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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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2-16 14:21
***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 / 왕하 8:1-6
** 들어가는 말
열왕기하 8:1-6, “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하니 2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3 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4 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하니라. 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설명한지라 왕이 그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어떤 심리학자가 현대인들의 문제에 대하여 연구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20대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포’ 즉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혈기왕성한 20대가 ‘두려움’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장래에 대한 문제’입니다. 진학이나 취직 문제를 생각하면서 걱정하다 보면 불안이 쌓이고 공포가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공부하고,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밀리면 어떻게 하나?”, “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암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나?” 이런 온갖 생각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감이 엄습하고 걱정과 두려움, 결국은 공포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는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은 대부분 ‘알지 못하는 미래’가 그 원인입니다. 즉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보장된 미래’를 만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관심사 1위가 ‘재테크’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돈을 잘 관리해서 평안하고 안정된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노후대책까지도 안전하게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각종 보험까지 더해서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최소화하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재테크나 노후대책, 각종 보험이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까? 잠언 23:4-5절에서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니라.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 먼저, 본문의 내용과 배경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이야기는 기도의 사람인 엘리야 선지자의 대를 이은 엘리사 선지자 때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어느 날, 엘리사 선지자가 갈멜산에사 가까운 ‘수넴’이라는 마을을 지날 때였습니다. 마을의 귀부인 한 사람이 엘리사 선지자를 집으로 모셔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 후로는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 집에 들러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부인이 강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귀부인이 남편과 의논하여 엘리사 선지자가 지날 때마다 쉴 수 있도록 작은 집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그 귀부인에게 엘리사는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아무것도 요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던 엘리사는 그 집에 자식이 없음을 알고, 부인을 불러서 내년 이맘때쯤에는 아들을 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1년 후에 부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에 갑자가 죽었습니다. 부인은 죽은 아이를 선지자의 방에 누인 후, 하인에게 나귀를 준비하도록 해서 급하게 엘리사 선지자가 거주하고 있는 갈멜산으로 갔습니다. 사정을 설명한 부인은 엘리사를 모시고 왔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부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서 안겨주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몇 해가 지나서 수넴 여인이 살던 북이스라엘 지역에 큰 가뭄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엘리사 선지자가 알았습니다. 선지자는 자신을 극진히 대접하던 수넴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앞으로 7년 동안 가뭄이 들게 하실 것임을 알리면서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했습니다. 수넴 여인은 온 가족과 함께 블레셋 지역으로 피하여 7년을 지냈습니다. 가뭄이 끝난 후 수넴으로 돌아왔는데 자신의 집과 땅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재판을 청구하기 위하여 왕궁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그 시간, 수넴 여인이 왕궁에 도착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이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인 게하시를 불러서 선지자가 행한 이적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게하시가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이야기를 할 때였습니다. 때마침 수넴 여인이 왕에게 상소하기 위하여 왕 앞에 왔습니다. 게하시는 이 여인이 자신이 방금 이야기 하던 그 주인공이며, 저 아들이 엘리사 선지자가 다시 살린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왕은 수넴 여인을 불러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는, 수넴 여인을 위하여 특별 관리를 임명하여 이전에 가졌던 모든 재산을 돌려주고, 떠나 있던 7년 동안의 모든 소출까지도 돌려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이 역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넴 여인을 위한 하나님의 세밀하신 사랑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본문 5절에서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이것뿐만 아니라 적시적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예레미야 17:7절에서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고, 나훔 1:7절에서는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 하나님은 자신을 의뢰하는 자들을 아십니다.
