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공개된 비밀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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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3-05-27 16:23
*** 천국의 공개된 비밀 / 마가복음 8:34-38, 에베소서 4:13-16
**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8:34-38,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에베소서 4:13-16,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오늘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바쁜 일상 중에서 시간을 내어 예배합니까? 원론적으로 대답하자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조금 이기적인 목적을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며, 조금 더 이기적인 목적은 영과 육신의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다 더 나은 장래의 삶을 보장 받기 위하여’노력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면서 현재를 살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확신한 보장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수록 장래에 대한 기대도 크고 확실한 보장을 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수많은 종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종교의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주관자이십니다. 그리고 천국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실존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시간에는 이 약속을 토대로 하여 하나님 나라의 공개된 비밀을 하나 밝혀보려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마가복음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따르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 즉 구원의 조건을 자세하게 풀어주시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무척 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6:31절에서 말씀하시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대로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쉽게 요약한 표현입니다. 이 말씀을 풀어 쓴 말씀이 본문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조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르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본문말씀은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장의 목표, 즉 현대의 표현으로 롤 모델(roll model)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장의 이유는 세상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미혹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롤 모델이라 함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실제적인 표현이 갈라디아서 2:20절의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천국은 온전함을 요구합니다.
마가복음 본문 34-35절을 봅시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말씀은 온전한 순종과 헌신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십니다. 레위기 19:2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이 말씀을 인용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48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에는 온전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완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4편을 인용한 로마서 3:10-12절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대속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로마서 4:25절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는 죄인이지만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나를 드리고 순종함으로서 온전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한 내용이 에베소서 본문 13,15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온전하지 못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과학적인 원리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물이 끓으려면 100도가 넘어야 합니다. 99도가 되어도 물은 끓지 않습니다. 0도나 99도나 같은 물이지만 끓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끓어 수증기로 증발하려면 일단 100도를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이 수증기로 탈바꿈을 하려면 100도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온전한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 가지를 불순종하는 것이나 99가지를 불순종하는 것이나 불순종은 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가려면 당연히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요한복음 12:26절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주님을 따르되 적당히 요령껏 따르는 것이 아니라 100% 온전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기독교 계통의 대학에 다니는 어느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며, 성경을 읽고 암송도 많이 합니다. 대학에서 주관하는 신앙집회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도 내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제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교수는 그 학생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고민이 있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서로 등지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서 화해하게 하고, 병든 친구나 실의에 빠진 친구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일을 해보게.”
교수의 의도를 하시겠지요? 교수는 학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 학생은 경건하고 거룩한 모양은 있었지만 실제적인 생활에서는 아무것도 나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삶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능력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4:20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능력은 경건하고 거룩한 모양이 아니라, 실제적인 생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온전함은 우리의 생명과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17-22절에 나오는 부자 청년 관원처럼 혹 한 가지가 부족하여 천국을 포기해야 하지 않도록 전적인 순종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함입니다.
※ 천국은 성장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온전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년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의 배움과 수고와 노력과 땀이 있어야 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듯이 자신의 온전한 믿음을 위하여 성실한 수고와 배움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필수 영양소들을 섭취해야 하며, 활동과 쉼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아이가 한 가지를 습득하려면 2만 번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7-8절을 봅시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우리의 신앙의 삶이 성장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연습하고 단련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본문 15-16절을 봅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어떤 것을 연습하고 단련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이라고 하셨는데, 너무 광범위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장은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지체들과의 도움과 결합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요즈음 우려되는 신앙의 모습이 있습니다. ‘나 홀로 신앙 족’입니다. 즉 자신 혼자만의 신앙을 만들려는 사람들입니다. 성경말씀이 기준이 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신앙을 만들어갑니다. 소속을 거부하거나, 교회생활을 거부하고, 혹은 자신이 편리한 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모이는 것을 싫어하고,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주일을 자신의 임의대로 사용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말세의 상황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22-24절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예수님의 피-19절)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세상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말투나 행동이나 사고방식까지 그들을 닮아갑니다. 세상의 노래를 부르거나 듣게 되면 그 노랫말이나 곡조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할 때에 섞여 살던 이방 사람들과 사귀면서 불평과 원망을 배웠습니다. 민수기 11:4절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서로의 신앙이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십년, 이십년을 해도 여전히 자라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가졌다면 심각한 영적인 문제가 됩니다. 아이가 입이 짧아 잘 먹지를 않게 되면 성장이 더디며, 균형 있는 성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 없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한 번, 두 번, 주일을 지키지 않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말씀과 기도를 쉬게 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세상적인 살이 찌게 되고 영적인 건강이 악화됩니다.
