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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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11-22 13:04
***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 / 고린도후서 1:15-22
** 들어가는 말
고린도후서 1:15-22,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수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모든 법은 사람 사이의 약속이며, 결혼도 서로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매일의 삶에서 많은 약속들을 합니다. 어떤 약속은 진지하고 진실하지만, 어떤 약속은 입에 발린 체면치레일 경우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곧 한 번 들릴게!”, “전화할게!” 등. 순진한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지만 그 사람은 지나가는 인사치레여서 기억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처럼 약속을 하기는 쉽지만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약속을 잘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에 따라서 ‘신용도’를 평가합니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금전거래나 직장, 사회생활에 많은 이익을 얻습니다. 반대로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모든 사회생활에서 제약을 많이 받게 됩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신실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실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영어에서 Perfect라고 번역했는데,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영국의 제3대 파머스턴 자작이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수상 중 한 사람이었던 헨리 존 템플(Henry John Temple)의 일화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헨리 수상이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오던 소녀가 갑자기 넘어지면서 우유 통을 떨어뜨려 통이 깨지고 우유를 모두 쏟고 말았습니다. 그 가난한 소녀는 깨진 우유 통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헨리 수상은 소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지금은 내가 가진 돈이 없구나, 내일 이 시간에 이곳으로 나오렴, 내가 우유 통과 우유 값을 줄게.”
다음 날, 수상은 장관들과의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문득 어제 소녀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수상은 회의를 중단하고 급히 웨스트민스터 다리로 달려가서 소녀에게 약속한 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각료회의를 주재했습니다.
한 나라의 수상이 이름도 모르는 보잘 것 없는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중요한 일을 미루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신실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작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큰 약속도 지키지 않습니다. 어느 설문에 의하면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처음 실망을 느끼는 것은 약속을 어겼을 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대상이 누구이든 약속을 잘 지키는 편입니까? 아니면 상대를 보아가면서 약속을 지키고 안 지키고 합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많은 단어가 있지만 아주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신실함’입니다. 본문 18절에서 “하나님은 미쁘시니라.”고 하셨는데, ‘미쁘시다(faithful)’는 말이 ‘믿을 수 있는’, ‘신실함’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서론으로 약속, 신실함, 온전함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온전하시며, 신실하십니다. 이는 철저하게 믿을 수 있는 분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자녀가 된 하나님의 사람들도 역시 거룩하고 온전하고 신실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레위기 19:2절에서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5: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사무엘상 26:2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약속에 신실하십니까?
※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
다음 주일이면 2011년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전 4주간을 말하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음(成肉身, incarnation)을 감사하며, 지금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오심과 그리고 다시 오실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을 새롭게 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지체가 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 약속, ‘세상 끝 날에 다시 오겠다.’고 하신 이 말씀이 남아 있는 최고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에는 요한복음 14:2-3절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정말 환상적이고 신나는 약속입니다. 주님이 지금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영원히 거주할 나의 집을 짓고 계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보상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일한 대가를 받는 날입니다. 여러분이 땀 흘려 수고하면서 섬기고 봉사한 일들, 힘들고 어려운 중에서도 참고 견디면서 주님의 일에 힘쓴 것,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의 날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육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약속입니다. 본문 22절을 봅시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이 세상에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성령님’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증하시는 분으로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7절에서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절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 4:19절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에 한 가난한 승객이 탑승했습니다. 배 삯도 겨우 마련한 그는 미처 식대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식사시간이 되면 주린 배를 쥐고 식당으로 몰려가는 다른 승객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굶다가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실컷 먹은 후 그는 식당 입구에 서 있는 선원에게로 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게는 밥값을 지불할 만 한 돈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 선원은 의아해하며 대답했습니다. “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이 지불하신 배 삯에는 이미 모든 식대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 어리석고 답답한 친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고 괴롭고 힘들게 사는 인생들도 이 친구처럼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0:1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자녀가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 10:1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말씀들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보증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우리가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고린도에 들리겠다고 했지만 계획이 변경되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자신의 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것을 말하면서(요 8:28), 자신도 하나님의 뜻에 ‘예’라고 신실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그 약속을 믿고 아멘 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신실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미국 석유산업계의 대부인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는 세계적인 거부입니다. 