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생명을 위해 오신 예수님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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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1-12-27 21:07
*** 풍성한 생명을 위해 오신 예수님 / 요한복음 10:7-10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0:7-10,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현대어성경) 7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나는 양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은 모두 도둑이요 강도다. 그래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그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며 좋은 풀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오지만 나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해주기 위해 온 것이다.
오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복되고 기쁜 소식이 전해진 행복한 날입니다. 마치 사형수에게 사면과 자유의 소식이 전해진 것과 같은 행복한 날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까지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소식을 듣고 믿은 사람들에게는 기쁨과 행복이 주어지지만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잠시 눈앞의 즐거움일 뿐 진정한 행복을 갖지 못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이웃집 잔치에 잠깐 들른 사람처럼 잠깐의 기쁨뿐입니다. 하지만 믿은 자들은 잔칫집 가족처럼 행복의 시작입니다. 요한계시록 19:7-8절에서 행복이 시작되는 천국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이 말씀은 천국에서 열리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의 혼인잔치를 뜻합니다. 이 잔치는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영원한 행복의 자리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이 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이 성탄감사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성탄(聖誕)'은 예수님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은 화려하거나 거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순례자들이나 하나님께 예배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 베들레헴의 어느 집 허술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세상에 오셨지만 탄생을 축하하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점성가들과 가난한 목동들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역시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닮은 사람들에게만 그 가장 행복한 소식을 듣고 축하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8-12절에서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탄은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들, 세상의 더러움으로 때 묻지 않은 사람들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소식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는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 예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오시며 그들을 찾으십니다. 누가복음 4:18-19절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통과 죽음의 세상에 풍성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 예수님께서 이루신 풍성한 생명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해주기 위해 온 것”(현대어성경)이라고 하십니다. ‘생명을 준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생명이 없는 죽은 사람들임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죄를 범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영적인 죽음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죄가 세상에 시작되면서부터 고통과 갈등, 미움, 시기, 죽음이 일어났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이 영혼이 죽은 채로 살았던 것입니다. 로마서 4:12절에서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버림받아 영혼이 죽은 채로 살던 사람은 그 육신이 죽으면서 죄인들을 위해 만들어 두신 영원한 고통의 벌이 주어지는 지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영혼이 죽어 있어서 영원한 지옥의 고통까지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이 생명의 길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사람들의 죄를 대신 갚아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죄가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로마서 3: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셨습니다. 부득불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바로 이 날이 오늘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탄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죄를 대신하신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면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죄 때문에 죽었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1절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더 풍성하게 하십니까? 본문 9절을 봅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겨우 생명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영혼과 육신의 모든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문’으로 표현하신 것이 그 때문입니다. 문은 모든 것이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그의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의 모든 삶의 필요를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일을 만드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일을 이루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33:2절에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라고 하십니다. 다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풍성함이 주어집니다.
미국의 어떤 노인이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은 재산도 모두 정리해보니 500억 원쯤 되었습니다. 노인은 이 돈을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어서 유명한 대학을 찾아가서 총장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남루한 옷차림 때문인지 하루 종일 기다려도 총장이 만나주지를 않았습니다.
실망한 그는 작고 초라한 대학을 찾아가서 역시 총장면회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총장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노인은 전후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을 한 후, 자신의 돈을 학교 발전을 위해 써달라고 기증했습니다. 그 기금이 밑거름이 되어 그 학교는 오늘 미국의 유명 대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도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아무도 거덜 떠보지도 않는 보잘 것 없는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불신하고 끝내는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행복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호소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지만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은 화려한 곳, 이름이 나는 자리, 이익이 되고 보장되는 것만을 원합니다. 명품 옷과 신발, 가방으로 치장하고,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과 친구가 되려합니다. 옷이나 사는 꼴이 볼품없는 가난한 사람, 친해 봐야 별 볼 일 없는 사람들과는 친구가 되려 하지도 않습니다. 섬기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을 말하고, 성탄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잠언 21:4절에서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고 하시며, 로마서 12:16절에서는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주시는 더욱 풍성한 생명의 은혜를 받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삶이란, 자신의 생활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하늘의 그 보좌를 버리시고 자신의 생명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녀들에게 더욱 풍성한 것으로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6-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시며, 19절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모든 삶의 풍성하게 하시는 가장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십니다.
