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가 최선의 기회입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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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8-17 16:32
*** 지금 이 자리가 최선의 기회입니다. / 고린도전서 7:20-24
** 들어가는 말
고린도전서 7:20-24,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2004년 장애인의 날엔가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 시인이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낭송했던 ‘나’ 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서 남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재물도, 많은 지식도, 건강마저 없는 모든 것이 불충분한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는 여건입니다. 그러나 송명희 시인의 어느 시에도 원망이나 불평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우울해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실을 만족해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육신적으로는 남에게 있는 것 같지 못한 너무도 연약한 모습이지만,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남이 갖지 못한 영적인 깊은 체험을 하도록 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가져도 가져도 끝없이 더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좀 더 많이, 좀 더 편하게, 좀 더 높게 계속 자신의 소유와 영토를 넓히고 더 높은 직위를 원합니다. 이처럼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과 삶과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금 주어져 있는 자신의 삶과 환경에 대하여 만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8절에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13:5절에서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고의로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을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하12:7-8절입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이 말씀은 지금 다윗에게 있는 모든 것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만족할 줄 몰랐고, 그 욕망이 결국은 죄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사역했던 어느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와 권사를 세우기 위하여 공동의회를 열고 투표를 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몇몇 서리집사님들이 예배에 빠졌습니다. 심방을 했는데, 그 집사님은 ‘자신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집사 선출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돈을 벌어서 다시 교회에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해에는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해줄 것을 부탁했을 때에, 어느 집사님은 자신은 못한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는 것이 변변찮아서 못합니다. 좀 더 배우고 나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을 때에는 미래에 발전될 것을 예상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모습, 지금의 환경, 지금의 처지 있는 그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에 있는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나머지 모든 것들은 부르신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채울 것을 채우시고 버릴 것은 버리도록 역사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자신이 준비되도록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도 혹 그렇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면 오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자리가 최선의 기회’라고 하십니다.
※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최선의 자리입니다.
본문 20, 24절을 봅시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4절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이 말씀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실 때의 환경과 상황과 형편 그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 자신이 무엇인가를 바꾸어보려고 무리하게 애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자를 부르실 때에는 부르심의 목적이 있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목적을 두고 부르셨습니다. 크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43:21절을 봅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하셨고, 에베소서 1:3-6절에서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1:3-14절 사이에서 세 번씩이나 거듭 부르심의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함.’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는 아직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본래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일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부탁받을 때에도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로 변명하며 거절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말씀에 대한 모세의 경우를 봅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에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신 후였습니다. 모세는 그 모습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자신이 말주변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민족의 영도자로 사용하시려고 80년 동안이나 연단과 훈련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의 결정에 대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를 앞세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변명을 들어보십시오. 출애굽기 4:10절에서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1-12)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다시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모세의 형인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훗날 이 아론으로 인하여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큰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모세의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세상적인 삶을 핑계로 순종을 미루거나 거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좀 더 모으고, 준비한 후에 주의 일을 하겠노라고 미루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은 나의 환경이나 여건을 보고서 부르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준비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어진 이 자리가 최선의 자리임을 믿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시다.
※ 지금 주어진 것으로 기회를 삼으십시오.
본문 앞 쪽의 17절을 봅시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각 사람을 부르신 목적을 따라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여 일할 때에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면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 두 곳을 보겠습니다. 먼저 고린도후서 8:12절입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다음으로 누가복음 12:48절입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정하신 삶의 원리입니다. 곧“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주신 목적을 위하여 은사를 주셨고, 결산의 때에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얼마나 남겼는지를 결산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분수에 지나치지 말고 주어진 것으로 일하라고 하십니다. 3절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은사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은사를 따라 일하는 바른 자세를 함께 가르치십니다. 6-8절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기회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성실하게 사용하면 놀라운 역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학교에 여선생님이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과 어려운 처지로 인하여 자신감도 없고 자신의 소중함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한 가지의 일을 계획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학생을 차례로 불러서 파란 리본을 달아 주었습니다. 그 리본에는 “당신은 내게 특별한 존재입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몇 일후, 선생님은 파란 리본을 세 개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 리본을 달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두 개를 그 사람에게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주도록 부탁을 하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아이들의 경험을 보고받다가 놀라운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리본 세 개를 받아 들고는, 자기에게 특별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다가 언젠가 자기에게 등록금을 주신 회사의 부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말씀드리고는 파란 리본을 달아 주었습니다. 부사장은 무척 기뻐했으며, 두 개의 파란 리본을 가지고 자기의 사장을 찾았습니다. 사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사장은 아니었지만, 부사장은 사장에게 파란 리본을 달아주면서 유능하고 천재적인 사장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사장은 부사장이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칭찬을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장은 부사장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하나의 리본을 누구에게 달아줄까 생각하다가 자기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사업하느라고 아들과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늘 꾸중만 해왔던 것이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아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을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한참을 울던 아들이 ‘사실은 오늘 밤에 자살을 하려고 결심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자살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함께 울었다고 했습니다.
