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음에 내리는 은혜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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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6-05 14:08
*** 열린 마음에 내리는 은혜 / 예레미야 5:20-25, 요한복음 15:4-9
** 들어가는 말
예레미야 5:20-25,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요한복음 15:4-9,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모든 동식물은 제 나름대로의 교류(交流), 즉 소통(疏通)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지능이 가장 발달한 인간은 가장 많은 소통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표정으로, 몸짓으로, 여러 기계장치 등.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는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소통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환경과 여건을 고려하고,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전달하는지에 따라서 소통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불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 15:23절에서는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하셨고, 25:11절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소통은 정말 중요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의 한 영감님이 산에 땔감을 하러 갔다가 꿩 둥지를 발견하고 열 두 개의 알을 주웠습니다. 나무도 하고 꿩알도 주운 영감님은 너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무를 지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의 청년을 만났습니다. 청년이 영감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세요?” 그러자 영감님이 기분 좋게 “그래 꿩알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청년은 “아니요, 나무해 가지고 오시느냐구요?” 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열 두 개다.” “아니요 할아버지, 나무해 오시느냐구요?” 영감님은 호통을 치면서 “이놈아, 내가 안 먹고 너 줄 것 같으냐?”라고 했습니다.
귀가 어두운 영감님과 청년은 전혀 소통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불통의 극치입니다. 답답하시죠? 소통은 서로의 마음이 열려야 가능합니다. 서로의 뜻을 아는 것만으로는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통하게 되어 소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되지 않으면 죽은 목숨입니다. 피가 통하지 않으면 육신이 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1절에서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하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육신의 생명은 있지만 영의 생명은 죽었음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소통은 중요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예레미야 본문말씀은 남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이유를 밝힌 말씀입니다. 본문 앞부분에서 유다에 대한 징계의 불가피성을 밝힌 예레미야 선지자는 본문에서 징계의 구체적인 이유를 열거합니다. 본문말씀은 징계 이유의 첫 번째 부분으로 ‘하나님께 대한 배반의 죄’를 말씀합니다. 본문 다음의 내용은 ‘사람들에 대한 불공평의 죄’를 말씀합니다. 이것은 심판의 원인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과 이웃에 대한 무자비한 행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했으며,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불의를 저지르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에 대해 오래도록 참으셨으나, 너무나 오래도록 소통되지 않는 그들을 징계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요한복음 본문말씀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하시며 우리를 가지라고 하시면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서 사는 행복과 기쁨과 형통함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도 역시 소통, 즉 주님과의 막힘없는 교통과 교제를 말씀하십니다.
※ 마음이 닫혀 불통하면 인생이 어둡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머입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지구본을 들고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볼 사람?” 그러자 용감한 철수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왔습니다. “여기요.” 철수는 정확하게 아메리카 대륙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선생님은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질문했습니다. “자~ 여러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지요?” 그러자 학생들이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철수요!”
우스갯소리이지만 이런 것을 불통이라고 합니다. 요즈음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달하면서 가장 중요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화나 인터넷, 휴대전화 등의 통신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동문서답을 하고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언성을 높이다가 심하면 이혼까지 갑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결혼하는 세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이혼의 가장 큰 이유는 ‘성격차이’입니다. 이 말은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소통되지 않아 가출하거나 아예 남처럼 살아가는 가정도 늘고 있습니다. 이웃사촌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소음 때문에 언성을 높이고 서로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원인은 마음이 닫혀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닫히고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인생에는 어둠이 드리워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린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11-13절입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우리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사야 66:2-4절을 봅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소통되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만 불통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임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이 내용이 예레미야 본문말씀의 내용과 같습니다. 23-24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과 행하심에 대하여 반응이 없고 오히려 우상을 따라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이 닫히고 무관심하게 되니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가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마음이 닫히고 소통이 막히면 가정이나 직장, 사회가 분열되고 다툼과 전쟁이 일어나며 고통과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이 닫히고 교제가 막히면 두려움과 실패의 어두움이 내리고, 결국 파멸과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 마음이 열려 소통하면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소통(疏通)을 영어로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서로 생각이나 느낌 등의 정보를 말이나 글, 그 밖의 소리나 표정, 몸짓 등을 주고받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믿음’입니다. 