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치유와 회복의 삶 - 용서와 회개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10,034회 작성일 2012-07-24 20:02
*** 치유와 회복의 삶 - 용서와 회개 / 마태복음 6:14-15, 누가복음 13:1-5

** 들어가는 말

마태복음 6:14-15, “14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누가복음 13:1-5,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오늘의 지구촌은 과학이나 문명으로나 엄청난 변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첨단과학으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문명이 발달하면서 100여 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할 일들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학과 문명만 발달하면서 인간의 육신과 정신과 영의 세계는 급속도로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육신은 수많은 암과 질병들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무엇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영적인 관심이 위축되면서 사탄의 세력이 확장되고 영적인 생명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시대의 영적인 싸움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장에서 종말이 가까이 다가올 때에 일어날 현상을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21-22절입니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야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그리고 베드로전서 5:8절에서는 이 시대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경고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렇게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혼란스럽고 위태로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이런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신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도 치유와 회복에 대한 프로그램들이 많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악치료, 미술치료, 상담치료, 대체의학, 천연치유, 대안학교, 영성회복, 전인치유 등. 정신과 몸 그리고 영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노력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치유와 회복이 중요하지만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몸과 정신의 치유보다 먼저 영의 생명이 치유되고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이 병들면 정신도 몸도 다 같이 병들게 되며, 영이 없으면 육신은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26절에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라고 했고, 요한삼서 1:2절에서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생명이 치유되고 회복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세상적으로도 많은 경우에 정신적인 질병의 원인이 과거의 인간관계에 있다고 합니다. 즉 어떤 일 때문에 불안하거나 원망과 분노, 원한이 쌓인 것이 정신을 분열시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치유하려면 과거의 그 고통스러운 일을 밝혀내서 용서하고 풀어야 합니다. 영적인 삶에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용서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회개를 통하여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으로 본문말씀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대표적으로 뽑았는데, 이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여러분의 모든 삶이 치유되고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본문은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후에 특별히 용서에 대하여 한 번 더 소상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즉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기 전에 먼저 사람들 사이에서의 잘못을 먼저 용서하고 회복하라고 하십니다.

누가복음 본문은 회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임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께 당시에 일어났던 사건을 알렸습니다. 그 사건은 유대지역의 총독인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물에 섞은 일이었습니다. 이 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말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에 흔하게 일어났던 식민지 학대사건이 분명합니다. 즉 갈릴리 사람들이 단순히 로마의 식민지 정책에 항거했다는 이유로 성전에 피신해 있었거나 혹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제물을 준비하고 있을 때 갑자기 군대가 들이닥쳐 학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건은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지면서 열여덟 명이 깔려 죽는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죄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십니다. 즉 이 사람들이 죽은 이유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처럼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 우리의 삶이 치유되고 회복되려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 옛말에 “여자가 한(恨)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했습니다. 서양에서는 \"Hell hath no fury like a woman scorned.\" 직역하면 ‘모멸감을 느낀 여자보다 더 맹렬한 불길은 지옥에도 없다.’라는 뜻입니다. 여자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이런 한이 마음에 품어져 있으면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명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한(恨)’은 ‘용서되지 못한 아픈 감정’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억압이나 고통, 모멸감, 억울함 등의 감정이 풀리지 못하고 마음 깊은 곳에 쌓여서 독소를 품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풀어내지 못하면 정신적으로도 피해의식, 망상, 심하면 마귀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물론 육신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게 됩니다. 잠언 17:22절에서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전해지는 실화라고 합니다.
살인범이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살인범의 형이 되는 사람은 공직에 있는 동안에 아주 많은 공로를 세워서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형은 주지사를 찾아가서 자기 동생을 사면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주지사는 그 형의 공로를 참작하여 동생의 죄를 사면해주는 사면장을 형에게 주었습니다. 주지사의 사면장을 주머니에 넣고 형은 곧바로 동생을 면회하러 갔습니다. 형이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사면을 받고 살아 나간다면 너는 무엇을 하겠니?” 동생은 분노가 가득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내가 살아서 감옥을 나간다면 첫째로 나에게 사형 판결을 내린 판사를 찾아 그 놈을 죽이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내 재판에서 증인으로 섰던 놈을 찾아서 그 놈을 죽이는 일이야.”
형은 아무 말 없이 면회를 끝내고 나왔습니다. 형무소 문을 나서는 형의 양복 주머니에는 주지사로부터 받은 사면장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동생은 얼마 후에 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원한을 품은 결과는 ‘자신도 용서받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것과 죄를 해결하기 전에는 원만한 관계를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래서 먼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23-24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용서하지 못한 마음으로 예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중에도 이렇게 용서하지 못한 마음으로 있지는 않습니까?