성도 각 자에게 주어진 은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지지 않은 다른 것을 얻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지금 있는 것으로 성실하게 일하노라면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것으로 기회를 삼으십시오.
자신의 것이 다른 사람에 비하여 너무 보잘 것 없다고 생각이 듭니까? 은사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은사를 활용하는 영의 직분에도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은사나 직분이 동일합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결산의 때에 각자의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8절입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주의 하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은 마치 새싹처럼 관심을 기울일수록 더 강하게 자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할 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출전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믿음으로 주어진 기회를 최선의 기회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아마존 밀림에서는 나무를 벌목한 다음 강물에 띄워서 하류로 보냅니다. 하류에서는 떠내려 온 원목을 걷어 가공하여 상품을 만듭니다. 이 떠내려가던 원목들이 종종 얽혀서 멈추어 서버린다고 합니다. 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굴곡이 생기면 거기에서 엉켜버립니다. 그러나 벌목공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뒤엉켜 있는 나무들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막고 있는 나무하나만 건드려 주면 다시 순조롭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뒤엉킨 수많은 나무들을 움직이게 하는 단 하나의 나무, 그것을 '킹핀(King pin)'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도 핵심을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을 알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자신과 자녀들의 성공과 행복을 바라는 기회도 멀리 있지 않습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머물고 있는 그 자리가 최선의 기회입니다. 지금 있는 것으로,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시작하십시오. 바로 지금이 내 생애의 최고의 때이며,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주님이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매일의 삶이 기쁨과 보람과 감사로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고린도전서 7:20-24,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2004년 장애인의 날엔가 뇌성마비 장애인 송명희 시인이 텔레비전에 출연하여 낭송했던 ‘나’ 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서 남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재물도, 많은 지식도, 건강마저 없는 모든 것이 불충분한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는 여건입니다. 그러나 송명희 시인의 어느 시에도 원망이나 불평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우울해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실을 만족해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육신적으로는 남에게 있는 것 같지 못한 너무도 연약한 모습이지만, 그 대신 하나님께서는 남이 갖지 못한 영적인 깊은 체험을 하도록 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가져도 가져도 끝없이 더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좀 더 많이, 좀 더 편하게, 좀 더 높게 계속 자신의 소유와 영토를 넓히고 더 높은 직위를 원합니다. 이처럼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과 삶과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금 주어져 있는 자신의 삶과 환경에 대하여 만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8절에서.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셨고, 히브리서 13:5절에서는,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고의로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을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하12:7-8절입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이 말씀은 지금 다윗에게 있는 모든 것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만족할 줄 몰랐고, 그 욕망이 결국은 죄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사역했던 어느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와 권사를 세우기 위하여 공동의회를 열고 투표를 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몇몇 서리집사님들이 예배에 빠졌습니다. 심방을 했는데, 그 집사님은 ‘자신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집사 선출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돈을 벌어서 다시 교회에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해에는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해줄 것을 부탁했을 때에, 어느 집사님은 자신은 못한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는 것이 변변찮아서 못합니다. 좀 더 배우고 나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을 때에는 미래에 발전될 것을 예상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모습, 지금의 환경, 지금의 처지 있는 그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에 있는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나머지 모든 것들은 부르신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채울 것을 채우시고 버릴 것은 버리도록 역사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자신이 준비되도록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봅니다. 여러분도 혹 그렇습니까? 아직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확신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다면 오늘 말씀을 주의 깊게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자리가 최선의 기회’라고 하십니다.
※ 지금 있는 이 자리가 최선의 자리입니다.