사람들 간에 믿음이 없고 신뢰가 깨어지면 마음은 닫히고 통로는 막히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를 신뢰하게 될 때에는 마음이 열리고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들 가운데 혹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 내리는 은혜에 대하여 요한복음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이 열린 마음입니다. 즉 내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통의 연결고리이며, 이 열린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내가 주님과 통하게 될 때에 그 통로를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풍성하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필요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채워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열매”란 ‘풍성한 삶의 결과’를 말하는데, ‘주님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 있어서 주님과의 원활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과의 원활한 교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 믿음으로 성실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기초가 되는 내적인 소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내게 향하신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깊은 기도의 교제와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외적인 소통입니다. 그것은 내적인 소통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화평과 거룩을 이루고 서로 나누고 베풀며 헌신과 섬김과 봉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에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13:16절에서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아들 둘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그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인 반면에 작은 아들은 끼니만 겨우 연명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큰 아들은 잘 살았기에 어머니에게 좋은 음식과 좋은 옷에 관광까지 시켜 드리며 편하게 모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가난한 작은 아들의 집에 더 자주 머물렀습니다. 큰 아들이 이유를 알 수 없어 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 집은 음식이나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편하데 왜 자꾸 불편하고 형편도 좋지 않은 동생집에 머물려고 하시는 거에요?\"
어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물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은 너희 집이 낫지. 하지만 네 동생 집에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하나 있거든. 네 동생은 밤이 되면 꼭 내가 자는 방에 들러 이 늙은 에미의 등을 긁어 주며 말동무를 해주거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미가 6:8절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대하여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여 여러분이 구하는 대로 받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예레미야 5:20-25,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요한복음 15:4-9,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모든 동식물은 제 나름대로의 교류(交流), 즉 소통(疏通)을 합니다. 그 중에서도 지능이 가장 발달한 인간은 가장 많은 소통의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표정으로, 몸짓으로, 여러 기계장치 등.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는 다양한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소통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소통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환경과 여건을 고려하고,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전달하는지에 따라서 소통이 되기도 하고 오히려 불통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 15:23절에서는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라고 하셨고, 25:11절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인간관계에서 소통은 정말 중요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의 한 영감님이 산에 땔감을 하러 갔다가 꿩 둥지를 발견하고 열 두 개의 알을 주웠습니다. 나무도 하고 꿩알도 주운 영감님은 너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나무를 지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의 청년을 만났습니다. 청년이 영감님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나무해 가지고 오세요?” 그러자 영감님이 기분 좋게 “그래 꿩알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청년은 “아니요, 나무해 가지고 오시느냐구요?” 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열 두 개다.” “아니요 할아버지, 나무해 오시느냐구요?” 영감님은 호통을 치면서 “이놈아, 내가 안 먹고 너 줄 것 같으냐?”라고 했습니다.
귀가 어두운 영감님과 청년은 전혀 소통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쯤 되면, 불통의 극치입니다. 답답하시죠? 소통은 서로의 마음이 열려야 가능합니다. 서로의 뜻을 아는 것만으로는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열고 서로를 받아들일 때 비로소 통하게 되어 소통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되지 않으면 죽은 목숨입니다. 피가 통하지 않으면 육신이 죽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3:1절에서 예수님께서 사데 교회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하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육신의 생명은 있지만 영의 생명은 죽었음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소통은 중요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예레미야 본문말씀은 남 유다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이유를 밝힌 말씀입니다. 본문 앞부분에서 유다에 대한 징계의 불가피성을 밝힌 예레미야 선지자는 본문에서 징계의 구체적인 이유를 열거합니다. 본문말씀은 징계 이유의 첫 번째 부분으로 ‘하나님께 대한 배반의 죄’를 말씀합니다. 본문 다음의 내용은 ‘사람들에 대한 불공평의 죄’를 말씀합니다. 이것은 심판의 원인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과 이웃에 대한 무자비한 행위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배반했으며,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불의를 저지르고, 불공정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에 대해 오래도록 참으셨으나, 너무나 오래도록 소통되지 않는 그들을 징계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요한복음 본문말씀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하시며 우리를 가지라고 하시면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된다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안에서 사는 행복과 기쁨과 형통함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도 역시 소통, 즉 주님과의 막힘없는 교통과 교제를 말씀하십니다.