고사 성어에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탄식한다.’는 말인데, ‘할 일 없이 허송세월 하고 있는 신세를 한탄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유래가 이렇습니다.
관우, 장비와 함께 한왕조(漢王朝)의 부흥을 외치며 달리던 유비는 한때 힘이 모자라 조조에게 몰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각지를 전전하다가 형주에 있는 유표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유표는 자기를 의지하고 찾아 온 유비를 한 작은 고을에 주둔시켰습니다.
유비가 싸움터에서 벗어나 고을에 머문 지 몇 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유표는 유비를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연회 도중 화장실에 갔던 유비는 문득 자신의 넓적다리에 군살이 찐 것을 발견하고는 ‘난세에 태어나 활을 차고 말을 달리며 천하에 서려고 한 내가 이렇게 기개 없이 살고 있다니…’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연회 자리로 돌아 온 유비의 눈물자국을 본 유표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캐물었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시절 저는 항상 말을 타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군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동안 말을 타지 않아 군살이 찌고 말았습니다. 노년에 가까운 지금,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도 못하고 기개 또한 옛만 같지 않아 그저 슬플 뿐입니다.”
사람은 편안하게 안주하려고 하면 한 없이 게을러지고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적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육신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이것만 하고…, 이것까지만 하고…’라며 세상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다가 영의 생명도 천국도 모두 잃어버리게 됩니다. 천국의 공개된 비밀은 예수님을 온전한 헌신과 순종으로 따르는 자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살만 찌우다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세워가며 서로 돌아보아 격려하면서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이루어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기를 축복합니다.
** 들어가는 말
마가복음 8:34-38,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에베소서 4:13-16,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오늘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바쁜 일상 중에서 시간을 내어 예배합니까? 원론적으로 대답하자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조금 이기적인 목적을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며, 조금 더 이기적인 목적은 영과 육신의 형통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다 더 나은 장래의 삶을 보장 받기 위하여’노력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면서 현재를 살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확신한 보장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수록 장래에 대한 기대도 크고 확실한 보장을 원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여 수많은 종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종교의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며,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주관자이십니다. 그리고 천국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실존하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1-3절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 시간에는 이 약속을 토대로 하여 하나님 나라의 공개된 비밀을 하나 밝혀보려 합니다.
※ 본문말씀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봅시다.
마가복음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따르는 사람들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 즉 구원의 조건을 자세하게 풀어주시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무척 쉬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16:31절에서 말씀하시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대로 ‘예수님만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쉽게 요약한 표현입니다. 이 말씀을 풀어 쓴 말씀이 본문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의 조건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르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본문말씀은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장의 목표, 즉 현대의 표현으로 롤 모델(roll model)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장의 이유는 세상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미혹되지 않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롤 모델이라 함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실제적인 표현이 갈라디아서 2:20절의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주님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천국은 온전함을 요구합니다.
마가복음 본문 34-35절을 봅시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말씀은 온전한 순종과 헌신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포하십니다. 레위기 19:2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이 말씀을 인용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5:48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온전하신 하나님께서 계신 천국에는 온전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완전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완전할 수가 없습니다. 시편 14편을 인용한 로마서 3:10-12절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까?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으며 대속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속죄제물이 되셨고 부활하셨습니다. 로마서 4:25절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우리는 죄인이지만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주님께 나를 드리고 순종함으로서 온전함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것을 설명한 내용이 에베소서 본문 13,15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온전하지 못한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과학적인 원리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물이 끓으려면 100도가 넘어야 합니다. 99도가 되어도 물은 끓지 않습니다. 0도나 99도나 같은 물이지만 끓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끓어 수증기로 증발하려면 일단 100도를 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이 수증기로 탈바꿈을 하려면 100도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온전한 순종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 가지를 불순종하는 것이나 99가지를 불순종하는 것이나 불순종은 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가려면 당연히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요한복음 12:26절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주님을 따르되 적당히 요령껏 따르는 것이 아니라 100% 온전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기독교 계통의 대학에 다니는 어느 학생이 지도교수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날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며, 성경을 읽고 암송도 많이 합니다. 대학에서 주관하는 신앙집회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도 내 전도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없습니다. 제게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
교수는 그 학생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고민이 있는 친구의 고민을 들어주고, 서로 등지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서 화해하게 하고, 병든 친구나 실의에 빠진 친구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일을 해보게.”