오 헨리의 작품 중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가슴을 찡하게 하는 가난한 부부 이야기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이 가난한 부부는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가장 아끼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팔아서 부인의 머리핀을 샀습니다. 한편 아내는 자신의 아름다움인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남편의 낡은 시곗줄을 샀습니다. 성탄절 아침에 아내는 짧은 머리카락을 감추느라 스카프로 머리를 감쌌고, 남편은 긴 옷소매로 손목을 가린 채 서로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서로가 선물을 보는 순간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남편은 시곗줄을 맬 시계가 없었고, 아내는 머리핀을 꼿을 머리카락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안 두 사람은 얼싸안고 사랑의 감동을 나눕니다.
또 ‘스펜서 존스’의 작품인 ‘선물’이라는 책에서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가장 위대한 선물은 공기나 물처럼 언제나 평범한 것들이 우리 일생을 좌우하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가 가장 평범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값으로 셈할 수 없는 귀하고 위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은 외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생명뿐만 아니라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신 예수님께 어떤 선물을 드리겠습니까? 주님은 어떤 선물보다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오늘 성탄주일에 자신을 주님께 드리지 않으시렵니까? ‘주님, 나를 구원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주신 주님께 나를 드리오니 나를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자신을 선물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생애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위대한 사랑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한복음 10:7-10,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현대어성경) 7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해 주셨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나는 양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은 모두 도둑이요 강도다. 그래서 양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그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얻고 드나들며 좋은 풀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려는 목적으로 오지만 나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해주기 위해 온 것이다.
오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복되고 기쁜 소식이 전해진 행복한 날입니다. 마치 사형수에게 사면과 자유의 소식이 전해진 것과 같은 행복한 날입니다. 그래서 세상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까지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소식을 듣고 믿은 사람들에게는 기쁨과 행복이 주어지지만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잠시 눈앞의 즐거움일 뿐 진정한 행복을 갖지 못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은 이웃집 잔치에 잠깐 들른 사람처럼 잠깐의 기쁨뿐입니다. 하지만 믿은 자들은 잔칫집 가족처럼 행복의 시작입니다. 요한계시록 19:7-8절에서 행복이 시작되는 천국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이 말씀은 천국에서 열리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은 성도들의 혼인잔치를 뜻합니다. 이 잔치는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만이 참여할 수 있는 영원한 행복의 자리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이 날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이 성탄감사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성탄(聖誕)'은 예수님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은 화려하거나 거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순례자들이나 하나님께 예배하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예루살렘 성전도 아니었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 베들레헴의 어느 집 허술한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온 우주를 지으신 주인이신 하나님이 자신의 세상에 오셨지만 탄생을 축하하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점성가들과 가난한 목동들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역시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의 겸손하심을 닮은 사람들에게만 그 가장 행복한 소식을 듣고 축하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8-12절에서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탄은 진실하고 겸손한 사람들, 세상의 더러움으로 때 묻지 않은 사람들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소식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는 오늘도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사람, 예수님의 구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 소외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오시며 그들을 찾으십니다. 누가복음 4:18-19절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고통과 죽음의 세상에 풍성한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본문 10절에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 예수님께서 이루신 풍성한 생명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얻습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양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해주기 위해 온 것”(현대어성경)이라고 하십니다. ‘생명을 준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생명이 없는 죽은 사람들임을 깨닫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죄를 범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이 영적인 죽음입니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죄가 세상에 시작되면서부터 고통과 갈등, 미움, 시기, 죽음이 일어났습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사람들이 영혼이 죽은 채로 살았던 것입니다. 로마서 4:12절에서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버림받아 영혼이 죽은 채로 살던 사람은 그 육신이 죽으면서 죄인들을 위해 만들어 두신 영원한 고통의 벌이 주어지는 지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영혼이 죽어 있어서 영원한 지옥의 고통까지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만드셨습니다. 이 생명의 길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 사람들의 죄를 대신 갚아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죄가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로마서 3:23절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하셨습니다. 부득불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님을 사람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바로 이 날이 오늘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탄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죄를 대신하신 구원의 주님으로 영접하면 생명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에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죄 때문에 죽었던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1절에서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어떻게 더 풍성하게 하십니까? 본문 9절을 봅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겨우 생명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영혼과 육신의 모든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을 ‘문’으로 표현하신 것이 그 때문입니다. 문은 모든 것이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그의 자녀들의 영혼과 육신의 모든 삶의 필요를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일을 만드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일을 이루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 33:2절에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라고 하십니다. 다만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사람에게 이와 같은 풍성함이 주어집니다.
