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시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690회
작성일
2013-03-12 21:27
*** 인생의 가시 / 고린도후서 12:7-10
** 들어가는 말
고린도후서 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라.”
방글라데시는 세계의 빈곤한 국가 중에서도 아래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는 약간의 돈조차 없어서 빈곤한 삶을 이어가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돈을 빌려줄 은행은 없었습니다. ‘우뉴스’라는 사람이 은행에 가서 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담보가 없기 때문이지요.\" \"돈을 착실히 갚기만 하면 되지 담보가 필요합니까?\" \"그게 규칙이니까요.\" \"아… 그래요? 그럼, 규칙을 바꾸면 되겠군요!\"
우뉴스는 기존 은행의 답답한 규칙을 깨고 직접 은행을 만들었습니다. 담보 필요 없음, 신원보증 필요 없음, 최고 대출액 150달러 미만이라는 조건으로… 가장 필요한 자격으로 '가난'을 들었습니다. 그가 설립한 은행은 ‘그라민 은행’입니다. 그 은행은 얼마 안 되는 돈이 없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 다시 돈을 빌려야 했던 빚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2006년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은행은 원금 회수율이 97% 에 이를 정도로 그들의 규칙은 성공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보수성향이 있습니다. 즉 변화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가정이나 직장, 사업장, 인간관계, 주변 환경 등을 그대로 지켜가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정한 자리를 지키는 방편으로 법이나 규칙들을 만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변화를 일으키려는 사람들과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성경에도 이런 충돌이 많이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까지의 교회사에서도 이런 충돌이 수없이 일어났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대 개혁을 주도하신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2:51-53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2:21-22절에서는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느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모두 율법이 차지한 자리를 복음으로 개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을 지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님을 대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며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움직이게 하시려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방법이 바로 ‘인생의 가시’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뜻을 찾아봅시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사도바울의 자신에 대한 고백적인 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보고 왔던 경험을 말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경험했던 예수님을 만났던 일부터 시작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거나,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는 육신적으로 당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이것들 때문에 자신의 놀라운 경험들을 자랑하거나 교만하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께 그 고통을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 후부터 바울은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려고 자신의 약하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자랑한다고 고백합니다.
※ 인생의 가시를 주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의 가시란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을 고통스럽게 했던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심한 두통, 안질, 간질, 박해 등. 정말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4-27절을 봅시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 중에서도 ‘자신의 눈이라도 빼 주었으리라.’(갈 4:15)는 표현을 보아서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안질 혹은 간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삶의 고통은 ‘교만을 방지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변화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신이 누려온 삶을 지키려는 고집스러운 마음을 깨뜨리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 새로 들어온 젊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도사는 교만한 태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수도사가 정원에서 흙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젊은 수도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이 많은 수도사는 젊은 수도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삽으로 흙덩이를 하나 들고서 젊은 수도사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흙덩이 위에다 물을 좀 부어주겠나?”
젊은 수도사는 물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물은 흙덩이에 떨어지면서 전부 옆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수도사는 흙덩이를 내려놓고 삽으로 흙덩어리를 두드려서 잘게 부서뜨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부서진 흙을 모아놓고 다시 젊은 수도사에게 부탁했습니다.
“다시 물을 부어주겠나?”
이번에는 물이 흙에 잘 스며들었고, 늙은 수도사는 그 흙들을 고르게 펴서 화단을 만들면서 말했습니다.
“이제야 물이 잘 스며드는구먼. 여기에 씨가 뿌려진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야. 우리도 역시 깨어져야 하나님께서 거기에 물을 주시고, 그럴 때 씨가 떨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것이지. 우리 수도사들은 이것을 ‘깨어짐의 영성’이라고 한다네.”
나이 많은 수도사는 젊은 수도사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 죄로 가득한 마음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5:25절입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그리고 시편 66:18절에서도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깨뜨리십니다. 베드로전서4:1-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깨지고 부서질 때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깨어지고 나면 주님의 은혜가 부어지면서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가시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가시가 자신의 육체의 질병일 수도 있고, 대적하는 사람이나 어려운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스러운 가시를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우리의 영혼이 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에게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인생의 가시가 있습니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깨뜨리시고자 하시는 것을 찾아보십시오. 깨어져야 하는 것이 깨어지지 않으면 고통은 계속됩니다. 이사야 1:5-6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빠른 순종이 곧 행복을 빨리 찾는 길입니다.
