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과 성취를 위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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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12-31 15:59
*** 상생과 성취를 위하여 / 갈라디아서 6:1-10, 빌 3:13-14
** 들어가는 말
갈라디아서 6:1-10,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빌립보서 3:13-14,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늘, 2012년 마지막 주일에, 지나온 52주일을 돌아보면서 다가오는 2013년의 52주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하여 고민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걸음을 어떻게 평가하실까?!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새롭게 발전시켜 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장 마음 깊이 다가온 말씀이 바로 이 시간의 본문말씀입니다. 이름 하여 ‘상생(相生)과 성취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이 시간과 31일 송구영신 예배를 통하여 내 생애에 한 획을 그어 볼 수 있는 그런 출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성탄절 사흘 전에 겪은 실화입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탄 비행기는 착륙이 30분 이상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일까? 궁금증이 날 때에 기장의 안내 방송이 들렸습니다.
\"우리 비행기의 착륙 기어에 말썽이 좀 생겼지만, 곧 수리를 끝내고 착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승객들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할렐루야! 하나님, 드디어 제가 갑니다. 빨리 끝내주세요.\"
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쳤습니다.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왜 네 생각만 하느냐? 이 사람들을 생각해 봐. 나를 모르는 영혼들인데 지금 이들이 죽는다면 다 어떻게 되겠느냐?\"
그 순간 그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저는 무엇에 대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인도하여 주소서.\"
그 순간 착륙장치에 공급되어야 할 기름이 줄 줄 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고쳐주세요. 착륙장치에 문제가 있습니다.\"
드디어 비행기가 비행장으로 서서히 착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도대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비행기는 착륙에 필요한 바퀴를 내리는 데에 필수적인 기름이 모두 유출되어 동체착륙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퀴가 내려와서 무사히 착륙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서두에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는지!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사랑의 배려를 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상생(相生)’이란 ‘서로 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너무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정(情) 중에서도 가장 질긴 정이 피를 나눈 혈육의 정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이 혈육의 정마저 사구려 옷 벗어 던지듯이 팽개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디모데전서 5:8절에서 경고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간관계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위선적인 신앙임’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생(相生)은 ‘서로 도와가며 함께 하나님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즉 지나온 2012년과 그 이전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 가족과 일가친척들,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체들과 함께 해 왔는지를 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면 버려야 할 것과 성숙시켜야 할 것들을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마음경영에서부터 성품, 습관, 말씨, 행동 등. 버려야 할 것은 미련두지 말고, 체면이나 자존심도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며 과감하게 묻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숙시키고 성취해야 할 것들은 손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도록 주님께 마음과 삶을 드려야 합니다. 특히 함께하도록 주신 사람들 - 가족, 혈육들, 믿음의 지체들 - 과 마음을 맞추도록 힘써야 합니다(갈 6:10). 갈라디아서 본문 1-2절에서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십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찾고, 송구영신 예배에서는 결단하고 실행하도록 합시다.
※ 상생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갈라디아서 본문에는 “짐을 지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2절에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셨고, 5절에서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짐”이라는 단어가 다릅니다. 2절에서는 baros(bavro\"/burdens)라는 단어인데 ‘혼자서 들기는 무거운 짐’을 뜻하며, 5절에서 사용된 단어는 phortion (fortivon/burden)인데 ‘사람이나 동물이 옮길 수 있는 짐’을 뜻합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이 져야 하는 짐도 있고, 함께 져야 할 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으며, 서로 도와가며 함께 이루어야 할 사명도 주셨습니다.