우리나라의 국어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이희승’(李熙昇 1896년~1989년) 선생이 있었습니다. 호는 일석(一石)이며, 조선어학회에서 연구 활동을 했던 학자였습니다. 이분이 쓴 자서전인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자손들에게 대단히 강조한 삶의 유산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걱정은 하지 말 라”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가 수없이 듣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걱정도 팔자다.”라는 말도 있듯이, ‘쓸데없는 걱정은 아무른 의미가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런데 말하기는 쉽지만 알면서도 걸려 넘어지는 문지방처럼, 실행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걱정하지 말자!’라고 한다고 걱정이 안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리 걱정을 하지 않으려 해도 구들장에 연기 새어나오듯이 걱정거리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어느새 두려움이 들게 합니다. 이런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길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용맹한 장군이었던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삼하 22:30)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모든 두려움과 염려를 이길 수 있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모든 환경과 일들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심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시편 37:5-6절에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면 오히려 더 큰 두려움에 싸이게 되며,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잠언 11:28절에서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라고 했으며, 시편 146:3절에서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의지한 교만의 대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들이 염려와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는 자신을 의지하거나 돈이나 권력자를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재테크나 노후대책, 보험이 자신의 행복이나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며, 이 광활한 우주의 모든 피조물을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삶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며 행복의 길입니다. 본문의 수넴 여인은 바로 이 길을 알았습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선지자를 극진하게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로부터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2절에서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라고 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이라고 자신의 모든 땅과 집과 재산과 삶의 자리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러나 수넴 여인은 앞날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자신을 의뢰하는 자들을 세밀하게 인도하십니다.
중국 내륙의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는 평생을 믿음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협력자와 많은 선교비가 필요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정신적 부담으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복음 15장을 읽다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말씀에 이르렀을 때에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님께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주는 나무이므로 가지인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가지인 내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어리석었구나. 주님! 이 시간부터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겠사오니 책임져 주시옵소서.”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시인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에는 깊은 평안으로 가득했습니다. 이후부터는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고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넴 여인이 자신의 모든 재산과 삶의 자리를 하나님께 맡겼던 그 믿음을 가지는 것,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신의 고향을 미련 없이 떠났던 그 믿음을 가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다면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시편 37:5-6절에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의뢰했던 수넴 여인의 믿음에 약속하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가 7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잃어버린 땅과 집과 재산과 그동안 자신의 소유지에서 거둔 모든 소출까지 찾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그 나라의 왕을 통하여 가장 적절한 시간에 세밀하게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형통함’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실 때에 진정으로 형통한 삶이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입니다. 창세기 39:2절에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하십니다.
본문 앞쪽의 열왕기하 6:8-23절에는 북 이스라엘을 침공한 아람 군대를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격파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마다 번번이 이스라엘 군대가 미리 매복하여 오히려 자신들이 공격을 당했습니다. 아람 왕이 누군가 밀고자가 있다고 했을 때, 신하 중의 한 사람이 밀고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라는 선지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아람 왕의 전략을 다 알고 미리 방비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온 군대를 보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이 밖에 나갔다가 아람 군대가 자신의 성읍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들어왔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에게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라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하고는 태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환의 눈에 웅장한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하나님의 군대인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 진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보고, 알지 못하는 미래를 생각하면 염려와 근심, 두려움이 일어날 뿐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처럼 “어떻게 하면 되지?”라고 염려와 두려움에 싸이게 됩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보십시오. 도움을 구하십시오. “영의 눈을 열어 보게 해 달라.”고, “미련한 마음을 깨우쳐서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나훔 1: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아시고 그 환난을 피하는 산성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뢰하셔서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로 역사하시는 은혜를 매일의 삶에서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열왕기하 8:1-6, “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권속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하니 2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3 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4 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씀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하니라. 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설명한지라 왕이 그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주라.’ 하였더라.”
