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성공자가 되는 길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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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11-17 21:25
*** 인생의 성공자가 되는 길 / 갈라디아서 5:13-15
** 들어가는 말
갈라디아서 5:13-18,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에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옛날에 왕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가 있었습니다. 늘 왕의 총애를 받던 이 광대가 어느 날 큰 실수를 저질러 왕의 노여움을 사서 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왕은 그동안 자신을 즐겁게 해 준 공적을 인정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장 처형을 해야 하나 옛 정을 생각하여 선택의 기회를 주겠다. 이 모래시계의 모래가 밑으로 다 떨어질 때까지 어떻게 죽고 싶은지 방법을 선택하라.”
모래시계의 모래가 흐르는 동안 침묵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모래가 다 떨어진 다음 왕은 광대에게 죽음의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광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천한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늙어 죽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광대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방법대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광대는 주어진 기회를 지혜롭게 이용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도 인생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조금씩 다르겠지만, 시간과 재능의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잘 이용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 수도 있고, 잘 못 사용하여 인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옛말에 ‘상하사불급(上下寺不及)’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랫 절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까? 윗 절에 가서 얻어먹을까? 하고 갈팡질팡 하다가 끼니때를 놓쳐서 아무 곳에서도 밥을 못 얻어먹고 굶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사람이 주책없이 헐렁거리거나 정한 뜻이 없이 우물쭈물 하다가 이 일도 못하고 저 일도 그르치는 것을 풍자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에서는 ‘망설임’이라는 것이 인생 실패의 큰 원인이 됩니다. 누가복음 9:59-62절에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세상의 일 때문에 망설이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지구를 떠나야 하겠지요. 이는 하나님의 일, 영의 일에 목적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따라서 우상숭배도 하고 하나님께 예배도 했습니다. 그러한 백성들에게 엘리야 선지자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열왕기상 18:21절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뿐만 아니라 소동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할 때 롯의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자신의 모든 것이 있는 소돔 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모두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망설이는 모습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옛 대중가요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인생의 길을 결정하지 못하여 ‘망설이는’사람의 노래입니다. 이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인생의 좋은 기회는 지나가버립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즉 죄 때문에 사탄의 종으로 살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죄의 값의 값을 치르시고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23절에서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의 값으로 주신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 기회를 잘 사용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지만, 잘 못 사용하면 오히려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성공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인생의 성공자가 되려면 기회를 선용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의 모습과 상황은 가지각색입니다. 그들이 만난 예수님은 생명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모든 삶의 주인이십니다. 즉 인생에 최고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모두 은혜를 받거나 능력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결혼식의 들러리처럼 예수님 곁을 맴돌면서 다른 사람의 경험하는 능력을 보기만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행운을 잡아서 육신의 질병을 고침 받거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얻은 사람들인데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들러리 가운데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 무리들과 바리새인들, 서기관과 율법사들, 다수의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났지만 불신과 교만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질병을 치료받거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문둥병자 아홉 명을 비롯한 많은 이적 체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어진 기회에 육신적인 것은 얻었지만 더 귀중한 생명을 얻지 못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 중에는 감사하기 위하여 돌아 온 사마리아인 문둥병자가 있으며, 수로보니게 여인, 하인의 중풍병을 위하여 간구한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있으며, 삭개오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삭개오를 봅시다. 삭개오는 주어진 기회를 잘 선용하여 인생이 바뀐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이 사는 마을을 지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달려 나갔지만 자신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난쟁이인 자신 앞에 빽빽한 숲처럼 가리고 서 있는 무리들을 뚫고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비관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열망이 너무 컸습니다. 삭개오는 무리를 피하여 저만큼 앞서 가서 가로수인 뽕나무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자신의 신분도 체면도 모두 벗어 던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걸어오시다가 자신이 있는 나무 아래에서 멈추셨고, 자신을 보면서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회는 찾는 자에게 발견되며, 도전하는 자에게 잡히게 됩니다. 삭개오는 그 날 사람들의 상상을 뒤엎고 주님을 영접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세리장이라고 죄인 취급을 했으며, 만나는 것이나 함께 있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열망이 삭개오로 하여금 기회를 잡게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약속했습니다. 누가복음 19: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자신의 잘못을 즉각 고치고 돌이키겠다는 회개와 재산 절반을 내 놓는 헌신의 약속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즉시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죄인으로 취급당하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세리장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삭개오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생명을 건 결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대까지 했으면서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책망만 받은 시몬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7:36-5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를 했고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 자리에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 뒤로 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어 자신의 머리털로 닦고,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일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시몬에게 ‘빚진 자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여인은 자신의 많은 죄를 용서받은 만큼 하나님을 많이 사랑한다고 하셨고, 시몬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는 그의 사랑도 적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죄인인 여인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던 시몬은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죄인인 여인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비교되고 책망만 들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기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머물다가 지나갑니다. 그것을 깨닫고 선용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며, 인생의 성공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어떻게 선용합니까? 본문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기회를 서로 싸우거나 다투는 일로 허비하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종노릇 하라.’는 말씀은 서로 섬기고 봉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성탄절 이브에 어떤 부자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의 내용은 예수님이 크리스마스 정오에 자기 집에 방문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뻐서 성탄절 아침이 되자 큰 잔칫상을 차려놓고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정말 정오가 되자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그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맨발로 뛰어나갔습니다. 꿈에 그리던 예수님이 자기 집에 찾아오시는데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대문을 열자 밖에는 예수님이 아니라, 어떤 신사가 서있었습니다. 부자가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누구요?” “예, 저는 지나가는 사람인데 갑자기 차가 망가져서 갈 수가 없습니다. 잘 아는 카센터를 알고 계시면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어이가 없는 듯 부자는 “나는 아는 카센터가 없어요!”라고 신경질 적으로 대답하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습니다.
