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과 즐거움이 있는 곳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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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8-25 21:28
*** 쉼과 즐거움이 있는 곳 / 하박국 3:16-19, 마태복음 11:25-30
** 들어가는 말
하박국 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마태복음 11:25-30,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무엇인가 공허하고, 진지한 것을 찾기가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어저께 글로벌 뉴스에서는 미국에서 10대 세 명이 22세 ‘크리스토퍼 레인’이라는 청년에게 뒤에서 총을 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청년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온 호주 출신 야구 장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10대 세 명이 총을 쏜 이유가 “심심해서 재미로 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0대 두 명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던 부인에게 돈을 요구하다가 거절하자 아이에게 총을 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불안한 세상입니다. 우리 주변의 삶의 모습들도 무엇인가 어수선한 느낌이고, 우리나라 기독교 소식들은 정말 난감한 마음만 듭니다. 하박국 본문 16절에서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라고 한 것처럼, 지금 이 나라 교회들의 모습이 이렇게 마음이 떨리게 합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마음 둘 곳이 없어져 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만성적인 정신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쉴 곳이 없는 안개와 같은 우리네 인생”이라고 고백하는 복음송 가사와 같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소망으로 가득하고 기쁨으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살만하다고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고, 기도도 잊어갑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실천하기 어렵고 양심의 가책이 되는 말씀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온통 이해하기도 힘든 율법과 금령들, 전쟁, 경고, 징계들 신약에서는 세상을 포기해야만 하는 어렵고 힘든 '제자의 길'과 '십자가의 길' 그리고 '실천해야 하는 수많은 요구'들, '종말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말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외식적인 신앙으로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삶의 무게로 힘들지 않습니까? 쉬고 싶지 않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 시간 주님이 주시는 쉼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 유다의 16대 왕인 ‘요시야’의 시대부터 사역했습니다. 하박국은 신정론(神正論)이라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신정론이란 ‘악의 존재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이론입니다. 즉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들이 선한 사람을 삼켜도 보고 계시느냐?’라는 하나님께 대한 하박국 선지자의 항의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바벨론의 침략 소문으로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는 환경입니다, 이것이 더욱 두려운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6절). 게다가 생활의 궁핍으로 고통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연과 바벨론을 통하여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들이 열매를 내지 않았으며, 밭작물들은 적군에게 약탈되고 짓밟혀서 수확이 없었습니다. 양과 소도 바벨론의 약탈에 의하여 폐허가 되고 비었습니다(17절). 한 마디로 총체적인 재난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상황 같으면 감사는 고사하고 즐거움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환경적인 조건을 초월하여 그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능히 자신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시편 55:22절에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너무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너무도 부드러운 주님의 초대입니다. 이는 세상에서 힘겹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쉼과 즐거움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가졌으면서도 삶의 무게와 인생의 고난으로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하십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인생의 고난은 찾아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보다는 삶의 현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던 예수님을 따라서 물 위로 뛰어 내렸던 베드로가 잘 걷다가 갑자기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물에 빠졌을 텐데 왜 잘 가다가 도중에 빠졌습니까? 그 이유는 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보고 걸었지만, 갑자기 몰아치는 파도를 보고 두려운 감정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현실에 매이게 되면 염려와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이런 감정은 주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22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주님의 초대는 모든 인생의 짐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 진정한 쉼과 즐거움은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흥사였던 ‘빌리 그래함’ 목사의 일화입니다. 그 분의 친구 중에 어려서부터 산간지방에서 자랐고 그 지역의 산에 대하여는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하루는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미국의 산지는 대단히 넓기 때문에 산에서 길을 잃으면 목숨을 잃기 쉽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당황하여 이리저리 길을 찾다가 다행스럽게도 산 속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을 만나서 그의 도움으로 살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오두막의 노인이 남겨준 말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보통 얼른 내려가서 동네나 길을 찾아야겠다고 산 아래로 내려가는데 그것이 죽는 길이라오.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반대로 위로 올라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위로 올라가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어디에 길이 있는지, 어느 쪽에 마을이 있는지 분명히 방향을 확인하고 내려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골로새서 3:1-3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부활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해야 하고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다면 이 나라에 이미 절반은 천국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고 800만 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하지만 세상은 오히려 점점 더 고통스럽게 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겼습니까? 처음부터 맡겨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맡기도록 노력하십시오. 아니, 맡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맡기지 못하면 쉼과 즐거움은 가질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의 생명까지도 염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맡기지 않더라도 삶의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됩니다. 그렇다면 실패나 고난의 일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로마서 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어떤 환경과 어떤 일들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으며,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삶의 어려움과 고통, 염려와 실패 등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맡기십시오. 그냥 꾸밈없이 마음 그대로를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꼭, 틀림없이 주님이 이루심을 믿고 순종하고 따르십시오. 내가 믿음으로 주님께 아뢰는 순간에 내 모든 짐은 나를 떠나서 주님께로 옮겨졌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 15: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가 주님 안에, 주님 말씀이 내 안에’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며 온전한 신뢰입니다. 즉 하나 됨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으면 주님이 들어오실 곳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내 인생 짐을 주님께 맡기기를 원한다면 내 것을 내려놓고 비우십시오. 그 빈자리에는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의 멍에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무거운 삶의 짐을 주님이 가볍게 하시고 쉼과 즐거움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지금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인한 쉼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절을 봅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공동번역,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내 인생에 주님의 개입하심을 뜻합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개입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바로 하박국 본문에서 보여주십니다. 아무리 두려운 환경이 엄습하더라도, 아무리 가난하고 고달픈 인생길이라도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승리의 길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이 ‘구원의 하나님’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승리의 삶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신나지 않습니까?