본문 20, 24절을 봅시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4절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이 말씀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실 때의 환경과 상황과 형편 그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즉 우리 자신이 무엇인가를 바꾸어보려고 무리하게 애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라는 의미는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자를 부르실 때에는 부르심의 목적이 있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목적을 두고 부르셨습니다. 크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43:21절을 봅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하셨고, 에베소서 1:3-6절에서는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1:3-14절 사이에서 세 번씩이나 거듭 부르심의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함.’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는 아직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본래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일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부탁받을 때에도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로 변명하며 거절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말씀에 대한 모세의 경우를 봅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에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신 후였습니다. 모세는 그 모습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자신이 말주변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민족의 영도자로 사용하시려고 80년 동안이나 연단과 훈련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의 결정에 대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를 앞세워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변명을 들어보십시오. 출애굽기 4:10절에서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1-12)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다시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모세의 형인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훗날 이 아론으로 인하여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큰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모세의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세상적인 삶을 핑계로 순종을 미루거나 거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좀 더 모으고, 준비한 후에 주의 일을 하겠노라고 미루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은 나의 환경이나 여건을 보고서 부르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준비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주어진 이 자리가 최선의 자리임을 믿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합시다.
※ 지금 주어진 것으로 기회를 삼으십시오.
본문 앞 쪽의 17절을 봅시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 각 사람을 부르신 목적을 따라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여 일할 때에 각 사람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면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 두 곳을 보겠습니다. 먼저 고린도후서 8:12절입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다음으로 누가복음 12:48절입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정하신 삶의 원리입니다. 곧“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주신 목적을 위하여 은사를 주셨고, 결산의 때에 그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얼마나 남겼는지를 결산할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분수에 지나치지 말고 주어진 것으로 일하라고 하십니다. 3절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은사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은사를 따라 일하는 바른 자세를 함께 가르치십니다. 6-8절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기회를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성실하게 사용하면 놀라운 역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학교에 여선생님이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과 어려운 처지로 인하여 자신감도 없고 자신의 소중함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한 가지의 일을 계획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학생을 차례로 불러서 파란 리본을 달아 주었습니다. 그 리본에는 “당신은 내게 특별한 존재입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몇 일후, 선생님은 파란 리본을 세 개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 리본을 달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두 개를 그 사람에게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주도록 부탁을 하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아이들의 경험을 보고받다가 놀라운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리본 세 개를 받아 들고는, 자기에게 특별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다가 언젠가 자기에게 등록금을 주신 회사의 부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말씀드리고는 파란 리본을 달아 주었습니다. 부사장은 무척 기뻐했으며, 두 개의 파란 리본을 가지고 자기의 사장을 찾았습니다. 사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사장은 아니었지만, 부사장은 사장에게 파란 리본을 달아주면서 유능하고 천재적인 사장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사장은 부사장이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칭찬을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장은 부사장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하나의 리본을 누구에게 달아줄까 생각하다가 자기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사업하느라고 아들과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늘 꾸중만 해왔던 것이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아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을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한참을 울던 아들이 ‘사실은 오늘 밤에 자살을 하려고 결심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자살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함께 울었다고 했습니다.
성도 각 자에게 주어진 은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지지 않은 다른 것을 얻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지금 있는 것으로 성실하게 일하노라면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것으로 기회를 삼으십시오.
자신의 것이 다른 사람에 비하여 너무 보잘 것 없다고 생각이 듭니까? 은사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은사를 활용하는 영의 직분에도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은사나 직분이 동일합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결산의 때에 각자의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8절입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주의 하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은 마치 새싹처럼 관심을 기울일수록 더 강하게 자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할 때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출전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믿음으로 주어진 기회를 최선의 기회로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아마존 밀림에서는 나무를 벌목한 다음 강물에 띄워서 하류로 보냅니다. 하류에서는 떠내려 온 원목을 걷어 가공하여 상품을 만듭니다. 이 떠내려가던 원목들이 종종 얽혀서 멈추어 서버린다고 합니다. 물을 따라 흘러가다가 굴곡이 생기면 거기에서 엉켜버립니다. 그러나 벌목공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뒤엉켜 있는 나무들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막고 있는 나무하나만 건드려 주면 다시 순조롭게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뒤엉킨 수많은 나무들을 움직이게 하는 단 하나의 나무, 그것을 '킹핀(King pin)'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도 핵심을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과를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을 알면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습니다. 문제에 대한 답은 결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자신과 자녀들의 성공과 행복을 바라는 기회도 멀리 있지 않습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머물고 있는 그 자리가 최선의 기회입니다. 지금 있는 것으로,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시작하십시오. 바로 지금이 내 생애의 최고의 때이며,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주님이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매일의 삶이 기쁨과 보람과 감사로 넘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