먼저, 서로 나누어서 함께 져야 할 짐은 갈라디아서 본문 1절에서 설명을 하십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믿음이 적은 가족이나, 믿음의 식구들이나, 공동체의 일원들이 수고의 짐을 지고 어려워 할 때, 비웃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으로 도우며 함께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5-16절을 봅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짐을 가져가셨으므로 우리는 형제자매들의 짐을 함께 지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13-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렇게 짐을 함께 지는 일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본문 10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이 먼저 하나를 이루어서 상생(相生)의 짐을 함께 해야 합니다. 잠언 17:17절에서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가족이 위급하게 되고 어려움이 닥치면 혼자 살겠다고 도망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가정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꼬시래기 지살 뜯는다.”고 하듯이, 가족들이 서로 물고 뜯으면 함께 망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15절에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가정이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면 돈이 없어도, 어려움이 닥쳐도 기쁨과 평안이 가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산해진미가 쌓여 있어도 행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고, 잠언 17:1절에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가족이 하나를 이루고 교회가 하나를 이루어야 상생의 삶이 가능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아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며,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자식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목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본문 3-5절을 읽어봅시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하거나 부담스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이 사명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본문 7-8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상생을 위해서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함께 해야 할 일을 잘 분별하여 서로를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세우기 위하여 가족이나 교회나 사회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2012년을 상생(相生)을 위해 어떻게 해 왔습니까?
※ 성취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빌립보서 본문을 봅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명을 향하여 달음질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짧은 글 속에서 사도 바울의 삶의 자세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부름을 향하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푯대로 하여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거나 향수에 묻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달렸습니다. 바울의 삶은 치열한 경기이며 싸움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24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하시며, 26-27절에서는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달렸습니다.
여러분의 성취 목표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우리의 목표도 사도 바울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야 합니다. 아직 여러분 자신이 달려야 할 목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목표라고 모두 거창하고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목표이며, 가정에서의 사명이 목표이며, 교회에서의 직분도 목표이며, 학교와 직장과 사업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의 세상의 빛이라.”고하시면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려면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떨쳐버리고 달려야 합니다. 수영선수들이나 육상선수들이 복장을 보십시오. 몸매를 자랑하려고 그렇게 달라붙는 옷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물살을 가를 때나 달릴 때의 저항을 최소로 줄이기 위하여, 무게를 줄이고 저항을 만드는 요소를 없애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그 목표를 향하여 달리면서 방해되는 모든 나쁜 습관과 삶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안 좋은 습관을 알면서도 “바꿔야지! 바꿔야지!”하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삶을 과감하게 끊어야 합니다. 목표에 이르고 싶고, 성취하고 싶다면 말입니다. “아 옛날이여!”하면서 과거에 잡혀 있으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2013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하나님 안에서 세우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하는데 방해되는 모든 요소, 버려야 할 요소를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결단하십시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한 남자가 우연히 새끼 곰을 발견하고는 집에서 길렀습니다.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서 새끼 곰은 어엿한 어른 곰이 되었습니다. 곰은 주인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늘 주인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시원한 가을 날 곰은 주인이 바깥뜰의 의자에서 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모기 한 마리가 주인의 뺨에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은혜를 갚을 기회가 왔구나!\"라고 생각한 곰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앞발로 모기를 때려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주인도 함께 비명횡사하고 말았습니다.
곰은 주인에게 보답하고자 했지만 자신이 주인까지도 죽일 수 있음을 몰랐습니다. 곰과 사람의 차이를 몰랐습니다. 여러분,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그리고 모든 공동체에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상생(相生)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과 다른 사람의 일, 서로 도와가며 함께 해야 할 일을 잘 분별한다면 즐거운 상생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렇게 화목한 가운데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올바른 결단으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오직 목표를 향한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성취의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안 되었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하십니다. 주님을 믿고 순종한다면 때가 이를 때 반드시 이루게 하십니다.
이제 내일 송구영신 예배 떼에 상생과 성취를 위한 여러분의 생각과 결단과 계획을 가지고 오십시오. 2012년의 멋진 마무리와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2013년의 복된 출발을 합시다.