꼭 이것만은 지켜주십시오. 말씀 묵상과 기도를 쉬지 마십시오. 지금은 믿음이 없고, 당장 주님께 삶을 맡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씀과 기도를 쉬지 않는다면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쉬지 않으실 것입니다. 즉 주님을 의지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하십시오. 디모데후서 4: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이제 주님의 초청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땅의 것에 마음 팔리지 말고 위의 것을 찾아서 주님이 준비해 두신 쉼과 즐거움을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하박국 3:16-19,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마태복음 11:25-30, “25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26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무엇인가 공허하고, 진지한 것을 찾기가 어려워져 가고 있습니다. 어저께 글로벌 뉴스에서는 미국에서 10대 세 명이 22세 ‘크리스토퍼 레인’이라는 청년에게 뒤에서 총을 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청년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온 호주 출신 야구 장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10대 세 명이 총을 쏜 이유가 “심심해서 재미로 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10대 두 명이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가던 부인에게 돈을 요구하다가 거절하자 아이에게 총을 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불안한 세상입니다. 우리 주변의 삶의 모습들도 무엇인가 어수선한 느낌이고, 우리나라 기독교 소식들은 정말 난감한 마음만 듭니다. 하박국 본문 16절에서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라고 한 것처럼, 지금 이 나라 교회들의 모습이 이렇게 마음이 떨리게 합니다. 세상이나 교회나 마음 둘 곳이 없어져 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만성적인 정신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쉴 곳이 없는 안개와 같은 우리네 인생”이라고 고백하는 복음송 가사와 같은 세상입니다.
그런데 소망으로 가득하고 기쁨으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살만하다고 성경을 가까이 하지 않고, 기도도 잊어갑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실천하기 어렵고 양심의 가책이 되는 말씀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온통 이해하기도 힘든 율법과 금령들, 전쟁, 경고, 징계들 신약에서는 세상을 포기해야만 하는 어렵고 힘든 '제자의 길'과 '십자가의 길' 그리고 '실천해야 하는 수많은 요구'들, '종말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경말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고 외식적인 신앙으로 마음의 위로를 얻으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삶의 무게로 힘들지 않습니까? 쉬고 싶지 않습니까?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이 시간 주님이 주시는 쉼과 즐거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본문말씀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하박국 선지자는 남 유다의 16대 왕인 ‘요시야’의 시대부터 사역했습니다. 하박국은 신정론(神正論)이라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신정론이란 ‘악의 존재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이론입니다. 즉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들이 선한 사람을 삼켜도 보고 계시느냐?’라는 하나님께 대한 하박국 선지자의 항의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바벨론의 침략 소문으로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는 환경입니다, 이것이 더욱 두려운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16절). 게다가 생활의 궁핍으로 고통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연과 바벨론을 통하여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열매 맺는 나무들이 열매를 내지 않았으며, 밭작물들은 적군에게 약탈되고 짓밟혀서 수확이 없었습니다. 양과 소도 바벨론의 약탈에 의하여 폐허가 되고 비었습니다(17절). 한 마디로 총체적인 재난이었습니다. 이 정도의 상황 같으면 감사는 고사하고 즐거움과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즐거움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환경적인 조건을 초월하여 그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열악한 환경으로부터 능히 자신들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고 의지했던 것입니다. 시편 55:22절에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마태복음 본문말씀은 너무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너무도 부드러운 주님의 초대입니다. 이는 세상에서 힘겹고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쉼과 즐거움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의 마음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가졌으면서도 삶의 무게와 인생의 고난으로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하십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인생의 고난은 찾아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보다는 삶의 현실을 보기 때문입니다. 물 위를 걸어오시던 예수님을 따라서 물 위로 뛰어 내렸던 베드로가 잘 걷다가 갑자기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물에 빠졌을 텐데 왜 잘 가다가 도중에 빠졌습니까? 그 이유는 현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주님을 보고 걸었지만, 갑자기 몰아치는 파도를 보고 두려운 감정에 휩싸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하셨습니다. 