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생명으로 통하는 문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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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5-25 12:56
*** 풍성한 생명으로 통하는 문 / 요한복음 10:3-10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0:7-10,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옛날 어느 마을에 한 거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이 집 저 집 밥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 거지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부자들은 너무 욕심이 많아서 탈이야. 그저 돈 돈하면서 더욱 돈만 모으려고 한단 말이야. 어휴, 나는 조금만 있어도 만족할 텐데 …”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는 거지의 말을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천사가 들었습니다.
“아저씨, 지금 돈이 조금만 있어도 만족하겠다고 하셨지요? 제가 돈을 조금 드릴까요?”
그 거지는 너무 기뻤습니다. 천사는 거지에게, “그 자루를 벌리세요.”라고 하고는 번쩍 번쩍 빛나는 금돈을 자루에 몇 개 넣어 주었습니다. “이젠 되셨지요?” 그러자 그 거지는 “아니, 조금만 더”라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금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자루가 찢어져 금돈이 땅에 떨어지면 흙으로 변하고 만답니다.” 그러나 거지는 “그래도 이건 너무 적지 않습니까?”하면서 거지는 계속 자루를 벌렸고, 천사는 또 금돈을 넣어 주었습니다. 이미 금돈은 자루의 반을 넘게 찼습니다. 천사는 “자 이제는 됐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지는 천사의 손목을 잡고 “조금만 더 주세요.”하면서 자꾸만 더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는 순간 자루가 찢어지면서 금돈이 땅에 와르르 쏟아졌습니다. 금돈은 땅에 닿기가 무섭게 모두 흙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의 끝없는 욕망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이 거지처럼 없을 때에는 ‘조금만 있어도 만족할 텐데!’ 라고 하지만, 기회만 주어지면 끝없는 욕망의 자루를 채우려합니다. 서 있을 때에는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 있으면 자고 싶다고 하지 않던가요? 이러한 인간의 욕심은 대부분이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이런 욕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풍성한 삶이라든지, 편안하고 안락한 삶, 자신의 뜻을 이루는 성취감 등.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한다고 욕심이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욕심을 통하여 이르게 되는 길의 끝은 파멸과 죽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15절에서 경고하시기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십니다.
혹,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짓누르고서라도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 그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잘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시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말 3:15)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악한 자들의 결말이 파멸과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전도서 8:11절에서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고 하시며, 말라기 4:1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을 삶의 전부로 여기고 사는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후서 3:10-11상반절에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소망하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습니까?
※ 본문말씀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선한목자비유’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제사장 무리들은 자신들만이 교회의 목자이며 지도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젊은 선지자가 나타나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목자를 사칭하는 가짜로 매도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참 목자와 거짓 목자의 차이점을 비유로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의 정체를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나 무리들은 ‘선한목자비유’를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본문 앞쪽의 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문 이하의 말씀으로 상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시면서, 참 목자가 예수님 당신 자신이심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 외에 구원의 복음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자칭 목자들은 모두 “절도와 강도”라고 하십니다. 절도와 강도들은 목자가 아니라 삯꾼으로서,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어 들어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삯꾼의 특징은 위태로운 일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참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면서 양을 지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참 목자는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양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고,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생명을 얻는 길’을 찾아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 풍성한 생명으로 통하는 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많은 강도와 절도가 생명의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들어와 양을 훔치고, 영혼을 도둑질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선한 목자의 가면을 쓴 수많은 거짓 목자가 있고, 삯꾼들도 있고, 심지어 절도와 강도도 섞여 있어서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짜보다 더 그럴듯한 말로 꾸며서 자기를 선한 목자인척 하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쳐준다. 만사형통한 복을 받게 한다. 예언을 통해 앞날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거짓 이적과 기적을 보여주면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미리 가르쳐주시면서 주의를 당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21-22절입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더 위험한 사상들이 나타났습니다. '타종교와의 대화'라고 하면서 어떤 신학자들, 목회자들이 다른 종교들과의 화합을 꾀하는 것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교묘한 방법으로 종교다원화를 부추기고, ‘관상기도’라는 것을 끌어들여서 사탄의 세력에 물들게 합니다. 어저께는 ‘전통문화연구회’라는 곳에서 ‘이제 종교간 갈등과 전쟁은 없다.’