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예수님의 십자가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374회 작성일 2011-04-17 22:06
*** 예수님의 십자가 / 요한복음 19:17-22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9:17-22,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옛사람들은 황금을 ‘흑사심(黑邪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총명과 판단을 흐리게 하며, 양심을 부패하게 하고, 정욕에 눈이 어두워지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3:8절에서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돈과 인간과의 관계는 마치 배와 물의 관계 같습니다. 물이 없으면 배는 무용지물이지만,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면 배는 침몰합니다. 우리 인간에게 물질은 꼭 필요한 것이지만 물질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면 인간은 파선된 배와 같아서 희망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6: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하십니다.

사도행전 8장에는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을 기록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사는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베드로와 요한이 믿는 자들에게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몬은 돈을 가지로 와서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라며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 능력을 팔라고 했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여겼던 것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황금만능 정신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의 시대에는 돈과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마치 돈이 자신을 구원하고, 어려움을 면하게 하고, 삶의 보장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외면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구원의 유일한 길임을 확신합니까?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이자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종려주일’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려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에게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실한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을 살펴봅시다.

오늘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십자가형을 언도받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셔서 못 박히시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를 기록한 푯말이 붙여졌습니다. 이 광경은 당시의 가장 비인간적이고 혹독한 처형장면입니다. 오늘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극단적인 처형 장면을 보면서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면서 정작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져야만 하셨던 이유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것을 ‘주객전도(主客顚倒)’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육체적인 고통만 생각하고 슬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찾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성경의 모든 초점은 고난주간, 한 주간에 맞추어져 있다.’고 까지 강조했습니다. 고난주간은 사순절의 절정이며, 예수님께서 어린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 종려주일부터 시작됩니다. 월요일에는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고, 화요일에는 감람산에서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가르치셨고, 목요일에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마지막 만찬을 통하여 성찬예식을 남기셨습니다. 금요일에는 대제사장이 보낸 사람들에게 체포되어 빌라도의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리고 무덤 속에 계신 토요일까지가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심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소망이 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이자,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소망이 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화목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입니다.

골로새서 1:19-23절을 봅시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만국에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우주에서의 최고한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인간들이 하나님과의 계약을 어기고 죄를 지어 죽음의 형벌을 지게 되었습니다. 죄를 진 인간의 어두움은 빛이신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어서 세상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때부터 인간들은 황량한 세상에서 일의 무거운 짐과 출산의 고통을 져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삶의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하나님과의 어그러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려고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율법을 통하여는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를 못했습니다. 로마서 3:20절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입니다. 요한일서 4:9-10절을 봅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나타내신 사랑의 제물이셨습니다. 곧 하나님과의 계약을 깨뜨리고 단절되어 버린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하게 하는 제물’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셨다 함은 ‘죄의 값을 치러야만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는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성부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룰뿐만 아니라 사라들과의 화목도 이루어야 합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는 자의 구원의 표입니다.

에베소서 1:7절을 봅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회복케 하시는 죄 사함의 길로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을 받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처음 에덴동산에서 가졌던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삶을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죄’입니다. 죄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모든 것입니다. 이 죄를 처리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아주 총명하고 똑똑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깊은 죄의식이나 십자가의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청년에게 그리스도인인지를 물었습니다. 청년은 즉시 ‘자신은 어릴 때부터 쭉 그리스도인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보기에는 청년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것인지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청년에게 ‘거듭났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청년은 거듭났다는 말 뜻 조차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청년에게 ‘자신이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범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청년은 “아니오, 이제껏 한 번도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가장 큰 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청년은 “살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마태복음 22:37―38을 펴서 청년에게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목사님은 다시 물었습니다.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면 가장 큰 죄는 무엇일까요?” 청년은 “그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되는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당신은 항상 그 계명을 지켰었는지, 즉 그가 항상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했으며 모든 일에서 하나님을 항상 첫자리에 모셨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청년은 ‘그렇지 못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죄를 범한 것이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제야 청년은 깊이 생각하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제껏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죄는 영적인 어둠이기 때문에 죄를 처리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조차 없습니다. 요한일서 1:5절에서는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고 하셨고, 시편 66:18절에서는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즉 죄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품기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받아 주지 않으십니다. 이 죄를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뿐입니다. 여러분도 이 청년처럼 아직 자신이 심각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런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구원이 되십니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는 자의 능력의 표입니다.

고린도전서 1:18절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뱓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십니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은 십자가의 길을 가는 삶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과 능력에 감동하며 함께 하고 싶어 하지만, 십자가의 고통과 수치를 함께 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이 잊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의 길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질 뿐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은 고통이며, 환난이며, 수치스러움이며, 희생이며, 섬김이며, 손해 보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어리석고 미친 짓처럼 여겨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이는’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길입니다. 이 길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입니다. 넓고 편안한 길을 두고 좁고 불편하고 힘든 길을 고집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의 영광에 이르는 길은 이 좁은 길 끝에 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토마스 왓슨 (1620-1686) 목사님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많은 고난을 당한 목사님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생명을 잃을 수는 있을지언정 그의 보상을 잃을 수는 없다. 그는 자기의 머리를 잃을 수는 있을지언정 면류관을 잃을 수는 없다.”

생명은 잃지만 보상은 잃지 않고, 머리는 잃지만 면류관은 잃지 않는 경우는 한없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이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은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이며, 진실한 성도를 구별해내는 방법입니다. 세상에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목숨을 내놓는 체하면서 내놓지는 않고, 희생하는 체하면서 희생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감람산까지는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갈보리산까지는 따르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면 하나님과 화목할 뿐만 아니라, 기꺼이 구원을 허락하실 것이며, 능력의 삶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실로 사랑하며 의지하며 순종하고 따라서 능력의 삶을 이루며, 부활의 생명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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