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죽음과 생명의 삶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059회 작성일 2012-04-12 22:21
*** 죽음과 생명의 삶 / 로마서 6:6-14

** 들어가는 말

로마서 6:6-14,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니라.”

오늘은 세상에서 일어난 일들 중에 가장 위대한 역사가 시작된 날입니다. 수천 년 인간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사셔서 부활의 길을 여신 일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한 인간을 위하여 사람으로 오셨다는 사실도 위대한 사건이며, 그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죄로 죽은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속죄제물이 되신 것도 위대한 일입니다. 하지만 다시 사는 부활이 없다면 그 위대한 일들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부활!’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이루신 가장 위대한 역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5:17-19절을 봅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 말씀은 아무리 예수님을 믿고 선한 일을 한다고 해도 부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부활이 없고 이 세상에서 사는 삶뿐이라면 차라리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훨씬 좋겠지요!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을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활의 길을 여신 이후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그 부활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소망이며 기쁨입니다.

어느 부활주일에 교회학교 초등부 선생님이 주일 공과시간에 씨앗 한 알을 꺼냈습니다. 호기심 어린 아이들의 눈이 선생님의 손으로 몰렸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얘들아, 이것은 어떤 나무의 씨앗이란다. 그런데 이 씨앗이 자라서 큰 나무가 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하겠니?”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 흙이 제일 중요해요. 씨앗은 흙이 있어야 자랄 수 있잖아요.” 한 녀석이 자신 만만하게 대답을 하자, 저마다 “햇빛이 가장 필요해요. 햇빛이 없으면 영양분을 만들어 낼 수 없어요.”, “공기가 중요해요.”, “물이 제일 중요해요.”라며 한마디씩 거듭니다. 한참 듣고 있던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사실은 이 씨앗은 삶은 것이란다.”
그러자 아이들은 “헐”, “큭” 하면서 속았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거립니다. 그때 선생님이 삶은 씨앗을 보여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란다. 생명이 없는 씨앗에는 햇빛도, 물도, 흙도, 공기도 더 이상 소용이 없는 법이지.”

선생님이 지혜롭게 부활의 핵심을 잘 가르치셨습니다. 부활이란 죽은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문이 생기지요? “우리 모두가 죽었다는 말인가?”, “우리가 죽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부활하지?” 그런데 본문 6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니? 이게 무슨 말이지?” 여러분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습니까? 오늘 부활주일에는 이 의문을 풀어보려 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이 시간의 본문말씀인 로마서 6장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과 다시 살아나신 것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자신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다시 살아났으며, 예수님의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나 자신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내가 죽었었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하겠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던 십자가 사건을 이야기 합니다. 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또 예수님만 부활하셨다고 우리가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 모두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 우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 앞쪽 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쉽게 풀이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혼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우리는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것입니다. 이 말은 내 몸의 생명이 끊어져 죽었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던 시절에 죄를 지었던 내가 죽었다는 뜻입니다. 죄를 지었던 내가 죽었으니까 내가 지은 죄도 없어지겠지요? 하지만 이렇게 죽은 것으로 끝난다면 예수님을 믿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에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얻은 이 첫 번째 부활은 ‘영의 부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영이 죽었던 그 때로부터 모든 사람이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죄의 종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시고,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생명을 누리도록 하시려고 이렇게 부활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죄에 대하여는 죽었고,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여신 생명의 부활의 길을 우리가 함께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서, 다시 살아난 영의 생명을 가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 해답이 본문 12-13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지금 이 시간에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것입니다.

※ 지금 우리는 죄를 따르던 몸이 죽은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은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지금 주님을 믿는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합니까?

죄를 지은 우리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죄를 없이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6,7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 죄의 몸이 죽어서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믿기 전의 몸이 죽었습니까? 저는 죽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쉽게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죄를 짓던 옛사람의 성품을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아직도 세상의 것을 예수님보다 더 좋아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아직 자신이 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현대 신학자인 ‘도드(C.H.Dodd;1884 -1973)’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는 네 가지 삶’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둘째는 그리스도를 사랑하여서 그분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며, 셋째는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 계심을 믿는 것이며, 넷째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매일 기쁘게 생각하고 실천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본문말씀에서는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여기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사실을 강조하십니다.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은 사탄을 따르는 죄의 일을 좋아하던 옛사람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죽었다는 표현은 ‘완전히 새롭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옛사람이란 예수님을 믿어 회개하기 이전의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던 그 사람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죽음’을 말합니다. 왜 자꾸 죽었다고 말할까요? 죽으면 모든 것이 다 끝나게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믿기 전의 모든 것은 다 끝났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옛사람이 예수님 안에서 죽으면 사탄에게 끌려 다니면서 죄의 종노릇을 하던 것도 끝이 납니다.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36절에서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고 하십니다.

※ 지금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생명의 삶을 누려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절에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이렇게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우리를 죽게 하는 죄에서 해방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탄이 지배하지 못하는 영적인 자유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이 자유를 지켜가기 위하여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의 삶을 지키고 누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본문 12,13절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 속담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약한 성품이 얼마나 죄짓기 쉬우며, 또한 죄에 대해 쉽게 무감각해지는가를 보여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처음부터 큰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작은 죄를 무시하고 즐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기꾼이 되고, 도둑질을 하고, 강도짓을 하고,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죄가 왕 노릇 한다.”는 말은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고, 마음이 악하게 되는 것을 표현한 말입니다. 왕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야 하듯이 죄가 시키는 일을 복종하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이 되지 않도록 “몸의 욕망에 순종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종이 되면 당연히 지옥 불에 던져지기 때문입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인도의 아륙 대왕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륙 대왕은 사형수에게 기름이 가득 담긴 그릇을 주면서 “네가 이 기름그릇을 쏟지 않고 온 장안을 다녀오면 살려 주겠다.”고 했습니다. 살 길을 얻은 죄수는 감사한 마음으로 기름 그릇을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온 장안을 하루 종일 돌고는 돌아왔습니다. 대왕은 죄수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온 장안을 돌아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가지 묻겠다. 장안의 큰 통로에는 무엇이 있고, 가장 큰 건물은 무슨 건물이더냐?” 죄수는 “길에 무엇이 있었는지, 또 건물에 대하여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대왕은 “네가 거짓말로 장안을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아니냐. 만일 온 장안을 돌아 왔으면 내가 묻는 말에 왜 대답할 수 없느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사형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께서 이 기름 그릇의 기름을 쏟지 않으며 살려주신다고 명령하지 않으셨습니까? 살고 죽는 것이 이 기름 그릇에 달려 있는데 어찌 곁눈을 팔겠습니까? 건물도, 사람도, 경치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대왕은 “옳다. 앞으로 죄를 짓지 말고 바른 것만 보고 살아라.”면서 그 죄수를 석방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여신 생명의 길을 가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말씀 따라서 예수님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매일 끊임없이 다가오는 죄의 유혹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속담에 “세 살 적 버릇 여든 까지 간다.”고 했습니다. 이는 어릴 때의 버릇이 죽을 때까지 간다는 무서운 말입니다. 좋은 버릇을 들이면 행복을 누리겠지만, 나쁜 버릇을 들이면 고통스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으로 값을 치르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삶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탄이 조종하는 죄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도록 자신을 드리십시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예수님 안에서 새 생명의 삶을 누리는 길입니다. 이렇게 하면 사탄의 세력이 결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본문에서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하고 하시며, 로마서 8:38-39절에서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십니다. 이 놀라운 능력과 생명의 약속을 누리는 복된 삶을 끝까지 이루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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