어떤 심리학자가 현대인들의 문제에 대하여 연구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20대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공포’ 즉 ‘두려움’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혈기왕성한 20대가 ‘두려움’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꼽았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장래에 대한 문제’입니다. 진학이나 취직 문제를 생각하면서 걱정하다 보면 불안이 쌓이고 공포가 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공부하고,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밀리면 어떻게 하나?”, “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암이라도 걸리면 어떻게 하나?” 이런 온갖 생각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안감이 엄습하고 걱정과 두려움, 결국은 공포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는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두렵게 하는 것은 대부분 ‘알지 못하는 미래’가 그 원인입니다. 즉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으면 ‘보장된 미래’를 만들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관심사 1위가 ‘재테크’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돈을 잘 관리해서 평안하고 안정된 삶의 기반을 마련하고, 노후대책까지도 안전하게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각종 보험까지 더해서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을 최소화하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재테크나 노후대책, 각종 보험이 안전하고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까? 잠언 23:4-5절에서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니라. 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의지해야 하겠습니까?
※ 먼저, 본문의 내용과 배경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이야기는 기도의 사람인 엘리야 선지자의 대를 이은 엘리사 선지자 때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어느 날, 엘리사 선지자가 갈멜산에사 가까운 ‘수넴’이라는 마을을 지날 때였습니다. 마을의 귀부인 한 사람이 엘리사 선지자를 집으로 모셔서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그 후로는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그 집에 들러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 부인이 강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귀부인이 남편과 의논하여 엘리사 선지자가 지날 때마다 쉴 수 있도록 작은 집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자신을 극진하게 대접하는 그 귀부인에게 엘리사는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아무것도 요구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도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던 엘리사는 그 집에 자식이 없음을 알고, 부인을 불러서 내년 이맘때쯤에는 아들을 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연 1년 후에 부인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을 때에 갑자가 죽었습니다. 부인은 죽은 아이를 선지자의 방에 누인 후, 하인에게 나귀를 준비하도록 해서 급하게 엘리사 선지자가 거주하고 있는 갈멜산으로 갔습니다. 사정을 설명한 부인은 엘리사를 모시고 왔습니다. 엘리사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부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서 안겨주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몇 해가 지나서 수넴 여인이 살던 북이스라엘 지역에 큰 가뭄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엘리사 선지자가 알았습니다. 선지자는 자신을 극진히 대접하던 수넴 여인에게 하나님께서 앞으로 7년 동안 가뭄이 들게 하실 것임을 알리면서 다른 곳으로 피하라고 했습니다. 수넴 여인은 온 가족과 함께 블레셋 지역으로 피하여 7년을 지냈습니다. 가뭄이 끝난 후 수넴으로 돌아왔는데 자신의 집과 땅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재판을 청구하기 위하여 왕궁으로 향했습니다.
바로 그 시간, 수넴 여인이 왕궁에 도착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이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인 게하시를 불러서 선지자가 행한 이적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습니다. 게하시가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린 이야기를 할 때였습니다. 때마침 수넴 여인이 왕에게 상소하기 위하여 왕 앞에 왔습니다. 게하시는 이 여인이 자신이 방금 이야기 하던 그 주인공이며, 저 아들이 엘리사 선지자가 다시 살린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왕은 수넴 여인을 불러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는, 수넴 여인을 위하여 특별 관리를 임명하여 이전에 가졌던 모든 재산을 돌려주고, 떠나 있던 7년 동안의 모든 소출까지도 돌려주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이 역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수넴 여인을 위한 하나님의 세밀하신 사랑의 손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본문 5절에서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이것뿐만 아니라 적시적소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수없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예레미야 17:7절에서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고, 나훔 1:7절에서는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 하나님은 자신을 의뢰하는 자들을 아십니다.