얼마 후 다시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이제는 정말 예수님이 오셨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대문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대문 밖에서는 남루한 거지가 서있었습니다. 부자는 신경질이 나서 구걸하는 거지를 밀쳐버리고 문을 쾅 닫아 버렸습니다.
또 얼마 후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부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역시나 남루한 옷을 입은 병든 노인이 서있었습니다. 노인은 “죄송하지만, 먹을 것 좀 주시오.”라고 힘없이 애걸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먹을 것은 저기 길 건너 식당에 가면 쌔고 쌨어요! 거기나 가 봐요!”라고 소리치고는 대문이 부서질 만큼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잘 차려 놓은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짓말쟁이라고 실망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날 밤에 예수님이 다시 그 부자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부자는 거칠게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예수님! 왜 크리스마스 정오에 오신다고 하고서는 안 오셨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 번이나 네 집에 찾아갔었다. 그러나 너는 그때마다 나를 거절하였다.”
이처럼 기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옵니다. 마태복음 25:40절을 봅시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셨고, 45절에서는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이들은 보잘것없고 소외되고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할 만한 약한 존재들입니다. 이들을 대접하는 일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행하게 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잠깐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게 되면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보장 받게 됩니다.
이제 2주 후에는 대강절이 시작되고, 주님이 오신 성탄절이 됩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을 생각합시다. 그 때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의 성공자가 되도록 지금 주어진 기회를 망설이지 말고 결단하여 주님이 주신 자유를 최선을 다하여 사용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갈라디아서 5:13-18, “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어졌나니 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에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옛날에 왕을 즐겁게 해주는 광대가 있었습니다. 늘 왕의 총애를 받던 이 광대가 어느 날 큰 실수를 저질러 왕의 노여움을 사서 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왕은 그동안 자신을 즐겁게 해 준 공적을 인정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장 처형을 해야 하나 옛 정을 생각하여 선택의 기회를 주겠다. 이 모래시계의 모래가 밑으로 다 떨어질 때까지 어떻게 죽고 싶은지 방법을 선택하라.”
모래시계의 모래가 흐르는 동안 침묵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모래가 다 떨어진 다음 왕은 광대에게 죽음의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광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천한 저에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늙어 죽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광대는 자신이 선택한 죽음의 방법대로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광대는 주어진 기회를 지혜롭게 이용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도 인생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조금씩 다르겠지만, 시간과 재능의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주어진 기회를 잘 이용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 수도 있고, 잘 못 사용하여 인생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옛말에 ‘상하사불급(上下寺不及)’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랫 절에 가서 밥을 얻어먹을까? 윗 절에 가서 얻어먹을까? 하고 갈팡질팡 하다가 끼니때를 놓쳐서 아무 곳에서도 밥을 못 얻어먹고 굶는다.’는 말입니다. 이는 사람이 주책없이 헐렁거리거나 정한 뜻이 없이 우물쭈물 하다가 이 일도 못하고 저 일도 그르치는 것을 풍자한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에서는 ‘망설임’이라는 것이 인생 실패의 큰 원인이 됩니다. 누가복음 9:59-62절에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세상의 일 때문에 망설이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려면 지구를 떠나야 하겠지요. 이는 하나님의 일, 영의 일에 목적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따라서 우상숭배도 하고 하나님께 예배도 했습니다. 그러한 백성들에게 엘리야 선지자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열왕기상 18:21절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뿐만 아니라 소동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할 때 롯의 가정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자신의 모든 것이 있는 소돔 성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이 모두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망설이는 모습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옛 대중가요의 가사가 생각납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인생의 길을 결정하지 못하여 ‘망설이는’사람의 노래입니다. 이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인생의 좋은 기회는 지나가버립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우리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롭게 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즉 죄 때문에 사탄의 종으로 살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죄의 값의 값을 치르시고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23절에서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의 값으로 주신 자유를 주신 것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 기회를 잘 사용하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지만, 잘 못 사용하면 오히려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성공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인생의 성공자가 되려면 기회를 선용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예수님을 만날 때의 모습과 상황은 가지각색입니다. 그들이 만난 예수님은 생명이시며 구원자이시며, 우리의 모든 삶의 주인이십니다. 즉 인생에 최고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모두 은혜를 받거나 능력을 경험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결혼식의 들러리처럼 예수님 곁을 맴돌면서 다른 사람의 경험하는 능력을 보기만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행운을 잡아서 육신의 질병을 고침 받거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을 얻은 사람들인데 그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들러리 가운데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 무리들과 바리새인들, 서기관과 율법사들, 다수의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났지만 불신과 교만과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다가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질병을 치료받거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문둥병자 아홉 명을 비롯한 많은 이적 체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어진 기회에 육신적인 것은 얻었지만 더 귀중한 생명을 얻지 못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 중에는 감사하기 위하여 돌아 온 사마리아인 문둥병자가 있으며, 수로보니게 여인, 하인의 중풍병을 위하여 간구한 가버나움의 백부장이 있으며, 삭개오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삭개오를 봅시다. 