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길6-있어야 할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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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2-12-27 15:04
*** 복의 길6-있어야 할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 시편 1:1-6, 로마서 2:6-8
** 들어가는 말
시편 1:1-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로마서 2:6-8,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요즈음 많이 듣는 말 중에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모두들 무엇엔가 쫓기듯이 바쁘게 살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듯이 무엇엔가 얽매여 삽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매일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어제 죽은 친구가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왜 불쌍한데?”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좋은 세상을 못 보고 먼저 죽었으니 불쌍하지!”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사람들의 관심을 온통 다 빼앗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사탄의 계략임을 눈치 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별 소리를 다한다.”며 무시해버립니다. 혹시 여러분도 지금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십니까? 하지만 이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22절에서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그러나 이미 세상의 것들에 너무 깊이 빠져버린 사람들은 이런 말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100년 동안 산에서 방주를 만들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지만 사람들은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하던 바로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롯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제 다가올 마지막 때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2:10-12절입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지금 우리 시대에도 그러하지만 앞으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분명하게 찾아서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서 복의 길 여섯 번째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활동하는 무대입니다. 사탄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까지 활동하도록 허용하신 것입니다. 사탄이 활동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사탄이 자신에게 허용된 권세를 사용하여 할 수 만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라도 유혹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받으셨던 세 가지 시험을 기억해 보십시오. 사탄은 예수님까지도 유혹했습니다. 누가복음 4:5-7절을 봅시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이처럼 사탄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보여주면서 그것으로 사람들의 온 마음과 관심을 빼앗습니다. 이 사실을 에베소서 2:2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사람들은 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세상의 부귀영화에 빠져듭니다. 마치 나방이 불로 뛰어들듯이 말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즐거움과 부귀영화와 권세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입니다. 이 유혹이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을 배반한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서 1:6절입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이들은 자신이 의의 일군인 것처럼 가장하고 사람에게 접근합니다. 고린도후서 11:14-15절입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래서 사탄의 결사적인 유혹을 사람이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겨울철에 영국을 여행하던 여행자가 해안지방을 지나는 중에 바닷가에서 무엇인가를 모아서 수레에 싣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사람은 죽은 갈매기들을 모아서 손수레에 싣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여행자가 그 인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갈매기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습니까?” 그러자 인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갈매기가 많은 것을 보고 먹이를 던져주게 됩니다. 갈매기들은 과자. 사탕 등 사람들이 주는 여러 가지를 받아먹게 되지요. 실은 그런 음식은 갈매기들에게는 좋은 음식이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음식들이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갈매기들이 그렇게 과자나 음식을 받아먹다 보니 입맛이 바뀌어 물고기나 자연의 먹이를 찾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 갈매기들은 좋은 먹이가 바다 속에 그렇게 많지만. 인간의 먹이만 기다리다가 결국 이처럼 굶어 죽는답니다.”
이렇게 사람들도 세상의 것들에 맛을 들이고 집착하면 보다 더 좋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것들에 대한 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만물을 만드시면서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정하셨습니다. 창세기 1:6-7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절에서는 “하나님이 두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라고 하시며, 20절에서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라고 하십니다. 이는 모든 것을 있어야 자리에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욥기 38:8-1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만물을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물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사람도 마찬가지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가르치시고 그 자리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전도서 3:11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는 “영원을 사모하는 자리”입니다. 영원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시편 본문 1-2절을 봅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리고 로마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악인들의 자리에 함께 할 수도 있고 의인들의 자리에 함께 할 수도 있으며, 영생의 상급을 받는 자리에 있을 수도 있고 진노와 분노를 받는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자리에서 자신이 찾아야 할 자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선을 행하는 자리입니다.
※ 자신의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사람은 두 자리에 동시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3절입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앞 서 들은 말씀대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택하여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먼저 찾아야 하고, 찾아서 선택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그곳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5: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3:20절에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십니다.
이탈리아의 성악가인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The three tenors(3명의 테너)라 불렸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의 가족은 가난했습니다. 아버지 페르난도는 빵을 굽는 사람이었고, 어머니 아델레 벤투리 파바로티는 시가(Cigar)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자상하셨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운 세상을 가르쳐 주었고, 목소리를 개발하도록 권유했습니다.
“루치아노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더욱 열심히 연습하면 그 때는 혹시…”
루치아노는 사범대학에 입학했고, 졸업하자 진로에 대하여 고민이 되어 자신의 아버지께 ‘선생이 외어야 할지! 음악가가 되어야 할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루치아노야, 두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 그 사이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일생 동안 너는 한 의자를 선택해야 하느니라.”
