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얻으십시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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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5-23 20:38
*** 지혜를 얻으십시오. / 잠 2:1-9, 마 10:16
** 들어가는 말
잠언 2:1-9,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8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9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마태복음 10:16,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세상에서 사람을 사용하는 기준이 모두 똑 같지는 않겠지만 공통적인 요소가 ‘능력’과 ‘자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말씀 안에는 사람을 향한 많은 기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기준을 신구약성경에서 한 가지씩만 찾는다면 구약의 황금률인 미가 6:8절과 디모데후서 2;20-21절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만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 말씀을 뒷받침해 주는 주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5:2절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이 말씀들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인자하게 대하며 자신과 일에 대하여 정의롭고 깨끗한 인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왜 이런 고난도의 인격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이 싸움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은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과의 영적싸움입니다. 에베소서 6: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지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세상은 정말 이리처럼 냉혹하고 교활하고 섬뜩한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고 위험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4:20절의 말씀처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잠언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하여 나타내신 지혜의 말씀들입니다. 특히 ‘지혜’가 의인화(擬人化) 되어 스스로 사람들을 부르면서 지혜를 얻으라고 하며 지혜를 얻어야 할 이유를 말씀합니다. 본문 내용에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 것과 지혜의 유익, 그리고 지혜를 얻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아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에서 가장 중심된 내용은 5절입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지혜는 하나님을 알게 하며 경외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지혜를 주시는데, 지혜를 주시는 목적이 성도의 길을 보전하고 선한 길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할 인생길을 깨닫고 보전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전도여행에 나서는 제자들이 당면하게 될 많은 고난과 핍박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이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하여 뱀과 같은 지혜로움과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당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보낸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텔로(ajpostevllw)인데 '권한을 위임하여 대리로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리그도인들도 그리스도와 같이 핍박을 받게 될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진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동일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전하는 제자들은 당연한 핍박을 당하게 되며, 그러한 고난을 인내하되 불필요한 고난을 자초하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 지혜롭되 교활하지 않는 순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 왜 지혜를 얻어야 합니까?
‘노아 벤샤’가 지은 ‘빵장수 야곱’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입니다. 내용은 빵장수 야곱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을 통하여 얻은 간결한 지혜를 깨닫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 책 첫 머리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야곱이 눈을 떴을 때, 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그는 다시 눈을 감고 담요를 얼굴까지 끌어 덮으며, 영혼이 다시금 돌아오게 된 것을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방은 으슬으슬하게 추웠다. 그 추위 때문에 야곱은 기도에 몰두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문득 기도문을 너무 빠르게 외우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 또한 용서해 주시길 기도하였다.'
몇 가지 빵장수 야곱의 말을 인용해 봅니다. “욕심이란 사람을 한껏 부풀려 놓고는 마침내 절망에 이르게 할 뿐이지.”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을까요?”라고 야곱에게 물었을 때 야곱이 대답합니다. “숨을 들이쉬는 유일한 방법은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더 크게 되려면 기꺼이 작아져야 합니다.”
야곱의 기도 자세나 내용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욕심어린 물음에 대한 대답 역시 너무나 소박하고 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빵장수 야곱처럼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를 느끼며 진리를 깨닫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사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한 순간의 결단이 인생의 진로를 행복으로 만들 수도 있고 불행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매일 선택을 해야 하는 일들이 수없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각자의 선택이 자신의 인생 방향과 길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하여 지혜를 간절하게 구하라고 하십니다. 잠언 본문 1-4절을 읽어봅시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이것은 지혜를 대하는 자세를 가르칩니다. 간절하고 간곡하게 찾고 재물을 구하는 것처럼 찾으라고 하십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기억하십니까? 그녀는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하나님을 증오하면서 외쳐댑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입니다. 난 결코 다시는 배고프지 않겠습니다. 거짓말을 하든지 도둑질을 해서라도 배고프지 않겠습니다.” 마치 요나처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께 반항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의 애인을 빼앗아 재혼을 하고, 그 남편이 죽자 돈 많은 선장 ‘래드 버틀’과 재재혼을 합니다.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듯 했지만 결국 딸도 남편도 모두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맙니다. 돈도 남편도 자식도 ‘스칼렛’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스칼렛’은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마치 ‘이삭’의 아들 ‘에서’가 한순간의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동생인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것과 같고, 가룟 유다가 몇 푼의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같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삶을 바뀌게 하는 모습입니다.
