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내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533회 작성일 2012-06-06 22:42
*** 내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 / 고린도후서 4:16-5:10

** 들어가는 말

고린도후서 4:16-5:10,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소망! 희망! 이 말은 마치 봄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것을 보는 듯 한 느낌을 주는 말입니다. 마음을 들뜨게 하고, 무언가 모를 힘이 솟아오르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무엇인가를 소망하고 희망을 품고 살아갈 것입니다.

미국의 소설가인 ‘O.헨리’의 단편소설인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주인공 ‘존스’가 기억나십니까? 폐렴을 앓는 존스는 침상에 누워 떨어지던 낙엽을 헤아리면서 간호해 주는 친구 ‘수우’에게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거라는 말을 합니다. 존스의 아래층에 사는 늙은 화가 ‘베어만’은 40년 동안 아직 걸작을 그려보지 못했습니다. ‘수우’는 노인에게 존스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정말로 마지막 낙엽과 함께 떠나가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합니다. 다음 날 아침 수우가 창문의 휘장을 올려보니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벽돌담 벽에는 담쟁이 잎 하나가 그대로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또 그 다음날도 마지막 잎새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존스는 소망이 일어나면서 병세가 호전되게 됩니다. 그 마지막 잎새는 아래층 노인이 남긴 걸작이었습니다.

바로 이 이야기는 소망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왜 서두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본문말씀을 보면 알게 됩니다. 읽었던 본문말씀은 사람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하며, 육신과 영의 삶을 이야기하는 철학적인 냄새가 풍기는 말씀입니다. 본문말씀의 뜻을 담아 질문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소망하며 삽니까? 또한 지금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황스럽습니까? 아니면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까? 이 시간의 말씀을 통하여 삶의 분명한 목적과 흔들리지 않는 참 소망을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본문말씀은 ‘이 세상에서의 육신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보다 더 중요한 보이지 않는 영의 삶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영원한 영의 삶을 소망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본문 4:18절과 5:1절을 봅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쉽게 말해서 ‘잠깐 있다가 없어질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을 소망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이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지금 이 나라의 교회들이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지금 당장은 보이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으니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과 지옥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상여에 실어서 사람들이 어께에 메고 장지로 갔습니다. 상여를 이끄는 선소리꾼이 요령을 흔들며 선소리를 넣으면 상여꾼들이 후렴으로 답을 합니다. “대대손손이 잘 살자더니. 어허 어야 어허 넘차 어야. 가신단 말씀이 웬 말씀이요. 어허 어야 어허 넘차 어야. 북망산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 북망일세. 어허 어야 어허 넘차 어야…”이 소리 속에서, 죽음이 멀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대문 밖에 죽음이 있다고 탄식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이제라도 부르시면 우리는 당장 이 육신을 떠나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너무나 태평스럽습니다.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 육신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4:7절에서 표현한 대로 우리 육신은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습니다. 질그릇 같은 이 육신은 나이가 들면서 낡아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은 주님 만날 날이 다가올수록 더욱 새롭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9-10절에서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이 누리는 잠깐의 즐거움을 위하여 영원한 고통을 택하시렵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 제물이 되시면서 까지 우리를 위하여 열어주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영의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소망하시렵니까?

※ 영원한 집을 소망해야 합니다.

‘화석(化石)’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수성가하여 엄청난 재벌이 된 50대의 중년사업가입니다. 그는 유럽 여행 중에 자신의 주치의가 수행 비서에게 건  전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습니다. 주치의의 말은 ‘사업가가 말기 암이며 잘해야 앞으로 1년 정도밖에 더 살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삽시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절망감이 온 몸을 감싸서 자포자기와 허무 속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그는 자기가 지금까지 헛 살아온 것을 깨닫습니다. 정신없이 살면서 일구어놓은 일들이 사실은 별 것 아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하여 그토록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그 보다 더 귀하고 의미 있는 일들을 다 놓치고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죽음을 1년 앞두고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자기를 키워 준 계모를 찾아가 고개를 숙여 감사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만나 나란히 누워 하룻밤을 지내며 형제의 우애를 되새겼습니다. 수십 년 만에 옛 전우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죽은 이후로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던 말들도 떠올랐습니다. 그 말은 아내가 살아 있을 때에 늘 “예수 믿으라.”고 하면서 들려주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전도서 1장의 말씀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노력과 분투와 분주함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두 딸만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자신도 별 수 없는 인생임을 알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그는 인생은 먹고 살기 위한 삶 그 이상이며, 창조자가 준 시간은 귀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에 잠긴 채 이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주인공이라면 ‘앞으로 남은 몇 달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아마도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돈벌이를 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들일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7절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심정으로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삶의 시간들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동이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동이고 기도하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본문 1-5절을 봅시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내용이 좀 어렵지요? 단어 풀이부터 해봅시다. “장막 집”이란, 일시적인 거주지인 ‘천막’을 말하는데, ‘인간의 육체’를 의미합니다. “무너지면”이라는 말은 ‘육신의 죽음’을 의미하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될 영원히 썩지 아니하는 ‘신령한 몸’을 의미합니다.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란 ‘영원한 삶을 위한 예복을 준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살 때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예복은 요한계시록 19:8절에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께서 명하신 일들을 순종하여 행하는 것들이 하나님 나라에서의 우리의 예복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비록 지금 육신으로 세상에서 살지만 영원한 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즉 생명의 부활을 소망하는 ‘부활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간절히 소망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우리의 영원한 집인 생명의 부활을 소망해야 합니다. 생명의 부활은 곧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4절에서 이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4절의 의미는 이러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의 삶에 허덕이며 고생하며 한숨 쉬지만, 그렇다고 죽기를 바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새로운 몸으로 갈아입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것은 죽을 육신이 생명의 부활을 얻도록 함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세상에서 즐길 것을 즐기지 않고 절제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과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오직 ‘생명의 부활’을 얻기 위함입니다. 이 생명의 부활을 주님께서 보증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6:39절에서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이루기까지 보증으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5절).

※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본문 6-9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우리가 지금 이 육신으로 사는 동안에는 모든 일에 한계가 있습니다.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라고 했는데, 이는 육신으로 사는 동안에는 주님을 얼굴로 대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육신으로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즉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의 부활을 얻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때에는 실제로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12절에서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1: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하셨고 요한복음 20:29절에서는 의심 많은 도마에게 말씀하시면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도 못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눈에 확실하게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행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잠깐뿐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2:17절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만 있습니다. 육신의 욕망을 따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욕망을 부추기는 사탄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주님과 함께 살면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살기 위하여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집을 소망해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을 소망하면서 살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 우리가 행한 대로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상급은 내세에서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주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는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이 값진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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