라는 타이틀을 걸고는 성경까지도 바꾸려하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같은 위치에 두고 다른 종교와 협력자로서 공존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목자를 가장한 거짓목자들이 하는 짓이며, 죽음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즉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의 문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뿐만 아니라, 인생의 온 삶을 풍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만족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말씀처럼 예수님은 영의 삶과 육신의 삶 모두를 풍성하게 하시며 만족을 누리게 하시는 인생의 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죽은 영혼을 살리며,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참된 풍성함이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삽니다. 그런데도 늘 ‘죽겠다.’는 소리가 나오며, 인생에 별 성과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삶이 즐겁거나 만족한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혼자서 바쁘고 조급해서 안절부절 못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을 외면하고 자기 힘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인 되지 않는 삶은 만족이 없습니다. 세상의 소유나 육신의 쾌락으로는 결코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외면하고 있으면 아무리 대궐 같은 집과 많은 재물이 있어도 기쁨도 만족도 느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4-5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미국의 9.11테러 사건이 있은 후로 전 세계가 출입국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오사마 빈 라덴’이 죽임을 당한 후로는 전세계에 테러 비상이 결렸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이태리로 출장을 갔다가 일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하여 시간에 쫓겨 출항시간에 임박하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공항의 검색이 까다롭기로 유명하여 무려 네 번의 검색을 거친다고 합니다. 세관, 이민국, 외화 반출 검사대, 마지막으로 면역소를 거친다고 합니다. 이 사업가는 비행기를 놓칠까봐 안절부절못하면서 발을 동동 구릅니다. 마음이 조급해 있는데,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하는 말이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탑승하기 전까지는 비행기 문이 절대로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원래 이 공항의 수속 시간은 오래 걸립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 사업가는 “당신이 무엇을 믿고 그렇게 장담하느냐?”고 쏘아붙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뒤에 서있던 신사가 한 마디 합니다. “내가 바로 당신이 탈 비행기 조종사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주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면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면서 때를 기다리십시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달하지 말고, 주님이 이루실 때를 믿고 최선을 다하여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더디다고 생각되더라도 인내하며 기다리십시오. 하박국 2:3절에서 안달하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이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본문 9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현대어 성경으로 다시 읽습니다. “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그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며 좋은 풀을 얻을 것이다.” 또한 10절 후반절에서는, “나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해주기 위해 온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서 주님이 이루시는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0:7-10,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옛날 어느 마을에 한 거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이 집 저 집 밥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어느 날 그 거지는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부자들은 너무 욕심이 많아서 탈이야. 그저 돈 돈하면서 더욱 돈만 모으려고 한단 말이야. 어휴, 나는 조금만 있어도 만족할 텐데 …”
이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는 거지의 말을 하늘나라에서 내려온 천사가 들었습니다.
“아저씨, 지금 돈이 조금만 있어도 만족하겠다고 하셨지요? 제가 돈을 조금 드릴까요?”
그 거지는 너무 기뻤습니다. 천사는 거지에게, “그 자루를 벌리세요.”라고 하고는 번쩍 번쩍 빛나는 금돈을 자루에 몇 개 넣어 주었습니다. “이젠 되셨지요?” 그러자 그 거지는 “아니, 조금만 더”라고 말했습니다. “아저씨, 금돈은 얼마든지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자루가 찢어져 금돈이 땅에 떨어지면 흙으로 변하고 만답니다.” 그러나 거지는 “그래도 이건 너무 적지 않습니까?”하면서 거지는 계속 자루를 벌렸고, 천사는 또 금돈을 넣어 주었습니다. 이미 금돈은 자루의 반을 넘게 찼습니다. 천사는 “자 이제는 됐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지는 천사의 손목을 잡고 “조금만 더 주세요.”하면서 자꾸만 더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는 순간 자루가 찢어지면서 금돈이 땅에 와르르 쏟아졌습니다. 금돈은 땅에 닿기가 무섭게 모두 흙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람의 끝없는 욕망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이 거지처럼 없을 때에는 ‘조금만 있어도 만족할 텐데!’ 라고 하지만, 기회만 주어지면 끝없는 욕망의 자루를 채우려합니다. 서 있을 때에는 앉고 싶고, 앉아 있으면 눕고 싶고, 누워 있으면 자고 싶다고 하지 않던가요? 이러한 인간의 욕심은 대부분이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이런 욕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풍성한 삶이라든지, 편안하고 안락한 삶, 자신의 뜻을 이루는 성취감 등.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원한다고 욕심이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욕심을 통하여 이르게 되는 길의 끝은 파멸과 죽음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15절에서 경고하시기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십니다.
혹, 여러분의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짓누르고서라도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 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지’ 그뿐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잘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시대의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말 3:15)고 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악한 자들의 결말이 파멸과 죽음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전도서 8:11절에서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고 하시며, 말라기 4:1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을 삶의 전부로 여기고 사는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사는 동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후서 3:10-11상반절에서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고 소망하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할 수 있습니까?