한 번 잘못 들여놓은 생활의 습관은 바꾸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랜 습관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아버립니다. 주인인척 하는 것이지요. 이 가치관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사상으로 자리 잡아 버립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게 되면 인생의 진정한 복의 길을 찾게 됩니다. 그 말씀이 잠언 본문 5-9절입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지혜가 안내하는 진정한 복의 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잠언 9: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십니다. 지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게 합니다. 빵장수 야곱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함을 깨닫지 못했을 때, 우리는 지혜를 잃었다고 확신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지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게 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게 합니다. 이것이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진정한 복의 길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 지혜가 나에게 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잠언 1:20-21절을 봅시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의인화된 ‘지혜’가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지혜가 이처럼 안타깝게 외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알려면 먼저 ‘지혜’가 누구를 비유하고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누구를 비유하느냐?’ 하는 문제는 성경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잠언 전체에 나타나는 지혜가 하는 일을 살펴보면 하나님 외에는 하실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잠언 8:22-23, 30-3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이 말씀에서 지혜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이 지혜가 외치는 것은 ‘어리석음과 미련함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가 계속적으로 탄식하고 경고하고 교훈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지혜의 외침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살아 있어서 읽고 듣는 사람들의 심령골수까지 울리도록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길거리’나 ‘광장’, ‘길머리’, ‘성문 어구’ 등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초대에 응하며 교훈을 듣고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언 1:23)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치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닮아있습니다. 요엘 2:28-29절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을 재차 약속하시면서 다짐되었고,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서 그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지혜의 약속에 의하여 오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줄어만 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헛된 것에 매달려 재앙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하나님을 알게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하며, 지혜는 성도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알게 하시고 그 길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나갑니다. 이사야 1:4-5절에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이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고 박해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예수님께서는 ‘이리 같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지혜는 이 험한 세상을 피할 수 있고 이기게 합니다. 요한복음 16: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가 없으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야고보서 1: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 시대에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가 하는 역할입니다. 지금 세상은 영적으로 점점 어두워지고 어려워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참 지혜로 충만하여 바른 길을 선택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진정한 복의 길을 지켜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잠언 2:1-9,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2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3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4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5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6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7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8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9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마태복음 10:16,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세상에서 사람을 사용하는 기준이 모두 똑 같지는 않겠지만 공통적인 요소가 ‘능력’과 ‘자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시는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성경말씀 안에는 사람을 향한 많은 기준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기준을 신구약성경에서 한 가지씩만 찾는다면 구약의 황금률인 미가 6:8절과 디모데후서 2;20-21절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 뿐만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이 말씀을 뒷받침해 주는 주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15:2절입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이 말씀들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롭고 겸손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인자하게 대하며 자신과 일에 대하여 정의롭고 깨끗한 인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왜 이런 고난도의 인격적인 자질을 갖춘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겠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이 싸움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은 육신적인 것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악한 영들과의 영적싸움입니다. 에베소서 6:12절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가 이 싸움에서 지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세상은 정말 이리처럼 냉혹하고 교활하고 섬뜩한 곳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힘들고 위험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필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4:20절의 말씀처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잠언 본문말씀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하여 나타내신 지혜의 말씀들입니다. 특히 ‘지혜’가 의인화(擬人化) 되어 스스로 사람들을 부르면서 지혜를 얻으라고 하며 지혜를 얻어야 할 이유를 말씀합니다. 본문 내용에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 것과 지혜의 유익, 그리고 지혜를 얻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본문에서 “아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에서 가장 중심된 내용은 5절입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지혜는 하나님을 알게 하며 경외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들에게 지혜를 주시는데, 지혜를 주시는 목적이 성도의 길을 보전하고 선한 길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할 인생길을 깨닫고 보전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전도여행에 나서는 제자들이 당면하게 될 많은 고난과 핍박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상황이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하여 뱀과 같은 지혜로움과 비둘기 같은 순결함을 당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보낸다.”는 말은 헬라어로 아포스텔로(ajpostevllw)인데 '권한을 위임하여 대리로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권능을 받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보내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리그도인들도 그리스도와 같이 핍박을 받게 될 것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진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동일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진리를 전하는 제자들은 당연한 핍박을 당하게 되며, 그러한 고난을 인내하되 불필요한 고난을 자초하지 않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특히 그 지혜롭되 교활하지 않는 순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 왜 지혜를 얻어야 합니까?
‘노아 벤샤’가 지은 ‘빵장수 야곱’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입니다. 내용은 빵장수 야곱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일을 통하여 얻은 간결한 지혜를 깨닫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 책 첫 머리에 이렇게 시작합니다.
'야곱이 눈을 떴을 때, 밖은 아직도 어두웠다. 그는 다시 눈을 감고 담요를 얼굴까지 끌어 덮으며, 영혼이 다시금 돌아오게 된 것을 하나님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다. 방은 으슬으슬하게 추웠다. 그 추위 때문에 야곱은 기도에 몰두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문득 기도문을 너무 빠르게 외우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 또한 용서해 주시길 기도하였다.'
