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길의 동행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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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4-12 22:19
*** 생명 길의 동행 / 요 14:15-17, 눅 24:13-17, 30-32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4:15-17,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누가복음 24:13-17,30-32,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지난 주일에는 ‘아름다운 동행’을 전했습니다.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동행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생명 길의 동행’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전하려합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뜻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동행’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이 동행자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드리려는 ‘생명 길의 동행’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우리 인생길에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지극하신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택하셔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사야 43:1절에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저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3-5절에서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동행자가 되신 것은 우리의 의로움이나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생명 길의 동행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확신하고, 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 말씀들을 살펴봅시다.
요한복음 본문은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앞날의 일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간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써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셔서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을 주님께로 이끄실 것입니다. 즉 성령님 안에 함께 하셔서 주님의 백성들과 세상 끝 날까지 동행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에 두 제자를 만나는 장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던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자신들의 소망이 사라지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 중에 엠마오가 고향인 두 제자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슬픈 마음으로 요 며칠 일어난 이야기들을 하면서 고향으로 향하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슬픔에 잠긴 두 제자에게 성경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두 제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심을 알게 된 두 제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과 그 약속대로 동행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지금은 엠마오의 길에서 동행하셨던 그 모습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주님을 확신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수없이 많은 불행한 동행자들이 있습니다.
오래 전, 미국에 ‘윌리엄 헐스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문편집인이었으며,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골동품수집광이었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골동품을 수집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의 왕가에서만 사용되었다는 신기한 도자기 사진을 입수하고는 꼭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는 몇 년 동안 틈틈이 유럽지역을 탐문하면서 도자기의 자취를 추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인 제보를 입수했습니다. 그 도자기는 언론인 출신의 어떤 미국인 사업가가 오래 전에 사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미국인 사업가를 찾기 위해 추적했습니다. 결국 도자기를 찾기 시작한지 수년 만에 도자기 소유자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그 도자기 소유자는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이미 자신이 사들여서 창고에 넣어두고는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값비싼 보배를 창고에 처박아 둔 것입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 실화는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엄청난 가치를 가진 도자기를 소유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는, 수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서 찾아다니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오늘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시며, 영원한 소망이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그 주님을 믿는다고 수없이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으로, 주기도문으로, 기도로, 찬송으로, 말씀으로 거의 매일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매일 어떤 일로든지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찾아다니며, 기쁨과 행복을 찾아다닙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처럼 말입니다. 두 제자의 넋두리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눅 24:21-23) 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말입니다. 이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들이며 불행한 동행자들입니다.
창조주이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신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하찮은 세상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며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나서 죽을 고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배에는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마가복음 11:2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처럼 능력의 주님이 동행하심에도 불구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세상에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불행한 동행자입니다. 로마서 14:23절에서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하십니다.
※ 생명 길의 동행자를 확신해야 합니다.
감리교 창시자이며 전도자인 ‘요한 웨슬레’는 “가장 최선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동행의 약속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본문 16-17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십니다. 이 약속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대로 우리의 모든 삶에서 동행하시며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확신하고 주님의 사랑을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16세기의 카르멜회 수사였던 ‘브라더 로렌스’는 오랜 세월 동안 수도원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주님의 일로 여기고 지속적인 사랑으로 순종하고 실천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생활 속에서 주님의 동행하심을 배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번철 위의 오믈렛을 뒤집을 때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했다. 하다못해 지푸라기 하나를 줍는 일까지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찾고 있다. 그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그분의 임재(동행)하심을 느끼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일에나 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할 때에도 그 사랑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좀 더 쉽고 직접적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는 데는 복잡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정직하고 단순하게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로렌스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느끼기 위하여 연구를 하거나, 많은 책들을 읽거나, 고행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 즉 음식을 준비하는 자기의 일을 통해서였습니다. 일상적인 자신의 생활 속에서 성실하게 주님의 사랑을 순종하고 실천한 것입니다. 그 속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느낀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활신앙이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신앙 속의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비록 육신이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서 살지만, 육신을 따라 사는 세상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8:13-14절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서 살도록 주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성령님께서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모든 행동을 살피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셔서 인도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소망이 사라진 슬픔에 잠겨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던 말씀을 풀이해 주시며 깨닫게 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마음이 뜨겁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생명 길을 동행하십니다. 때로 소망이 사라지고 인생이 힘들고 곤할 때에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위로하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마태복음 28: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을 잊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동행하시는 주님께 모든 사실을 아뢰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이 그렇게 친근하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이 동행하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의 불안과 고통과 의심과 죄악 된 마음까지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이렇게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는 예수님이 생명 길을 항상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은혜가 따르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4:15-17,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누가복음 24:13-17,30-32,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서더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지난 주일에는 ‘아름다운 동행’을 전했습니다.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동행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생명 길의 동행’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전하려합니다. ‘동행한다.’는 것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뜻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지만 ‘동행’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사람들이 동행자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말씀드리려는 ‘생명 길의 동행’은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우리 인생길에 주님이 함께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지극하신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이미 우리를 택하셔서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사야 43:1절에서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저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1:3-5절에서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동행자가 되신 것은 우리의 의로움이나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사랑하시고 은총을 베푸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생명 길의 동행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을 확신하고, 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 말씀들을 살펴봅시다.