※ 본문말씀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선한목자비유’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제사장 무리들은 자신들만이 교회의 목자이며 지도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젊은 선지자가 나타나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자신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목자를 사칭하는 가짜로 매도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참 목자와 거짓 목자의 차이점을 비유로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의 정체를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나 무리들은 ‘선한목자비유’를 깨닫지를 못했습니다. 본문 앞쪽의 6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문 이하의 말씀으로 상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시면서, 참 목자가 예수님 당신 자신이심을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 외에 구원의 복음을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자칭 목자들은 모두 “절도와 강도”라고 하십니다. 절도와 강도들은 목자가 아니라 삯꾼으로서,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담을 넘어 들어가서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삯꾼의 특징은 위태로운 일을 당하거나, 어려움을 당하면 양을 버리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참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리면서 양을 지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참 목자는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양으로 표현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얻고,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릴 수 있는지를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생명을 얻는 길’을 찾아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 풍성한 생명으로 통하는 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많은 강도와 절도가 생명의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들어와 양을 훔치고, 영혼을 도둑질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선한 목자의 가면을 쓴 수많은 거짓 목자가 있고, 삯꾼들도 있고, 심지어 절도와 강도도 섞여 있어서 분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짜보다 더 그럴듯한 말로 꾸며서 자기를 선한 목자인척 하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쳐준다. 만사형통한 복을 받게 한다. 예언을 통해 앞날을 보여준다.’고 하면서 거짓 이적과 기적을 보여주면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미리 가르쳐주시면서 주의를 당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3:21-22절입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게도 스스로 죽음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더 위험한 사상들이 나타났습니다. '타종교와의 대화'라고 하면서 어떤 신학자들, 목회자들이 다른 종교들과의 화합을 꾀하는 것입니다. 세계교회협의회(WCC)가 교묘한 방법으로 종교다원화를 부추기고, ‘관상기도’라는 것을 끌어들여서 사탄의 세력에 물들게 합니다. 어저께는 ‘전통문화연구회’라는 곳에서 ‘이제 종교간 갈등과 전쟁은 없다.’라는 타이틀을 걸고는 성경까지도 바꾸려하고 있습니다. 즉 기독교도 다른 종교와 같은 위치에 두고 다른 종교와 협력자로서 공존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목자를 가장한 거짓목자들이 하는 짓이며, 죽음으로 통하는 문입니다. 사도행전 4:12절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즉 예수님만이 영원한 생명의 문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뿐만 아니라, 인생의 온 삶을 풍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만족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본문말씀처럼 예수님은 영의 삶과 육신의 삶 모두를 풍성하게 하시며 만족을 누리게 하시는 인생의 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죽은 영혼을 살리며,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는 사람에게는 참된 풍성함이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삽니다. 그런데도 늘 ‘죽겠다.’는 소리가 나오며, 인생에 별 성과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삶이 즐겁거나 만족한 것도 아닙니다. 때로는 혼자서 바쁘고 조급해서 안절부절 못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을 외면하고 자기 힘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인 되지 않는 삶은 만족이 없습니다. 세상의 소유나 육신의 쾌락으로는 결코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외면하고 있으면 아무리 대궐 같은 집과 많은 재물이 있어도 기쁨도 만족도 느낄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5:4-5절에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미국의 9.11테러 사건이 있은 후로 전 세계가 출입국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오사마 빈 라덴’이 죽임을 당한 후로는 전세계에 테러 비상이 결렸습니다.
어떤 사업가가 이태리로 출장을 갔다가 일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하여 시간에 쫓겨 출항시간에 임박하여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공항의 검색이 까다롭기로 유명하여 무려 네 번의 검색을 거친다고 합니다. 세관, 이민국, 외화 반출 검사대, 마지막으로 면역소를 거친다고 합니다. 이 사업가는 비행기를 놓칠까봐 안절부절못하면서 발을 동동 구릅니다. 마음이 조급해 있는데, 그의 뒤에 서 있는 사람이 어깨를 툭툭 치면서 하는 말이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선생님이 탑승하기 전까지는 비행기 문이 절대로 닫히지 않을 것입니다. 원래 이 공항의 수속 시간은 오래 걸립니다.”
라는 것입니다. 이 사업가는 “당신이 무엇을 믿고 그렇게 장담하느냐?”고 쏘아붙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뒤에 서있던 신사가 한 마디 합니다. “내가 바로 당신이 탈 비행기 조종사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주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한다면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면서 때를 기다리십시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안달하지 말고, 주님이 이루실 때를 믿고 최선을 다하여 주님과 동행하십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더디다고 생각되더라도 인내하며 기다리십시오. 하박국 2:3절에서 안달하는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이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본문 9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현대어 성경으로 다시 읽습니다. “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그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며 좋은 풀을 얻을 것이다.” 또한 10절 후반절에서는, “나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해주기 위해 온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주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으로서 주님이 이루시는 풍성한 생명의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