미국의 어떤 노인이 자신의 살아온 인생을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모은 재산도 모두 정리해보니 500억 원쯤 되었습니다. 노인은 이 돈을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어서 유명한 대학을 찾아가서 총장 면회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남루한 옷차림 때문인지 하루 종일 기다려도 총장이 만나주지를 않았습니다.
실망한 그는 작고 초라한 대학을 찾아가서 역시 총장면회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총장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노인은 전후 사정을 간단하게 설명을 한 후, 자신의 돈을 학교 발전을 위해 써달라고 기증했습니다. 그 기금이 밑거름이 되어 그 학교는 오늘 미국의 유명 대학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도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아무도 거덜 떠보지도 않는 보잘 것 없는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불신하고 끝내는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토록 바라던 행복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호소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하지만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람들은 화려한 곳, 이름이 나는 자리, 이익이 되고 보장되는 것만을 원합니다. 명품 옷과 신발, 가방으로 치장하고, 좋은 집과 좋은 자동차를 가진 사람들과 친구가 되려합니다. 옷이나 사는 꼴이 볼품없는 가난한 사람, 친해 봐야 별 볼 일 없는 사람들과는 친구가 되려 하지도 않습니다. 섬기고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을 말하고, 성탄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잠언 21:4절에서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이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고 하시며, 로마서 12:16절에서는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주시는 더욱 풍성한 생명의 은혜를 받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낮추어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삶이란, 자신의 생활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서 내가 받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하늘의 그 보좌를 버리시고 자신의 생명과 함께 모든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자녀들에게 더욱 풍성한 것으로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6-7절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하시며, 19절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의 모든 삶의 풍성하게 하시는 가장 귀한 하나님의 선물이십니다.
오 헨리의 작품 중에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가슴을 찡하게 하는 가난한 부부 이야기입니다.
성탄절이 다가오자 이 가난한 부부는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가장 아끼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팔아서 부인의 머리핀을 샀습니다. 한편 아내는 자신의 아름다움인 긴 머리카락을 잘라서 팔았습니다. 그 돈으로 남편의 낡은 시곗줄을 샀습니다. 성탄절 아침에 아내는 짧은 머리카락을 감추느라 스카프로 머리를 감쌌고, 남편은 긴 옷소매로 손목을 가린 채 서로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서로가 선물을 보는 순간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남편은 시곗줄을 맬 시계가 없었고, 아내는 머리핀을 꼿을 머리카락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마음을 안 두 사람은 얼싸안고 사랑의 감동을 나눕니다.
또 ‘스펜서 존스’의 작품인 ‘선물’이라는 책에서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가장 위대한 선물은 공기나 물처럼 언제나 평범한 것들이 우리 일생을 좌우하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가 가장 평범한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값으로 셈할 수 없는 귀하고 위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은 외아들을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자신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생명뿐만 아니라 넘치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신 예수님께 어떤 선물을 드리겠습니까? 주님은 어떤 선물보다 우리 자신을 원하십니다. 오늘 성탄주일에 자신을 주님께 드리지 않으시렵니까? ‘주님, 나를 구원하시고 풍성한 생명을 주신 주님께 나를 드리오니 나를 주님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라고 자신을 선물로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앞으로의 생애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위대한 사랑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