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왜 영의 생명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437회 작성일 2011-09-26 21:51
*** 왜 영의 생명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 로마서 8:12-25

** 들어가는 말

로마서 8:12-25,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50대 후반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암이 많이 진행되어서 네 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몸은 독한 항암치료 약으로 인하여 쇠약해졌으며, 머리카락은 한 올도 없었습니다. 약사였던 이 분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분은 ‘암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병을 얻고 난 후부터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역시 사람은 큰 사건을 경험하고 난 후에야 깨달음을 얻고 철이 드는 것 같습니다. 이 분은
“지금까지 의미 있고 보람 있는 봉사를 하지 못하고, 오직 아이들과 남편과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온 것이 후회스럽습니다.”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병을 얻고서야 지나온 삶이 허망함을 알겠습니다. 이제 인생의 참 의미를 찾기 위하여 보람 있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지만, 힘든 투병생활로 인하여 기력도 쇄하고 많이 남지 않은 생명을 생각하니 별로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지금 제가 가장 부러운 사람은 열심히 봉사하며 진실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분뿐만 아니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삶에 바빠서 이웃을 돌아보거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눈앞에 있는 자신의 현실에만 빠져있지 않습니까? 아니면 영원한 영의 생명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육신의 삶을 위하여 살든지, 영원한 영의 생명을 위하여 살든지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 보상을 본문 13절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 두려운 말씀은 괜히 해보는 말이거나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시 사는 육신의 즐거움보다 영의 생명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영의 생명을 위하여 살 수 있습니까?

※ 먼저 본문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7장의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7장에는 사도바울의 영적인 깊은 고민이 담겨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영이 추구하는 것과 육신의 욕구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 현실에서 갈등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생명과 자유를 얻었지만, 현실은 여전히 세상의 삶과 육신적인 욕망으로 인하여 죄에 빠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7:19절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라고 탄식합니다. 바울은 그 고민 속에서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바울이 깨달은 것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민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나 스스로는 늘 올바른 일을 원하나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해버리는 이것이 인생의 현실인 것 같습니다. 속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고 싶어 하면서도, 내 속 깊은 곳에 어떤 다른 것이 있어서 그것이 내 마음에 분란을 일으켜 나를 누르고 아직도 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의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나는 마음으로는 늘 기쁨으로 하나님 섬기는 종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봅니다.”(롬 7:21-24 / 현대어성경) 쉽게 말하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열심히 주님을 따르고 싶은데, 생활 속에서는 그만 몸이 원하는 대로 따라가 버리게 된다.’고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는 영혼의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갖는 고민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저나 여러분의 현실이 이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이러한 고민을 어떻게 해결합니까?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면서 세상이 흐르는 대로 살아갑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여기며 순종하려고 애를 씁니까? 사도 바울은 그 해답을 7장 마지막 부분에서 제시합니다. 25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고 합니다.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이 해답입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8:1-1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이 누리는 참된 자유를 말하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영의 삶과 육신의 욕망을 따르는 육신의 삶에 대하여 세밀한 해석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우리가 영의 생명을 위하여 살아야 할 이유와 영의 삶을 사는 성도의 궁극적인 소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성도가 소망해야 하는 것과 그 소망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가져야 할 자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영의 생명의 위하여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님의 후사가 되기 위함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기 위함입니다. 본문 14절에서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으며, 17절에서는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마음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여러분은 하나님의 나라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습니까?
2) 육신의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습니까?
3)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은 새롭게 주어지는 육신과 함께 영혼의 영원한 삶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4)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라는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하게 믿습니까?