마태복음 18:21-35절에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일만 달란트 빚진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왕의 신하 중에 일만 달란트(약 1조원)를 빚진 자가 있었습니다. 왕이 ‘가족과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고 명령하자 신하는 ‘불쌍히 여겨달라.’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왕이 불쌍히 여겨서 그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탕감을 받은 신하가 기분 좋게 집으로 가다가 자기에게 일백 데나리온(약 천만원)을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그러자 대뜸 멱살을 잡고는 ‘빚을 갚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 빚진 동료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간청했지만, 감옥에 가둬버렸습니다. 이 일을 지켜 본 다른 동료가 왕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대단히 화가 난 왕은 당장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준 신하를 잡아오도록 명령했고, 잡혀온 그 신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는 빚을 다 갚도록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그리고 누가복음 17:3-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용서하는 마음에는 하나님의 평화가 부어지며,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용서하지 못함으로서 막혔던 모든 삶이 용서함으로서 치유되고 회복되게 됩니다. 여러분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한을 주님께 다 털어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삶이 치유되고 회복되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회개(悔改)는 하나님께 대한 것입니다. 흔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잘못과 죄를 하나님께 자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을 회개로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회개의 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이 먼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내가 품고 있는 한을 다 풀어내고 진정으로 용서해야 합니다. 내게 잘못한 사람들을 다 용서한 후에 하나님께 자신의 잘못과 죄의 길에서 돌이키고 잘못 갔던 길을 아뢰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베드로후서 3:9절에서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하시며, 요한계시록 3:19절에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회개하는 것을 마치 자존심이라도 상하는 것인 양 거부합니다. 본문말씀에서도 밝히셨듯이 회개를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하는 길뿐입니다. 로마서 2:4-5절을 봅시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그렇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십 년 예수님을 믿었다 할지라도 회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회개란 잘못된 모든 것을 다 비우고 지우는 것입니다. 옛 것을 비우고 지우지 않고는 새것을 담을 수 없듯이 회개하지 않는 마음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는 너무나 관대하고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는 날카롭게 대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7:3절에서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어느 주일에 교회학교 선생님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우리의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한다.’고 회개를 가르쳤습니다. 선생님은 성경공부를 마치고 아이들이 말씀을 잘 이해했는지를 알기 위해 질문을 했습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 고백하고 싶은 죄가 얼마나 있나요?” 아이들은 쥐죽은 듯 말이 없었습니다. 다시 몇 번을 물었을 때 키가 작은 한 아이가 손을 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하나님께 고백할 죄가 하나도 없어요. 그렇지만 죄를 고백해야 될 사람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조차 말씀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죄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잘못에 대하여는 아주 민감합니다. 이것은 거꾸로 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하여는 우리가 관여할 것이 없습니다. 죄를 정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며, 죄를 용서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즉시 그리고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할 수 없듯이 하나님의 나라에는 죄가 있을 곳이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렇게 내 삶에서 죄가 해결되면 우리 육신도 정신도 영의 생명도 치유되고 건강하게 회복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2:38절에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하시며, 3:19절에서는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영의 생명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영의 건강과 생명을 먼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직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던 삶을 돌이키고 죄를 고백하여 새 생명의 풍성한 삶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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