교수의 의도를 하시겠지요? 교수는 학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그 학생은 경건하고 거룩한 모양은 있었지만 실제적인 생활에서는 아무것도 나타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삶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능력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4:20절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능력은 경건하고 거룩한 모양이 아니라, 실제적인 생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온전함은 우리의 생명과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17-22절에 나오는 부자 청년 관원처럼 혹 한 가지가 부족하여 천국을 포기해야 하지 않도록 전적인 순종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온전함입니다.
※ 천국은 성장을 요구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루아침에 온전하게 될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년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의 배움과 수고와 노력과 땀이 있어야 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듯이 자신의 온전한 믿음을 위하여 성실한 수고와 배움과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려면 필수 영양소들을 섭취해야 하며, 활동과 쉼을 적절하게 조절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아이가 한 가지를 습득하려면 2만 번의 반복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4:7-8절을 봅시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우리의 신앙의 삶이 성장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연습하고 단련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에베소서 본문 15-16절을 봅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어떤 것을 연습하고 단련해야 하는지를 말씀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이라고 하셨는데, 너무 광범위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장은 혼자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지체들과의 도움과 결합이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요즈음 우려되는 신앙의 모습이 있습니다. ‘나 홀로 신앙 족’입니다. 즉 자신 혼자만의 신앙을 만들려는 사람들입니다. 성경말씀이 기준이 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신앙을 만들어갑니다. 소속을 거부하거나, 교회생활을 거부하고, 혹은 자신이 편리한 대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모이는 것을 싫어하고,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주일을 자신의 임의대로 사용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말세의 상황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0:22-24절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예수님의 피-19절)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세상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말투나 행동이나 사고방식까지 그들을 닮아갑니다. 세상의 노래를 부르거나 듣게 되면 그 노랫말이나 곡조가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생활을 할 때에 섞여 살던 이방 사람들과 사귀면서 불평과 원망을 배웠습니다. 민수기 11:4절입니다.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모이기를 힘쓰며,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서로의 신앙이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십년, 이십년을 해도 여전히 자라지 않고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가졌다면 심각한 영적인 문제가 됩니다. 아이가 입이 짧아 잘 먹지를 않게 되면 성장이 더디며, 균형 있는 성장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는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 없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한 번, 두 번, 주일을 지키지 않고, 예배를 소홀히 하고, 말씀과 기도를 쉬게 되면 그것이 습관이 되어 세상적인 살이 찌게 되고 영적인 건강이 악화됩니다.
고사 성어에 ‘비육지탄(髀肉之嘆)’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탄식한다.’는 말인데, ‘할 일 없이 허송세월 하고 있는 신세를 한탄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유래가 이렇습니다.
관우, 장비와 함께 한왕조(漢王朝)의 부흥을 외치며 달리던 유비는 한때 힘이 모자라 조조에게 몰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각지를 전전하다가 형주에 있는 유표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유표는 자기를 의지하고 찾아 온 유비를 한 작은 고을에 주둔시켰습니다.
유비가 싸움터에서 벗어나 고을에 머문 지 몇 년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유표는 유비를 초대하여 주연을 베풀었습니다. 연회 도중 화장실에 갔던 유비는 문득 자신의 넓적다리에 군살이 찐 것을 발견하고는 ‘난세에 태어나 활을 차고 말을 달리며 천하에 서려고 한 내가 이렇게 기개 없이 살고 있다니…’라고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연회 자리로 돌아 온 유비의 눈물자국을 본 유표가 눈물을 흘린 이유를 캐물었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난 시절 저는 항상 말을 타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넓적다리에 군살이 붙을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한동안 말을 타지 않아 군살이 찌고 말았습니다. 노년에 가까운 지금,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도 못하고 기개 또한 옛만 같지 않아 그저 슬플 뿐입니다.”
사람은 편안하게 안주하려고 하면 한 없이 게을러지고 자신의 진정한 삶의 목적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육신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이것만 하고…, 이것까지만 하고…’라며 세상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다가 영의 생명도 천국도 모두 잃어버리게 됩니다. 천국의 공개된 비밀은 예수님을 온전한 헌신과 순종으로 따르는 자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살만 찌우다가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세워가며 서로 돌아보아 격려하면서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이루어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기를 축복합니다.