 다 했어요?”
“…” 엄마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 살려면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신뢰하며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가 신앙의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살려면 목사인 저를 비롯한 직분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이 시대를, 그리고 우리의 삶을 바로 잡고 도울 수 있는 어떤 존재도 없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이처럼 삶의 방향을 바르게 잡아서 하나님을 신뢰하며 깨어 기도하며, 열심히 사랑하고, 복음을 전합시다. 그리하여 이 시대를 앞서가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능력 있는 삶으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