우리나라의 국어 학자이자 시인이었던 ‘이희승’(李熙昇 1896년~1989년) 선생이 있었습니다. 호는 일석(一石)이며, 조선어학회에서 연구 활동을 했던 학자였습니다. 이분이 쓴 자서전인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자손들에게 대단히 강조한 삶의 유산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걱정은 하지 말 라”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가 수없이 듣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우리 속담에 “걱정도 팔자다.”라는 말도 있듯이, ‘쓸데없는 걱정은 아무른 의미가 없음’을 잘 압니다. 그런데 말하기는 쉽지만 알면서도 걸려 넘어지는 문지방처럼, 실행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걱정하지 말자!’라고 한다고 걱정이 안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무리 걱정을 하지 않으려 해도 구들장에 연기 새어나오듯이 걱정거리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라 어느새 두려움이 들게 합니다. 이런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길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용맹한 장군이었던 다윗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삼하 22:30)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모든 두려움과 염려를 이길 수 있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 모든 환경과 일들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심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을 아시는 것입니다. 시편 37:5-6절에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반면에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면 오히려 더 큰 두려움에 싸이게 되며,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잠언 11:28절에서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라고 했으며, 시편 146:3절에서는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버리고 사람을 의지한 교만의 대가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일들이 염려와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는 자신을 의지하거나 돈이나 권력자를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재테크나 노후대책, 보험이 자신의 행복이나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며, 이 광활한 우주의 모든 피조물을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삶을 맡기는 것이 진정한 지혜이며 행복의 길입니다. 본문의 수넴 여인은 바로 이 길을 알았습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선지자를 극진하게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로부터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본문 2절에서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속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라고 했습니다. 선지자의 말이라고 자신의 모든 땅과 집과 재산과 삶의 자리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러나 수넴 여인은 앞날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입니다.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은 자신을 의뢰하는 자들을 세밀하게 인도하십니다.
중국 내륙의 선교사였던 ‘허드슨 테일러’는 평생을 믿음으로 헌신했습니다. 그러나 선교의 일이 점점 많아지면서 협력자와 많은 선교비가 필요했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정신적 부담으로 고민하다가 마침내 신경쇠약에 걸릴 정도로 심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복음 15장을 읽다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는 말씀에 이르렀을 때에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이시고 나는 그 가지인데 내가 걱정할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주님께서 수분과 양분을 공급해 주는 나무이므로 가지인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데, 가지인 내가 수분과 양분을 공급하려고 애쓰고 있다니 어리석었구나. 주님! 이 시간부터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기겠사오니 책임져 주시옵소서.”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함을 시인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에는 깊은 평안으로 가득했습니다. 이후부터는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고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진정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수넴 여인이 자신의 모든 재산과 삶의 자리를 하나님께 맡겼던 그 믿음을 가지는 것,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자신의 고향을 미련 없이 떠났던 그 믿음을 가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다면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시편 37:5-6절에서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의뢰했던 수넴 여인의 믿음에 약속하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가 7년 동안 떠나 있던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잃어버린 땅과 집과 재산과 그동안 자신의 소유지에서 거둔 모든 소출까지 찾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그 나라의 왕을 통하여 가장 적절한 시간에 세밀하게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형통함’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실 때에 진정으로 형통한 삶이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입니다. 창세기 39:2절에서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하십니다.
본문 앞쪽의 열왕기하 6:8-23절에는 북 이스라엘을 침공한 아람 군대를 엘리사 선지자를 통하여 격파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람 군대가 북이스라엘을 공격할 때마다 번번이 이스라엘 군대가 미리 매복하여 오히려 자신들이 공격을 당했습니다. 아람 왕이 누군가 밀고자가 있다고 했을 때, 신하 중의 한 사람이 밀고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라는 선지자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가 아람 왕의 전략을 다 알고 미리 방비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람 왕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 온 군대를 보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엘리사 선지자의 사환이 밖에 나갔다가 아람 군대가 자신의 성읍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들어왔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에게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라고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하고는 태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환의 눈에 웅장한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하나님의 군대인 불 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 진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을 보고, 알지 못하는 미래를 생각하면 염려와 근심, 두려움이 일어날 뿐입니다. 엘리사의 사환처럼 “어떻게 하면 되지?”라고 염려와 두려움에 싸이게 됩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바라보십시오. 도움을 구하십시오. “영의 눈을 열어 보게 해 달라.”고, “미련한 마음을 깨우쳐서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나훔 1:7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아시고 그 환난을 피하는 산성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뢰하셔서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로 역사하시는 은혜를 매일의 삶에서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