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길9-소망 안에서의 기다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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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1-31 15:33
*** 소망 안에서의 기다림 / 이사야 30:18-22, 디도서 2:11-14
** 들어가는 말
이사야 30:18-22,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디도서 2:11-14,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문명도 발달하고 그로 인하여 인간의 삶의 질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문명의 발달이 현대인들의 삶의 패턴에 끼친 중대한 영향 가운데 하나는 ‘빨라진 생활’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루가 24시간으로 구성된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느끼는 체감 시간은 ‘너무나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과학의 발달로 생활의 순환이 그만큼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빨라진 생활 패턴에 적응하다 보니 마음에 ‘조급증’이 생겼습니다. 이 사실은 이미 하나님께서 디모데후서 3:1-5절에서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감사하지 아니하며, … 절제하지 못하며, …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래서 오늘의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못견뎌합니다. 당장 눈앞에 나타나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조급함은 신앙의 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반면에 ‘기다림’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연한 기다림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다림이 의미가 있게 하는 것은 ‘소망’입니다. 곧 자신의 마음에 간직한 소망 안에서 하나님의 이루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영국의 화가 ‘조지 와트’의 ‘소망’이라는 재목의 그림이 있습니다(주보의 신앙의 생활화에 그림 있음). 이 그림은 지구 위에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걸터앉은 남루한 의상의 소녀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비파’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악기의 줄도 몇 가닥만 남아 있습니다. 소녀는 절망적인 모습으로 눈을 가린 채 몇 줄만 남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소망’입니다.
비파는 하프의 일종으로 12줄 혹은 10줄로 되어 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눈은 가려졌고, 악기의 줄은 거의 다 끊어져 버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남은 줄로 연주할 수 있는 소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망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진다 할지라도 영원하도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4:1-3절에서 약속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리고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십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소망하면서 주님께서 이루실 날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의 길 아홉 번째는 ‘소망 안에서의 기다림’입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이사야 본문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때때로 눈앞에 고생과 환난이 다가올지라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며 인도하실 것이니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로 마음을 향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지금 이스라엘 벡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쪽의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강대국을 의지하여 덕을 보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길이 패망의 길이니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약속을 주십니다. 2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디도서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젊은 목회자인 디도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내용은 여러 연령층의 성도들을 어떤 말씀으로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를 상세하게 가르칩니다. 즉 성도를 양육하는 원동력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목회자는 성도들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하십니다. 곧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지침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림의 소망을 갖게 합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여기서 “복스러운 소망”과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은 같은 내용으로써 ‘예수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는 재림의 약속을 소망하게 하셨고, 그 약속이 이룰 것을 기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고 기다리게 하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가장 위대한 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재림의 약속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며 어떻게 기다려야 합니까?
지금 여러분의 가장 큰 소망은 무엇입니까?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직장을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한 남자가 소방서 망대 앞에 멈춰 섰습니다. 예전에는 소방서에서 불난 곳을 찾는 망대가 있었습니다. 망대 꼭대기에서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는 소방대원이 너무 부러워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야, 얼마나 시원할까! 저 자리야말로 내게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그는 소방대원이 되었습니다. 첫 겨울이 되어 그 남자는 소방망대에 올라가는 일이 너무 춥고 싫어서 소방서를 그만 두었습니다. 이번에는 따뜻한 세탁소에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자 그는 시원한 소방망대 꼭대기가 다시 그리웠습니다. “이곳은 너무 더워. 아무래도 내겐 소방서가 맞는 것 같아.” 세탁소를 나온 그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방황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옛말에 “재주가 많으면 굶어죽는다.”고 했고, “한 우물을 파라.”고도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마음의 변덕이 심하여 이것저것 집적거리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영의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사야 26:3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매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사야 본문 18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다.’고 하시며, 디도서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주어지는 재림의 소망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지는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소망은 환경이나 삶의 여건이나 어떤 것에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결코 자신의 생각에 의하여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잘 될 때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감사하기도 하며 신앙생활에 적극적이 됩니다. 그러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착잡해지면 감사도 기도도 신앙생활도 멀어지게 된다면 이는 마음이 정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이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주께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소망이라면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하박국 2: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한 곳 더 봅시다. 야고보서 5:7-8,1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이시니라.”
그러면 소망이 이룰 때까지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까? 그래서 본문말씀에서는 기다림의 자세까지도 함께 가르치십니다. 이사야 본문 20-22절에서는 ‘주님께서 때때로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즉 소망이 이룰 때까지 삶의 어려움이 많이 주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 즉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따랐던 세상의 것들을 모두 던져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만을 바라보고 따르겠다는 결단의 삶입니다.