루치아노는 음악을 선택했고, 처음으로 무대에 등장하기까지 7년 동안의 노력과 좌절이 있었습니다. 그 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도달하기까지는 또 7년이 걸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좋은 목소리의 복을 주셨습니다. 나 자신은 이 좋은 목소리로 헌신하겠다고 결심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벽돌을 쌓는 일이나, 못을 똑바로 박는 일이나, 책을 쓰는 일이나 무슨 일이든지 우리가 하려고 선택했으면 그에 대해서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 그것이 열쇠입니다. 한 의자를 선택하십시오.”
혹 아직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동분서주하지는 않습니까? 세상 것도 다 가지고, 하나님나라의 생명과 복도 다 가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7:13-14절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분명히 두 길 중에서 한쪽 길로 가야 합니다. 길이 넓고 편한 쪽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편하고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좁고 험한 길은 사람도 적도 너무나 불편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함께 하고 싶습니까? 그 결과를 보고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위하여 시편 본문말씀 3-6절을 봅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자리에 대한 아름다운 약속을 보여주십니다. 비록 좁은 길이 험하고 힘이 드는 길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함이 있습니다. 로마서 본문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라며 영광과 존귀를 누리는 영생의 선물이 있다고 하십니다. 특히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표현은 ‘세상의 힘들고 고달픈 환경 속에서의 풍성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순종하는 자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가지 복 중에서 여섯 번째가 22:7절에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지금은 말씀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조금 더, 조금 더’라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갑자기 주님이 부르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러분이 지금 머물고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이제는 더 미루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서 머무십시오.
이제 대강절 4번째 주간이며 이틀 후면 성탄절입니다. 나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 안에 자리를 펴시고 머무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 삶의 순간순간을 주님의 뜻을 물으며, 주님의 말씀에 마음을 기울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하여 이 땅에서의 형통함과 영생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시편 1:1-6,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로마서 2:6-8,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요즈음 많이 듣는 말 중에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하루 24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모두들 무엇엔가 쫓기듯이 바쁘게 살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듯이 무엇엔가 얽매여 삽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매일 하루가 다르게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어제 죽은 친구가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왜 불쌍한데?”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좋은 세상을 못 보고 먼저 죽었으니 불쌍하지!”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사람들의 관심을 온통 다 빼앗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사탄의 계략임을 눈치 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별 소리를 다한다.”며 무시해버립니다. 혹시 여러분도 지금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은 아니십니까? 하지만 이 사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13:22절에서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그러나 이미 세상의 것들에 너무 깊이 빠져버린 사람들은 이런 말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100년 동안 산에서 방주를 만들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지만 사람들은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을 당하던 바로 그 순간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롯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이제 다가올 마지막 때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2:10-12절입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지금 우리 시대에도 그러하지만 앞으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분명하게 찾아서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서 복의 길 여섯 번째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 자신의 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이 활동하는 무대입니다. 사탄이 세상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까지 활동하도록 허용하신 것입니다. 사탄이 활동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사탄이 자신에게 허용된 권세를 사용하여 할 수 만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들까지라도 유혹하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받으셨던 세 가지 시험을 기억해 보십시오. 사탄은 예수님까지도 유혹했습니다. 누가복음 4:5-7절을 봅시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이처럼 사탄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보여주면서 그것으로 사람들의 온 마음과 관심을 빼앗습니다. 이 사실을 에베소서 2:2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사람들은 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세상의 부귀영화에 빠져듭니다. 마치 나방이 불로 뛰어들듯이 말입니다. 사실 이 세상의 즐거움과 부귀영화와 권세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입니다. 이 유혹이란 것은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리를 떠나서 하나님을 배반한 천사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서 1:6절입니다.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이들은 자신이 의의 일군인 것처럼 가장하고 사람에게 접근합니다. 고린도후서 11:14-15절입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그래서 사탄의 결사적인 유혹을 사람이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겨울철에 영국을 여행하던 여행자가 해안지방을 지나는 중에 바닷가에서 무엇인가를 모아서 수레에 싣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사람은 죽은 갈매기들을 모아서 손수레에 싣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여행자가 그 인부에게 물었습니다.
“왜 갈매기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습니까?” 그러자 인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에는 여행객들이 많이 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갈매기가 많은 것을 보고 먹이를 던져주게 됩니다. 갈매기들은 과자. 사탕 등 사람들이 주는 여러 가지를 받아먹게 되지요. 실은 그런 음식은 갈매기들에게는 좋은 음식이 아니라 오히려 해로운 음식들이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갈매기들이 그렇게 과자나 음식을 받아먹다 보니 입맛이 바뀌어 물고기나 자연의 먹이를 찾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철이 지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지면 갈매기들은 좋은 먹이가 바다 속에 그렇게 많지만. 인간의 먹이만 기다리다가 결국 이처럼 굶어 죽는답니다.”
