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하는 자를 위해 예비된 복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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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4-26 23:03
*** 순종하는 자를 위해 예비된 복 / 창 22:9-18, 눅 5:5-7
** 들어가는 말
창세기 22:9-18,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누가복음 5:5-7,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순종(順從)’ 이 말은 풍기는 어감이 ‘나약함’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세상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삶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서 5:8-9절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본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이 자신이 지으신 인간들의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죽임을 당하셨다는 이 사실을 저는 정말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어떻게 그런 순종을 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힘입어 생명을 얻은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땅한 도리인 순종과 그에 따르는 복을 살펴보려 합니다.
※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두 본문을 요약하여 그 배경을 말씀드릴 때에 두 본문의 공통된 내용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본문은 여러분이 수없이 들었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는 그 장면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될 민족으로 ‘유대민족’을 택하셨습니다(출 19:6).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대민족의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하시고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25년이 지나 아브라함이 늙어서 아들을 생산할 수 없는 100세(아내 사라는 구십 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약속하신지 25년 후, 자식을 생산할 수 없는 나이, 기적으로 주신 아들, 이제는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 하시는 일.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어이없는 명령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본문내용입니다.
누가복음 본문은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잔뼈가 굵은 이들 형제는 지난밤에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배를 띄웠고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허탕만 쳤습니다. 빈 배만큼이나 허탈한 마음으로 항구에 들어와서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해변에 모인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시기 위하여 베드로의 배를 잠깐 빌리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정말이지 짜증나고 어이없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간밤의 허탕질, 그물까지 다 씻었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하면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시간대와 장소, 어느 것 하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는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는 본문말씀처럼 두 배가 잠길 정도의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이 두 본문의 공통된 사항을 찾으셨습니까? 첫째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명령이며,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했다는 것이며, 셋째는 엄청난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사역하는 목사님이 하루는 ‘하나님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이발사를 만났습니다. 목사님은 이발사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빈민거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그 지역은 지저분하고 악취까지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고 그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처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신단 말입니까?”
목사님이 막 대답하려는 찰나에 옆으로 지저분하게 긴 머리를 한 히피족이 지나갔습니다. 목사님이 이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 친구를 보십니까? 저 친구는 수염도 깍지 않고 지저분한 머리는 어깨를 덮으니 어찌 당신 같은 이발사가 젊은이들이 저렇게 이발도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그러자 이발사는 “그야 저 친구들이 이발도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니까 그렇죠. 이발소에 들어오기만 하면 멋진 신사로 만들어 줄 텐데 말입니다.” 목사님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도 당신과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한다면 이 세상은 에덴동산일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룰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이 이렇게 고통과 수고로움, 한숨과 슬픔이 가득한 이유는 ‘불순종’때문입니다.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처음으로 범한 죄가 ‘불순종’이었습니다. 결국 인류의 첫 조상의 불순종이 온 인류의 불행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없이 많은 말씀들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인류의 첫 조상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행복이 끝나고 수고로움과 죽음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불순종을 고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잃어버린 생명을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생명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시며, 19절에서는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22절에서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로보건데 순종은 생명이며, 삶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믿음을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 이유를 불문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상황이 허락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지금 처한 상황과 환경이 도저히 하락하지 않을지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두 본문의 내용이 바로 이것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나 베드로의 입장이라면 쉽게 순종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역시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는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리이튼 포드’목사님이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목사님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여행 중에 비행기가 연료보급을 위해 착륙한 서부 아프리카 다카 공항에서 어떤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잠깐의 시간동안 그 프랑스 출신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선교사는 ‘모슬렘지역에서 10년 동안을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포드 목사님의 일행 중 한 사람이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회심 자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두 명”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십년 선교활동 중에 2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불쑥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10년 동안 겨우 두 사람밖에 구원하지 못했는데, 왜 이곳에 있느냐는 의아한 물음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교사는 매우 놀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 왜 있느냐구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곳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리이튼 포드 목사님은 ‘이 일은 자신의 생애 속에 일어난 일 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10년 동안 사역의 열매가 단 2명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곳에 두셨기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고,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교사는 자신이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그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실을 “여호와 이레”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일을 행하십니다. 출애굽기 23:20절을 봅시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라고 하십니다(창 28:15). 여러분이 하는 일들이 잘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이해가 되지 않고 상황과 환경이 여의치 않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순종하십시오. 나훔 1:7절에서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23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무시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도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십니다. 아브라함처럼, 또는 베드로처럼,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순종의 사람들처럼, 그리고 순종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리하여 순종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복을 온 삶에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창세기 22:9-18, “9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얻으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누가복음 5:5-7, “5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6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순종(順從)’ 이 말은 풍기는 어감이 ‘나약함’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세상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고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삶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히브리서 5:8-9절에서 예수님에 대하여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본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성자 예수님이 자신이 지으신 인간들의 죄의 짐을 대신 지시고 죽임을 당하셨다는 이 사실을 저는 정말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어떻게 그런 순종을 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힘입어 생명을 얻은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땅한 도리인 순종과 그에 따르는 복을 살펴보려 합니다.