** 들어가는 말
갈라디아서 6:1-10,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빌립보서 3:13-14,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오늘, 2012년 마지막 주일에, 지나온 52주일을 돌아보면서 다가오는 2013년의 52주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에 대하여 고민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걸음을 어떻게 평가하실까?!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고, 새롭게 발전시켜 가야 할 것은 무엇인가? 가장 마음 깊이 다가온 말씀이 바로 이 시간의 본문말씀입니다. 이름 하여 ‘상생(相生)과 성취를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이 시간과 31일 송구영신 예배를 통하여 내 생애에 한 획을 그어 볼 수 있는 그런 출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이 성탄절 사흘 전에 겪은 실화입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가 탄 비행기는 착륙이 30분 이상 지연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일까? 궁금증이 날 때에 기장의 안내 방송이 들렸습니다.
\"우리 비행기의 착륙 기어에 말썽이 좀 생겼지만, 곧 수리를 끝내고 착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승객들의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할렐루야! 하나님, 드디어 제가 갑니다. 빨리 끝내주세요.\"
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쳤습니다. 그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이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에 성령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왜 네 생각만 하느냐? 이 사람들을 생각해 봐. 나를 모르는 영혼들인데 지금 이들이 죽는다면 다 어떻게 되겠느냐?\"
그 순간 그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저는 무엇에 대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시고 어떻게 해야 할지 인도하여 주소서.\"
그 순간 착륙장치에 공급되어야 할 기름이 줄 줄 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고쳐주세요. 착륙장치에 문제가 있습니다.\"
드디어 비행기가 비행장으로 서서히 착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도대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비행기는 착륙에 필요한 바퀴를 내리는 데에 필수적인 기름이 모두 유출되어 동체착륙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퀴가 내려와서 무사히 착륙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이 나십니까? 서두에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는지!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얼마나 사랑의 배려를 했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상생(相生)’이란 ‘서로 도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너무 이기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정(情) 중에서도 가장 질긴 정이 피를 나눈 혈육의 정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이 혈육의 정마저 사구려 옷 벗어 던지듯이 팽개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디모데전서 5:8절에서 경고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인간관계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은 위선적인 신앙임’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생(相生)은 ‘서로 도와가며 함께 하나님의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즉 지나온 2012년과 그 이전의 삶을 돌아보면서 내 가족과 일가친척들, 그리스도 안에서의 지체들과 함께 해 왔는지를 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면 버려야 할 것과 성숙시켜야 할 것들을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마음경영에서부터 성품, 습관, 말씨, 행동 등. 버려야 할 것은 미련두지 말고, 체면이나 자존심도 생각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며 과감하게 묻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성숙시키고 성취해야 할 것들은 손해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나아가도록 주님께 마음과 삶을 드려야 합니다. 특히 함께하도록 주신 사람들 - 가족, 혈육들, 믿음의 지체들 - 과 마음을 맞추도록 힘써야 합니다(갈 6:10). 갈라디아서 본문 1-2절에서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십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방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찾고, 송구영신 예배에서는 결단하고 실행하도록 합시다.
※ 상생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갈라디아서 본문에는 “짐을 지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2절에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하셨고, 5절에서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짐”이라는 단어가 다릅니다. 2절에서는 baros(bavro\"/burdens)라는 단어인데 ‘혼자서 들기는 무거운 짐’을 뜻하며, 5절에서 사용된 단어는 phortion (fortivon/burden)인데 ‘사람이나 동물이 옮길 수 있는 짐’을 뜻합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이 져야 하는 짐도 있고, 함께 져야 할 짐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으며, 서로 도와가며 함께 이루어야 할 사명도 주셨습니다.