이 네 가지 질문에 모두 ‘아멘’하셨다면, 본문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생활을 점검해야 합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고 있는지를 살펴야합니다. 그리고 네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글쎄요.’라고 확신하지 못한다면, 본문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을 다시 확립해야 합니다. 만일 믿음이 있으면서도 생활이 따르지 못하면 탈락자가 되거나 상급을 잃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믿음조차 정립하지 못했다면,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자격부터 챙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불 못에 버려져 영원토록 이를 가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봅시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했습니다. 즉 육신이 원하는 대로 따르면 죽음이요,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영을 따르면 생명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이 영을 위하여 사는 것인지, 육신을 위하여 사는 것인지 판단이 되지 않습니까? 판단하는 법은 간단합니다. 마태복음 7:16절 이하에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판별법이 있습니다. 16-17절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사람의 생활을 보면 그 사람이 육신을 따르는지 영을 따르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며, 실제 생활에서 우선권이 무엇인지를 보면 자신이 무엇을 따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자신이 하나님 나라에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자신에게 보이는 것은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계들이었습니다. 천사가 설명했습니다. “이 시계들은 각 사람의 양심을 나타내는 것인데, 세상에서 죄를 지으면 시계 바늘이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계마다 이름이 붙어있었습니다. 어떤 시계는 멈추어 있고, 어떤 시계는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떤 시계를 보니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가끔 죄를 짓는 모양입니다. 또 어떤 시계는 상당히 빨리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매일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성도가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제 시계는 어디쯤 있습니까?” 천사는 그 사람의 시계가 부엌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계는 엄청나게 빨리 돌아가기 때문에 부엌에서 선풍기로 쓴다.”고 했답니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하는 일을 따라서 보상을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10절(현대어성경)입니다. “장차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살아온 모습이 그분 앞에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일을 했든지 악한 일을 했든지 땅위의 육체로 사는 동안에 행한 대로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영의 생명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행한 대로 보상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려면 영의 욕구를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즐거움으로 만족한다면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면 됩니다. 육신은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즐기기를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고, 추앙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천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은 싫어합니다. 누군들 새벽잠을 설쳐가면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종일 일하고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공부하고, 전도하고, 봉사하기를 좋아하겠습니까? 주일에 좀 쉬고 싶고, 가족과 나들이도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은 좁은 문을 지나야 하고, 좁고 험한 길입니다.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본문 17절 후반절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땅에서도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세상적인 일로 보더라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려면 자신과 싸워가면서 끊임없이 인내하며 훈련해야 합니다. 야구든, 축구든, 음악이든, 노래든, 춤이든, 공부나, 기술이나, 무엇이든지 편안하고 즐기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최고가 되지 못합니다. 하물며 영원한 영혼의 생명을 누리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으려 하는 일이 고난 없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고난은 우리에게 주어질 영광과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18절에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영의 생명을 위하여 일어서야 합니다.

※ 그러면 영의 삶을 살아야 할 목적이자 소망은 무엇입니까?

한 가지 물어봅시다. “그리스도인은 왜 자신의 욕구를 억눌러가면서 영을 위해 살아야 합니까?” 예,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위해서입니다. 하나 더 묻겠습니다. “아무리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위한 것이라지만 육신이 원하는 것을 억누르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속박이 아니겠습니까?” 옳습니다. 더 큰 속박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속박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까? 요한복음 8:32절에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하셨고, 36절에서는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하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고 하셨는데, 이 자유는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분명히 옳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참된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자유인에게는 할 수 있는 권한도 있지만 하지 않을 권한도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를 제한하는 것은 속박이 아닙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은 우리는 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에 죄를 스스로 거부하고, 자신의 육체의 욕망을 스스로 제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속박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영의 삶을 위하여 굳이 이런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나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 19-21절(한글 킹 제임스 역)을 봅시다.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나니, 이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 분 때문이니라. 이는 피조물 자체도 그 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하고 확실한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 위하여 육신의 욕망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즉 성도는 세상의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영광을 얻기 위하여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세상에 굴복하고, 스스로 자신을 제어하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을 받았지만 아직은 완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현대어성경으로 다시 보겠습니다. “성령을 받고 장래의 영광을 미리 맛본 그리스도인조차도 고통과 고난에서 놓여나기 위해, 신음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한 권리를 받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육신으로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아무리 신앙이 좋다 할지라도 고민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갈등이 계속되기 때문에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본문 25절에서 결론적으로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말씀합니다. 그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삶을 위하여 일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소망을 안고 열정으로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 자신을 위하여 힘들고 어려움도 인내하면서 열정을 품고 주님을 따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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