현실에 매이게 되면 염려와 두려움에 빠지게 되고 이런 감정은 주님을 불신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22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주님의 초대는 모든 인생의 짐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 진정한 쉼과 즐거움은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세계적인 부흥사였던 ‘빌리 그래함’ 목사의 일화입니다. 그 분의 친구 중에 어려서부터 산간지방에서 자랐고 그 지역의 산에 대하여는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하루는 산에 올랐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미국의 산지는 대단히 넓기 때문에 산에서 길을 잃으면 목숨을 잃기 쉽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당황하여 이리저리 길을 찾다가 다행스럽게도 산 속 오두막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노인을 만나서 그의 도움으로 살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오두막의 노인이 남겨준 말을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젊은이, 산에서 길을 잃으면 보통 얼른 내려가서 동네나 길을 찾아야겠다고 산 아래로 내려가는데 그것이 죽는 길이라오.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반대로 위로 올라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위로 올라가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어디에 길이 있는지, 어느 쪽에 마을이 있는지 분명히 방향을 확인하고 내려가야만 사는 것이라오.”
골로새서 3:1-3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여러분은 주님과 함께 부활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해야 하고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말처럼 쉽다면 이 나라에 이미 절반은 천국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고 800만 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고 하지만 세상은 오히려 점점 더 고통스럽게 변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유는 단 하나. 그리스도인들이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겼습니까? 처음부터 맡겨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맡기도록 노력하십시오. 아니, 맡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만일 맡기지 못하면 쉼과 즐거움은 가질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의 생명까지도 염려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맡기지 않더라도 삶의 모든 환경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됩니다. 그렇다면 실패나 고난의 일까지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로마서 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어떤 환경과 어떤 일들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으며,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하나님의 선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삶의 어려움과 고통, 염려와 실패 등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맡기십시오. 그냥 꾸밈없이 마음 그대로를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꼭, 틀림없이 주님이 이루심을 믿고 순종하고 따르십시오. 내가 믿음으로 주님께 아뢰는 순간에 내 모든 짐은 나를 떠나서 주님께로 옮겨졌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요한복음 15: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가 주님 안에, 주님 말씀이 내 안에’ 이것은 온전한 사랑이며 온전한 신뢰입니다. 즉 하나 됨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나 자신의 생각과 경험과 계획으로 가득 차 있으면 주님이 들어오실 곳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내 인생 짐을 주님께 맡기기를 원한다면 내 것을 내려놓고 비우십시오. 그 빈자리에는 주님의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주님의 멍에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무거운 삶의 짐을 주님이 가볍게 하시고 쉼과 즐거움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지금 당장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에 개입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인한 쉼과 즐거움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절을 봅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공동번역,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내 인생에 주님의 개입하심을 뜻합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개입하시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바로 하박국 본문에서 보여주십니다. 아무리 두려운 환경이 엄습하더라도, 아무리 가난하고 고달픈 인생길이라도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승리의 길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를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이 ‘구원의 하나님’임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주시는 즐거움과 승리의 삶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절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신나지 않습니까?
꼭 이것만은 지켜주십시오. 말씀 묵상과 기도를 쉬지 마십시오. 지금은 믿음이 없고, 당장 주님께 삶을 맡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씀과 기도를 쉬지 않는다면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쉬지 않으실 것입니다. 즉 주님을 의지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성령님께서도 우리를 인도하시는 일을 멈추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을 계속하십시오. 디모데후서 4: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이제 주님의 초청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땅의 것에 마음 팔리지 말고 위의 것을 찾아서 주님이 준비해 두신 쉼과 즐거움을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