요한복음 본문은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앞날의 일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간을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심으로써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셔서 제자들과 모든 성도들을 주님께로 이끄실 것입니다. 즉 성령님 안에 함께 하셔서 주님의 백성들과 세상 끝 날까지 동행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누가복음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시고 장사되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에 두 제자를 만나는 장면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제자들과 주님을 따르던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 자신들의 소망이 사라지자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 중에 엠마오가 고향인 두 제자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슬픈 마음으로 요 며칠 일어난 이야기들을 하면서 고향으로 향하고 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주님은 슬픔에 잠긴 두 제자에게 성경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두 제자는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심을 알게 된 두 제자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두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과 그 약속대로 동행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지금은 엠마오의 길에서 동행하셨던 그 모습처럼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 인생길에 동행하시는 주님을 확신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 수없이 많은 불행한 동행자들이 있습니다.
오래 전, 미국에 ‘윌리엄 헐스트’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문편집인이었으며,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골동품수집광이었습니다. 그는 틈만 나면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골동품을 수집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의 왕가에서만 사용되었다는 신기한 도자기 사진을 입수하고는 꼭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는 몇 년 동안 틈틈이 유럽지역을 탐문하면서 도자기의 자취를 추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결정적인 제보를 입수했습니다. 그 도자기는 언론인 출신의 어떤 미국인 사업가가 오래 전에 사갔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미국인 사업가를 찾기 위해 추적했습니다. 결국 도자기를 찾기 시작한지 수년 만에 도자기 소유자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그 도자기 소유자는 바로 자신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이미 자신이 사들여서 창고에 넣어두고는 그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 값비싼 보배를 창고에 처박아 둔 것입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 실화는 지금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엄청난 가치를 가진 도자기를 소유했으면서도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는, 수많은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서 찾아다니는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오늘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합니다. 예수님이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고, 우리의 소원을 이루시며, 영원한 소망이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그 주님을 믿는다고 수없이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으로, 주기도문으로, 기도로, 찬송으로, 말씀으로 거의 매일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매일 어떤 일로든지 염려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찾아다니며, 기쁨과 행복을 찾아다닙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처럼 말입니다. 두 제자의 넋두리를 들어봅시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눅 24:21-23) 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말입니다. 이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들이 바로 지금의 우리들이며 불행한 동행자들입니다.
창조주이시며,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신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하찮은 세상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며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나서 죽을 고생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배에는 창조주이신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 마가복음 11:2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이처럼 능력의 주님이 동행하심에도 불구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세상에서 도움을 구하는 사람이 불행한 동행자입니다. 로마서 14:23절에서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고 하십니다.
※ 생명 길의 동행자를 확신해야 합니다.
감리교 창시자이며 전도자인 ‘요한 웨슬레’는 “가장 최선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The best of all is God is with us.)”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동행의 약속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본문 16-17절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십니다. 이 약속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대로 우리의 모든 삶에서 동행하시며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확신하고 주님의 사랑을 생활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16세기의 카르멜회 수사였던 ‘브라더 로렌스’는 오랜 세월 동안 수도원 주방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그 일을 주님의 일로 여기고 지속적인 사랑으로 순종하고 실천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생활 속에서 주님의 동행하심을 배웠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번철 위의 오믈렛을 뒤집을 때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했다. 하다못해 지푸라기 하나를 줍는 일까지도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찾고 있다. 그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그분의 임재(동행)하심을 느끼기 위해 애를 많이 쓰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일에나 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할 때에도 그 사랑을 하나님께 보여드리는 것이 좀 더 쉽고 직접적이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는 데는 복잡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다만 정직하고 단순하게 그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로렌스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을 느끼기 위하여 연구를 하거나, 많은 책들을 읽거나, 고행을 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는 일, 즉 음식을 준비하는 자기의 일을 통해서였습니다. 일상적인 자신의 생활 속에서 성실하게 주님의 사랑을 순종하고 실천한 것입니다. 그 속에 주님이 함께 하심을 느낀 것입니다. 이것은 부활신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부활신앙이란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신앙 속의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사람입니다. 비록 육신이 있는 동안에는 세상에서 살지만, 육신을 따라 사는 세상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로마서 8:13-14절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에서 살도록 주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 안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자리,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성령님께서 동행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모든 행동을 살피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셔서 인도하십니다. 자신의 모든 소망이 사라진 슬픔에 잠겨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동행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깨닫지 못하던 말씀을 풀이해 주시며 깨닫게 하시고 용기를 주시고 마음이 뜨겁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지금 우리와 생명 길을 동행하십니다. 때로 소망이 사라지고 인생이 힘들고 곤할 때에는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위로하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마태복음 28: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이 약속을 잊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붙잡으십시오. 그리고 생활 속에서 동행하시는 주님께 모든 사실을 아뢰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옆에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이 그렇게 친근하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이 동행하심을 확신하는 사람은 이렇게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의 불안과 고통과 의심과 죄악 된 마음까지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이렇게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사랑하는 예수님이 생명 길을 항상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은혜가 따르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