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길 13-입술을 지키는 것입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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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5-01 22:30
*** 복의 길 13-입술을 지키는 것입니다. / 민 14:26-30, 롬 10:9-13
** 들어가는 말
민수기 14:26-30,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로마서 10:9-13,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 옛말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감추어진 마음을 드러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눈과 말입니다. 그래서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했고, 말을 주관하는 혀를 인생의 방향을 잡는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말의 중요성은 여러분도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를 통하여 혀의 무서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여러분도 ‘말(言)’ 때문에 낭패를 당해본 적 있으시지요? 아마도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3:2절에서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을 아시지요? 말은 금방 듣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말이 있는가 하면, 한 번 스치듯 들은 말이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는 말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가며,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한 마디 말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명심보감에는 “깜박이는 한 점의 불티가 능히 넓고 넓은 숲을 태우고, 반 마디의 그릇된 말이 평생에 쌓은 덕을 무너뜨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41:3절에서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고, 생명도 살릴 수 있으며, 한 마디 말로 자신의 생애를 불사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말’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 이로 인하여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오히려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 18:20-21절에서는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입술을 지키는 것이 복의 길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민수기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광야로 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기 위하여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서 거의 일 년을 머물면서 십계명을 증거로 하여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드디어 애굽에서 나온 지 14개월 이십일 만에 시내 광야를 출발하여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하여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 지도자인 모세에게 보고하면서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민 13:27)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12명의 정탐꾼 중에서 절대 다수인 열 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민수기 13:28-29절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 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 인과 여부스 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 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이어서 32-33절에서 “우리가 두루 다니면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으리라.”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능히 이길 수 있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지만 백성들은 열 명이 보고한 비참한 보고를 받아들여서 울며 통곡 했습니다. 14:2-4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신하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8-30절을 봅시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것이 말의 중요성입니다.
로마서 본문말씀은 더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9-10절을 봅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 그대로 입으로 시인하는 것, 즉 생명을 좌우하는 말의 중요성입니다.
※ 입술을 지키는 것이 복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난 남편이 없이는 살아도 아이들 없이는 못살아!”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부인의 남편을 데려가셨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사고를 당하여 죽었던 것입니다. 남편을 잃고 난 후에 그 부인이 친구를 만나서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너는 남편이 없어도 못살고, 아이들이 없어도 못산다고 말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그래도 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입니다. 이 시간의 두 본문은 모두 사람의 말과 표현에 대한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 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편재성과 전능성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시고, 하지 못하실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39:1-4절을 봅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성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우상을 숭배하는 모든 종교와 다른 것은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일방적이고 막연한 숭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경배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경배하는 자들에게 말씀으로 또는 영혼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찬양과 기도를 통한 고백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있고, 감사의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고백’입니다.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 자신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범죄한 죄인임을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구원자가 되심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선언하시고 자녀로 인정하시고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인격적인 관계의 시작이며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로마서 본문 9-10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을 완성하는 것은 입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때에 유대에서 가장 유행했던 말이 ‘네가 믿은 대로 되라.’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는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시인했던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은총이었습니다. 이렇게 입술로 신앙을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도 아시지만, 입술의 말에 대하여 열매를 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7:19절입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입술의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말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입술의 열매입니다. 민수기 본문 29-30절입니다.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말했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민수기 14:2-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라리 애굽에서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라고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그 열매를 내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입술로 고백한 대로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말을 할 때마다 그 말을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는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출애굽 후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번쩍거리는 불과 구름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모세에게 ‘앞으로는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 다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5:28-29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입술의 열매를 내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5:4절입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그리고 히브리서 13:15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행복하고, 하는 일들이 잘 되고, 자녀들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함부로 말하지 말고 입술을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주님이 들으시고 그 말한 대로 열매를 내게 하십니다. 더욱이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때에 내가 한 말에 대하여 심문을 받고 심판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36-3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제 힘들고 어려울수록 찬송과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시고,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말로 생활로 시인하십시오. 