삭개오는 주어진 기회를 잘 선용하여 인생이 바뀐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이 사는 마을을 지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는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달려 나갔지만 자신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난쟁이인 자신 앞에 빽빽한 숲처럼 가리고 서 있는 무리들을 뚫고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을 비관하거나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열망이 너무 컸습니다. 삭개오는 무리를 피하여 저만큼 앞서 가서 가로수인 뽕나무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자신의 신분도 체면도 모두 벗어 던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걸어오시다가 자신이 있는 나무 아래에서 멈추셨고, 자신을 보면서 “삭개오야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회는 찾는 자에게 발견되며, 도전하는 자에게 잡히게 됩니다. 삭개오는 그 날 사람들의 상상을 뒤엎고 주님을 영접했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세리장이라고 죄인 취급을 했으며, 만나는 것이나 함께 있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향한 열망이 삭개오로 하여금 기회를 잡게 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약속했습니다. 누가복음 19:8절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자신의 잘못을 즉각 고치고 돌이키겠다는 회개와 재산 절반을 내 놓는 헌신의 약속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즉시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죄인으로 취급당하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던 세리장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삭개오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에 생명을 건 결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대까지 했으면서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책망만 받은 시몬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7:36-50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를 했고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그 자리에 죄인인 한 여인이 예수님 뒤로 가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어 자신의 머리털로 닦고,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일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시몬에게 ‘빚진 자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인 여인은 자신의 많은 죄를 용서받은 만큼 하나님을 많이 사랑한다고 하셨고, 시몬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는 그의 사랑도 적은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죄인인 여인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대했던 시몬은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죄인인 여인보다 더 못한 사람으로 비교되고 책망만 들었을 뿐입니다.
이처럼 기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머물다가 지나갑니다. 그것을 깨닫고 선용하는 사람에게는 생명이 되며, 인생의 성공의 꿈을 이루게 됩니다. 어떻게 선용합니까? 본문에서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기회를 서로 싸우거나 다투는 일로 허비하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종노릇 하라.’는 말씀은 서로 섬기고 봉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성탄절 이브에 어떤 부자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의 내용은 예수님이 크리스마스 정오에 자기 집에 방문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뻐서 성탄절 아침이 되자 큰 잔칫상을 차려놓고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정말 정오가 되자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그는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맨발로 뛰어나갔습니다. 꿈에 그리던 예수님이 자기 집에 찾아오시는데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대문을 열자 밖에는 예수님이 아니라, 어떤 신사가 서있었습니다. 부자가 퉁명스럽게 물었습니다.
“누구요?” “예, 저는 지나가는 사람인데 갑자기 차가 망가져서 갈 수가 없습니다. 잘 아는 카센터를 알고 계시면 연락 좀 부탁드립니다.” 어이가 없는 듯 부자는 “나는 아는 카센터가 없어요!”라고 신경질 적으로 대답하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습니다.
얼마 후 다시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이제는 정말 예수님이 오셨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대문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대문 밖에서는 남루한 거지가 서있었습니다. 부자는 신경질이 나서 구걸하는 거지를 밀쳐버리고 문을 쾅 닫아 버렸습니다.
또 얼마 후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부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역시나 남루한 옷을 입은 병든 노인이 서있었습니다. 노인은 “죄송하지만, 먹을 것 좀 주시오.”라고 힘없이 애걸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먹을 것은 저기 길 건너 식당에 가면 쌔고 쌨어요! 거기나 가 봐요!”라고 소리치고는 대문이 부서질 만큼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잘 차려 놓은 음식들을 쓰레기통에 부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거짓말쟁이라고 실망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날 밤에 예수님이 다시 그 부자의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부자는 거칠게 예수님께 따졌습니다.
“예수님! 왜 크리스마스 정오에 오신다고 하고서는 안 오셨습니까?” 그때 예수님이 빙그레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 번이나 네 집에 찾아갔었다. 그러나 너는 그때마다 나를 거절하였다.”
이처럼 기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옵니다. 마태복음 25:40절을 봅시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셨고, 45절에서는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이들은 보잘것없고 소외되고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할 만한 약한 존재들입니다. 이들을 대접하는 일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행하게 되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잠깐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게 되면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보장 받게 됩니다.
이제 2주 후에는 대강절이 시작되고, 주님이 오신 성탄절이 됩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을 생각합시다. 그 때에 하나님께 인정받는 인생의 성공자가 되도록 지금 주어진 기회를 망설이지 말고 결단하여 주님이 주신 자유를 최선을 다하여 사용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