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자격증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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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3-06 16:07
*** 인생 자격증 / 마태복음 25:19-23, 34-36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25:19-23,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34-36,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여러분은 자격증(license)을 몇 개나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 시대는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야 하는 정보화시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기 위한 자격을 검증받아야 하는 자격증 시대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자격증이 없으면 불법이 되고, 그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운전을 잘한다고 면허 없이 운전을 하면 ‘무면허운전’으로 구속됩니다. 병을 고칠 줄 안다고 면허도 없이 아무나 의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자격증이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허가증입니다. 하지만 자격증이 없다고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격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인정받거나 쓰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인생에도 자격증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요즘 세상이 워낙 인간답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인생 자격증 제도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인생 자격증’이라고 제목을 정했는데,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거나 또는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검증 받는 삶에 대한 것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어느 목사님이 월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시내 중심가에 있는 교회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운전기사에게 차비를 내면서도 목사님은 교회 일 생각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리에 앉아서야 그 운전사가 거스름돈을 더 준 것을 알았습니다.
동전들을 만지작거리면서 얼핏 떠오른 생각은 ‘하나님께서 내게 돈을 더 주시는구나.’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자꾸만 불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심이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드디어 교회 근처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려고 문 앞으로 걸어 나온 목사님은 운전기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까 기사 양반이 잘못해서 내게 거스름돈을 더 주었더군요.” 이때 운전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잘못 거슬러 드린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어제 목사님 교회에 가서 정직에 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시험해 보려고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바르게 사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성도를 유혹하고서도 그 유혹에 넘어오면 돌아서서 욕을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숙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의 장래가 보장되고,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장래가 보장됩니다. 신명기 8:2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했던 삶은 ‘가나안 땅을 주어도 될지의 여부를 시험하신 것’이었음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인가하신 ‘인생 자격증’이라고 보고, 본문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이 시대에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를 살펴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내용과 말씀의 의도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잘 알려진 달란트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있을 일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올바른 삶의 자세를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주님의 신부로서의 합당한 믿음의 준비’를 말씀하며, 달란트 비유는 ‘주어진 사명에 대한 충성됨’을, 양과 염소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를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려합니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긴 종들에게 선언하신 말씀, 그리고 오른편의 양들에게 하신 임금의 선언을 토대로 ‘더 많은 것을 맡기기 위한 자격 심사’의 면으로 살펴보려합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 말씀에서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는 말씀은 더 많은 것을 맡기기 위한 ‘자격검증 시험(試驗, test)’입니다. 그리고 35-36절의 말씀은 충성스러운 종들이 행하였던 적은 일이 어떤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달아보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자격 검증시험을 보겠습니다.
※ 하나님께서 달아보시는 인생 자격 검증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17:9-10절을 봅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현대어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보다 더 간사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 없다. 인간의 마음은 거짓과 재앙으로 가득 차 있다. 누가 그것을 투시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자는 바로 나 여호와이다. 인간이 아무리 깊은 소원을 품더라도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사람이 행동한 것에 따라 그대로 갚아 주는 자가 바로 나 여호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아십니다. 신명기 31:21절에서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6:8절에서는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며, 우리의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까지도 아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맡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십니다.
브라질의 성자로 불렸던 미국 선교사 ‘멜랜드(Doug Meland)’ 부부의 일화가 있습니다. 멜랜드 선교사 부부는 브라질의 깊은 산골에 들어가 선교하며 평생을 살았는데, 이름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곳 주민인 ‘폴리오 인디언’은 처음에 멜랜드 부부를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그들을 총으로 위협하면서 괴롭혔던 백인들을 상징하는 증오에 찬 호칭이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주민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의료 봉사로써 주민들의 목숨을 구하며, 병을 치료하는 헌신적인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선교사 부부를 “존경하는 백인”으로 불렀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인디언의 언어를 열심히 배워서 10년이 지난 후에는 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유창한 말을 구사하게 되었고, 생활도 그들의 풍습대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주민들은 멜랜드 부부를 “백인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부상당한 인디언 소년의 발을 씻어 주고 있었는데, 주민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인디언의 발을 씻는 백인을 보았는가? 이 사람은 하늘이 보내준 사람들이다.”
