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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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09-05 21:10
***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 마태복음 19:23-30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19:23-30,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이르되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代價, price)를 원합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원리입니다. 일을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연구를 하든지, 어떤 수고로움으로 행하는 모든 것에는 당연한 대가를 기대합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신앙에 대한 대가를 기대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도 대가를 기대하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리고 말라기 3: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리고 본문 28-29절에서도 그러합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는 약속이 함께 주어져 있습니다. 약속이란 바로 그것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대가입니다.
오늘은 복음의 불모지였던 대복 마을에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게 하신지 18년이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 즉 대가(代價)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이 시간에 증거하는 말씀 외에도 66권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다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섬기는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대표적인 대가를 살펴보려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주님의 약속을 잡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은 바로 앞의 16-22절에 기록된 부자 청년과의 만남의 결과로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고 싶어서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청년이 돌아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구원과 영생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 열정적인 신앙생활 즉 사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과 영생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26절에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리고 에베소서 2:8-9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님은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가르치십니다. 26절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부자 청년과는 달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음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한 대가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절하게 ‘자신을 따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과 미래뿐만 아니라 육신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받을 보상’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이 본문 28-29절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영생을 택하지 못한 청년과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비교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면서 ‘영생이냐? 세상의 부귀영화냐?’를 두고 고민할 것입니다. 잠깐 사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좋아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어떤 핍박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결코 구원과 영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오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흔들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 얻기 전에 먼저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시자 제자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제자들은 ‘그러면 도대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탄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시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렸다고 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베드로는 ‘지금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렸음’을 강조했습니다.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모습을 봅시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마태복음 4:20절에서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하시며, 22절에서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 대하여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고, 누가복음 5:11절에서는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고, 레위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누가복음 5:28절에서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의 소유와 집과 직장과 일터를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자신의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맨몸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모든 것을 사용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생명을 부르시면 사용하던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육신조차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영혼은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욥은 동방에서 지혜 자였고, 부자였습니다. 사탄의 충동질로 그 많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잃고 열 명의 자식까지 한꺼번에 죽고, 자신의 몸은 병들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 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1:21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테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사람들이 오해를 했습니다. 세상에서 얻은 것을 자신의 것인 줄 오해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주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모든 것 다 버려두고 가야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것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청지기는 후일에 주인으로부터 평가를 받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주인의 것을 사용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시 50:10-12). 그러므로 영원한 삶을 위하여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13-21절을 봅시다.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말씀에서 어떤 사람을 부자라고 하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부자(富者)는 재물에 대해 과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부자라는 말은 지식이나 명예, 그리고 권력 등에도 사용합니다. 부자라는 말은 대체로 무엇이든지 많이 소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것도 무형의 재산보다 유형의 재산에 집착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소유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 소유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런 소유에 대한 집착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본문에서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한 부자는 세상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본문 앞의 부자청년에 대한 말씀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탐욕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께 무엇을 얻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 버린 자에게 주어진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당한 손실은 보상해 주십니다. 베드로의 물음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상은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주시는 것과 천국에서 주시는 것으로 구별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받을 보상을 ‘여러 배의 보상’이라고 하십니다(마가복음에서는 백배의 보상). 여기에서 가족이나 재산을 버렸다고 하는 것은 ‘주님보다 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신앙적인 결단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더 큰 위로와 보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는 영생, 즉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0절을 봅시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시며, 로마서 8:18절에서는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도들의 희생을 매우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버리신 것에 비하면 우리가 버린 것은 지극히 적은 것이지만 주님은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도들이 자신을 따르기 위하여 그들의 모든 소유를 버렸다는 것을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2:12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한 농부가 밭 한가운데에 있는 바윗덩이를 늘 피해서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바위 때문에 쟁기 두 개가 망가졌고, 괭이와 여러 연장들이 부러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위가 땅을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농작물의 손실도 컸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어떤 수고와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 바위를 캐어 내리라!”
농부는 바위 밑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바위가 늘 생각했던 것처럼 큰 바위가 아니라 두께가 겨우 한 자도 안 되는 바위였던 것입니다. 농부는 그 바위를 깨뜨려 마차에 싣고 내다 버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바위로 알고 피해서 농사를 짓고 손해를 보다니 참 어리석었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인가를 버리고 손해를 본다는 것을 대단히 어렵게 여깁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을 위하여, 나 자신의 영원한 삶과 영광을 생각하여 세상의 것을 놓아버리면 그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버림으로써 최고의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위하여, 주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며 섬겼던 모든 것에 대하여 주님이 보상하실 것입니다(작고 어려운 개척교회를 섬겨왔던 헌신). 앞으로도 잠깐 동안 있다가 없어질 세상의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이 세상에서 백배의 보상을 누리고 마지막 때에 영생을 받도록 더욱 충성된 헌신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19:23-30,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이르되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대가(代價, price)를 원합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원리입니다. 일을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연구를 하든지, 어떤 수고로움으로 행하는 모든 것에는 당연한 대가를 기대합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신앙에 대한 대가를 기대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도 대가를 기대하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리고 말라기 3:10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리고 본문 28-29절에서도 그러합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는 약속이 함께 주어져 있습니다. 약속이란 바로 그것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대가입니다.