이렇게 사람들도 세상의 것들에 맛을 들이고 집착하면 보다 더 좋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것들에 대한 맛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만물을 만드시면서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를 지정하셨습니다. 창세기 1:6-7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16절에서는 “하나님이 두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라고 하시며, 20절에서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라고 하십니다. 이는 모든 것을 있어야 자리에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욥기 38:8-1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바다가 그 모태에서 터져 나올 때에 문으로 그것을 가둔 자가 누구냐? 그 때에 내가 구름으로 그 옷을 만들고 흑암으로 그 강보를 만들고 한계를 정하여 문빗장을 지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까지 오고 더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높은 파도가 여기서 그칠지니라.’ 하였노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만물을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물도록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사람도 마찬가지로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가르치시고 그 자리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전도서 3:11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는 “영원을 사모하는 자리”입니다. 영원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3절에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십니다. 시편 본문 1-2절을 봅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리고 로마서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악인들의 자리에 함께 할 수도 있고 의인들의 자리에 함께 할 수도 있으며, 영생의 상급을 받는 자리에 있을 수도 있고 진노와 분노를 받는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두 종류의 자리에서 자신이 찾아야 할 자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선을 행하는 자리입니다.
※ 자신의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사람은 두 자리에 동시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3절입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앞 서 들은 말씀대로 세상의 부귀영화를 택하여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머물러야 할 자리를 먼저 찾아야 하고, 찾아서 선택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자리에 머문다.’는 것은 ‘그곳에서 산다.’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5:4절에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고 하시며, 요한계시록 3:20절에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십니다.
이탈리아의 성악가인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는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The three tenors(3명의 테너)라 불렸습니다. 어린 시절의 그의 가족은 가난했습니다. 아버지 페르난도는 빵을 굽는 사람이었고, 어머니 아델레 벤투리 파바로티는 시가(Cigar)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자상하셨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운 세상을 가르쳐 주었고, 목소리를 개발하도록 권유했습니다.
“루치아노야.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더욱 열심히 연습하면 그 때는 혹시…”
루치아노는 사범대학에 입학했고, 졸업하자 진로에 대하여 고민이 되어 자신의 아버지께 ‘선생이 외어야 할지! 음악가가 되어야 할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루치아노야, 두 의자에 앉으려고 하면 그 사이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일생 동안 너는 한 의자를 선택해야 하느니라.”
루치아노는 음악을 선택했고, 처음으로 무대에 등장하기까지 7년 동안의 노력과 좌절이 있었습니다. 그 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도달하기까지는 또 7년이 걸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좋은 목소리의 복을 주셨습니다. 나 자신은 이 좋은 목소리로 헌신하겠다고 결심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벽돌을 쌓는 일이나, 못을 똑바로 박는 일이나, 책을 쓰는 일이나 무슨 일이든지 우리가 하려고 선택했으면 그에 대해서 우리 자신을 바치는 것 그것이 열쇠입니다. 한 의자를 선택하십시오.”
혹 아직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동분서주하지는 않습니까? 세상 것도 다 가지고, 하나님나라의 생명과 복도 다 가질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마태복음 7:13-14절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분명히 두 길 중에서 한쪽 길로 가야 합니다. 길이 넓고 편한 쪽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편하고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좁고 험한 길은 사람도 적도 너무나 불편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함께 하고 싶습니까? 그 결과를 보고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의 현명한 선택을 위하여 시편 본문말씀 3-6절을 봅시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말씀에서는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자리에 대한 아름다운 약속을 보여주십니다. 비록 좁은 길이 험하고 힘이 드는 길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함이 있습니다. 로마서 본문말씀에서도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라며 영광과 존귀를 누리는 영생의 선물이 있다고 하십니다. 특히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는 표현은 ‘세상의 힘들고 고달픈 환경 속에서의 풍성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순종하는 자리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하는 때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가지 복 중에서 여섯 번째가 22:7절에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지금은 말씀을 지켜야 할 때입니다. ‘조금 더, 조금 더’라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갑자기 주님이 부르시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러분이 지금 머물고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이제는 더 미루지 말고 여러분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서 머무십시오.
이제 대강절 4번째 주간이며 이틀 후면 성탄절입니다. 나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 안에 자리를 펴시고 머무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 삶의 순간순간을 주님의 뜻을 물으며, 주님의 말씀에 마음을 기울이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하여 이 땅에서의 형통함과 영생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