먼저, 서로 나누어서 함께 져야 할 짐은 갈라디아서 본문 1절에서 설명을 하십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믿음이 적은 가족이나, 믿음의 식구들이나, 공동체의 일원들이 수고의 짐을 지고 어려워 할 때, 비웃고 방관할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으로 도우며 함께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5-16절을 봅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예수님께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죄의 짐을 가져가셨으므로 우리는 형제자매들의 짐을 함께 지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13-1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렇게 짐을 함께 지는 일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본문 10절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가족들이 먼저 하나를 이루어서 상생(相生)의 짐을 함께 해야 합니다. 잠언 17:17절에서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가족이 위급하게 되고 어려움이 닥치면 혼자 살겠다고 도망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가정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꼬시래기 지살 뜯는다.”고 하듯이, 가족들이 서로 물고 뜯으면 함께 망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15절에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가정이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면 돈이 없어도, 어려움이 닥쳐도 기쁨과 평안이 가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면 산해진미가 쌓여 있어도 행복이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했고, 잠언 17:1절에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가족이 하나를 이루고 교회가 하나를 이루어야 상생의 삶이 가능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즉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아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며, 부모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자식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목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본문 3-5절을 읽어봅시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하거나 부담스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이 사명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본문 7-8절에서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상생을 위해서는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함께 해야 할 일을 잘 분별하여 서로를 세워가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세우기 위하여 가족이나 교회나 사회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2012년을 상생(相生)을 위해 어떻게 해 왔습니까?
※ 성취를 위하여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빌립보서 본문을 봅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사명을 향하여 달음질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짧은 글 속에서 사도 바울의 삶의 자세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부름을 향하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푯대로 하여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거나 향수에 묻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고 달렸습니다. 바울의 삶은 치열한 경기이며 싸움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9:24절에서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하시며, 26-27절에서는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성취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달렸습니다.
여러분의 성취 목표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왔습니까? 우리의 목표도 사도 바울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의 목표를 향하여 달려야 합니다. 아직 여러분 자신이 달려야 할 목표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목표라고 모두 거창하고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목표이며, 가정에서의 사명이 목표이며, 교회에서의 직분도 목표이며, 학교와 직장과 사업장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의 세상의 빛이라.”고하시면서 마태복음 5:16절에서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목표를 성취하려면 거추장스러운 군더더기를 떨쳐버리고 달려야 합니다. 수영선수들이나 육상선수들이 복장을 보십시오. 몸매를 자랑하려고 그렇게 달라붙는 옷을 입은 것이 아닙니다. 물살을 가를 때나 달릴 때의 저항을 최소로 줄이기 위하여, 무게를 줄이고 저항을 만드는 요소를 없애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 그 목표를 향하여 달리면서 방해되는 모든 나쁜 습관과 삶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안 좋은 습관을 알면서도 “바꿔야지! 바꿔야지!”하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삶을 과감하게 끊어야 합니다. 목표에 이르고 싶고, 성취하고 싶다면 말입니다. “아 옛날이여!”하면서 과거에 잡혀 있으면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2013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하나님 안에서 세우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를 성취하는데 방해되는 모든 요소, 버려야 할 요소를 찾아내십시오. 그리고 결단하십시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한 남자가 우연히 새끼 곰을 발견하고는 집에서 길렀습니다. 지극정성으로 돌보아서 새끼 곰은 어엿한 어른 곰이 되었습니다. 곰은 주인의 사랑을 알았기 때문에 늘 주인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시원한 가을 날 곰은 주인이 바깥뜰의 의자에서 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모기 한 마리가 주인의 뺨에 달라붙어 피를 빨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은혜를 갚을 기회가 왔구나!\"라고 생각한 곰은 살금살금 다가가서 앞발로 모기를 때려잡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주인도 함께 비명횡사하고 말았습니다.
곰은 주인에게 보답하고자 했지만 자신이 주인까지도 죽일 수 있음을 몰랐습니다. 곰과 사람의 차이를 몰랐습니다. 여러분, 사랑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식을 자식은 부모를, 그리고 모든 공동체에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상생(相生)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신의 일과 다른 사람의 일, 서로 도와가며 함께 해야 할 일을 잘 분별한다면 즐거운 상생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이렇게 화목한 가운데 자신의 목표를 향하여 올바른 결단으로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오직 목표를 향한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성취의 기쁨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안 되었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고 하십니다. 주님을 믿고 순종한다면 때가 이를 때 반드시 이루게 하십니다.
이제 내일 송구영신 예배 떼에 상생과 성취를 위한 여러분의 생각과 결단과 계획을 가지고 오십시오. 2012년의 멋진 마무리와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2013년의 복된 출발을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