오늘은 복음의 불모지였던 대복 마을에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게 하신지 18년이 되는 기념주일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신 약속, 즉 대가(代價)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이 시간에 증거하는 말씀 외에도 66권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다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섬기는 우리들에게 약속하신 대표적인 대가를 살펴보려합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주님의 약속을 잡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본문은 바로 앞의 16-22절에 기록된 부자 청년과의 만남의 결과로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고 싶어서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부담스러워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청년이 돌아간 후에 예수님께서는 구원과 영생은 이 세상의 재물이나 권세, 열정적인 신앙생활 즉 사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과 영생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26절에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리고 에베소서 2:8-9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님은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가르치십니다. 26절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섰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부자 청년과는 달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음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한 대가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친절하게 ‘자신을 따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과 미래뿐만 아니라 육신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받을 보상’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이것이 본문 28-29절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영생을 택하지 못한 청년과 세상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주님을 따른 제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비교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살면서 ‘영생이냐? 세상의 부귀영화냐?’를 두고 고민할 것입니다. 잠깐 사는 세상의 부귀영화가 좋아서 영원한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히려 어떤 핍박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결코 구원과 영생을 포기하지 않도록 오늘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흔들리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 얻기 전에 먼저 포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시자 제자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제자들은 ‘그러면 도대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탄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시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달렸다고 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베드로는 ‘지금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렸음’을 강조했습니다. 제자들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모습을 봅시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마태복음 4:20절에서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하시며, 22절에서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 대하여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고, 누가복음 5:11절에서는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했고, 레위가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누가복음 5:28절에서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자신의 소유와 집과 직장과 일터를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은 자신의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맨몸으로 태어나서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모든 것을 사용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생명을 부르시면 사용하던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육신조차 흙으로 돌아가 버리고, 영혼은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가게 됩니다. 욥은 동방에서 지혜 자였고, 부자였습니다. 사탄의 충동질로 그 많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잃고 열 명의 자식까지 한꺼번에 죽고, 자신의 몸은 병들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 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기 1:21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테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사람들이 오해를 했습니다. 세상에서 얻은 것을 자신의 것인 줄 오해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주님이 여러분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면 모든 것 다 버려두고 가야합니다. 우리는 주어진 것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청지기는 후일에 주인으로부터 평가를 받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주인의 것을 사용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시 50:10-12). 그러므로 영원한 삶을 위하여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13-21절을 봅시다.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말씀에서 어떤 사람을 부자라고 하는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부자(富者)는 재물에 대해 과욕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부자라는 말은 지식이나 명예, 그리고 권력 등에도 사용합니다. 부자라는 말은 대체로 무엇이든지 많이 소유한 사람을 말합니다. 그것도 무형의 재산보다 유형의 재산에 집착한 자들입니다. 이러한 세속적인 소유가 많은 사람일수록 그 소유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런 소유에 대한 집착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본문에서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한 부자는 세상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본문 앞의 부자청년에 대한 말씀처럼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탐욕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께 무엇을 얻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 버린 자에게 주어진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당한 손실은 보상해 주십니다. 베드로의 물음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보상은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 그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주시는 것과 천국에서 주시는 것으로 구별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받을 보상을 ‘여러 배의 보상’이라고 하십니다(마가복음에서는 백배의 보상). 여기에서 가족이나 재산을 버렸다고 하는 것은 ‘주님보다 덜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버릴 수 있는 신앙적인 결단입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더 큰 위로와 보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는 영생, 즉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10절을 봅시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하시며, 로마서 8:18절에서는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도들의 희생을 매우 귀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버리신 것에 비하면 우리가 버린 것은 지극히 적은 것이지만 주님은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도들이 자신을 따르기 위하여 그들의 모든 소유를 버렸다는 것을 반드시 보상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2:12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주리라.”
한 농부가 밭 한가운데에 있는 바윗덩이를 늘 피해서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바위 때문에 쟁기 두 개가 망가졌고, 괭이와 여러 연장들이 부러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위가 땅을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농작물의 손실도 컸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큰 결심을 했습니다.
“어떤 수고와 대가를 치르더라도 저 바위를 캐어 내리라!”
농부는 바위 밑을 파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바위가 늘 생각했던 것처럼 큰 바위가 아니라 두께가 겨우 한 자도 안 되는 바위였던 것입니다. 농부는 그 바위를 깨뜨려 마차에 싣고 내다 버리면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대단한 바위로 알고 피해서 농사를 짓고 손해를 보다니 참 어리석었구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무엇인가를 버리고 손해를 본다는 것을 대단히 어렵게 여깁니다. 그러나 막상 주님을 위하여, 나 자신의 영원한 삶과 영광을 생각하여 세상의 것을 놓아버리면 그것이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버림으로써 최고의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위하여, 주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며 섬겼던 모든 것에 대하여 주님이 보상하실 것입니다(작고 어려운 개척교회를 섬겨왔던 헌신). 앞으로도 잠깐 동안 있다가 없어질 세상의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이 세상에서 백배의 보상을 누리고 마지막 때에 영생을 받도록 더욱 충성된 헌신의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