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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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1-30 20:20
***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 마가복음 1:14-20
**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1:14-20,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우리 옛말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시작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가하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가 되려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각오해야 할 것이며, 제자의 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같은 의미를 가진 두 비유를 연속해서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28-32절의 ‘망대를 세우는 비유’와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비유’입니다. 이 두 비유를 ‘쌍둥이 비유’라고 합니다. 28절에서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31절에서는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이는 무턱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밀하게 점검하고 계획하여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2012년이 시작되고 네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했듯이 심지가 약한 사람은 새해 첫날에 결심한 것을 이미 포기했을 수도 있는 기간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새해의 결심을 잘 지켜가고 있습니까? 이처럼 한 해의 시작이 중요하고, 일의 시작이 중요하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입니다. 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가장 중요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영원한 생명과 함께 영원한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앞서 본 두 비유를 통하여 잘 생각해보고 끝까지 따라올 결심이 서거든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제자의 길의 결론인 누가복음 14:33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즉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닫혔던 마음을 깨우치며, 회개를 전파하며, 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 만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긴 세월을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했습니다. 바로 이때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광야로 모여들었으며, 회개하고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무렵에 30여 년 동안 세상의 평범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공생애라 일컫는 3년간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함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성령에 의하여 광야로 이끌리셨으며,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당시의 유대 지도자였던 분봉 왕 헤롯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한다는 이유로 세례 요한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한의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위하여 세우신 전무후무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세상을 뒤엎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술렁거렸으며 예수님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땅 끝까지 전파할 제자들을 부르기 위하여 밤새워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호숫가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제자가 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요청을 받은 어부 형제는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역시 호숫가의 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부르셨습니다. 그 형제도 즉시로 아버지와 일꾼들과 삶의 현장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시대의 변두리에서 별로 각광받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관심에도 없던 지역의 비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열 두 제자가 모두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이 시간에 우리가 생각할 주제입니다.
※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오직 순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첫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자신의 장래에 대한 내용들을 알고 따랐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즉시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요즈음 현대인들은 물건 하나 사는 것도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봅니다. 그런데 자기 인생을 결정하는 일을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결정하고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예루살렘에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을 부르셨다면 순종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부들과 세리 등 비천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순종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이렇게 순종이 요구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구원의 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에게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자신의 생명으로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자연히 이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 그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일은 세상의 지혜나 지식이나 부나 권력이나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과 삶을 회복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쳐 방해를 받아 일이 진행되지 못하자 사람들의 마음도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성전 재건이나 삶을 회복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을 깨우치고 독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 건축의 감독을 맡은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스가랴 4:6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즉 비록 환경은 여의치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환경을 어렵게 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인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비천하지만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세상의 지식과 힘과 권력과 부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힘으로 이루었다고 자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는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순종이란, 그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에는 이러한 순종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따르다’는 말은 ‘…을 따라서’라는 의미도 있지만, ‘…을 향하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의 방향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2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명한 곡예사가 그의 제자들에게 고공에서 수평봉에 매달려 재주를 부리는 곡예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곡예사는 이 곡예를 부리는데 필요한 모든 부분을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에게 각자의 능력을 보이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소년이 까마득히 높이 걸려 있는 봉을 쳐다보고는 겁에 질렸습니다. 자신이 그 높은 봉에서 떨어지는 무서운 광경을 상상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소년은 곡예사에게, “못하겠어요. 도저히 못하겠어요!”라고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 때 곡예사는 포근하게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단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너에게 가르쳐 주마.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이 곡예사의 말이 제자로서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순종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게 합니다.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환경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나 자신의 생각에 연연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내 마음을 던지는 것이 제자로서 순종의 길을 가는 첫걸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려한 길이나, 부귀영화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희생과 십자가의 길을 요구하셨으며, 이에 대한 부활의 생명과 영원한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요청과 약속은 지금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첫 제자들의 부르심의 과정을 보여주시는 까닭도 순종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어떠한 이유로도 지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일과 집과 가족을 버려두고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27,28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 22:28-30절에서는,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저나 여러분은 이 땅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애를 위한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평양 감사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못한다.”