라고 하면서 그때부터는 멜랜드 선교사 부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멜랜드 선교사 부부는 헌신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곳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멜랜드 선교사 부부가 받은 이런 칭호는 ‘예수처럼 사는 사람들’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고 간섭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미 말씀을 통하여 그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3-5절을 봅시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화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잊어버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의 죄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이런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으시고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어떤 것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에 합당한 믿음이 있는지,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지를 보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백세에 얻은 아들을 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요셉에게는 형제들에 의하여 노예로 팔리는 수모와 애굽의 시위대장인 보디발 부인의 유혹이 따랐습니다. 사울 왕에게도, 다윗 왕에게도 시험이 있었으며,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명예와 권력이, 가룟 유다에게는 돈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유혹이나 시련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을 달아보셨습니다. 이들 중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시험대를 통과한 사람도 있지만, 세상을 따르거나 자신의 욕심을 쫓다가 실패하고 무너져 내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호세아 4: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3:10절에서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고 기도한 것들을 주시기에 합당한지를 시험하십니다. 그 시험대를 통과해야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시험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그 자체입니다. 시험이라고 특별한 자리나 시기를 마련한다든지 시험의 때라고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본문 35-36절처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것이 인생 자격고시였습니다. 40절을 봅시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겸손하게 실천할 때에 그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곧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시험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작정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닙니다. 기도와 말씀과 예배와 섬김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키워가면서 생활 속에서 순종하여 성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즉 지금 주어진 일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처럼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일하여 이익을 남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어진 일에 합당한 능력도 주시고,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게 됩니다.
학교 앞 체육관에 다니는 운동선수들이 멋진 운동복을 입고 운동장을 한 줄로 뛰어가는 것을 본 동네 꼬마가 엄마를 졸라서 운동복을 샀습니다. 자기도 운동복을 입고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뛰었습니다. 그런데 한 바퀴도 체 못 뛰고는 숨이 차서 하는 말이 “엄마! 이거 입어도 선수가 안 되는구나”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아이는 좋은 운동복을 입으면 금방 선수로 변하는 줄 알았나 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모양만 갖추었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키워가야 합니다. 믿음은 누가 키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실한 예배, 매일 말씀과 기도를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고 행하며, 섬기고 봉사하는 일로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과 보배롭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수고하고 애쓰며 눈물로 인내하는 노력 없이 주어지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자격시험을 거쳐 왔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들이 더 나은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자격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얼마이든지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말고, 사람이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마음 두지 말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이 일에 옳다고 인정을 받으면 더 풍성하고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1:12절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우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마음의 생각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25:19-23,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태복음 25:34-36,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여러분은 자격증(license)을 몇 개나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 시대는 수많은 정보들 사이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야 하는 정보화시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사용하기 위한 자격을 검증받아야 하는 자격증 시대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자격증이 없으면 불법이 되고, 그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운전을 잘한다고 면허 없이 운전을 하면 ‘무면허운전’으로 구속됩니다. 병을 고칠 줄 안다고 면허도 없이 아무나 의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처럼 자격증이란,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허가증입니다. 하지만 자격증이 없다고 전혀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자격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다만 공식적으로 인정받거나 쓰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인생에도 자격증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요즘 세상이 워낙 인간답지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인생 자격증 제도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인생 자격증’이라고 제목을 정했는데, 내용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거나 또는 쓰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한 검증 받는 삶에 대한 것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어느 목사님이 월요일 아침 일찍 집을 나와 시내 중심가에 있는 교회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운전기사에게 차비를 내면서도 목사님은 교회 일 생각에 골몰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리에 앉아서야 그 운전사가 거스름돈을 더 준 것을 알았습니다.
동전들을 만지작거리면서 얼핏 떠오른 생각은 ‘하나님께서 내게 돈을 더 주시는구나.’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자꾸만 불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심이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드디어 교회 근처에 이르러 차에서 내리려고 문 앞으로 걸어 나온 목사님은 운전기사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아까 기사 양반이 잘못해서 내게 거스름돈을 더 주었더군요.” 이때 운전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잘못 거슬러 드린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어제 목사님 교회에 가서 정직에 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시험해 보려고 그랬습니다. 죄송합니다. 목사님.”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순간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바르게 살지 못하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이 바르게 사는 사람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성도를 유혹하고서도 그 유혹에 넘어오면 돌아서서 욕을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 숙제를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의 장래가 보장되고,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장래가 보장됩니다. 신명기 8:2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했던 삶은 ‘가나안 땅을 주어도 될지의 여부를 시험하신 것’이었음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인가하신 ‘인생 자격증’이라고 보고, 본문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이 시대에 갖추어야 할 삶의 자세를 살펴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내용과 말씀의 의도를 봅시다.
본문말씀은 잘 알려진 달란트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는 모두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있을 일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의 올바른 삶의 자세를 교훈하는 말씀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주님의 신부로서의 합당한 믿음의 준비’를 말씀하며, 달란트 비유는 ‘주어진 사명에 대한 충성됨’을, 양과 염소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삶’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달란트 비유와 양과 염소의 비유를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려합니다. 주인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맡긴 종들에게 선언하신 말씀, 그리고 오른편의 양들에게 하신 임금의 선언을 토대로 ‘더 많은 것을 맡기기 위한 자격 심사’의 면으로 살펴보려합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이 말씀에서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라는 말씀은 더 많은 것을 맡기기 위한 ‘자격검증 시험(試驗, test)’입니다. 그리고 35-36절의 말씀은 충성스러운 종들이 행하였던 적은 일이 어떤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달아보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자격 검증시험을 보겠습니다.
