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내 마음이 향하는 그 곳!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060회 작성일 2012-10-11 12:25
*** 내 마음이 향하는 그 곳! / 빌 3:10-16

** 들어가는 말

빌립보서 3:10-16,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마태복음 6: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가르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 나라에 둘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것에 마음도 둔다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영국의 극작가이자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명언 중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할 수 있는 길은 반드시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 마음을 두게 되고, 마음이 가는 곳에 몸도 따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다 많은 관심을 둔 것을 성취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것, 이것을 ‘관심(觀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이 있는 자리보다 마음이 있는 자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으로 이미 살인한 것이라 하셨고,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만으로도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일서 3:15절에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5:28절에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신명기 31:21절에서는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고 하시며, 마태복음 9:4절에서는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을 아십니다. 이처럼 나를 살펴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이 향하는 것을 곧 행동하는 것과 동일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순종하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지금 내 마음이 향하고 있는 곳을 되돌아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마음이 향하여야 할 곳을 살펴보려합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살펴봅시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빌립보는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를 거쳐서 유럽으로 들어간 첫 성이었으며, 유럽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초기지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두 번째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의 초청을 받고 유럽에 건너가 최초로 세운 교회였습니다(행 16:11-40). 그 곳에서 얼마의 제자를 얻었지만 박해로 감옥에 갇혔고, 찬송 중에 기적이 일어나서 감옥을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간수의 온 집안에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는 등 바울에게는 가장 인상 깊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전도 여행 때에도 들렀고, 다른 교회에서는 물질적 원조를 받지 않았지만 빌립보 교회로부터는 선물을 기꺼이 받았습니다(빌 4:15-18). 사도 바울은 이처럼 친밀한 교제를 하던 빌립보 교회에 특별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의 내용 중에는 ‘기뻐하다.’는 단어가 무려 16회나 사용되었고, ‘주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내용이 21회나 사용되었습니다. 이 두 내용은 바울 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전부였으며, 어떤 환경 속에서도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삶이었습니다.

이처럼 빌립보 교회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바울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이 안고 있던 신앙의 문제에 대하여 조언하면서, 자신에게 보내준 사랑에 감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신앙의 문제는 율법주의자들의 위험과 교회 내의 불일치의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강조하면서 새 언약인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복음을 가르칩니다. 빌립보서 2:1-4절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그리고 본문 바로 앞의 7-9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이 본문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는 사도 바울이 향하고 있는 마음의 방향, 삶의 방향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바울의 마음은 오직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위하여 지나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부활의 영광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마음이 향하여야 할 곳은 어디겠습니까?

※ 내 마음이 향하여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자 동물학자인 ‘로버트 로젠달’교수가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들쥐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연구소에 200마리의 들쥐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여름이 되어 3개월 간 여름휴가 겸 생태연구를 떠나면서 200마리의 들쥐 중 50마리를 골라서 머리에 흰 페인트를 조금씩 칠해 놓았습니다.
연수소의 들쥐를 기르던 사육사들은 왜 교수가 50마리에게 표시를 해 두었는지 이유를 몰랐습니다. 사육사들은 궁금하기도 했지만, ‘교수님이 표시해 놓은 50마리는 품종이 좋은 것이거나, 머리가 좀 뛰어나고 영리한 것이거나 하여튼 좀 다른 것이겠지!’라고 생각하면서 3개월 동안 길렀습니다.
3개월 후 교수가 돌아왔을 때, 들쥐들이 달라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육 환경이나 공급하는 먹이나 모든 것이 똑같았는데, 머리에 페인트로 표시된 50마리의 들쥐가 다른 들쥐들보다 발육도 잘되어 있었고 훈련도 잘되어 있었습니다. 교수가 원인을 살펴보니, 원인은 사육사들의 관심 때문이었습니다. 사육사들은 머리에 표시 된 50마리가 다른 들쥐들보다 좀 더 특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좀 더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것에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사람은 관심이 많은 쪽으로 행동이 기울게 되어있습니다. 당연히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에 물질도 따라가고 몸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중요성은 서론에서도 살펴본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상태를 살피십니다. 마가복음 7:6절을 봅시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이사야 29:13절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의 몸은 이곳에 앉아서 예배하고 있지만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이 가는 그것을 보십니다. 마음이 없는 섬김과 예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마찬가지겠지요?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사람이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가 있다면 결코 마음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저나 여러분은 하나님을 ‘주(主)’로, ‘아버지’로 고백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입술은 이렇게 고백하면서 마음은 세상 재물이나, 자식이나, 부귀영화에 두고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외식하는 사람이며, 우상숭배자입니다. 고린도전서 6:9-10절을 봅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그리고 고린도후서 13:5절을 봅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그렇다면 내 마음이 향하여야 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이 물음은 사실 물어보나 마나입니다. 왜냐하면 답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마음이 향하여야 하는 곳은 당연히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간다면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부활의 삶’입니다. 본문 10-11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 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부활의 삶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의미합니다. 부활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영의 부활과 육의 부활입니다. 영의 부활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 죽었던 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저나 여러분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은 이미 영의 부활을 얻은 것입니다. 육의 부활은 우리가 아직 육신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주님이 다시 오시면 우리는 육신의 부활이 아니라 변화를 경험할 것입니다. 설령 육신이 죽는다할지라도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6:39절을 봅시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우리가 향하여야 하는 것은 ‘부활소망’입니다. 소망이라고 한 것은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욱 힘써서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향하여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명심하고 힘써야 할 것은 목표를 향하여 전심전력(全心全力)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직 목적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2-14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이 말씀의 의미를 설명 안 해도 아시겠지요? 오로지 목표를 향하여 온 힘을 다하여 달린다는 말입니다. 이는 ‘다른 곳에 마음을 두거나 한 눈 팔지 않고 오로지 목표에 전념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어디에 까지 이르렀던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마음을 둔 부활의 소망을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본문 15-16절). 자신의 자리란 영과 육신이 지금 살아가는 삶의 자리를 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가 중요합니다. ‘내일은 열심히 할 것이다.’라는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깨달은 지금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환경과 생활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부활의 소망을 향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내 마음이 향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산다는 것이 지금 세상에서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망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생각한다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힘을 내십시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십시오. 주님이 도우시며, 천군천사들이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서로가 위로와 격려와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어 나아갑시다. 매일 한 걸음씩이라도 부활의 소망에 내 마음을 두고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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