※ 인생의 가시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인생의 가시가 변화를 싫어하는 우리의 삶을 바꾸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라고 하더라도 그 고통 자체가 좋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가시로 말미암아 더욱 타락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는 그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7-29절을 봅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는 자와는 함께 일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약함이 있고 고통과 고난의 환경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미국 ‘앨라배마’주 남부의 시골마을 ‘엔터프라이즈’에는 세계 유일의 벌레를 위한 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1895년 멕시코산 목화 바구미가 엔터프라이즈에 생기기 시작해서 앨라배마 주의 목화 생산은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목화 농부들은 생존을 위해 다각적인 농업 운영을 계획하여 목화 대신 옥수수, 감자, 낙화생을 재배하여 크게 성공했습니다.
목화 바구미가 나타난 지 25년 후인 1919년, 그곳의 낙화생 생산량은 엄청났으며, 수입은 목화 재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해에 주민들은 기념탑을 하나 세웠습니다. 탑에는 이런 글을 새겼습니다.
“벌레가 번영의 전령자로서 이루어 놓은 거대한 업적을 감사하며 엔터프라이즈 전 주민의 이름으로 이 탑을 세우노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혹은 자신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한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가시로 다스리십니다. 사무엘하 7:14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이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혹 인생을 괴롭게 하는 가시가 있다면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자신의 고집을 깨뜨리고 개혁을 시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외에는 행복의 길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고린도후서 12:7-10,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라.”
방글라데시는 세계의 빈곤한 국가 중에서도 아래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는 약간의 돈조차 없어서 빈곤한 삶을 이어가거나 죽어가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돈을 빌려줄 은행은 없었습니다. ‘우뉴스’라는 사람이 은행에 가서 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가난한 사람들은 담보가 없기 때문이지요.\" \"돈을 착실히 갚기만 하면 되지 담보가 필요합니까?\" \"그게 규칙이니까요.\" \"아… 그래요? 그럼, 규칙을 바꾸면 되겠군요!\"
우뉴스는 기존 은행의 답답한 규칙을 깨고 직접 은행을 만들었습니다. 담보 필요 없음, 신원보증 필요 없음, 최고 대출액 150달러 미만이라는 조건으로… 가장 필요한 자격으로 '가난'을 들었습니다. 그가 설립한 은행은 ‘그라민 은행’입니다. 그 은행은 얼마 안 되는 돈이 없어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 다시 돈을 빌려야 했던 빚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2006년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그 은행은 원금 회수율이 97% 에 이를 정도로 그들의 규칙은 성공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보수성향이 있습니다. 즉 변화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한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가정이나 직장, 사업장, 인간관계, 주변 환경 등을 그대로 지켜가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정한 자리를 지키는 방편으로 법이나 규칙들을 만듭니다. 그래서 때로는 변화를 일으키려는 사람들과 지키려는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성경에도 이런 충돌이 많이 기록되어 있으며, 지금까지의 교회사에서도 이런 충돌이 수없이 일어났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엄청난 대 개혁을 주도하신 분이십니다. 누가복음 12:51-53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2:21-22절에서는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느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헤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들은 모두 율법이 차지한 자리를 복음으로 개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을 지키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님을 대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신의 자리를 고집하며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뜻으로 움직이게 하시려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방법이 바로 ‘인생의 가시’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향하신 뜻을 찾아봅시다.
※ 먼저, 본문말씀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본문말씀은 사도바울의 자신에 대한 고백적인 글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자신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했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역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을 보고 왔던 경험을 말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경험했던 예수님을 만났던 일부터 시작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거나,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거리가 될 만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에게는 육신적으로 당하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이것들 때문에 자신의 놀라운 경험들을 자랑하거나 교만하게 행동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사탄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께 그 고통을 떠나게 해 달라고 세 번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셨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 후부터 바울은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하려고 자신의 약하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자랑한다고 고백합니다.