※ 하나님께서 달아보시는 인생 자격 검증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17:9-10절을 봅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현대어성경으로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보다 더 간사하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이 없다. 인간의 마음은 거짓과 재앙으로 가득 차 있다. 누가 그것을 투시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자는 바로 나 여호와이다. 인간이 아무리 깊은 소원을 품더라도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다. 사람이 행동한 것에 따라 그대로 갚아 주는 자가 바로 나 여호와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아십니다. 신명기 31:21절에서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6:8절에서는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시며, 우리의 마음에서 생각하는 것까지도 아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가 맡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유심히 살펴보십니다.
브라질의 성자로 불렸던 미국 선교사 ‘멜랜드(Doug Meland)’ 부부의 일화가 있습니다. 멜랜드 선교사 부부는 브라질의 깊은 산골에 들어가 선교하며 평생을 살았는데, 이름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곳 주민인 ‘폴리오 인디언’은 처음에 멜랜드 부부를 “백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그들을 총으로 위협하면서 괴롭혔던 백인들을 상징하는 증오에 찬 호칭이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주민들의 냉대에도 불구하고, 의료 봉사로써 주민들의 목숨을 구하며, 병을 치료하는 헌신적인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선교사 부부를 “존경하는 백인”으로 불렀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인디언의 언어를 열심히 배워서 10년이 지난 후에는 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유창한 말을 구사하게 되었고, 생활도 그들의 풍습대로 살았습니다. 그랬더니 주민들은 멜랜드 부부를 “백인 인디언”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부상당한 인디언 소년의 발을 씻어 주고 있었는데, 주민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인디언의 발을 씻는 백인을 보았는가? 이 사람은 하늘이 보내준 사람들이다.”
라고 하면서 그때부터는 멜랜드 선교사 부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렀습니다.
멜랜드 선교사 부부는 헌신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곳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의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나 멜랜드 선교사 부부가 받은 이런 칭호는 ‘예수처럼 사는 사람들’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표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고 간섭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미 말씀을 통하여 그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3-5절을 봅시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화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잊어버리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불신의 죄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기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이런 마음의 움직임까지도 놓치지 않으시고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어떤 것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에 합당한 믿음이 있는지, 하나님을 진실로 신뢰하는지를 보십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백세에 얻은 아들을 내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요셉에게는 형제들에 의하여 노예로 팔리는 수모와 애굽의 시위대장인 보디발 부인의 유혹이 따랐습니다. 사울 왕에게도, 다윗 왕에게도 시험이 있었으며, 다니엘과 세 친구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명예와 권력이, 가룟 유다에게는 돈으로 다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유혹이나 시련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을 달아보셨습니다. 이들 중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시험대를 통과한 사람도 있지만, 세상을 따르거나 자신의 욕심을 쫓다가 실패하고 무너져 내린 사람들도 많습니다. 호세아 4:6절에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3:10절에서는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라고 기도한 것들을 주시기에 합당한지를 시험하십니다. 그 시험대를 통과해야만 우리는 그것을 받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시험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그 자체입니다. 시험이라고 특별한 자리나 시기를 마련한다든지 시험의 때라고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본문 35-36절처럼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한 것이 인생 자격고시였습니다. 40절을 봅시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겸손하게 실천할 때에 그것이 곧 하나님께 한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곧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시험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작정 자신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닙니다. 기도와 말씀과 예배와 섬김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키워가면서 생활 속에서 순종하여 성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즉 지금 주어진 일에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종들처럼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일하여 이익을 남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어진 일에 합당한 능력도 주시고,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게 됩니다.
학교 앞 체육관에 다니는 운동선수들이 멋진 운동복을 입고 운동장을 한 줄로 뛰어가는 것을 본 동네 꼬마가 엄마를 졸라서 운동복을 샀습니다. 자기도 운동복을 입고는 학교 운동장에 가서 뛰었습니다. 그런데 한 바퀴도 체 못 뛰고는 숨이 차서 하는 말이 “엄마! 이거 입어도 선수가 안 되는구나”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아이는 좋은 운동복을 입으면 금방 선수로 변하는 줄 알았나 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모양만 갖추었다고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키워가야 합니다. 믿음은 누가 키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힘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성실한 예배, 매일 말씀과 기도를 가장 중요한 일로 여기고 행하며, 섬기고 봉사하는 일로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과 보배롭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가 수고하고 애쓰며 눈물로 인내하는 노력 없이 주어지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자격시험을 거쳐 왔을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일들이 더 나은 것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자격시험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달란트가 얼마이든지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말고, 사람이 알아주든지 알아주지 않든지 마음 두지 말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이 일에 옳다고 인정을 받으면 더 풍성하고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1:12절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우며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마음의 생각을 달아보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