※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두 본문을 요약하여 그 배경을 말씀드릴 때에 두 본문의 공통된 내용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본문은 여러분이 수없이 들었을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는 그 장면을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될 민족으로 ‘유대민족’을 택하셨습니다(출 19:6). 하나님께서 택하신 유대민족의 믿음의 조상으로 선택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하시고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25년이 지나 아브라함이 늙어서 아들을 생산할 수 없는 100세(아내 사라는 구십 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하나님께서는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하셨습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약속하신지 25년 후, 자식을 생산할 수 없는 나이, 기적으로 주신 아들, 이제는 그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 하시는 일.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어이없는 명령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가 본문내용입니다.
누가복음 본문은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어부로 잔뼈가 굵은 이들 형제는 지난밤에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배를 띄웠고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허탕만 쳤습니다. 빈 배만큼이나 허탈한 마음으로 항구에 들어와서 그물을 씻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해변에 모인 무리에게 말씀을 전하시기 위하여 베드로의 배를 잠깐 빌리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십니다. 정말이지 짜증나고 어이없는 일을 시키셨습니다. 간밤의 허탕질, 그물까지 다 씻었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하면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시간대와 장소, 어느 것 하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는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는 본문말씀처럼 두 배가 잠길 정도의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이 두 본문의 공통된 사항을 찾으셨습니까? 첫째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과 명령이며,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했다는 것이며, 셋째는 엄청난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순종입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사역하는 목사님이 하루는 ‘하나님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이발사를 만났습니다. 목사님은 이발사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빈민거리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그 지역은 지저분하고 악취까지 풍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발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고 그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처참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신단 말입니까?”
목사님이 막 대답하려는 찰나에 옆으로 지저분하게 긴 머리를 한 히피족이 지나갔습니다. 목사님이 이발사에게 물었습니다.
“저 친구를 보십니까? 저 친구는 수염도 깍지 않고 지저분한 머리는 어깨를 덮으니 어찌 당신 같은 이발사가 젊은이들이 저렇게 이발도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도록 내버려 두십니까?”
그러자 이발사는 “그야 저 친구들이 이발도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니까 그렇죠. 이발소에 들어오기만 하면 멋진 신사로 만들어 줄 텐데 말입니다.” 목사님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습니다. “하나님도 당신과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인간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와 하나님께 기회를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실 것입니다.”
만일 이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한다면 이 세상은 에덴동산일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만 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룰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이 이렇게 고통과 수고로움, 한숨과 슬픔이 가득한 이유는 ‘불순종’때문입니다.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처음으로 범한 죄가 ‘불순종’이었습니다. 결국 인류의 첫 조상의 불순종이 온 인류의 불행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없이 많은 말씀들이 궁극적으로 뜻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입니다. 인류의 첫 조상이 불순종했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행복이 끝나고 수고로움과 죽음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불순종을 고치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잃어버린 생명을 예수님의 순종하심으로 생명을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시며, 19절에서는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5:22절에서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이로보건데 순종은 생명이며, 삶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믿음을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 이유를 불문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고, 상황이 허락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지금 처한 상황과 환경이 도저히 하락하지 않을지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나를 살리신 하나님,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두 본문의 내용이 바로 이것을 보여주십니다. 여러분이 아브라함이나 베드로의 입장이라면 쉽게 순종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역시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는 기적 그 자체였습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리이튼 포드’목사님이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목사님은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하면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여행 중에 비행기가 연료보급을 위해 착륙한 서부 아프리카 다카 공항에서 어떤 선교사를 만났습니다. 잠깐의 시간동안 그 프랑스 출신 선교사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선교사는 ‘모슬렘지역에서 10년 동안을 일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포드 목사님의 일행 중 한 사람이 선교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회심 자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선교사는 “두 명”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했습니다. 십년 선교활동 중에 2명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불쑥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10년 동안 겨우 두 사람밖에 구원하지 못했는데, 왜 이곳에 있느냐는 의아한 물음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선교사는 매우 놀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 왜 있느냐구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이곳에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제가 이곳에 있습니다.”
리이튼 포드 목사님은 ‘이 일은 자신의 생애 속에 일어난 일 중에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10년 동안 사역의 열매가 단 2명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곳에 두셨기 때문에 이곳을 떠날 수 없고, 이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교사는 자신이 머물고 싶은 곳에 머물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그 길을 예비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실을 “여호와 이레”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일을 행하십니다. 출애굽기 23:20절을 봅시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라고 하십니다(창 28:15). 여러분이 하는 일들이 잘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이해가 되지 않고 상황과 환경이 여의치 않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순종하십시오. 나훔 1:7절에서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7:23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무시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도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십니다. 아브라함처럼, 또는 베드로처럼,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순종의 사람들처럼, 그리고 순종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시다. 그리하여 순종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복을 온 삶에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