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날을 위해 예비된 은혜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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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09-14 20:35
*** 새날을 위해 예비된 은혜 / 신명기 31:1-8
** 들어가는 말
신명기 31:1-8, “1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2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4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5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여러분, 인간과 짐승의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지식으로는 인간도 동물이며, 오랜 세월을 진화한 결과로 오늘의 인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식으로는 인간이 짐승들과 다른 점을 ‘언어’, ‘지적인 능력’, ‘사고력’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진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8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당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생물들에게는 없는 ‘영’을 부여받았습니다. 육신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영은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흙으로 지음 받은 육신의 삶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영의 삶입니다. 육신은 이 땅의 것으로 살지만, 영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육신이 살기 위하여 음식을 먹고 호흡을 해야 하듯이, 영이 살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인간 세상에는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고통과 두려움과 폭력과 이기적인 욕망들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끊어진 채로 육신의 욕망을 따라서 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6:3절에서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고 하셨습니다. “육체”란 히브리어로 basar 라고 하는데, ‘살’, ‘몸’ 이라는 뜻이며, 영어로는 'flesh' 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짐승들과 똑같이 영이 없는 살덩어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짐승처럼 육신의 만족을 추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입니다. 즉 영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매일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8:7-8절을 봅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하시며, 고린도후서 5:15절에서는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예비하시고 베풀어 주십니다. 골로새서 3:1-2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를 사모하고 구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6:32절에서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신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신 새날을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언약의 백성 유대인들을 이끌어 내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인도한 영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유다백성들과 율법으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계약을 맺고 유대인을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이스라엘’나라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순종하여 38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애굽을 나온 지 40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유목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슴 두근거리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를 앞두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인도했던 영도자 모세는 백성들과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시대의 지도자로서 불순종했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그 생애를 마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영적인 담대함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는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예비하셨고 허락하신 땅이지만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신앙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의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우리는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새날을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를 내가 받을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받으려면 신뢰와 순종이 필요합니다.
철강 회사 사장인 ‘조 말수’ 씨의 간증입니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으며 그 회사의 부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장 급이 가는 싱가포르의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억울한 마음과 수치심으로 당장 사표를 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싱가포르 지사에 부임했습니다. 그는 “이것도 주님의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일하면서, 싱가포르 한인교회에서 성실하게 봉사했습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본사로부터 ‘사장으로 선임되었으니 귀국하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그는 성경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에 깊이 감사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5:23절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셨으며, 므나 비유인 누가복음 19:17절에서는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환경과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할 때에 주시는 보상입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봅시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주시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을 다짐시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싸워서 얻어야 하는 땅이지만 백성들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며 길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 후반절을 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순종을 위하여 40년을 광야에서 훈련받아야 했습니다. 곧 광야의 고난을 통하여 불순종과 거역이라는 찌꺼기를 걸러내셨던 것입니다. 순종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이듯이, 불순종은 새로운 세계를 막는 걸림돌입니다. 히브리서 3:7-9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새날을 위하여 예비 된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받으려면 담대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는 거듭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얻게 하시리라.’는 말씀으로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이는 담대한 행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들어가게 될 가나안에는 거인 족들이 살고 있으며,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고, 든든한 성벽으로 진을 치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이미 38년 전에 정탐꾼들에 의하여 보고되었던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보고를 듣고 낙담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다가 광야에서 모두 소멸되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패를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2:26절에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그러합니다. 세상의 환경과 내게 주어진 여건만 본다면 낙담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바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이적’이나,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이적’을 보이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신과 유혹과 쾌락 등 이러한 바람은 성도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의 세력들은 두려움의 바람과 의심의 물결을 일으켜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처럼, 우리를 세상 속으로 침몰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늘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제자들처럼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힘만으로 해결해 보려고 헛된 노력을 하다가 지쳐 절망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작가 ‘루이스’가 쓴 ‘악마의 편지’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람의 마음을 탁월한 감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영국의 노신사가 어느 날 런던의 도서실을 찾아갑니다. 그 노신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실에 들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노신사는 도서실을 들렀습니다. 이 책 저책을 훑어보다가 고른 것이 기독교 신앙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노신사는 책을 읽던 중에 마음속에서 갑자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노신사에게 그 순간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그의 마음속에 이렇게 말합니다.
“점심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노신사는 잠시 전 마음속에서 생각하려고 했던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누르고 식당으로 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가?”
이때에 악마는 다시 그의 마음에 속삭이고 노신사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프게 생각을 하나. 우선 식사를 끝내고 보자.”
