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기다림과 인내로 얻는 열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12,680회 작성일 2011-07-21 16:31
*** 기다림과 인내로 얻는 열매 / 야고보서 5:7-11

** 들어가는 말

야고보서 5:7-11, “7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요즈음 사람들이 잘 못하는 것 중의 하나는 ‘기다리고 참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사람들은 ‘인스턴트 시대’라고 부릅니다. 모든 것이 편리하고 즉석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인스턴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오래 참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커피도 즉석에서 뽑아 마셔야 되고, 라면도 5분에서 3분 라면으로, 요즘은 물만 부으면 먹을 수 있는 즉석 라면이 인기라고 합니다. 미국의 어느 식당에는 주문 후 3분 내로 음식을 가져오지 못하면 음식 값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전 세계의 정보를 순식간에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스피드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사람들의 인내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생활습관을 관찰 조사한 통계를 보면 현대인은, ➀교통 신호가 바뀌고 나서 0.5초 내에 앞차가 출발하지 않으면 뒤차의 운전사가 짜증을 내고 ➁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3분을 넘기면 걸어서 올라가고 ➂택시를 기다리는 시간이 5분 이상 되면 기다리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택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성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일이나 생활 속에서의 신앙의 일들도 빨리 진행되고, 결과도 신속하게 나오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오래 참고 기다리며 기도하는 성도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껏 몇 번 기도하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돌아서는 경우도 수없이 많습니다. 육신의 병을 치료하거나, 사업을 추진하는 일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에 관계되는 중대한 일이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21:19절에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30:18절에서는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신구약의 모든 성경은 기다림과 인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기다리고 인내해야 하며, 기다림과 인내를 통하여 얻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 앞쪽에는 의인을 핍박하는 사악한 부자들에 대하여 신랄한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어지는 본문말씀에서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위로의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의 임박한 재림을 바라며, 모든 생활과 환경에서 끈기 있게 참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내해야 하는 사람의 실례로서,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는 농부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른 비(10월-11월)가 농작물을 심은 다음에 오고, 늦은 비(4월-5월)는 그것이 무르익을 때 옵니다. 이처럼 이른 비와 늦은 비는 농작물이 잘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려움을 만나면 긴장하게 되고, 감정이 민감하게 되어 서로 불평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경고로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원망은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한 것이며, 생명이 달린 심각한 죄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처음 복음을 전하며,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선포했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큰 소망을 안고 신앙에 열중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계속 지연되자 성도들의 신앙이 시들해지기 시작했고, 개중에는 형제를 원망하는 자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성도들의 조급함을 꾸짖고,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인내의 본으로서 농부와 구약의 선지자들과 의인 욥을 소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시겠습니까?

※ 먼저 기다림과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인도 선교사로 사역했던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의 일화입니다. 젊은 나이에 인도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인도 사람들은 회개하지도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습니다. 성과 없는 일에 너무나 지친 존스 선교사는 사과나무 밑에 쓰러져 누웠습니다. 그 때 나무 사이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스탠리 존스, 피곤하지? 지쳤지?” “예, 하나님, 지쳤습니다.” “왜 지쳤느냐?” “제가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저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아무런 열매가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곧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것이다.”

우리가 기다림과 인내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위함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구원과 영생의 복을 받기 위함입니다. 히브리서 10:36절에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셨고, 로마서 8:24-25절에서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하십니다. 앞서 보았던 누가복음 21:19절에서도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기다리고 인내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일들을 잘 감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룰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합니다. 왜 그렇게 기다려야 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의 생활환경과 모든 삶의 여건들, 매일 당면하는 모든 일들을 다스리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0:26절에서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고 하시며, 45:12절에서는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뜻대로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30:18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작은 지식으로 때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게 해달라고 떼를 쓰지 말고, 모든 것을 정확한 때에 이끌어 내시는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려놓고 이른 비를 기다립니다. 팔레스타인의 농부들은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립니다. 이른 비는 10월 하순에서 11월 상순 사이에, 늦은 비는 4월과 5월 사이에 내립니다. 농부들은 비를 기다리는 데 절대로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때가 되면 비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유 있게 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기 전에 해두어야 할 일에 전념했습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가 이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때와 기한은 이미 정해졌지만 우리가 알 수 없을 뿐입니다. 우리가 조급한 마음으로 기다린다고 해서 앞당겨지거나, 게으르고 나태하다고 늦춰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주님을 기다리되 부끄러움 없이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인내해야 합니다.

※ 기다림과 인내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래 참으면서 기다리는 일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도 없이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인내하며 기다리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기를 소망하는 기다림입니다. 히브리서 10:36절에서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고 하시면서, 38-39절에서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물러가거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할 분명한 목적을 보여주십니다. 즉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게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이르는 그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작정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혼이 구원함에 이르도록 믿음을 지키며 온갖 수모와 고통까지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놀란드 헤이즈’라는 흑인 가수가 독일의 베를린에서 독창회를 열었습니다. 객석을 채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백인이었습니다. 막이 오르고 헤이즈가 노래를 시작하려 할 때, 객석에서 누군가 “흑인의 노래는 들을 수 없다. 검둥아, 노래를 집어 치워라.”는 야유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온갖 물건들이 무대로 날아왔습니다. 헤이즈는 놀랐고, 치욕스러워서 야유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무대를 나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앞이 밝아지면서 환상이 보였습니다. 환상은 빌라도 법정에 서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온갖 모욕을 다 겪으면서도 아무 말 없이 서계신 주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헤이즈는 무대를 나갈 수 없어서 다시 청중을 향하여 돌아섰습니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객들도 점점 조용해지면서 자리가 정리되었습니다. 10여 분이 지난 후, 헤이즈는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부르는 노래는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마지막 노래가 끝났을 때,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8-19)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을 결코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죄인이라고 부르며, 세상의 것을 버리고 사탄의 수하에서 떠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은 이 세상의 권세를 잡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유혹과 고통으로 훼방합니다. 이 영적 싸움에서 지면 사탄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고통과 유혹에도 견디며 하나님께로 향하는 믿음을 지키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10-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지킨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잠시 닥치는 어려움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에 빠지게 되면 영원한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게 됩니다. 세상에서의 삶은 기껏 100여년입니다. 잘 먹고, 잘 입고,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누린들 얼마나 하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추방당하는 사람들이 당하는 ‘불못’의 고통은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고통과 괴로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의 삶이 조금 힘들고 어렵더라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이루실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잠시의 즐거움을 위하여 자신의 영혼을 파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을 끝까지 견디며 지켜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4:12절에서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도록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인 선지자들이나, 모진 고난을 이겨낸 욥의 인내의 믿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인내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때가 찼을 때에 충만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본문 11절에서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하십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자녀와 재산과 건강을 잃고 생명만을 부지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위로하러 찾아온 친구들까지도 그의 마음을 심히 괴롭게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결코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끈질기게 하나님 만나 뵙기를 간청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욥을 만나 주셨으며, 욥은 이전의 삶의 갑절의 복을 받았습니다. 더 나은 행복을 위하여 덜 중요한 것을 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욥의 끈질긴 인내의 신앙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욥에게 베푸셨던 하나님의 복을 우리도 받아 누리는 인내의 믿음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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