※ 마음이 닫혀 불통하면 인생이 어둡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유머입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지구본을 들고 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볼 사람?” 그러자 용감한 철수가 가장 먼저 손을 들고 나왔습니다. “여기요.” 철수는 정확하게 아메리카 대륙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습니다. 선생님은 잘했다고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질문했습니다. “자~ 여러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이 누구지요?” 그러자 학생들이 일제히 대답했습니다. “철수요!”
우스갯소리이지만 이런 것을 불통이라고 합니다. 요즈음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달하면서 가장 중요한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화나 인터넷, 휴대전화 등의 통신발달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람들 간에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동문서답을 하고 단절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소통이 되지 않아 서로 언성을 높이다가 심하면 이혼까지 갑니다. 통계청에 의하면 결혼하는 세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이혼의 가장 큰 이유는 ‘성격차이’입니다. 이 말은 의사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소통되지 않아 가출하거나 아예 남처럼 살아가는 가정도 늘고 있습니다. 이웃사촌이라고 했는데, 이제는 소음 때문에 언성을 높이고 서로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 모든 원인은 마음이 닫혀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닫히고 소통이 되지 않으면 인생에는 어둠이 드리워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고린도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11-13절입니다.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것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우리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사야 66:2-4절을 봅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소통되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만 불통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임하게 한다고 하십니다. 이 내용이 예레미야 본문말씀의 내용과 같습니다. 23-24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과 행하심에 대하여 반응이 없고 오히려 우상을 따라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이 닫히고 무관심하게 되니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가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마음이 닫히고 소통이 막히면 가정이나 직장, 사회가 분열되고 다툼과 전쟁이 일어나며 고통과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이 닫히고 교제가 막히면 두려움과 실패의 어두움이 내리고, 결국 파멸과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 마음이 열려 소통하면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소통(疏通)을 영어로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서로 생각이나 느낌 등의 정보를 말이나 글, 그 밖의 소리나 표정, 몸짓 등을 주고받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통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믿음’입니다. 사람들 간에 믿음이 없고 신뢰가 깨어지면 마음은 닫히고 통로는 막히게 됩니다. 하지만 서로를 신뢰하게 될 때에는 마음이 열리고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하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여러분들 가운데 혹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 내리는 은혜에 대하여 요한복음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 이것이 열린 마음입니다. 즉 내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통의 연결고리이며, 이 열린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내가 주님과 통하게 될 때에 그 통로를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 삶에 풍성하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19절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갈 때에 필요한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채워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열매”란 ‘풍성한 삶의 결과’를 말하는데, ‘주님과의 소통이 잘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열린 마음으로 주님께 붙어 있어서 주님과의 원활한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과의 원활한 교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 믿음으로 성실하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기초가 되는 내적인 소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통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내게 향하신 주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깊은 기도의 교제와 찬양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외적인 소통입니다. 그것은 내적인 소통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화평과 거룩을 이루고 서로 나누고 베풀며 헌신과 섬김과 봉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에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13:16절에서는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고 하십니다.
아들 둘을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그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인 반면에 작은 아들은 끼니만 겨우 연명할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큰 아들은 잘 살았기에 어머니에게 좋은 음식과 좋은 옷에 관광까지 시켜 드리며 편하게 모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머니는 가난한 작은 아들의 집에 더 자주 머물렀습니다. 큰 아들이 이유를 알 수 없어 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 집은 음식이나 경제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편하데 왜 자꾸 불편하고 형편도 좋지 않은 동생집에 머물려고 하시는 거에요?\"
어머니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물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 것은 너희 집이 낫지. 하지만 네 동생 집에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하나 있거든. 네 동생은 밤이 되면 꼭 내가 자는 방에 들러 이 늙은 에미의 등을 긁어 주며 말동무를 해주거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미가 6:8절입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하나님께 마음을 열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러분의 삶이 하나님께 대하여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여 여러분이 구하는 대로 받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