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도하라 2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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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6-21 22:55
*** 이렇게 기도하라 2 / 마태복음 6:5-13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6:5-13,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지난 주일의 말씀 마지막 부분을 다시 되짚어보면서 오늘은 구체적으로 기도할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일 말씀을 듣고, 지난 주간에 얼마나 기도하셨습니까?
어느 집사님의 집 이야기 2탄입니다. 저녁 때, 어린 딸이 텔레비전을 보는 아빠의 무릎에 앉았습니다. 이러쿵저러쿵 학교 이야기 친구이야기를 하던 딸이 갑자기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딸의 생뚱맞은 질문에 아빠가 대답하며 놀라서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얘야,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니?” 그러자 딸이 말합니다. “음… 말이에요. 요즈음 아빠가 하나님과 얘기하시는 걸 한 번도 들을 수가 없거든요.” 아빠의 머리가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자신이나 자녀들, 모든 일을 위하여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는 기도입니다. 노후생활, 건강, 행복 그 어떤 것도 기도 없이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기도의 기본자세 다섯 가지를 기억하십니까? 기억을 더듬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기도의 기본자세는 첫째가 하나님께로 향하는 온전한 마음이며,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영과 육신의 삶의 모습을 아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바른 이해와 회개를 동반하는 신뢰이며, 넷째는 다른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 이며, 다섯째는 거짓과 의심 없는 신실함과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 확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누가 여러분에게 묻기를 “너는 누구냐?”라고 했을 때,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위의 다섯 가지에 대한 확고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준비가 없이 기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기도는 독백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신, 정체성은 분명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와 자녀로서의 확고한 신뢰가 없다면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됩니다. 즉 내 부모인지, 내 자식인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둘 사이의 관계는 모두가 불확실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내가 누구이며,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어떤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과 나 사이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기본자세를 꼭 갖추어야 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요한복음 15:7절말씀을 읽어봅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의 조건은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풀어놓으면 위의 다섯 가지 기도의 기본자세가 됩니다. 이 기본자세는 자신이 내면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영적인 정체성입니다.
※ 효과적인 기도의 자리와 기도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로 주님과 대화할 수 있는 영적인 정체성을 갖추었으면 주님과 대화를 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효과적인 기도의 자리와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이 본문 6-7절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기도’를 요구하셨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이 모인 공동체에서의 공중기도가 아니라 개별기도를 말합니다. 은밀한 기도란, 하나님과 나만의 대화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든지,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하나님과의 진지한 대화를 말합니다. 본문 5절에서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사람들에게 나타내려고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기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별 의미도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거나 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형식적인 기도를 경계하십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나쁜 면은 숨기고, 좋은 면들은 나타내고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만큼 기도한다.’ 또는 ‘나는 이런 좋은 일들을 한다.’는 표시로써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은 이미 모든 상을 다 받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께는 받을 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꺼이 함께 하시고 들으시는 기도의 자리는 ‘은밀한 곳’입니다. 은밀한 곳이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곳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고, 자랑하려는 마음 자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님과만 대화할 조용한 자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과만의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면 역시 자연스럽게 진지한 대화를 하게 됩니다. 혹 주의해야 할 것은 시간만 길게 끌려고 말만 많이 늘어놓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아니,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아신다면 그냥 주시면 될 것을 왜 꼭 기도하라고 하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마음을 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급하게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보시고 싶어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받으시는 기도는 은밀한 곳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아뢰는 기도입니다.
※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내용이 있습니다.
