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복의 길 12 - 자기인정과 절제입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166회 작성일 2013-04-24 22:45
*** 복의 길12-자기인정과 절제입니다. / 삼상 15:20-23, 빌 3:10-14

** 들어가는 말

사무엘상 15:20-23,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21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빌립보서 3:10-14,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을 얼마나 아십니까?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사람이 만든 우상들은 형상은 있지만 생명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상을 향한 일방적인 숭배로 만족을 느낍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섬기는 하나님의 형상은 없지만 살아계셔서 사람들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교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삶에서 경험함으로서 실질적인 기쁨과 만족을 느낍니다. 그래서 창세기 1: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첫 시작부터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정하게 하시며, 히브리서 11:6절에서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인격적인 분이심을 알게 하십니다.

이렇게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으로 교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마음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인정’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인정이란 ‘자신의 내적 외적인 모습과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격적인 교제에서 자기인정이 없다는 것은 서로를 속이는 것이거나, 진정성이 없는 형식적인 교제일 뿐입니다. 더욱이 하나님과의 교제에서는 ‘자기인정’이 필수적입니다. 요한일서 1:9-10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인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절제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자기인정과 절제가 복의 길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부끄럽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하여 절제하게 되며, 이런 절제된 삶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드러날 때에 부끄럽지 않는 칭찬을 받게 할 것입니다. 요한일서 2:28절에서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시며, 고린도전서 4:5절에서는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십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사무엘상 본문은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에 대한 기록입니다. 사울 왕은 자기를 인정하지 않는 부정직함으로 하나님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 왕에게 하나님을 대적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진멸이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죽이라.’는 뜻입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에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의 진영을 방문했습니다. 사울 왕은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진영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무엘이 ‘그러면 이것이 무슨 소리냐?’고 물었을 때에 사울 왕은 “그것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들과 소들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라고 변명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 탓으로 돌렸습니다.

사울 왕은 계속 변명했고 백성에게 죄를 전가시켰습니다. 자기인정을 거부한 것입니다. 불순종과 자기인정 거부는 엄연히 다릅니다. 불순종했더라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사는 길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심각한 책망을 들은 후에야 자신의 불순종을 인정했습니다. 24절에서 사울은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이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빌립보서 본문은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기 위하여 지나간 일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상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짧게 표현하면 ‘목표에 이르기 위하여 스스로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목표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절제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27절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영광된 삶을 위하여 육신의 삶을 절제하고 또 절제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는 진정한 복은 어떤 것입니까?

※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고,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나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시원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사울 왕처럼 일단 먼저 변명하고 남의 탓을 하면서 위기를 모면하려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스스로 빠져든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게으른 사람이 자신의 게으른 감정에 빠져든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26:13절입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서 자신의 사명마저 저버렸던 사람도 있습니다. 사사 삼손과 선지자 요나입니다. 요나는 블레셋의 수도인 니느웨에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거역했습니다. 블레셋은 자기 민족의 원수이기 때문에 차라리 망하는 편이 좋기 때문에 ‘회개를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입니다. 요나 4:1-3절입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만일 자신이 니느웨에 회개를 선포해서 그들이 회개한다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까지 했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변화를 요구하시거나, 어떤 일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감정으로 막고 있지 않습니까? 즉흥적이거나 해묵은 자신의 감정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막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5:23-25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죄가 많고 적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앞서 보았던 요한일서 1:9절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로마서 10:10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자기인정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의 문제들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려고 애를 씁니다. “별 문제가 아닙니다.”라든지,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또는 자기 합리화를 통하여 피해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는걸요.”, “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태어났더라면”, “누구 때문에” 등등. 가인이 그랬고 사울 왕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죄와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사실을 내어 놓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다음에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필요할리도 없겠지요. ‘탕자의 비유’에 보면, 인생의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탕자가 자기 스스로 살길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택한 길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자신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을 때, 탕자는 아들의 지위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삶을 얻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의 문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용서와 은혜를 구하십시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는 진정한 복은 무엇입니까?

※ 자신을 절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특별한 일이 필요할 때는 필요한 사람들을 훈련시킵니다. 일단은 일상적인 생활과 사회로부터 격리를 시킵니다. 그리고 잘 짜인 조직과 시간의 틀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리고는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자기 훈련과 자기 절제를 위함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어떤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합숙훈련을 하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들은 세상에서의 짧은 영광의 순간을 얻기 위하여 오랜 기간을 훈련합니다. 이들에 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고 있는 이 믿음의 경주는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우리는 자기 절제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24-27절입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기 원한다면 자기 훈련과 자기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에픽테투스’는, “사람이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다스릴 때까지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34절에서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고 하시면서 죄악 된 삶에 대한 절제 훈련의 필요를 말씀하셨습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어 세상에서 최고의 용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자기 절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정욕과 욕심의 종이 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자신의 암울했던 기억이든, 좋게 생각되는 것이든 지나 간 모든 것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본문 13-14절을 봅시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실패든 성공이든 지나간 것에 연연해 있다는 것은 마치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항상 백미러만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안전하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면 지나간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과거에 사로잡혀서 그 환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 때가 좋았는데’라고 하면서 어려운 현실을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지나간 일을 잊어버리고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절제입니다.

이처럼 자기인정과 절제는 하나님이 부르신 부름의 뜻에 이르게 하며 부활의 영광과 함께 빛나는 상을 받게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복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자기인정과 자기 절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우리 모두 매일의 삶에서 자기인정과 절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실시간으로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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