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있는 소망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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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6-10 13:48
*** 가치 있는 소망 / 로마서 5:1-8
** 들어가는 말
로마서 5:1-8,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소망, 희망, 꿈. 이런 단어들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긍정적인 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목표이며 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라 할지라도 소망을 가진 사람은 절망하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지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소망이 없으면 쉽게 무너지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19절에서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현대어성경/반드시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 확고한 희망은 마치 우리 영혼을 이끄는 튼튼하고 믿을 만한 닻과 같아서 우리를 하늘의 지성소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 이르게 해줍니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의 소망은 하나님께 이르게 하는 길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힘이 되고 용기를 주면 어떤 환경에서도 견디게 하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소망이 인생의 힘이 되며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꿈과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육신적인 것이든지, 정신적인 것이든지, 영적인 것이든지, 아니면 개인적이거나 공동체적인 것 등 수많은 종류의 꿈과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꿈과 희망이 가치 있는 소망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소망은 오히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9절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돈을 소망하면 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에베소서 1:18-19절에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져도 영과 육신의 삶에 유익이 되는 가치 있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소망이 되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서신의 일부분입니다. 로마교회는 아직 복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복음을 잘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기에 앞서 이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어린아이와 같은 로마교회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전한 복음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내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즉 이신득의(以信得義)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나타내야 할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장차 이룰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소망은 장차 이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보장하기 위하여 성령님을 보내 주셨고, 이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하시려고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언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주어졌습니다. 본문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성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는 우리의 소망을 확실하게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 있는 소망을 살펴봅시다.
※ 가치 있는 소망은 변함없는 마음과 담는 그릇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즐겨 기르는 관상어 중에 ‘코이’라는 비단잉어가 있습니다. 이 어종은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특이성은 사는 환경에 따라 스스로 체형을 조절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코이를 집 안에서 작은 어항에 넣어 기르면 5∼8cm 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똑같은 코이를 정원의 작은 연못에 넣어두면 15-25cm정도 자라고, 강에서는 1m 이상까지도 자란다고 합니다.
코이라는 비단잉어는 자기가 숨 쉬고 활동하는 세계의 크기에 따라 조무래기가 될 수도 있고, 값비싼 대어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가지는 소망도 그러합니다. 똑같은 물질에 대한 소망이라 할지라도 도둑이나 사기꾼이 가지는 소망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헤치는 것이 됩니다. 디모데전서 6:9-10절의 말씀처럼 파멸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는 물질의 소망은 오히려 사람을 살리며, 구원으로 인도하는 가치 있는 소망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구제나 봉사의 80% 이상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부요함을 소망한다면 먼저 자신의 그릇부터 바르게 준비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나 자신의 가정만을 위하여 물질을 소망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16-21절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20-21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목사가 좋은 말을 하고 축복해서 복을 받는다면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을 받고 소망이 이루려면 그만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의 성공과 물질의 부요함을 소망한다면 하나님께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에 대하여는 디모데후서 2:20-2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이 준비하는 만큼 쓰임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준비하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꿈만 꾸고 소망만 가진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린 사람이 그냥 앉아서 풍성한 식탁의 꿈만 꾸고 있다면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풍성한 식탁을 소망한다면 음식을 구할 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적어도 구걸이라도 해야 음식이 생길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께 쓰임 받고, 가치 있는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그릇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되도록 인내하면서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합당한 그릇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어떤 청년이 자기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이 물질적으로 성공하여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만일 하나님이 저를 성공하게 하신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청년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청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청년의 사업이 성공하여 번창했습니다. 십일조도 약속한 대로 잘 지켜서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예전의 그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사업이 성공하여 많은 재물을 벌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예전에 제가 약속했던 십일조를 더 이상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유를 묻는 목사님께 청년은 금액이 너무 커서 드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들은 목사님은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서 이 젊은이의 소망을 들으시고 복을 주셔서 창대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수입이 너무 많아서 약속한 십일조를 드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취소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제 이 청년이 십일조를 시작한 날의 수임으로 되돌리셔서 십일조를 계속하여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청년이 갑자기 기도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목사님, 잘 못했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구하지 마십시오. 계속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억만 장자인 ‘존 록펠러’는 가난한 소년이었을 때에 십일조를 드리면서 “최고의 십일조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가난한 소년이었을 때에 내가 십일조 드리는 일을 배우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수백만 달러의 십일조를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십시오. 이것이 자신의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울 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약속합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이루거나 잘 되었을 때에는 그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이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변하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골로새서 1:21-23절을 봅시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고 하십니다.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가치 있는 소망을 담을 그릇에 대하여도 전했고, 소망을 담은 마음이 변함이 없어야 함도 전했습니다. 이제, 가장 가치 있는 소망을 말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서의 물질적인 소망이나, 성공에 대한 소망이나, 행복에 대한 소망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소망의 근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소망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생명을 주셨으며,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본문 5-6절을 다시 봅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다 할지라도 이 소망에 참예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소망이 없으면 다른 어떤 소망도 이룰 수 없으며, 이룬다 할지라도 바깥 어두운데 버려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거듭 당부합니다. 가치 있는 소망을 원하신다면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신뢰하고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환경에 따라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으로 자신의 소망을 이루게 하는 그릇이 되게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당부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생각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을 가치 있게 하시고 반드시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이 말씀을 듣는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로마서 5:1-8,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소망, 희망, 꿈. 이런 단어들은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긍정적인 말입니다. 이런 말들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목표이며 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라 할지라도 소망을 가진 사람은 절망하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지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소망이 없으면 쉽게 무너지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6:19절에서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현대어성경/반드시 구원받는다고 하는 이 확고한 희망은 마치 우리 영혼을 이끄는 튼튼하고 믿을 만한 닻과 같아서 우리를 하늘의 지성소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 이르게 해줍니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의 소망은 하나님께 이르게 하는 길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힘이 되고 용기를 주면 어떤 환경에서도 견디게 하며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러나 모든 소망이 인생의 힘이 되며 가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의 꿈과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육신적인 것이든지, 정신적인 것이든지, 영적인 것이든지, 아니면 개인적이거나 공동체적인 것 등 수많은 종류의 꿈과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꿈과 희망이 가치 있는 소망이 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소망은 오히려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9절에서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신 말씀처럼, 돈을 소망하면 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에베소서 1:18-19절에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소망을 가져도 영과 육신의 삶에 유익이 되는 가치 있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가치 있는 소망이 되겠습니까?
