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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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누릴 조건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426회 작성일 2011-05-10 19:40
*** 행복을 누릴 조건 / 로마서 4:1-13

** 들어가는 말

로마서 4:1-13, “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 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13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행복이라는 주제는 자주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도 주제가 ‘행복’입니다. 그냥 행복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누릴 조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가지는 것과 누리는 것은 전혀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면서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가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상고하려 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행복을 누릴 조건은 목적에 걸맞은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즉 모든 피조물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것입니다.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하고, 새는 날아다녀야 하는 이치입니다.
잠언 3:1절에서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에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이 이룰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열쇠, 펜, 핸드폰, 안경 등. 이 모든 것은 목적이 있어서 만들어졌고 존재합니다. 이 물품들의 존재 목적은 스스로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물품들은 만든 사람이 부여한 목적을 위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 앞에 있는 피아노는 장식품이 아니라 아름다운 소리로 음악을 연주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사람들도 존재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똑같이 먹고, 즐기고, 경쟁하고, 종족번식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43:21절을 봅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십니다. 에베소서 1:4-6절에서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 인생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대로 존재할 때에 행복이 있습니다. 앞의 말씀 속에 이미 행복을 누릴 조건에 대하여 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본문을 중심으로 살펴봅시다.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하나님 백성의 조상을 삼으셨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조건이 있었습니까? 물론 있었습니다. 본문 3절에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그 믿음’이 선민의 조상이 되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왜 믿음이 의로 여김을 받는지?’에 대하여 설명하며, 또한 의롭다고 여기심을 받은 것이 믿음 때문인지, 행함 때문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3절에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가정이 행복을 누리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는 행복한 가정뿐만 아니라,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기초가 됩니다. 이 말씀 속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아봅시다.

※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입니까?

행복을 누릴 조건을 찾으려면 먼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행복뿐만 아니라 모든 삶은 각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서 느끼는 것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즉 ‘이것이 행복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나에게는 행복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행복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페인에서 전례 되는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옛날에 한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모든 부귀영화와 권력을 누리면서도 무엇이 행복인지를 몰랐습니다. 왕은 궁리 끝에 점술가를 불러서 ‘행복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점술가는 대답하기를, “전국을 수소문하여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찾아내어 그의 속옷을 가져와서 임금님께서 친히 입어 보십시오. 그러면 행복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왕의 명령으로 신하들이 행복한 사람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온 나라를 다 뒤져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산골의 한 가난한 양몰이꾼이 ‘자신은 정말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즉시 왕 앞에 불려온 양몰이꾼에게 왕은 “그 누더기 같은 옷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왕은 과연 그의 속옷을 입으면 행복을 알게 되는지 무척 조바심이 났습니다. 양몰이꾼이 누더기 같은 겉옷을 벗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는 속옷을 입고 있지 않았습니다. 속옷을 입을 처지가 못 되도록 가난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참된 행복이란,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세상의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1937)는 미국 전체 석유의 95%를 독점하여 석유산업계를 지배했던 재벌이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 밖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에는 신. 불신을 막론하고, 돈에 죽고 사는 맘몬(Mammon /물질적인 부요와 탐욕)족들로 가득합니다. 즉 이 시대는 맘몬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부요와 탐욕은 결코 행복의 조건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누가복음 16:13절에서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입니까?
본문 7,8절을 읽어봅시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에서 진정한 행복을 말씀하십니다. 즉 참된 행복은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 받는 것입니다. 죄를 사함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았음을 말합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보다 더 확실한 행복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의심 많은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마태복음 7:1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행복입니다. 이 하나님을 가정의 가장으로 모시고 사는 가정이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 이 행복을 누릴 조건은 무엇입니까?

본문에는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민족의 첫 조상입니다.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민족의 조상이 된 조건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본문 3절에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라고 하시며 13절에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선민의 조상이 된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어떤 행위나 의로운 삶이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증언하기 위하여 6절에서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라고 하시면서 다윗의 시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이 말씀에서 증언하는 행복을 누릴 조건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한 번 믿은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인 믿음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스위스의 법학자이며, 철학자인 ‘힐티’(Carl Hilty, 1833-1909)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행복론’ 등의 여러 유명한 글을 썼습니다. 그는 ‘행복론’에서 “인생 최대의 행복은 하나님 곁 가까이에 있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참다운 행복을 찾기 위하여 지식과 세상적인 모든 방법들을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을 연구하다가 참된 행복을 찾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본문 다음의 25절을 봅시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최종적인 행복의 보장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합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서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되며, 참된 행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이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잘못된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절대적 신뢰입니다. 사람들은 오늘이 있었던 것처럼 내일도 당연히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오늘밤에 죽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치 누가복음 12:16-21절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자신의 미래를 낙관하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12:19절입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리라 하되” 이 부자처럼 우리도 자신의 평안과 행복이 계속 될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의 시계 바늘이 멈추는 곳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약속된 시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우유부단 하게 언제까지 미루겠습니까? 내일은 내 날이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날은 ‘지금, 이 시간’뿐입니다. 그러므로 한 순간 순간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순종하는 생활로 성실하게 쌓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조건입니다.

미국의 프로야구 선수의 명언을 하나 소개합니다.
프로 야구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뉴욕 메츠 팀의 ‘스트로베리’ 선수가 홈런 두개를 날렸습니다. 그중 한 개는 장외 홈런으로 엄청나게 멀리 날아갔습니다. 스트로베리 선수는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홈런은 멀리가거나 짧게 떨어지거나 결국 한 점내는 것뿐입니다.”

세상의 물질을 많이 소유해야 행복한 것은 아니며, 장수하는 것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홈런은 길거나 짧거나 모두가 같은 효과밖에 없습니다. 멀리 보낸 홈런이라고 두 바퀴를 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홈런은 한 바퀴만 돌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 인생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서 한 번 더 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한 번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 지나간 인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으며, 그 인생대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잠시 사는 세상의 부귀영화나 행복을 쫓기 보다는 영원한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서 이 땅에서 행복을 누릴뿐만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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