디도서 본문 12절에서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라고 하십니다. 즉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경건하지 않는 것들과 이 세상의 정욕은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일서 2:15-17절을 봅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혹 ‘이렇게 세상의 것을 다 버리면 어떻게 살겠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디도서 본문 14절에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살아왔던 삶은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소망이 이룰 때까지 기다림의 자세를 종합해보면 ‘세상을 따르던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말로 ‘성화(聖化)의 삶’이라고 합니다. 즉 주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환난을 예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19절입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앞으로 환난과 두려움의 일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위해 거처를 마련하고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재림을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선한 일에 힘쓰며 흔들림 없이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이 소망을 굳게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인내하며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백성 된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이사야 30:18-22, “18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그가 네 부르짖는 소리로 말미암아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그가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20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21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22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디도서 2:11-14,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문명도 발달하고 그로 인하여 인간의 삶의 질도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문명의 발달이 현대인들의 삶의 패턴에 끼친 중대한 영향 가운데 하나는 ‘빨라진 생활’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루가 24시간으로 구성된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느끼는 체감 시간은 ‘너무나 짧아졌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과학의 발달로 생활의 순환이 그만큼 빨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빨라진 생활 패턴에 적응하다 보니 마음에 ‘조급증’이 생겼습니다. 이 사실은 이미 하나님께서 디모데후서 3:1-5절에서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 감사하지 아니하며, … 절제하지 못하며, …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래서 오늘의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못견뎌합니다. 당장 눈앞에 나타나야 속이 시원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조급함은 신앙의 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반면에 ‘기다림’은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연한 기다림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기다림이 의미가 있게 하는 것은 ‘소망’입니다. 곧 자신의 마음에 간직한 소망 안에서 하나님의 이루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영국의 화가 ‘조지 와트’의 ‘소망’이라는 재목의 그림이 있습니다(주보의 신앙의 생활화에 그림 있음). 이 그림은 지구 위에 절망스러운 모습으로 걸터앉은 남루한 의상의 소녀가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비파’라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악기의 줄도 몇 가닥만 남아 있습니다. 소녀는 절망적인 모습으로 눈을 가린 채 몇 줄만 남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이 ‘소망’입니다.
비파는 하프의 일종으로 12줄 혹은 10줄로 되어 있습니다.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의 눈은 가려졌고, 악기의 줄은 거의 다 끊어져 버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남은 줄로 연주할 수 있는 소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망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진다 할지라도 영원하도록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4:1-3절에서 약속하십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그리고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십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소망하면서 주님께서 이루실 날을 믿음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의 길 아홉 번째는 ‘소망 안에서의 기다림’입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이사야 본문말씀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때때로 눈앞에 고생과 환난이 다가올지라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며 인도하실 것이니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우상들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께로 마음을 향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가 하면, 지금 이스라엘 벡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주변 강대국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쪽의 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 그들이 바로의 세력 안에서 스스로 강하려 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으되 나의 입에 묻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강대국을 의지하여 덕을 보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그 길이 패망의 길이니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약속을 주십니다. 2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디도서 본문말씀은 사도 바울이 젊은 목회자인 디도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입니다. 내용은 여러 연령층의 성도들을 어떤 말씀으로 어떻게 양육할 것인지를 상세하게 가르칩니다. 즉 성도를 양육하는 원동력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목회자는 성도들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하십니다. 곧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지침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재림의 소망을 갖게 합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여기서 “복스러운 소망”과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은 같은 내용으로써 ‘예수님의 재림’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는 재림의 약속을 소망하게 하셨고, 그 약속이 이룰 것을 기다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고 기다리게 하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가장 위대한 복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재림의 약속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 우리의 소망이 무엇이며 어떻게 기다려야 합니까?
지금 여러분의 가장 큰 소망은 무엇입니까?
어느 무더운 여름 날, 직장을 구하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한 남자가 소방서 망대 앞에 멈춰 섰습니다. 예전에는 소방서에서 불난 곳을 찾는 망대가 있었습니다. 망대 꼭대기에서 망원경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는 소방대원이 너무 부러워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야, 얼마나 시원할까! 저 자리야말로 내게 안성맞춤이다.’
그래서 그는 소방대원이 되었습니다. 첫 겨울이 되어 그 남자는 소방망대에 올라가는 일이 너무 춥고 싫어서 소방서를 그만 두었습니다. 이번에는 따뜻한 세탁소에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자 그는 시원한 소방망대 꼭대기가 다시 그리웠습니다. “이곳은 너무 더워. 아무래도 내겐 소방서가 맞는 것 같아.” 세탁소를 나온 그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방황하며 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옛말에 “재주가 많으면 굶어죽는다.”고 했고, “한 우물을 파라.”고도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이렇게 마음의 변덕이 심하여 이것저것 집적거리면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영의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사야 26:3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매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사야 본문 18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다.’고 하시며, 디도서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주어지는 재림의 소망을 기다리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가지는 우리의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소망은 환경이나 삶의 여건이나 어떤 것에도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은 결코 자신의 생각에 의하여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잘 될 때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감사하기도 하며 신앙생활에 적극적이 됩니다. 그러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마음이 착잡해지면 감사도 기도도 신앙생활도 멀어지게 된다면 이는 마음이 정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이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기 때문에 아무 것도 주께 얻기를 기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소망이라면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하박국 2:2-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한 곳 더 봅시다. 야고보서 5:7-8,11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여기시는 이시니라.”
그러면 소망이 이룰 때까지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무작정 기다려야 합니까? 그래서 본문말씀에서는 기다림의 자세까지도 함께 가르치십니다. 이사야 본문 20-22절에서는 ‘주님께서 때때로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즉 소망이 이룰 때까지 삶의 어려움이 많이 주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 즉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고 따랐던 세상의 것들을 모두 던져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주님만을 바라보고 따르겠다는 결단의 삶입니다.
디도서 본문 12절에서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라고 하십니다. 즉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경건하지 않는 것들과 이 세상의 정욕은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일서 2:15-17절을 봅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혹 ‘이렇게 세상의 것을 다 버리면 어떻게 살겠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디도서 본문 14절에서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자신을 위해 살아왔던 삶은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소망이 이룰 때까지 기다림의 자세를 종합해보면 ‘세상을 따르던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말로 ‘성화(聖化)의 삶’이라고 합니다. 즉 주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환난을 예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19절입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앞으로 환난과 두려움의 일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특히 ‘우리를 위해 거처를 마련하고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재림을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선한 일에 힘쓰며 흔들림 없이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이 소망을 굳게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시는 그 날까지 인내하며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백성 된 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