고 했듯이, 아무리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라도 자신이 거절하면 차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 12:11절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큰 영광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광의 길을 위하여 지금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확신과 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그리하여 2012년도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해,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복된 날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1:14-20,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우리 옛말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시작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런가하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가 되려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각오해야 할 것이며, 제자의 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같은 의미를 가진 두 비유를 연속해서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28-32절의 ‘망대를 세우는 비유’와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비유’입니다. 이 두 비유를 ‘쌍둥이 비유’라고 합니다. 28절에서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31절에서는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이는 무턱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주밀하게 점검하고 계획하여 시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2012년이 시작되고 네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했듯이 심지가 약한 사람은 새해 첫날에 결심한 것을 이미 포기했을 수도 있는 기간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새해의 결심을 잘 지켜가고 있습니까? 이처럼 한 해의 시작이 중요하고, 일의 시작이 중요하듯이,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입니다. 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가장 중요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영원한 생명과 함께 영원한 삶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따르는 사람들에게 앞서 본 두 비유를 통하여 잘 생각해보고 끝까지 따라올 결심이 서거든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제자의 길의 결론인 누가복음 14:33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즉 세상의 모든 것보다 주님을 의지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닫혔던 마음을 깨우치며, 회개를 전파하며, 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 만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긴 세월을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했습니다. 바로 이때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광야로 모여들었으며, 회개하고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무렵에 30여 년 동안 세상의 평범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공생애라 일컫는 3년간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함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성령에 의하여 광야로 이끌리셨으며,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당시의 유대 지도자였던 분봉 왕 헤롯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한다는 이유로 세례 요한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한의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위하여 세우신 전무후무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세상을 뒤엎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술렁거렸으며 예수님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땅 끝까지 전파할 제자들을 부르기 위하여 밤새워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호숫가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제자가 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요청을 받은 어부 형제는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역시 호숫가의 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부르셨습니다. 그 형제도 즉시로 아버지와 일꾼들과 삶의 현장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시대의 변두리에서 별로 각광받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관심에도 없던 지역의 비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열 두 제자가 모두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이 시간에 우리가 생각할 주제입니다.
※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오직 순종’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첫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자신의 장래에 대한 내용들을 알고 따랐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즉시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요즈음 현대인들은 물건 하나 사는 것도 이것저것 꼼꼼히 따져봅니다. 그런데 자기 인생을 결정하는 일을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에 결정하고 순종할 수 있었겠습니까? 만일 예루살렘에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을 부르셨다면 순종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부들과 세리 등 비천한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신 것은 순종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이렇게 순종이 요구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구원의 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에게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자신의 생명으로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자연히 이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 그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일은 세상의 지혜나 지식이나 부나 권력이나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과 삶을 회복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쳐 방해를 받아 일이 진행되지 못하자 사람들의 마음도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성전 재건이나 삶을 회복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을 깨우치고 독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 건축의 감독을 맡은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스가랴 4:6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만 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즉 비록 환경은 여의치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환경을 어렵게 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인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비천하지만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일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세상의 지식과 힘과 권력과 부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현상이 더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힘으로 이루었다고 자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는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순종이란, 그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말씀에는 이러한 순종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따르다’는 말은 ‘…을 따라서’라는 의미도 있지만, ‘…을 향하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의 방향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24절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유명한 곡예사가 그의 제자들에게 고공에서 수평봉에 매달려 재주를 부리는 곡예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곡예사는 이 곡예를 부리는데 필요한 모든 부분을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에게 각자의 능력을 보이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소년이 까마득히 높이 걸려 있는 봉을 쳐다보고는 겁에 질렸습니다. 자신이 그 높은 봉에서 떨어지는 무서운 광경을 상상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소년은 곡예사에게, “못하겠어요. 도저히 못하겠어요!”라고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 때 곡예사는 포근하게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단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너에게 가르쳐 주마.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이 곡예사의 말이 제자로서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순종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게 합니다.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환경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나 자신의 생각에 연연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내 마음을 던지는 것이 제자로서 순종의 길을 가는 첫걸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화려한 길이나, 부귀영화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희생과 십자가의 길을 요구하셨으며, 이에 대한 부활의 생명과 영원한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요청과 약속은 지금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첫 제자들의 부르심의 과정을 보여주시는 까닭도 순종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어떠한 이유로도 지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일과 집과 가족을 버려두고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27,28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 22:28-30절에서는,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저나 여러분은 이 땅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애를 위한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평양 감사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못한다.”고 했듯이, 아무리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라도 자신이 거절하면 차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 12:11절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큰 영광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광의 길을 위하여 지금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확신과 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그리하여 2012년도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해,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복된 날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