그리하면 입술의 열매를 지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이 고백하는 대로 받게 하시고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이 항상 기쁨과 감격과 행복한 열매로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민수기 14:26-30, “26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7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29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로마서 10:9-13,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 옛말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감추어진 마음을 드러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눈과 말입니다. 그래서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했고, 말을 주관하는 혀를 인생의 방향을 잡는 키와 같다고 했습니다. 말의 중요성은 여러분도 익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를 통하여 혀의 무서움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여러분도 ‘말(言)’ 때문에 낭패를 당해본 적 있으시지요? 아마도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3:2절에서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속담을 아시지요? 말은 금방 듣고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말이 있는가 하면, 한 번 스치듯 들은 말이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는 말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가며, 결국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한 마디 말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명심보감에는 “깜박이는 한 점의 불티가 능히 넓고 넓은 숲을 태우고, 반 마디의 그릇된 말이 평생에 쌓은 덕을 무너뜨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41:3절에서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한 마디 말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고, 생명도 살릴 수 있으며, 한 마디 말로 자신의 생애를 불사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말’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 이로 인하여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오히려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 18:20-21절에서는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입술을 지키는 것이 복의 길입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민수기 본문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의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광야로 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기 위하여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서 거의 일 년을 머물면서 십계명을 증거로 하여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드디어 애굽에서 나온 지 14개월 이십일 만에 시내 광야를 출발하여 가나안으로 향했습니다.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하여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서 지도자인 모세에게 보고하면서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민 13:27)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12명의 정탐꾼 중에서 절대 다수인 열 명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민수기 13:28-29절입니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 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 인과 여부스 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 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이어서 32-33절에서 “우리가 두루 다니면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으리라.” 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능히 이길 수 있고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다.’고 했지만 백성들은 열 명이 보고한 비참한 보고를 받아들여서 울며 통곡 했습니다. 14:2-4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불신하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8-30절을 봅시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것이 말의 중요성입니다.
로마서 본문말씀은 더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9-10절을 봅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 말씀 그대로 입으로 시인하는 것, 즉 생명을 좌우하는 말의 중요성입니다.
※ 입술을 지키는 것이 복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난 남편이 없이는 살아도 아이들 없이는 못살아!”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부인의 남편을 데려가셨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사고를 당하여 죽었던 것입니다. 남편을 잃고 난 후에 그 부인이 친구를 만나서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너는 남편이 없어도 못살고, 아이들이 없어도 못산다고 말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그래도 늦게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입니다. 이 시간의 두 본문은 모두 사람의 말과 표현에 대한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하나님’ 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속성 중에서 편재성과 전능성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은 안 계신 곳이 없으시고, 하지 못하실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39:1-4절을 봅시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성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우상을 숭배하는 모든 종교와 다른 것은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일방적이고 막연한 숭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경배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경배하는 자들에게 말씀으로 또는 영혼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찬양과 기도를 통한 고백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있고, 감사의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고백’입니다.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 자신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범죄한 죄인임을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구원자가 되심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선언하시고 자녀로 인정하시고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인격적인 관계의 시작이며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로마서 본문 9-10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봅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을 완성하는 것은 입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때에 유대에서 가장 유행했던 말이 ‘네가 믿은 대로 되라.’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는 자신의 입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시인했던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은총이었습니다. 이렇게 입술로 신앙을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또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생각도 아시지만, 입술의 말에 대하여 열매를 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7:19절입니다.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입술의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말한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입술의 열매입니다. 민수기 본문 29-30절입니다.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이라고 말했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민수기 14:2-3절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라리 애굽에서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겠다.”라고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그 열매를 내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입술로 고백한 대로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말을 할 때마다 그 말을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는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출애굽 후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번쩍거리는 불과 구름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모세에게 ‘앞으로는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 다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5:28-29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가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입술의 열매를 내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5:4절입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그리고 히브리서 13:15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행복하고, 하는 일들이 잘 되고, 자녀들이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함부로 말하지 말고 입술을 지키십시오. 여러분의 말 한마디 한 마디를 주님이 들으시고 그 말한 대로 열매를 내게 하십니다. 더욱이 두려워 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때에 내가 한 말에 대하여 심문을 받고 심판받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36-37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제 힘들고 어려울수록 찬송과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시고, 모든 삶에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을 말로 생활로 시인하십시오. 그리하면 입술의 열매를 지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여러분이 고백하는 대로 받게 하시고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이 항상 기쁨과 감격과 행복한 열매로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