‘주기도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던 기도는 모든 기도의 기본골격입니다. 이 기도문만을 강해하는 것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기도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상세하게 강해할 수는 없고, 기본적인 골격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기도를 열어가는 순서입니다. 기도에도 순서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에 대뜸 본론으로 들어갑니까? 아니지요?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등. 서서히 마음의 문들이 열리고 후에는 중요한 내용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대화가 무르익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요한 대담이 있을 때는 장소나 환경이나 분위기를 중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지만 만왕의 왕이시며 동시에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갖추어야 할 합당한 순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첫머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셨습니다. 이 첫 부름에서 ‘내가 지금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대화를 요청한 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곧 ‘내 아버지’입니다. 이 호칭 속에는 앞서 말씀드린 기도의 기본자세에서 가장 중요한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아는’것이 들어있습니다. 이 관계는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내용인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의 첫 머리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내용만 보고도 우리는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첫 머리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함으로써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내용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기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정말 많은 내용이 이렇게 짧게 함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 인생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요리문답 제1번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며, 그 답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내용은 내게 지금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을 아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해야 하는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구해야 하는 내용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를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6: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즉 나 자신의 필요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가르치신 내용은 나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과 죄 사함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는 것과 악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해야 할 주된 간구의 내용입니다. 우리 육신의 모든 필요를 ‘일용할 양식’으로 축약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에서 반드시 빠지지 않아야 할 요소인 ‘사랑’과 ‘회개’가 들어있습니다. 이 회개의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죄를 용서해 주시옵고’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을 먼저 하셨습니다. 이것은 ‘용서’로서 사랑의 실천입니다. 즉 사람의 관계에서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23-24절에서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선 예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용서에 대하여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빚진 종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마 18:23-35). 이 비유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가 동반되지 않는 회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필요와 용서를 포함하는 회개에 이어서 꼭 구해야 하는 것으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실 것과 악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 유혹과 시험거리와 악한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유혹과 시험거리와 악에 빠지지 않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도는 적의 침입을 막는 산성이며, 기도는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방패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보호막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싸시기 때문에 어떤 악의 세력도 결단코 침범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는 통로입니다. 기도하지 않거나, 대충하는 형식적인 기도는 적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위험에 방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쟁할 때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서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8절에서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보호와 인도와 승리의 보장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그리스도인의 간증입니다. 그는 어느 농장의 인부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 농장에서는 매일 먹는 것과 숙소까지 제공했고, 보수도 다른 곳보다는 훨씬 많아서 넉넉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인은 얼마 있지 않아서 그곳에서의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함께 일하던 이웃이 ‘그렇게 좋은 조건을 제공해주는데 왜 그렇게 일찍 떠나려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집에는 지붕이 없어요.” 이 말은 스코틀랜드에 잘 알려진 옛 격언의 내용입니다. 그 격언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규칙적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는 집은 마치 지붕이 없는 집과 같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안과 위로 그리고 안전함을 누릴 수 없다.”
여러분의 집은 든든한 지붕이 있습니까? 매일의 기도생활로 주님께서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시고 힘과 능력이 되시는 행복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실질적인 기도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6:5-13,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지난 주일의 말씀 마지막 부분을 다시 되짚어보면서 오늘은 구체적으로 기도할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지난주일 말씀을 듣고, 지난 주간에 얼마나 기도하셨습니까?
어느 집사님의 집 이야기 2탄입니다. 저녁 때, 어린 딸이 텔레비전을 보는 아빠의 무릎에 앉았습니다. 이러쿵저러쿵 학교 이야기 친구이야기를 하던 딸이 갑자기 이렇게 물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딸의 생뚱맞은 질문에 아빠가 대답하며 놀라서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얘야, 왜 갑자기 그런 걸 묻니?” 그러자 딸이 말합니다. “음… 말이에요. 요즈음 아빠가 하나님과 얘기하시는 걸 한 번도 들을 수가 없거든요.” 아빠의 머리가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은 아닙니까? 여러분 자신이나 자녀들, 모든 일을 위하여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는 기도입니다. 노후생활, 건강, 행복 그 어떤 것도 기도 없이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명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기도의 기본자세 다섯 가지를 기억하십니까? 기억을 더듬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기도의 기본자세는 첫째가 하나님께로 향하는 온전한 마음이며,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영과 육신의 삶의 모습을 아는 것이며, 셋째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바른 이해와 회개를 동반하는 신뢰이며, 넷째는 다른 사람들과의 바른 관계 이며, 다섯째는 거짓과 의심 없는 신실함과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자녀의 정체성 확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누가 여러분에게 묻기를 “너는 누구냐?”라고 했을 때,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라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말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위의 다섯 가지에 대한 확고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준비가 없이 기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기도는 독백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신, 정체성은 분명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와 자녀로서의 확고한 신뢰가 없다면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됩니다. 즉 내 부모인지, 내 자식인지 확신이 서지 않으면 둘 사이의 관계는 모두가 불확실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내가 누구이며,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어떤 관계가 유지되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과 나 사이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 기본자세를 꼭 갖추어야 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요한복음 15:7절말씀을 읽어봅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도의 조건은 ‘내가 주님 안에 있고,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풀어놓으면 위의 다섯 가지 기도의 기본자세가 됩니다. 이 기본자세는 자신이 내면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영적인 정체성입니다.
