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영의 감각을 일깨워야 합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107회 작성일 2013-08-01 21:09
*** 영의 감각을 일깨워야 합니다. / 열왕기하 6:14-17, 요한계시록 3:14-22

** 들어가는 말

열왕기하 6:14-17,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그들이 밤에 가서 그 성읍을 에워쌌더라. 15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하니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요한계시록 3:14-22,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우리 인간의 육신의 감각기관은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이 다섯을 ‘오감(五感)’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이 다섯 감각을 통하여 세상과 교감하게 됩니다. 이 오감은 동물들에게도 동일하게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한 가지가 더 있어서 그것을 ‘육감’이라고 합니다. 이 육감은 ‘직감’ 혹은 속된 말로는 ‘눈치’라고도 합니다. 이 직감은 뇌가 바로 생각을 하는 것이며 ‘뇌의 감각’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이런 감각들을 통하여 세상과 교감하며 느끼고 반응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한 가지 잊고 있는 감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감각인 제 칠의 감각 ‘영감(靈感)’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을 빚어 사람을 만드시고 그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아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7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불어넣으신 생기’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오직 사람에게만 있는 ‘영(靈)’입니다. 이 영의 감각이 바로 ‘영감’입니다. 이 영감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하나님을 닮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느끼는 감각입니다. 특히 이 영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거듭난 사람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영적인 감각은 하나님을 닮아 가는데, 그리고 영원한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이 절대감각인 제 칠의 감각 ‘영감’에 대하여 살펴보려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열왕기하 본문말씀은 엘리사 선지자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북 이스라엘에서 사역했던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이 시대의 북 이스라엘 왕은 9대 여호람 왕이었습니다. 이 시대에 아람 군대가 자주 이스라엘을 침범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아람 군대가 침범하는 곳에는 번번이 이스라엘 군대가 미리 와서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람 왕 벤하닷은 자기들 중에 이스라엘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며 고민했습니다. 그러자 신하 중의 한 사람이 내통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가 왕이 침실에서 말하는 것까지도 알고 이스라엘 왕에게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벤하닷은 엘리사가 있는 도단 성을 공격하기로 하고 밤중에 성읍을 포위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엘리사의 사환이 아람군대가 온 성읍을 포위한 것을 보고 혼비백산하여 엘리사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는 너무도 태연하게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두려워하는 사환을 위하여 하나님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사환은 즉시 새로운 세계를 보았습니다. 불말과 불병거들이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본문말씀은 계시록 일곱 교회 중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신 주님의 편지입니다. 이 교회는 한 마디로 ‘세상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기원전 250년에 안티오커스 2세에 의하여 건설되었고, 그의 부인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게아라고 불렀습니다. 라오디게아의 특징은 첫째는 소아시아의 은행업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부자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17절에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주변의 검은 양을 사육하는 농장이 많아서 옷과 의류산업이 발달했습니다. 특히 보라색과 광택 나는 검은 색 양모가 유명했는데, 그 당시에 네 종류의 외투가 전 세계로 수출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라고 하십니다. 세 번째는 라오디게아에 유명한 의학학교가 있었고 두 가지 의료기술로 유명했습니다. 하나는 나드(nard) 향유로 만든 귀를 치료하는 연고였고, 또 하나는 ‘테프라 프리기아(Tephra Phrygia)'라는 안약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라오디게아는 세상적으로는 풍요로웠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와 육체적인 건강과 쾌락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과 현재만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도시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영적으로는 좋게 말할 것이 하나도 없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아무런 칭찬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열정이 없는 미지근한 신앙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일들이 자신의 사업에 지장이 되면 선을 긋고 더 이상의 열심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요구하십니다. 이 말씀은 ‘결단하라. 그리고 너희의 모든 삶을 통하여 계속해서 열심을 나타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영적으로는 아무 것도 내 놓을 것이 없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이처럼 두 본문말씀은 모두 육신적인 삶과 영적인 삶을 대조하면서 영의 감각을 일깨워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 자신의 영의 감각은 얼마나 깨어 있는지를 가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 그리스도인은 영의 감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고 전파하셨습니다. 세례요한도 사역을 시작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전파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영적인 감각을 새롭게 하라.’는 말입니다. 즉 세상에 묻혀 살면서 무뎌져버린 영의 감각을 새롭게 일깨우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작가인 '스티븐슨'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소설을 아시지요? 이 소설은 선한 인간이라도 내면에는 악이 존재하고 악한 인간이라도 내면에는 선이 존재한다는 인간의 양면성을 그린 추리소설입니다.
'지킬' 박사는 낮에는 신사와 학자로 등장하는데 젊어지는 약을 연구하다가 만든 약을 먹고, 밤에는 온갖 악을 일삼는 추한 범죄인간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날이 밝으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려서 사람들은 그를 ‘숨는다.’는 뜻으로 ‘하이드’라고 불렀습니다.

이처럼 모든 인간에게는 선한 요소와 악한 요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이러한 내면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7:21-24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13권을 썼으며, 주님과 동행하며 능력을 행한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 중에는 영적인 지킬과 하이드가 수없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주일에는 누가 봐도 하나님의 자녀이며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주일이 지나고 세상으로 나가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합니다. 아니면 겉으로 보기에는 존경 받는 성도의 모습이지만, 영의 삶은 말라버려 말씀도 기도도 찬양도 잃어버린 삶을 삽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 이러하지는 않는지요?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러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외형적으로는 주변의 어느 도시보다 부요했으며 화려했습니다. 심지어 두 번의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 되었을 때에도 다른 도시의 지원과 원조를 거절하고 자력으로 도시를 재건했습니다. 이처럼 부요한 도시의 교회는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2:13-21절의 ‘부자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 같았습니다. 부자가 중얼거립니다. “내가 곡식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하리라.” 지금 우리나라의 교회들이 이렇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살만하다고 주일도 대충 예배하는 둥 마는 둥 영이 죽어가거나 잠들도록 방치하고는 육신을 따라가기에 바쁩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무조건 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에스겔 14:3절입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주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이 보시는 것은 영의 생명이며 영의 삶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아무 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주님이 보시기에는 아무 것도 내 놓을 것이 없는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엘리사의 사환도 역시 육신의 감각으로만 볼 때에는 자신의 성을 포위한 적군의 위세에 눌려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의 감각이 깨어나자 세상의 세력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 군대가 보였습니다. 이것이 육신의 감각과 영의 감각의 차이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후서 7: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영적인 감각을 깨우는 근심입니다. 즉 말씀을 읽는 것, 기도하는 것, 전도하는 것,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 섬기고 봉사하는 것 등. 이렇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그렇게 하려고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근심은 육신의 감각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이 두 근심의 결과는 생명과 사망이라는 정 반대의 결과에 이르게 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본문 20-21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이는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호소는 개인적인 호소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영적인 감각이 살아나는 것을 뜻합니다. 주님은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주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면 “내가 그로 더불어 먹으리라.” 즉 오랫동안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이 땅에서 우리가 육신으로 살 때에 이루시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시는 영광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감을 일깨워야 합니다. 영적인 감각이 깨어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것은 매일 말씀과 기도의 삶을 유지하는 것이며, 열정 있는 최선의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은 버림받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후회 없기를 원한다면 영의 감각을 깨우십시오. 여러분이 행하는 모든 일이 의미가 있기를 원한다면 영의 감각을 깨우십시오. 죽음이 두렵지 않기를 원한다면 영의 감각을 깨우십시오. 영의 감각이 깨어나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을 사모하게 되며, 항상 기뻐하게 되며, 모든 것이 감사로 다가오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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