하지만 그도 한 때는 ‘더러운 자본가’, ‘악의 화신’ 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석유산업을 독점하면서 얻은 별명입니다. 그 때문에 ‘반 독점법’이 만들어 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43세에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하게 되었고, 53세에 억만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가 되었습니다. 빌 게이츠 재산의 3배 이상이 되는 양입니다. 그러나 55세 때에 기관지, 탈모증, 신경병, 위궤양, 탈진 등으로 쓰러졌습니다. 의사는 “이런 상태로는 일 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100만 불을 벌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자지도 먹지도 못한 채 몇 날을 보내다가 한 밤중에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부모 밑에서 신앙으로 자랐으며,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드린 삶은 유명한 이야깃거리입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자 십일조도 어려워졌고, 믿음 생활도 형식적으로 변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한 그날 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어릴 때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이 되신다.”고 소리치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적 지도자로 신뢰했던 ‘프레드릭 게이츠(Frederik T.Gates)’ 목사님과 의논한 후, 자신의 십일조로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자선 사업과 선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수입의 절반 이상을 이 재단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는 십일조를 의무로 드렸지만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98세로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제 인생의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불행하게 살았지만 지난 43년 동안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켜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그만 주님과 제 마음에 간직한 제 사랑 제 아내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제는 여한이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록펠러 재단은 시카고 대학을 위시한 12개의 종합대학, 12개의 단과 대학과 뉴욕의 리버 사이드 교회를 비롯한 4,928개의 교회당을 지어 헌납했고, 55세를 넘기기 어렵다고 했던 그는 98세까지 살며 '위대한 자선가'라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록펠러는 어릴 때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며, 역시 신실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독생자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주셨습니다. 성탄절은 마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드리고, 우리도 신실한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절기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믿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한 약속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아무런 약속도 안했다고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주님’으로 부르는 순간부터 제자의 길을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 약속은 마가복음 8:34절에서 “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신 약속은 마가복음 10:29-30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다 변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신실함을 나타내어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상급을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고린도후서 1:15-22,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수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모든 법은 사람 사이의 약속이며, 결혼도 서로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매일의 삶에서 많은 약속들을 합니다. 어떤 약속은 진지하고 진실하지만, 어떤 약속은 입에 발린 체면치레일 경우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곧 한 번 들릴게!”, “전화할게!” 등. 순진한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고 기다리지만 그 사람은 지나가는 인사치레여서 기억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처럼 약속을 하기는 쉽지만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약속을 잘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에 따라서 ‘신용도’를 평가합니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금전거래나 직장, 사회생활에 많은 이익을 얻습니다. 반대로 신용도가 낮은 사람은 모든 사회생활에서 제약을 많이 받게 됩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을 ‘신실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신실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온전하다’는 것은 영어에서 Perfect라고 번역했는데,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영국의 제3대 파머스턴 자작이며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수상 중 한 사람이었던 헨리 존 템플(Henry John Temple)의 일화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헨리 수상이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맞은편에서 오던 소녀가 갑자기 넘어지면서 우유 통을 떨어뜨려 통이 깨지고 우유를 모두 쏟고 말았습니다. 그 가난한 소녀는 깨진 우유 통을 보면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헨리 수상은 소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지금은 내가 가진 돈이 없구나, 내일 이 시간에 이곳으로 나오렴, 내가 우유 통과 우유 값을 줄게.”
다음 날, 수상은 장관들과의 각료회의를 주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문득 어제 소녀에게 했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수상은 회의를 중단하고 급히 웨스트민스터 다리로 달려가서 소녀에게 약속한 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각료회의를 주재했습니다.
한 나라의 수상이 이름도 모르는 보잘 것 없는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 중요한 일을 미루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신실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작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큰 약속도 지키지 않습니다. 어느 설문에 의하면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처음 실망을 느끼는 것은 약속을 어겼을 때’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대상이 누구이든 약속을 잘 지키는 편입니까? 아니면 상대를 보아가면서 약속을 지키고 안 지키고 합니까?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많은 단어가 있지만 아주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신실함’입니다. 본문 18절에서 “하나님은 미쁘시니라.”고 하셨는데, ‘미쁘시다(faithful)’는 말이 ‘믿을 수 있는’, ‘신실함’의 의미입니다.
이렇게 서론으로 약속, 신실함, 온전함에 대하여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온전하시며, 신실하십니다. 이는 철저하게 믿을 수 있는 분임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자녀가 된 하나님의 사람들도 역시 거룩하고 온전하고 신실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레위기 19:2절에서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5:48절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사무엘상 26:2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약속에 신실하십니까?