※ 효과적인 기도의 자리와 기도의 방법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로 주님과 대화할 수 있는 영적인 정체성을 갖추었으면 주님과 대화를 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효과적인 기도의 자리와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것이 본문 6-7절입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기도’를 요구하셨습니다. 물론 여러 사람이 모인 공동체에서의 공중기도가 아니라 개별기도를 말합니다. 은밀한 기도란, 하나님과 나만의 대화입니다. 즉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한다든지, 형식적인 기도가 아닌, 하나님과의 진지한 대화를 말합니다. 본문 5절에서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사람들에게 나타내려고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기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7절에서는 별 의미도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거나 같은 말들을 반복하는 형식적인 기도를 경계하십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나쁜 면은 숨기고, 좋은 면들은 나타내고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만큼 기도한다.’ 또는 ‘나는 이런 좋은 일들을 한다.’는 표시로써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사람은 이미 모든 상을 다 받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께는 받을 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꺼이 함께 하시고 들으시는 기도의 자리는 ‘은밀한 곳’입니다. 은밀한 곳이라고 해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는 곳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고, 자랑하려는 마음 자체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주님과만 대화할 조용한 자리를 찾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주님과만의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면 역시 자연스럽게 진지한 대화를 하게 됩니다. 혹 주의해야 할 것은 시간만 길게 끌려고 말만 많이 늘어놓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아니,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아신다면 그냥 주시면 될 것을 왜 꼭 기도하라고 하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로 향하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마음을 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급하게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는지를 보시고 싶어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받으시는 기도는 은밀한 곳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아뢰는 기도입니다.
※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내용이 있습니다.
‘주기도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던 기도는 모든 기도의 기본골격입니다. 이 기도문만을 강해하는 것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기도입니다. 지금은 그렇게 상세하게 강해할 수는 없고, 기본적인 골격만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생각할 것은 기도를 열어가는 순서입니다. 기도에도 순서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습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에 대뜸 본론으로 들어갑니까? 아니지요? 만나면 먼저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등. 서서히 마음의 문들이 열리고 후에는 중요한 내용을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대화가 무르익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중요한 대담이 있을 때는 장소나 환경이나 분위기를 중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지만 만왕의 왕이시며 동시에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갖추어야 할 합당한 순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첫머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하셨습니다. 이 첫 부름에서 ‘내가 지금 기도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대화를 요청한 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곧 ‘내 아버지’입니다. 이 호칭 속에는 앞서 말씀드린 기도의 기본자세에서 가장 중요한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아는’것이 들어있습니다. 이 관계는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내용인 요한복음 17장에서 기도의 첫 머리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내용만 보고도 우리는 예수님과 성부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첫 머리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함으로써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분명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의 내용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기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정말 많은 내용이 이렇게 짧게 함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것’은 우리 인생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요리문답 제1번이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며, 그 답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내용은 내게 지금 존재하는 첫 번째 목적을 아뢰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해야 하는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구해야 하는 내용에서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요소를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6: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즉 나 자신의 필요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가르치신 내용은 나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과 죄 사함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는 것과 악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해야 할 주된 간구의 내용입니다. 우리 육신의 모든 필요를 ‘일용할 양식’으로 축약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에서 반드시 빠지지 않아야 할 요소인 ‘사랑’과 ‘회개’가 들어있습니다. 이 회개의 내용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죄를 용서해 주시옵고’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을 먼저 하셨습니다. 이것은 ‘용서’로서 사랑의 실천입니다. 즉 사람의 관계에서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의 죄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23-24절에서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선 예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용서에 대하여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빚진 종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마 18:23-35). 이 비유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용서가 동반되지 않는 회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필요와 용서를 포함하는 회개에 이어서 꼭 구해야 하는 것으로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실 것과 악에서 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수많은 사건과 사고 속에서 유혹과 시험거리와 악한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러한 유혹과 시험거리와 악에 빠지지 않는 것은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도는 적의 침입을 막는 산성이며, 기도는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방패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는 보호막입니다.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감싸시기 때문에 어떤 악의 세력도 결단코 침범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는 통로입니다. 기도하지 않거나, 대충하는 형식적인 기도는 적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위험에 방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쟁할 때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손을 들어서 결국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디모데전서 2:8절에서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보호와 인도와 승리의 보장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그리스도인의 간증입니다. 그는 어느 농장의 인부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 농장에서는 매일 먹는 것과 숙소까지 제공했고, 보수도 다른 곳보다는 훨씬 많아서 넉넉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인은 얼마 있지 않아서 그곳에서의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함께 일하던 이웃이 ‘그렇게 좋은 조건을 제공해주는데 왜 그렇게 일찍 떠나려 하느냐?’고 했습니다. 그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집에는 지붕이 없어요.” 이 말은 스코틀랜드에 잘 알려진 옛 격언의 내용입니다. 그 격언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 규칙적으로 기도를 드리지 않는 집은 마치 지붕이 없는 집과 같다.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은 평안과 위로 그리고 안전함을 누릴 수 없다.”
여러분의 집은 든든한 지붕이 있습니까? 매일의 기도생활로 주님께서 여러분의 보호자가 되시고 힘과 능력이 되시는 행복한 삶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실질적인 기도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