식사를 끝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생각이 어렴풋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악마의 유혹어린 간섭으로 인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
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탑니다. 버스 좌석에 앉자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노신사의 뒤에서 악마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을 받으려면 말씀에 의심 없이 순종하는 실천적인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이야기처럼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6-8절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주저함, 머뭇거림, 염려, 걱정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을 의심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 가나안의 족속들을 정복하지 못하고 남겨놓게 하신 이유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보기 위함이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새로운 날을 방해하는 환경과 여건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지를 보시려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오직 주님을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담대한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날마다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신명기 31:1-8, “1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2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4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5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여러분, 인간과 짐승의 다른 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지식으로는 인간도 동물이며, 오랜 세월을 진화한 결과로 오늘의 인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지식으로는 인간이 짐승들과 다른 점을 ‘언어’, ‘지적인 능력’, ‘사고력’ 등을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진화의 결과물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28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당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른 생물들에게는 없는 ‘영’을 부여받았습니다. 육신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영은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은 두 가지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흙으로 지음 받은 육신의 삶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영의 삶입니다. 육신은 이 땅의 것으로 살지만, 영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육신이 살기 위하여 음식을 먹고 호흡을 해야 하듯이, 영이 살기 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인간 세상에는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고통과 두려움과 폭력과 이기적인 욕망들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끊어진 채로 육신의 욕망을 따라서 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6:3절에서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고 하셨습니다. “육체”란 히브리어로 basar 라고 하는데, ‘살’, ‘몸’ 이라는 뜻이며, 영어로는 'flesh' 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짐승들과 똑같이 영이 없는 살덩어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짐승처럼 육신의 만족을 추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들입니다. 즉 영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매일의 삶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8:7-8절을 봅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하시며, 고린도후서 5:15절에서는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도록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예비하시고 베풀어 주십니다. 골로새서 3:1-2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를 사모하고 구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6:32절에서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신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신 새날을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언약의 백성 유대인들을 이끌어 내어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인도한 영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시내 산에서 유다백성들과 율법으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계약을 맺고 유대인을 하나님의 백성을 삼아 ‘이스라엘’나라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불순종하여 38년의 세월을 광야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제 애굽을 나온 지 40년이 지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가나안은 유목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슴 두근거리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를 앞두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인도했던 영도자 모세는 백성들과의 결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시대의 지도자로서 불순종했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그 생애를 마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새로운 지도자인 ‘여호수아’에게 영적인 담대함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는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예비하셨고 허락하신 땅이지만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재무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신앙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의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이 우리는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새날을 위하여 예비하신 은혜를 내가 받을 수 있겠습니까?
※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받으려면 신뢰와 순종이 필요합니다.
철강 회사 사장인 ‘조 말수’ 씨의 간증입니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으며 그 회사의 부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장 급이 가는 싱가포르의 지점장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는 억울한 마음과 수치심으로 당장 사표를 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싱가포르 지사에 부임했습니다. 그는 “이것도 주님의 일이다.”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여 일하면서, 싱가포르 한인교회에서 성실하게 봉사했습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본사로부터 ‘사장으로 선임되었으니 귀국하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그는 성경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에 깊이 감사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25:23절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셨으며, 므나 비유인 누가복음 19:17절에서는 “잘 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환경과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할 때에 주시는 보상입니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본문 5절을 봅시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앞에 주시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절대적으로 순종할 것을 다짐시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비록 이스라엘 백성이 싸워서 얻어야 하는 땅이지만 백성들보다 먼저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며 길을 여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 후반절을 봅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순종을 위하여 40년을 광야에서 훈련받아야 했습니다. 곧 광야의 고난을 통하여 불순종과 거역이라는 찌꺼기를 걸러내셨던 것입니다. 순종이 새로운 세계를 여는 열쇠이듯이, 불순종은 새로운 세계를 막는 걸림돌입니다. 히브리서 3:7-9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새날을 위하여 예비 된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받으려면 담대한 행동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는 거듭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강조하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얻게 하시리라.’는 말씀으로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이는 담대한 행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들어가게 될 가나안에는 거인 족들이 살고 있으며,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고, 든든한 성벽으로 진을 치고 있을 것입니다. 이는 이미 38년 전에 정탐꾼들에 의하여 보고되었던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보고를 듣고 낙담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다가 광야에서 모두 소멸되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실패를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2:26절에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도 그러합니다. 세상의 환경과 내게 주어진 여건만 본다면 낙담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바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이적’이나,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신 이적’을 보이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세상의 불신과 유혹과 쾌락 등 이러한 바람은 성도가 믿음으로 행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대적 사탄의 세력들은 두려움의 바람과 의심의 물결을 일으켜 베드로가 물속으로 빠져들었던 것처럼, 우리를 세상 속으로 침몰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늘 우리의 도움이 되시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제자들처럼 주님을 모시고 있으면서도 자신들의 힘만으로 해결해 보려고 헛된 노력을 하다가 지쳐 절망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결단하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작가 ‘루이스’가 쓴 ‘악마의 편지’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람의 마음을 탁월한 감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영국의 노신사가 어느 날 런던의 도서실을 찾아갑니다. 그 노신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실에 들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노신사는 도서실을 들렀습니다. 이 책 저책을 훑어보다가 고른 것이 기독교 신앙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노신사는 책을 읽던 중에 마음속에서 갑자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노신사에게 그 순간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그의 마음속에 이렇게 말합니다.
“점심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노신사는 잠시 전 마음속에서 생각하려고 했던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누르고 식당으로 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가?”
이때에 악마는 다시 그의 마음에 속삭이고 노신사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프게 생각을 하나. 우선 식사를 끝내고 보자.”
식사를 끝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생각이 어렴풋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악마의 유혹어린 간섭으로 인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
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탑니다. 버스 좌석에 앉자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노신사의 뒤에서 악마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능력을 받으려면 말씀에 의심 없이 순종하는 실천적인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앞의 이야기처럼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6-8절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주저함, 머뭇거림, 염려, 걱정 이런 것들은 모두 하나님을 의심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 가나안의 족속들을 정복하지 못하고 남겨놓게 하신 이유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지의 여부를 보기 위함이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새로운 날을 방해하는 환경과 여건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지를 보시려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오직 주님을 신뢰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담대한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를 날마다 받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