※ 인생의 가시를 주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인생의 가시란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을 고통스럽게 했던 것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심한 두통, 안질, 간질, 박해 등. 정말 고통스러운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4-27절을 봅시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 중에서도 ‘자신의 눈이라도 빼 주었으리라.’(갈 4:15)는 표현을 보아서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안질 혹은 간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삶의 고통은 ‘교만을 방지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변화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외면하고 자신이 누려온 삶을 지키려는 고집스러운 마음을 깨뜨리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 새로 들어온 젊은 수도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도사는 교만한 태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나이 많은 수도사가 정원에서 흙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젊은 수도사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이 많은 수도사는 젊은 수도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삽으로 흙덩이를 하나 들고서 젊은 수도사에게 부탁했습니다.
“이 흙덩이 위에다 물을 좀 부어주겠나?”
젊은 수도사는 물을 부었습니다. 그런데 물은 흙덩이에 떨어지면서 전부 옆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러자 나이 많은 수도사는 흙덩이를 내려놓고 삽으로 흙덩어리를 두드려서 잘게 부서뜨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부서진 흙을 모아놓고 다시 젊은 수도사에게 부탁했습니다.
“다시 물을 부어주겠나?”
이번에는 물이 흙에 잘 스며들었고, 늙은 수도사는 그 흙들을 고르게 펴서 화단을 만들면서 말했습니다.
“이제야 물이 잘 스며드는구먼. 여기에 씨가 뿌려진다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야. 우리도 역시 깨어져야 하나님께서 거기에 물을 주시고, 그럴 때 씨가 떨어지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힐 수 있는 것이지. 우리 수도사들은 이것을 ‘깨어짐의 영성’이라고 한다네.”
나이 많은 수도사는 젊은 수도사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 죄로 가득한 마음에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예레미야 5:25절입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그리고 시편 66:18절에서도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깨뜨리십니다. 베드로전서4:1-2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깨지고 부서질 때는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깨어지고 나면 주님의 은혜가 부어지면서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가시를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 가시가 자신의 육체의 질병일 수도 있고, 대적하는 사람이나 어려운 환경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스러운 가시를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우리의 영혼이 파멸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에게 자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인생의 가시가 있습니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서 깨뜨리시고자 하시는 것을 찾아보십시오. 깨어져야 하는 것이 깨어지지 않으면 고통은 계속됩니다. 이사야 1:5-6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빠른 순종이 곧 행복을 빨리 찾는 길입니다.
※ 인생의 가시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인생의 가시가 변화를 싫어하는 우리의 삶을 바꾸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라고 하더라도 그 고통 자체가 좋은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가시로 말미암아 더욱 타락하는 사람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는 주님의 뜻을 깨닫고는 그 고통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7-29절을 봅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자랑하는 자와는 함께 일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약함이 있고 고통과 고난의 환경이 있다할지라도 그것을 이루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약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자세입니다.
미국 ‘앨라배마’주 남부의 시골마을 ‘엔터프라이즈’에는 세계 유일의 벌레를 위한 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1895년 멕시코산 목화 바구미가 엔터프라이즈에 생기기 시작해서 앨라배마 주의 목화 생산은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목화 농부들은 생존을 위해 다각적인 농업 운영을 계획하여 목화 대신 옥수수, 감자, 낙화생을 재배하여 크게 성공했습니다.
목화 바구미가 나타난 지 25년 후인 1919년, 그곳의 낙화생 생산량은 엄청났으며, 수입은 목화 재배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해에 주민들은 기념탑을 하나 세웠습니다. 탑에는 이런 글을 새겼습니다.
“벌레가 번영의 전령자로서 이루어 놓은 거대한 업적을 감사하며 엔터프라이즈 전 주민의 이름으로 이 탑을 세우노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모든 일을 자신이 한 것처럼, 혹은 자신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교만한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가시로 다스리십니다. 사무엘하 7:14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이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혹 인생을 괴롭게 하는 가시가 있다면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자신의 고집을 깨뜨리고 개혁을 시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외에는 행복의 길이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으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