※ 본문말씀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서신의 일부분입니다. 로마교회는 아직 복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복음을 잘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떠나기에 앞서 이 편지를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어린아이와 같은 로마교회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생명을 다하여 전한 복음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내용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언급하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즉 이신득의(以信得義)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에서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나타내야 할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즉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장차 이룰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소망은 장차 이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을 보장하기 위하여 성령님을 보내 주셨고, 이 소망을 잃지 않도록 하시려고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 언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으로 있을 때에 주어졌습니다. 본문 8절에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성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영광을 소망하는 우리의 소망을 확실하게 보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가치 있는 소망을 살펴봅시다.
※ 가치 있는 소망은 변함없는 마음과 담는 그릇에 달려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즐겨 기르는 관상어 중에 ‘코이’라는 비단잉어가 있습니다. 이 어종은 특이한 체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특이성은 사는 환경에 따라 스스로 체형을 조절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코이를 집 안에서 작은 어항에 넣어 기르면 5∼8cm 밖에 자라지 않습니다. 똑같은 코이를 정원의 작은 연못에 넣어두면 15-25cm정도 자라고, 강에서는 1m 이상까지도 자란다고 합니다.
코이라는 비단잉어는 자기가 숨 쉬고 활동하는 세계의 크기에 따라 조무래기가 될 수도 있고, 값비싼 대어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이 가지는 소망도 그러합니다. 똑같은 물질에 대한 소망이라 할지라도 도둑이나 사기꾼이 가지는 소망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헤치는 것이 됩니다. 디모데전서 6:9-10절의 말씀처럼 파멸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지는 물질의 소망은 오히려 사람을 살리며, 구원으로 인도하는 가치 있는 소망이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시행되는 구제나 봉사의 80% 이상이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의 부요함을 소망한다면 먼저 자신의 그릇부터 바르게 준비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이나 자신의 가정만을 위하여 물질을 소망한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16-21절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20-21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만일 목사가 좋은 말을 하고 축복해서 복을 받는다면 저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을 받고 소망이 이루려면 그만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의 성공과 물질의 부요함을 소망한다면 하나님께 합당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그릇에 대하여는 디모데후서 2:20-2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신이 준비하는 만큼 쓰임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준비하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꿈만 꾸고 소망만 가진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린 사람이 그냥 앉아서 풍성한 식탁의 꿈만 꾸고 있다면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풍성한 식탁을 소망한다면 음식을 구할 방법을 찾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적어도 구걸이라도 해야 음식이 생길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께 쓰임 받고, 가치 있는 소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의 그릇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되도록 인내하면서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합당한 그릇이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합니까?
어떤 청년이 자기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이 물질적으로 성공하여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면서
“목사님, 만일 하나님이 저를 성공하게 하신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 중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고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청년을 위해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청년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청년의 사업이 성공하여 번창했습니다. 십일조도 약속한 대로 잘 지켜서 계속 늘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예전의 그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사업이 성공하여 많은 재물을 벌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예전에 제가 약속했던 십일조를 더 이상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유를 묻는 목사님께 청년은 금액이 너무 커서 드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를 들은 목사님은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주님께서 이 젊은이의 소망을 들으시고 복을 주셔서 창대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수입이 너무 많아서 약속한 십일조를 드릴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한 약속을 취소할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제 이 청년이 십일조를 시작한 날의 수임으로 되돌리셔서 십일조를 계속하여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
청년이 갑자기 기도를 중단시켰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간청했습니다.
“목사님, 잘 못했습니다.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때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구하지 마십시오. 계속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억만 장자인 ‘존 록펠러’는 가난한 소년이었을 때에 십일조를 드리면서 “최고의 십일조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셨고,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가난한 소년이었을 때에 내가 십일조 드리는 일을 배우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수백만 달러의 십일조를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배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십시오. 이것이 자신의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울 때, 어떤 일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약속합니다. 그러나 일이 뜻대로 이루거나 잘 되었을 때에는 그 약속을 잊어버립니다. 이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변하면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골로새서 1:21-23절을 봅시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고 하십니다. 소망이 확실한 사람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 유혹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두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십니다.
가치 있는 소망을 담을 그릇에 대하여도 전했고, 소망을 담은 마음이 변함이 없어야 함도 전했습니다. 이제, 가장 가치 있는 소망을 말해야 하겠습니다. 이 땅에서의 물질적인 소망이나, 성공에 대한 소망이나, 행복에 대한 소망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소망의 근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소망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생명을 주셨으며,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본문 5-6절을 다시 봅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다 할지라도 이 소망에 참예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소망이 없으면 다른 어떤 소망도 이룰 수 없으며, 이룬다 할지라도 바깥 어두운데 버려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거듭 당부합니다. 가치 있는 소망을 원하신다면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신뢰하고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환경에 따라 마음이 변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으로 자신의 소망을 이루게 하는 그릇이 되게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당부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의 생각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을 가치 있게 하시고 반드시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이 말씀을 듣는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