※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
다음 주일이면 2011년 대강절이 시작됩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전 4주간을 말하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음(成肉身, incarnation)을 감사하며, 지금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오심과 그리고 다시 오실 약속을 기다리는 믿음을 새롭게 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지체가 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 약속, ‘세상 끝 날에 다시 오겠다.’고 하신 이 말씀이 남아 있는 최고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에는 요한복음 14:2-3절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정말 환상적이고 신나는 약속입니다. 주님이 지금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영원히 거주할 나의 집을 짓고 계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그리고 요한계시록 22:12절에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십니다. 보상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일한 대가를 받는 날입니다. 여러분이 땀 흘려 수고하면서 섬기고 봉사한 일들, 힘들고 어려운 중에서도 참고 견디면서 주님의 일에 힘쓴 것, 이 모든 것에 대한 보상의 날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육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약속입니다. 본문 22절을 봅시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이 세상에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성령님’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증하시는 분으로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7절에서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4:26절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빌립보서 4:19절에서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배에 한 가난한 승객이 탑승했습니다. 배 삯도 겨우 마련한 그는 미처 식대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식사시간이 되면 주린 배를 쥐고 식당으로 몰려가는 다른 승객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굶다가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배불리 먹었습니다. 실컷 먹은 후 그는 식당 입구에 서 있는 선원에게로 갔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게는 밥값을 지불할 만 한 돈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 선원은 의아해하며 대답했습니다. “손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님이 지불하신 배 삯에는 이미 모든 식대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 어리석고 답답한 친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모르고 괴롭고 힘들게 사는 인생들도 이 친구처럼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0:10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자녀가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 10:13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의 말씀들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보증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우리가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약속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계획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고린도에 들리겠다고 했지만 계획이 변경되면서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자신의 사사로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것을 말하면서(요 8:28), 자신도 하나님의 뜻에 ‘예’라고 신실한 마음으로 순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그 약속을 믿고 아멘 하여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신실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미국 석유산업계의 대부인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는 세계적인 거부입니다. 하지만 그도 한 때는 ‘더러운 자본가’, ‘악의 화신’ 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석유산업을 독점하면서 얻은 별명입니다. 그 때문에 ‘반 독점법’이 만들어 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43세에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하게 되었고, 53세에 억만장자가 되어 세계 최대의 부호가 되었습니다. 빌 게이츠 재산의 3배 이상이 되는 양입니다. 그러나 55세 때에 기관지, 탈모증, 신경병, 위궤양, 탈진 등으로 쓰러졌습니다. 의사는 “이런 상태로는 일 년을 넘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루에 100만 불을 벌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자지도 먹지도 못한 채 몇 날을 보내다가 한 밤중에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독실한 부모 밑에서 신앙으로 자랐으며,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드린 삶은 유명한 이야깃거리입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벌자 십일조도 어려워졌고, 믿음 생활도 형식적으로 변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이 엄습한 그날 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어릴 때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하나님은 내 모든 것이 되신다.”고 소리치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영적 지도자로 신뢰했던 ‘프레드릭 게이츠(Frederik T.Gates)’ 목사님과 의논한 후, 자신의 십일조로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본격적인 자선 사업과 선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후, 수입의 절반 이상을 이 재단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는 십일조를 의무로 드렸지만 이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다.”고 고백했습니다.
그가 98세로 죽음 앞에 섰을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제 인생의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불행하게 살았지만 지난 43년 동안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켜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그만 주님과 제 마음에 간직한 제 사랑 제 아내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제는 여한이 없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록펠러 재단은 시카고 대학을 위시한 12개의 종합대학, 12개의 단과 대학과 뉴욕의 리버 사이드 교회를 비롯한 4,928개의 교회당을 지어 헌납했고, 55세를 넘기기 어렵다고 했던 그는 98세까지 살며 '위대한 자선가'라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록펠러는 어릴 때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잊지 않고 지켰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며, 역시 신실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대로 독생자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내주셨습니다. 성탄절은 마냥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드리고, 우리도 신실한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절기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믿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 한 약속을 잘 지키고 있습니까? ‘나는 하나님께 아무런 약속도 안했다고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주님’으로 부르는 순간부터 제자의 길을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한 약속은 마가복음 8:34절에서 “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한 약속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하신 약속은 마가복음 10:29-30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세상이 다 변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신실함을 나타내어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상급을 준비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