몇 가지 빵장수 야곱의 말을 인용해 봅니다. “욕심이란 사람을 한껏 부풀려 놓고는 마침내 절망에 이르게 할 뿐이지.” 어떤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가질 수 있을까요?”라고 야곱에게 물었을 때 야곱이 대답합니다. “숨을 들이쉬는 유일한 방법은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더 크게 되려면 기꺼이 작아져야 합니다.”
야곱의 기도 자세나 내용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욕심어린 물음에 대한 대답 역시 너무나 소박하고 쉬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는 빵장수 야곱처럼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의 손길과 은혜를 느끼며 진리를 깨닫는 것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사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한 순간의 결단이 인생의 진로를 행복으로 만들 수도 있고 불행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매일 선택을 해야 하는 일들이 수없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각자의 선택이 자신의 인생 방향과 길을 결정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하여 지혜를 간절하게 구하라고 하십니다. 잠언 본문 1-4절을 읽어봅시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 이것은 지혜를 대하는 자세를 가르칩니다. 간절하고 간곡하게 찾고 재물을 구하는 것처럼 찾으라고 하십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를 기억하십니까? 그녀는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하나님을 증오하면서 외쳐댑니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입니다. 난 결코 다시는 배고프지 않겠습니다. 거짓말을 하든지 도둑질을 해서라도 배고프지 않겠습니다.” 마치 요나처럼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께 반항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의 애인을 빼앗아 재혼을 하고, 그 남편이 죽자 돈 많은 선장 ‘래드 버틀’과 재재혼을 합니다. 딸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듯 했지만 결국 딸도 남편도 모두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맙니다. 돈도 남편도 자식도 ‘스칼렛’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했습니다. ‘스칼렛’은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마치 ‘이삭’의 아들 ‘에서’가 한순간의 배고픔을 참지 못해서 동생인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것과 같고, 가룟 유다가 몇 푼의 돈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과 같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삶을 바뀌게 하는 모습입니다.
한 번 잘못 들여놓은 생활의 습관은 바꾸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랜 습관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자리를 잡아버립니다. 주인인척 하는 것이지요. 이 가치관은 자신의 선택과 결정에 최고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신의 사상으로 자리 잡아 버립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지혜를 얻게 되면 인생의 진정한 복의 길을 찾게 됩니다. 그 말씀이 잠언 본문 5-9절입니다.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지혜가 안내하는 진정한 복의 길은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잠언 9:10절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하십니다. 지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게 합니다. 빵장수 야곱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의 무지함을 깨닫지 못했을 때, 우리는 지혜를 잃었다고 확신할 수 있지.” 그렇습니다. 지혜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게 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게 합니다. 이것이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진정한 복의 길입니다. 그래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 지혜가 나에게 하는 역할이 무엇입니까?
잠언 1:20-21절을 봅시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 의인화된 ‘지혜’가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습니다. 지혜가 이처럼 안타깝게 외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을 알려면 먼저 ‘지혜’가 누구를 비유하고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지혜가 누구를 비유하느냐?’ 하는 문제는 성경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잠언 전체에 나타나는 지혜가 하는 일을 살펴보면 하나님 외에는 하실 수 없는 일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잠언 8:22-23, 30-3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이 말씀에서 지혜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이 지혜가 외치는 것은 ‘어리석음과 미련함에서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가 계속적으로 탄식하고 경고하고 교훈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지혜의 외침을 외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살아 있어서 읽고 듣는 사람들의 심령골수까지 울리도록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길거리’나 ‘광장’, ‘길머리’, ‘성문 어구’ 등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초대에 응하며 교훈을 듣고 돌이키는 사람에게는,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잠언 1:23)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치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성령을 부어주시겠다고 하신 약속과 닮아있습니다. 요엘 2:28-29절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 약속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을 재차 약속하시면서 다짐되었고,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서 그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지혜의 약속에 의하여 오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은 줄어만 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헛된 것에 매달려 재앙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혜는 하나님을 알게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지를 깨닫게 하며, 지혜는 성도들이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알게 하시고 그 길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점점 더 하나님을 멀리하고 떠나갑니다. 이사야 1:4-5절에서 하나님께서 탄식하십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이처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인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고 박해합니다. 이러한 세상을 예수님께서는 ‘이리 같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지혜는 이 험한 세상을 피할 수 있고 이기게 합니다. 요한복음 16:33절입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함께하시면 우리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혜가 없으면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야고보서 1: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이 시대에는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가 하는 역할입니다. 지금 세상은 영적으로 점점 어두워지고 어려워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참 지혜로 충만하여 바른 길을 선택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삶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진정한 복의 길을 지켜 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